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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18화 (118/212)

118화 절정급과의 정면 승부 (3)

“큭……!”

살바토레는 우측 상완(上腕)의 통증을 느끼며 물러섰다.

상처가 깊었다. 칼날이 피부와 근육을 가르고, 뼈에 닿았다.

일단 마력으로 출혈을 멈추긴 했지만… 이제 오른팔을 쓰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전까지 살바토레는 에르나스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에르나스가 아틸리온 신뢰검술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정석에서 벗어난 움직임으로 궁지에 몰아넣었다.

마력을 한계까지 불어넣어 검기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에르나스 특유의 검기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에르나스를 몰아붙여, 마침내 한쪽 무릎까지 꿇게 만들었는데…….

‘검기가… 갑자기 금색으로 변했다.’

에르나스의 금색 검기와 충돌한 순간, 살바토레의 검기가 산산조각 났다.

진철검이 아니었다면 칼날도 부러졌을 것이다.

결국 금색 검기로 코팅된 에르나스의 검이 살바토레의 검을 튕겨 버렸고, 마침내 살바토레의 오른팔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금색 검기라면 발트펠트 가문의 검기인데…….’

발트펠트 가문의 금색 검기는 마력의 결합을 파훼하는 특성이 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사용한 금색 검기도 비슷했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인 에르나스가 어떻게 발트펠트 가문의 검기를 사용하지?’

에르나스가 발트펠트 패검술이나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배웠을 리는 없다.

발트펠트 가문의 직계들만 배울 수 있는 독문 검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르나스의 검기는 발트펠트 가문의 검기보다 더 강하다!’

살바토레는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하고도 실력을 겨뤄 본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트펠트 가문의 검기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에르나스의 검기는 발트펠트 가문의 검기보다 훨씬 견고하고 위력적이었다.

미하일 발트펠트조차 이 정도의 검기는 펼칠 수 없을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놈은 대체…….’

살바토레가 왼손으로 검을 고쳐 잡고 태세를 정비하고 있는 사이에도, 에르나스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이미 오른팔 외에도 곳곳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살바토레는 강력한 호신기로 육체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검기도 부숴 버리는 금색 검기가 호신기를 뚫지 못할 리 없었다.

‘검술의 천재라도 되는 것인가?’

경악하는 살바토레를 향해, 금색 검기가 날카롭게 파고 들어왔다.

* * *

우측 팔에 부상을 입은 뒤, 살바토레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육체의 상처가 정신의 동요를 유발하고 있는 상태였다.

생전 처음 보는 금색 검기… 아니, 금색 검강에 살바토레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살바토레는 파천검강에 대항할 수단이 없다.’

파천검강은 창뢰검강을 능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살바토레가 아무리 검기를 강화해 봤자, 파천검강과 충돌하는 순간 검기가 깨져 나간다.

빠르고 날카로운 연속 공격을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지만, 발트펠트 금강검술로 힘 있게 몰아세우면 충분히 살바토레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아무리 살바토레가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라고 해도… 정면 승부로 파천검강에 맞서는 건 불가능하지.’

콰앙!

파천검강의 충격에 진철검이 또다시 튕겨져 나갔다.

자세가 무너진 살바토레가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살바토레의 몸통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살바토레는 옆으로 몸을 굴리며 공격을 피했다.

그렇게 몸을 낮춘 채 살바토레는 경신술을 사용해 크게 거리를 벌렸다.

“추하군, 살바토레.”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덕이는 살바토레를 향해, 차가운 말을 던졌다.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던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가, 땅을 구르며 도망치는 건가.”

“닥쳐라, 에르나스.”

살바토레가 굴욕에 몸을 떠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라, 살바토레.”

“뭐라고?”

“쫓지 않겠다. 도장에 숨어서 조용히 지낸다면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눈을 크게 뜨는 살바토레를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아들의 원수에게 등을 돌린 채 도망쳐라, 살바토레.”

