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클라우비체의 검 (3)
“에르나스…….”
베리스리제가 절박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한 채 결국 뒤로 물러서 버렸다.
“…….”
방금 전, 클라우비체는 베리스리제를 죽이려 했다.
자신한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딸을 죽이려 한 것이다.
‘결국, 베리스리제도 아버지가 구제불능의 이기주의자라는 걸 깨닫게 되었겠지.’
이제 베리스리제도 나를 말리지 못할 것이다.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는 클라우비체를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걸, 베리스리제도 알게 되었으니까.
“까불지 마라, 애송이!”
그때 클라우비체가 고함을 지르며 다시 공격을 해 왔다.
이쪽을 향해 검을 날린 것이다.
‘슈라이에르 비격검술…….’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은 검을 날리는 비검술(飛劍術)과 검을 원격 조종하는 어검술(御劍術)에 특화된 독문 검술로, 클라우비체의 주무기다.
거리가 좁혀지면 레이피어를 들고 슈라이에르 천검술(穿劍術)을 사용하지만, 웬만해서는 거리가 좁혀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슈라이에르 비격검술로 상대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비검술이나 어검술 자체는 다른 그래듀에이트들도 사용 가능하지만… 이 정도로 위력적인 건 클라우비체 정도지.’
쿵!
나는 다시 한번 창뢰검강으로 클라우비체의 공격을 막아 냈다.
평범한 검기로는 절대로 막지 못했을 것이다.
“네놈…….”
클라우비체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여러 자루의 검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클라우비체는 전장에 나설 때마다 부하들에게 세 자리 숫자 이상의 검을 준비시켜.’
최대한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클라우비체의 성격이다.
적이 다가와서 검을 휘두르는 상황을 막기 위해 슈라이에르 비격검술로 공격하는 건데, 날릴 검이 없어서 공격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
쿠쿠쿵!
다섯 자루의 검이 날아왔다.
첫 번째 검을 받아친 순간, 칼날이 폭발하면서 무수한 파편이 나를 덮쳤다.
‘이렇게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검도 있고.’
파편이 내 몸을 덮쳤지만, 호신기를 뚫지는 못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검을 한꺼번에 받아치고, 네 번째 검을 막아 내려 했을 때 다섯 번째 검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검술에 특화된 검도 있고.’
휘익!
크게 선회하여 내 측면을 노리던 다섯 번째 검을 후려쳤다.
칼날이 충돌하는 순간, 진은(眞銀)으로 만든 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진은검처럼 진은만을 사용해서 만든 검은 아닌 것 같지만…….’
마력에 잘 반응하는 진은의 성질을 활용해, 어검술에 써먹기 좋도록 특별히 제작한 검이다.
내가 후려쳤는데도 불구하고 공중에서 솟구쳐서 다시 나를 노렸다.
클라우비체가 계속 마력을 뻗어 실시간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
파파팟!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클라우비체는 추가로 검을 날려 계속해서 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아카데미 측의 병력을 상대하는 건 부하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나를 해치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수많은 검이 전방뿐만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면서 나를 집중공격 했다.
나는 모든 공격을 받아치면서 한 걸음씩 전진했지만…….
“그래, 대충 알겠다.”
어느 순간, 클라우비체의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도가 네 한계로군.”
그 직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라진 검들이 나를 사방에서 덮쳤다.
* * *
평소 클라우비체는 5~6할의 힘만 사용한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차피 웬만한 적들은 5~6할의 힘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리고 5~6할의 힘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적은…….
‘내 실력을 착각하게 만든 뒤, 허를 찌르면 되는 것이지.’
만만치 않은 적을 상대할 때, 클라우비체는 이 전법을 즐겨 사용했다.
서로 실력이 비슷해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7할 이상의 힘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5~6할의 클라우비체에게 익숙해져 있던 상대는 갑자기 빠르고 날카로워진 공격에 허를 찔리게 된다.
지금 클라우비체는 이 전법을 사용한 것이다.
‘멍청한 놈, 너 따위가 내 상대가 될 거라 생각했나.’
에르나스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클라우비체가 슈라이에르 비격검술로 집중 공격을 했는데,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모조리 막아 냈다.
그리고 한 걸음씩 전진하면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공방이 이어진다면, 에르나스와의 거리가 좁혀져 접근전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비체는 결코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네 녀석 실력은 이미 다 파악했단 말이다……!’
쿠쿠쿵!
7할 이상의 힘을 사용한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이 에르나스에게 쏟아졌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그 여파로 주위 성벽이 무너질 정도였다.
“흥…….”
클라우비체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에르나스가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직 애송이일 뿐이다.
“저런 애송이 하나 잡지 못하다니, 혈검장로회도 살바토레도 정말 무능한…….”
콰릉!
갑자기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이건…….”
클라우비체가 눈을 치켜뜬 순간.
무너져 내린 성벽에서, 먼지를 뚫고 에르나스가 솟구쳤다.
“……!”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몸에는… 푸른색 기운이 전개되어 있었다.
‘호신기? 아니, 뭔가 다르다!’
에르나스의 검을 코팅하고 있는 푸른 검기와 똑같아 보였다.
문득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개념이 떠올랐지만,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신검합일은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 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에르나스가 벌써 그 경지에 도달했을 리 없다.
‘어쨌든, 저걸로 내 공격을 버틴 거라면……!’
클라우비체는 마력을 더 끌어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8할 이상의 힘으로 에르나스를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
‘죽어라, 에르나스!’
파파파팡!
여러 자루의 검이 에르나스를 향해 사출되었다.
