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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27화 (127/212)

127화 절정의 경지로 (1)

아카데미로 돌아온 뒤, 나는 먼저 총장실로 향해야 했다.

알드바우트 총장의 호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궁내부에서 자네에게 특별한 포상을 내리고 싶다는군. 클라우비체 란즈슈타인을 쓰러뜨려 남부의 안정에 공헌했다고 말이야.”

“궁내부에서 따로 포상을…….”

“자네에게 더 힘을 실어 주려는 거겠지.”

궁내부에서 나를 직접 지명해서 포상을 내린다는 건, 내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될 거라고 세상에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그니아스 가문이나 아그리파 가문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카데미에서도 자네에게 백색 엘릭시르를 수여하기로 했네.”

“흑색은 아니군요.”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흑색 엘릭시르는 아카데미의 권한만으로는 수여할 수 없네.”

엘릭시르 중에서는 흑영초를 사용한 흑색 엘릭시르가 최고 등급이고, 그다음이 백색 엘리시르다.

나는 지난번에 발트펠트 가문과의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 백색 엘릭시르를 받은 적이 있다.

“에르나스, 자네는 이미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것 같더군.”

“맞습니다.”

“하지만 절정급에도 가까워진 상태 아닌가?”

“…….”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와 살바토레 아틸리온을 쓰러뜨린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알드바우트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일하면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검사를 많이 봐 왔네. 하지만 자네처럼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검사는 처음이군.”

“총장님…….”

“자네만큼 ‘천재’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학생도 없겠지.”

천재.

그 단어를 입에 담을 때, 알드바우트의 눈동자가 빛났다.

“에르나스, 자네 같은 천재가 나타났다는 건 아카데미로서도 매우 기쁜 일이네.”

“…….”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하게. 최대한 지원해 줄 테니.”

알드바우트도 현재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야심을 불태우는 인물 중 하나였다.

다른 검술명가들을 제압하여 제국을 안정화한 뒤, 리히테나워 대공을 배출하여 아카데미의 권위를 확고히 하는 걸 원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아카데미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지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알드바우트한테 세속적인 욕망이 없다는 점이었다.

알드바우트는 어디까지나 아카데미를 더 위대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영지나 사병을 보유하면서 권세를 누리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제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아카데미의 권위를 극대화하는 것만이 알드바우트의 바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는 걸 바랄 수밖에 없지.’

아카데미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아카데미의 권위는 높이 치솟게 된다.

나보다 성적이 안 좋았던 루퍼스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면… 아카데미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는 거고 말이다.

“그러면, 총장님.”

“음, 뭔가?”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예산을 좀 더 배정해 주시죠.”

“…….”

알드바우트가 잠시 침묵했다.

페르디난드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고고학 연구만 해 왔기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많은 예산을 배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페르디난드 교수님이 저와 함께 모종의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자네한테 꼭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흠, 그러면 어쩔 수 없군.”

결국 알드바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페르디난드 클래스에도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이걸로 예산도 충분히 확보했다.

이제 페르디난드가 암리타를 완성해 주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 * *

알드바우트와의 면담을 마친 뒤, 나는 숙소로 향했다.

예전에는 수련생 기숙사에서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지냈지만, 지금은 3차 시험을 통과해 수련생 신분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러니 수련생 기숙사가 아니라 별도로 주어진 숙소로 향해야 했다.

‘결코 넓은 건 아니지만… 나만의 공간이지.’

나에게 주어진 숙소는 따로 독립되어 있는 독채였다.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마력 연공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배정받은 뒤 금방 아카데미 바깥으로 떠나서, 며칠 쓰지 못했지만 말이야.’

나는 숙소 안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리고 총장실에서 받은 백색 엘릭시르를 마시고 가부좌를 틀었다.

“…….”

흑천마도연공법을 활용해 한참 동안 마력을 연공한 뒤, 천천히 눈을 떴다.

마나 하트의 마력이 많이 늘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역시 절정급에 도달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결국… 암리타를 복용해야 절정급에 도전할 수 있는 거지.’

지금 당장 흑색 엘릭시르가 주어진다면 몰라도, 백색 엘릭시르 한두 개를 먹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

빠르게 절정급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암리타를 복용해야 했다.

‘페르디난드 교수가 암리타를 완성해 줄 때까지, 계속 수련이나 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실내에서 수련을 했다간 숙소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한쪽 손에 검을 들고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창뢰신기(蒼雷迅氣)로… 한번 해 보자.’

파직!

전기가 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내 전신이 푸른 기운으로 휩싸였다.

검에 전개된 것도 내 몸에 전개된 것도 똑같은 푸른 기운이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창뢰신기는 신검합일(身劍合一)을 터득하기 위해 좋은 연습이 되어 줄 것이다.

‘창뢰신기는 이름대로 신기(迅氣)… 빠르게 해 주는 것에 특화된 기운이지만.’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근처 건물들의 지붕을 박차며 아카데미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몸을 날리며 속도를 올리다가…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펼쳤다.

“하압!”

파앙!

푸른 기운이 전개된 검으로 허공을 가르면서 움직였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은 발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종횡무진 움직이며 공격하는 검술이라, 창뢰신기와 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훌륭했다.

‘이대로 계속 간다!’