“……!”

살바토레의 얼굴살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검을 꽉 잡았다.

‘먹혀들었군.’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살바토레가 나를 두고 도망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살바토레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나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어.’

검술 대결과는 달리, 경신술 대결이라면 내가 100% 질 수밖에 없다.

마력이 많고 경신술에 능숙한 사람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으니까.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의 유효 범위 바깥으로 도망쳐 버리면 나로서는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악의 상황은 살바토레가 클라우비체에게 돌아가는 거지.’

살바토레가 클라우비체에게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려 준 뒤, 함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만약 둘이 동시에 덤벼들 경우… 승산은 없다.

‘그러니, 살바토레를 여기서 반드시 쓰러뜨려야 한다.’

다행히 내 도발은 먹혀들었다.

살바토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

“…….”

살바토레가 자세를 더욱 낮췄다.

빼빼 마른 노인이 마치 네발짐승처럼 몸을 낮추고 있으니, 상당히 기괴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살바토레가 자신의 절기(絶技)를 펼치려 한다는 것을.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살바토레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는 분명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 그 나이에 벌써 그 정도 경지에 도달했으니, 성장하면 정말로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검사가 되겠지.”

“…….”

“어쩌면 너는… ‘절정급’을 넘어선 검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면서 살바토레가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네가 그런 경지에 도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 여기서 내가 너를 죽일 테니까.

그 말을 생략하고, 살바토레가 움직였다.

철저하게 몸을 낮춘 채 나에게 달려들었다.

막대한 마력을 전신에 두르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마치 한 자루의 검이 날아오는 것 같군.’

신검합일(身劍合一).

육체와 검이 하나가 되는,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의 필수 조건.

그것을 하나의 기술로서 승화시킨 절기였다.

‘하지만.’

나는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자세를 잡으며,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막아 낼 수 있다.’

낮은 자세로 접근하던 살바토레가 솟구쳐 올랐다.

일격에 내 목을 치기 위한 초고속의 돌격.

본래 그 속도와 그 위력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발트펠트 금강검술, 그리고 내가 스스로 개발한 파천검강이 있다.

“……!”

“……!”

쿠웅!

살바토레의 진철검이 내 진은검과 충돌했다.

진철검에 전개되어 있던 검기가 깨져나갔지만, 아까와는 달리 진철검이 튕겨져 나가지는 않았다.

살바토레가 검과 일체화되어 막대한 마력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과 하나가 된 채, 살바토레는 전력을 다해 내 목을 노렸다.

하지만…….

“윽……!”

칼날은 내 목에 닿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극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진철검과는 달리… 살바토레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살바토레의 팔이 부러져 뼈가 튀어나왔다.

이건 막대한 마력으로 검과 하나가 되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80세가 넘은 노인의 골격은 파천검강의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충격이 누적되고 있었는데… 파천검강을 뚫겠다고 전력을 다해 정면 돌파하려고 했으니,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지.’

진철검은 꺾이지 않았으나, 살바토레의 팔은 꺾였다.

이미 반대편 팔도 큰 상처를 입은 상태라, 살바토레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

툭.

진철검이 땅에 떨어졌다.

살바토레는 양쪽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많이 배웠다, 살바토레.”

나는 솔직한 심정을 입에 담았다.

비록 내가 살바토레를 꺾긴 했지만, 전체적인 기량은 살바토레가 더 뛰어났다.

특히 신검합일을 하나의 기술로 승화시킨 마지막 절기는 나한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

살바토레는 대꾸하지 않았다.

체념한 듯이 눈을 감는 살바토레를 향해, 나는 검을 휘둘렀다.

절정급의 검사, 살바토레 아틸리온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 * *

‘살바토레에게서는 획득할 만한 기술이 없다는 게 아쉽군.’