진은으로 만든 어검술용 소검(小劍)도 에르나스의 측면을 노렸다.
아까보다 한 단계 더 빨라지고 날카로워졌으니, 이번에야말로 에르나스를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이변이 벌어졌다.
“……!”
쿠쿠쿵!
천둥소리와 함께, 에르나스의 움직임이 ‘한 단계’ 더 빨라졌다.
푸른 기운에 휩싸인 채,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클라우비체의 공격에 대처했다.
검을 휘둘러서 맞받아치기도 했고, 간발의 차이로 피하기도 했다.
에르나스가 너무 종횡무진 움직이다 보니, 에르나스를 쫓던 클라우비체의 검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 녀석, 설마……!’
클라우비체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동안 클라우비체는 일부러 전력을 다하지 않고 진짜 힘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에르나스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놈……!’
경악하는 클라우비체를 비웃듯, 에르나스가 검을 휘두르며 더 높이 솟구쳤다.
* * *
‘어떠냐, 클라우비체.’
클라우비체가 나를 쉴 새 없이 공격해 댔다.
하지만 그 어떤 칼날도 나를 상처 입히지 못했다.
‘이게 바로… 창뢰신기(蒼雷迅氣)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6식, 창뢰신기.
소설에서는 제5식 창뢰검강에 이어 주인공 아칸델이 개발한 기술이다.
창뢰검강이 기존의 검기를 진화시킨 거라면, 창뢰신기는 기존의 호신기를 진화시킨 것이다.
호신기는 기본적으로 방어력을 향상하기 위한 기술이다. 마력으로 육체 표면을 뒤덮어 단단한 방호복을 두르는 것처럼 만들어 준다.
하지만 창뢰신기는 이 호신기에 새로운 효과를 더했다.
육체를 뒤덮은 마력으로 운동에너지까지 발생시켜, 방어력뿐만 아니라 민첩성까지 향상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치 번개를 몸에 두르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지.’
이건 기존의 경신술하고는 다른 원리의 기술이다.
경신술은 근육 등 인체의 내부 구조물에 작용하여 몸을 날렵하게 만들어 주지만, 창뢰신기는 인체의 외부에 작용하여 전광석화 같은 속도를 만들어 낸다.
이 창뢰신기라면, 클라우비체가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의 속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더라도 대응할 수 있다.
‘그동안 창뢰신기는 아무리 연습해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지. 하지만 살바토레의 절기(絶技)를 경험한 덕분에 겨우 터득할 수 있었어.’
살바토레는 막대한 마력을 전신에 두르고 신검합일 상태로 돌진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그 기술을 경험한 덕분에 비로소 창뢰신기를 터득할 수 있었다.
살바토레와의 싸움이 없었다면 창뢰신기를 실전에 사용하는 건 보다 훗날의 일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창뢰신기의 힘을 100% 발휘하려면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창뢰신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신검합일을 터득하기 위한 연습이 되니, 머지않아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쿠쿵!
필사적으로 검을 날리면서 클라우비체가 소리쳤다.
“그 푸른 기운은 대체 무엇이냐?!”
“내가 그걸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나?”
나는 검을 휘두르면서 대꾸했다.
“나 같은 애송이한테 가르침을 청하다니 정말로 궁지에 몰린 모양이군, 클라우비체.”
“네놈……!”
콰쾅!
클라우비체의 검이 또 하나 파괴되었다.
파편이 튀었지만, 창뢰신기가 내 몸을 보호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새 또 다른 검이 내 배후를 노렸지만, 창뢰신기의 속도로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내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에 대응할 수 있는 속도라니!”
“어차피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
내 지적에 클라우비체가 흠칫 놀랐다.
그는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10할의 힘을 사용해라, 클라우비체.”
“네놈……!”
“결정적인 순간에 내 허를 찌르기 위해 최대 9할 정도의 힘만 사용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야.”
클라우비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이렇게 꿰뚫어 보고 있는 이상, 내 허를 찌르는 건 어려워졌다.
“혹시 내 착각인가? 실제로는 이 정도가 네 한계인 건가?”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건방진 놈이구나……!”
클라우비체의 목소리가 한층 더 거칠어졌다.
“그렇게도 빨리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마!”
어차피 이제는 힘을 숨기고 있다가 허를 찌르는 전법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도 없으니, 클라우비체 입장에서는 전력을 다하는 편이 낫다.
계속 내 주위를 맴돌던 진은제 소검이 클라우비체 쪽으로 돌아갔다.
클라우비체는 그 검을 손에 들고 마력을 집중했다.
막대한 마력이 칼날에 부여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회 속에서 죽어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콰앙!
굉음과 함께 검이 사출되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공격보다 훨씬 빠르고 위력적인… 궁극의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이었다.
내가 창뢰검강으로 맞받아쳐도 충격 때문에 팔이 부러질 가능성이 높다.
창뢰신기로 피하려고 해도 어검술로 나를 계속 추격해 올 것이다.
‘맞받아치는 것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클라우비체가 마력을 집중하는 동안, 나는 허리에서 새로운 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아카데미에서 가져온 진은검이 아니라, 살바토레를 쓰러뜨리고 손에 넣은 진철검이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7식…….’
창뢰신기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연습만 해 봤지, 제대로 실전에서는 사용해 보지 못했던 기술.
하지만 지금이라면 제대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클라우비체가 슈라이에르 비격검술로 나를 집중 공격 해 준 덕분에… 비검술 및 어검술의 묘리(妙理)를 깨우칠 수 있었으니까.
‘창뢰비강(蒼雷飛鋼).’
콰쾅!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푸르게 빛나는 진철검이 사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