팟! 파팟! 파앙!

나는 끝없이 검을 휘두르면서 아카데미 상공을 계속 질주했다.

백색 엘릭시르의 마력을 흡수해서인지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가만있자, 혹시…….’

갑자기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에, 근처 건물 지붕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상승하는 속도를 살려서 검을 휘두른 뒤, 공중에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로 ‘공중을 차면서’ 지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무런 발판이 없는 공중에서도, 창뢰신기를 사용하면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다.

“……!”

파앗! 파팟!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며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다가, 착지하는 순간 곧바로 몸을 틀면서 대각선으로 뛰어올랐다.

그대로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면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은 2차원적인 움직임만 가능한 게 아니었어.’

그동안 내가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사용할 때는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2차원적인 움직임만 했다.

하지만… 상하의 움직임도 추가하여 3차원적인 움직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실내 공간이라면 천장과 벽을 이용할 수 있고, 실외에서도 지금처럼 창뢰신기를 이용하면…….’

생각을 정리하면서 계속해서 움직였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랭크)의 성장과 함께 영구 귀속이 진행됩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S랭크)의 영구 귀속이 완료되었습니다.]

내 힘으로 SS랭크에 도달한 건 처음이다.

그 사실에 환희를 느끼면서, 나는 초고속의 참격(斬擊)으로 허공을 갈랐다.

* * *

“흥, 이렇게 밤늦게까지 뭐 하는 짓인지.”

창문 밖을 내다보며, 페르디난드는 투덜거렸다.

저 멀리서 에르나스가 건물 지붕을 밟고 뛰어다니면서 날뛰고 있었다.

“대부분 아카데미 바깥에 나가 있기에 망정이지, 다들 남아 있었다면 잠 좀 자자고 난리가 났을 거다.”

다행히 에르나스가 날뛰고 있는 구역은 원래 살던 사람들이 남부로 원정을 나간 바람에 텅텅 비어 있는 곳이다.

그러니 페르디난드처럼 감각이 날카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별로 거슬리지 않을 것이다.

“쯧…….”

페르디난드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실험실에 가득 쌓여 있는 각종 기구와 재료를 훑어봤다.

그중에는 슈라이에르 가문에서 챙겨온 공청석유도 있었다.

“그러면… 슬슬 시작해 볼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드바우트 총장이 추가 예산을 배정해 주겠다고 했다.

그 예산을 활용해 몇 가지 재료를 더 확보하면 암리타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 안에는 시제품을 완성해야겠지.”

아까 알드바우트에게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동부 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그동안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주위 가문들을 복속시켜 왔던 이그니아스 가문이… 슬슬 본격적으로 군사 활동에 나서려는 것 같았다.

그러니 시간이 별로 없다.

“에르나스가 다음 전장으로 달려가기 전에 완성해야 하니까 말이다.”

페르디난드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다.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케르베르트 백화검술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그것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기다려라, 에르나스.”

그렇게 중얼거리며 페르디난드는 공청석유에 손을 뻗었다.

푸른 광물 안에서 대지의 기운이 찰랑대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를 위해 최고의 영약을 준비해 주마.”

희대의 검술 천재인 ‘제자’를 위해.

페르디난드는 고대의 영약을 부활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 * *

나는 창뢰신기를 수련하면서 신검합일의 감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세리느 등 내 측근들은 욜스 교수와 함께 아직 남부에 있고, 하인리히 등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은 채 홀로 수련에 집중했다.

그렇게 고독한 수련에 열중한 지 6일이 흘렀을 때… 페르디난드가 나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불렀다.”

실험실 안으로 들어서자, 페르디난드가 평소처럼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맞이해 줬다.

“교수님… 언제 씻으셨습니까?”

“6일 전.”

“…….”

너저분한 페르디난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페르디난드에게 핀잔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완성하셨습니까?”

“그래.”

페르디난드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저기 유리병에 담긴 하얀색 액체가… 암리타다.”

“…….”

페르디난드의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깊은 감회가 담겨 있는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온 고대 영약을 부활시켰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제품, 딱 하나뿐이다. 여러 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 실패하고 하나만 성공했다.”

“그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교수님.”

“흥… 어쨌든 네가 먹어라.”

투덜거리듯이 말하며, 페르디난드가 고개를 돌렸다.

“문헌대로라면 복용 이후 보름 동안 마력을 안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내가 옆에서 봐주마.”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만든 영약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

자기 연구밖에 모르던 페르디난드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꾸물대지 말고 어서 들이마셔라.”

“교수님, 여기는 너무 어수선해서 다른 곳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긴 이곳은 가부좌를 틀기도…….”

어디서 복용해야 할지 페르디난드와 의논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면서, 실험실에 교수들이 들이닥쳤다.

“페르디난드 교수님!”

“무슨 일이냐?”

“총장님이 페르디난드 교수님을 호출했습니다! 아, 에르나스도 호출했고요!”

“나뿐만 아니라 에르나스까지?”

페르디난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동부인가?”

“맞습니다!”

교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이그니아스 가문이 베르디에 가문을 멸망시킨 뒤, 바스티안 가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비로소 암리타가 완성된 날.

나와 세리느의 출신지인 동부에서, 본격적인 전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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