나는 살바토레의 시체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빈첸티오와는 달리 살바토레는 소설에서 묘사가 많았다. 인물의 내면을 꽤 이해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능력 재현을 시도해 볼 만했다.

‘소설 설정을 생각하면, 살바토레에게는 SS랭크의 아틸리온 신뢰검술과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이 있겠지만…….’

SS랭크의 아틸리온 신뢰검술이라면 S랭크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대체할 수 있다.

또한 현재 내가 갖고 있는 S랭크의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SS랭크의 아틸리온 마력탐측술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슬롯에 여유가 없어진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발트펠트 금강검술(SS랭크)]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흑천마도연공법(SS랭크)]

[---]

== 영구 귀속 ==

[칼레시우스 창뢰검술(A랭크)]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SS랭크의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터득하면, 영구 귀속 상태인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이 다시 잠정 획득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계속 슬롯에서 한 칸을 차지하게 된다. SSS랭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랭크를 올려서 영구 귀속으로 보낼 수 없다.

SS랭크의 아틸리온 신뢰검술도 마찬가지인데, 이것 역시 SSS랭크로 올릴 수 없으므로 슬롯을 한 칸 계속 차지하게 된다.

차라리 비슷한 스타일인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계속 활용하면서 SS랭크로 성장하는 것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

‘설정상 아틸리온 신뢰검술과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은 동위호환이니까.’

SS랭크의 아틸리온 신뢰검술을 써먹느라 S랭크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 손해다.

SS랭크의 아틸리온 신뢰검술이 클라우비체와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된다면 여기서 얻어 둬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그래, 아틸리온 신뢰검술로는 클라우비체에게 대항할 수 없지.’

클라우비체는 두 가지 검술을 주력으로 사용한다.

하나는 슈라이에르 가문의 독문 검술인 슈라이에르 천검술(穿劍術)이다. 베리스리제도 사용하던 슈라이에르 세검술(細劍術)의 상위호환으로, 찌르기 위주의 고속 전투에 특화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에, 에르나스.”

그때 등 뒤에서 베리스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끝난 거야?”

“그래.”

고개를 돌려 보니, 베리스리제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기대한 대로, 나와 살바토레의 전투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베리스리제, 내가 지난번에 말했었지.”

“뭐?”

“이대로 가면 슈라이에르 가문은 멸망할 거라고 말이다.”

“……!”

베리스리제를 살바토레 검술 도장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싸움으로 더 멸망에 가까워졌군.”

“에, 에르나스……!”

베리스리제도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라우비체가 겨우 영입한 살바토레가 죽었으니, 슈라이에르 가문은 아카데미의 절정급 교수들을 제대로 막아 낼 수 없다.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을 파죽지세로 슈라이에르 본성까지 도달할 것이다.

“아, 아직 끝난 건 아니야.”

하지만, 베리스리제는 어떻게든 반박하려 했다.

“아직 아버지가 계셔. 슈라이에르 본성에도 아직 정예 병력이 남아 있어. 그러니…….”

“아카데미를 격퇴하고, 패권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그, 그래, 분명…….”

“베리스리제.”

나는 베리스리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아카데미를 격퇴하더라도, 결국 슈라이에르 가문은 멸망할 수밖에 없어.”

“무슨 소리야?”

“베리스리제, 너희의 최종 목표는 뭐지?”

“최종 목표?”

“다른 검술명가들을 제압한 뒤, 궁내부의 인정을 받아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쟁취하는 것 아닌가?”

“그야… 그렇지.”

클라우비체는 베리스리제를 리히테나워 대공을 만든 뒤, 배후에서 조종하며 제국 전체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그 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나?”

“뭐……?”

“베리스리제, 이 제국은 검술을 숭상하는 나라다.”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는 검술이 아니라 모략에 의존하는 남자야.”

“……!”

“슈라이에르 가문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모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 그런 식의 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나?”

아무도 슈라이에르 가문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클라우비체는 온갖 모략으로 사람들의 불만을 억누르겠지만, 그렇게 할수록 사람들의 불만은 계속 누적된다.

결국 슈라이에르 가문의 파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

“베리스리제, 너는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고 싶었을 거다. 제국의 미래를 짊어질 실력자로서 당당하게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랐겠지.”

“그, 그야…….”

“하지만, 클라우비체는 너를 그런 존재로 만들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

다른 검술명가의 가주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이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후계자가 리히테나워 대공에 걸맞은 존재라고 인정받는 걸 원한다.

브랜틀리 아그리파는 하인리히가 더욱 성장하여 나를 꺾고 진정한 정점에 오르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를 제거하려고 하는 칼레온 이그니아스조차, 루퍼스가 리히테나워 대공에 걸맞은 힘을 갖출 수 있도록 공을 들이는 중이다.

하지만, 클라우비체에게는 이런 생각이 전혀 없다.

베리스리제가 리히테나워 대공에 걸맞은 검사라고 인정받든 말든, 본인이 권력을 손에 쥐면 그걸로 충분하다.

“클라우비체가 너를 리히테나워 대공에 앉혀도, 세상 사람들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비웃으면서 손가락질하겠지.”

“그, 그런 건…….”

“베리스리제, 너는 자존심이 강한 인간이다. 그런 처지에 놓였을 때, 너는 자괴감을 견디기 어렵겠지.”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데……!”

결국, 베리스리제가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멸망하는 거라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네 말대로라면 슈라이에르 가문은 결국 추악한 패배자로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겠네! 나도 마찬가지일 테고!”

베리스리제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명예욕도 강하던 소녀다.

한 사람의 검사로서 당당하게 정점에 오르고 싶었을 텐데, 모략의 도구로 이용만 당하며 살아가는 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베리스리제.”

울먹이는 그녀를 응시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너 하나뿐이다.”

“뭐?”

“그러니 생각해 봐라, 베리스리제.”

베리스리제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슈라이에르 가문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스스로 생각해 봐라.”

“에르나스, 그게 무슨…….”

“클라우비체에게 이용당할 뿐인 도구가 아니라, 앞으로 슈라이에르 가문을 이끌어 갈 후계자로서 말이다.”

“……!”

나는 베리스리제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만약 베리스리제가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녀는 소설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 *

“살바토레 아틸리온이 에르나스한테 당한 것 같습니다.”

“오르트리에 슈라이에르 님이 아카데미의 욜스 교수에게 쓰러졌습니다.”

“아틸리온 검술 도장의 그래듀에이트들이 아카데미의 안겔라 교수를 막기 위해 나섰지만 전멸했습니다.”

“하르트만 가문을 비롯한 6개 가문이 아카데미에 붙었습니다.”

“내일모레면 아카데미가 이곳 본성 앞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부하들의 보고를 들으며, 클라우비체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마지막 보루였던 살바토레도 죽었다.

이제 곧 여기 슈라이에르 본성에서 마지막 결전이 시작될 것이다.

“어쩔 수 없군…….”

클라우비체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으로 손을 뻗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구나.”

“……!”

휘익!

금색 칼집이 저절로 날아와 클라우비체의 손아귀로 들어왔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나서겠다.”

“오오……!”

측근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그동안 연패를 계속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절망에 휩싸이지 않았던 건, 클라우비체가 나서 준다면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이 가주는… 슈라이에르 가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이었다.

“루클레치아.”

“네, 가주님.”

“무기고를 열어서, 내 검을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허리에 검을 차면서, 클라우비체가 검을 또 가져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루클레치아를 포함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클라우비체가 어떤 스타일의 검사인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자루를 가져오면 되겠습니까?”

“몇 자루 남아 있었지?”

“정확히 255자루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클라우비체는 집무실을 나섰다.

“전부 다 꺼내라.”

“네, 가주님.”

이제 곧 본성을 포위할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가 마침내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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