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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15화 (115/212)

115화 남부 정벌 (4)

왼쪽 어깨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큭……!”

빈첸티오는 바로 거리를 벌렸다.

우물쭈물하고 있었다면 왼팔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놈……!”

푸른색 검기를 전개하고 있는 청년을 노려보며, 빈첸티오는 이를 갈았다.

“그 검기… 대체 무엇이냐! 어떻게 내 호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들어온 거지?!”

빈첸티오는 속도를 중시하는 남부 검사지만, 호신기도 나름 뛰어난 편이었다.

웬만한 검사 상대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에르나스의 푸른 검기는 아주 간단히 빈첸티오의 호신기를 뚫고 들어왔다.

“내 검술을 너한테 자세히 가르쳐줄 필요가 있을까.”

“큭…….”

에르나스의 대답을 듣고, 빈첸티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하일 발트펠트도 저 푸른 검기로 해치운 건가?’

빈첸티오는 얼마 전에 들려온 에르나스의 무용담을 떠올렸다.

욜스 칼레시우스와 협공했다고 하나, 에르나스는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미하일의 숨통을 끊었다고 한다.

‘미하일 발트펠트의 호신기는 나보다 훨씬 두꺼웠을 테니… 평범한 검기로는 뚫을 수 없었을 거다.’

아무래도 에르나스는 특수한 검기를 터득한 것 같았다.

두꺼운 호신기를 뚫고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매우 날카로운 검기다.

에르나스는 이 검기를 무기 삼아 미하일의 숨통을 끊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걸로 나를 쓰러뜨리려 하고 있군…….’

빈첸티오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 하고 에르나스를 노려봤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놈이다.’

겉모습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저 녀석은 평범한 애송이가 아니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한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검사다.

그러니,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방심하면 내 목이 날아갈 터.’

자세를 바로 하는 빈첸티오를 보면서, 에르나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눈빛에 긴장감이 생겼군.”

“닥쳐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빈첸티오는 거칠게 내뱉었다.

“베리스리제 양의 눈앞에서, 너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게 될 것이다.”

“본인한테 하는 말인가 보군, 빈첸티오.”

“큭……!”

연무장 바닥을 박차며 움직였다.

최단거리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공격의 방향과 타이밍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왼팔……!’

빈첸티오가 가장 먼저 노린 건 에르나스의 왼팔이었다.

하지만 에르나스는 이 공격을 정확히 막아 냈다.

‘그렇다면……!’

속도를 더 올렸다.

아틸리온 신뢰검술은 속도를 중시하는 검술.

빠르게 몸을 움직이면서, 연속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

하지만, 어느새 에르나스가 공격 범위에서 사라졌다.

빈첸티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속도로 몸을 날린 뒤, 빈첸티오의 배후로 전광석화처럼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큭……!”

콰앙!

검기가 정면에서 충돌하면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가까스로 막아 내긴 했지만, 빈첸티오의 손목에 상당한 충격이 전달되었다.

에르나스의 검기가 빈첸티오의 검기보다 훨씬 강했다는 뜻이다.

‘이 검기… 역시 보통 검기가 아니다!’

빈첸티오는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면서 대책을 생각하려 했지만, 에르나스는 빈첸티오를 놓치지 않았다.

빈첸티오를 빠르게 따라잡아, 스쳐지나가듯이 검을 휘둘렀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

방금 에르나스가 사용한 건 아이오니아 신속검술로 보였다.

아카데미에서 가르쳐 주는 남부 검술인데, 아틸리온 신뢰검술과 형제뻘이라 할 수 있는 검술이었다.

빈첸티오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개량해 온 아틸리온 신뢰검술이 더 우수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에르나스가 싸우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없어졌다.

‘이 녀석, 10년 넘게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수련한 사람처럼 능숙해……!’

호신기를 가볍게 뚫어버리는 푸른색 검기.

베테랑 검사 이상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

이 두 가지가 에르나스의 주무기인 걸까.

“음……?!”

그때 갑자기 에르나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걸 멈추고, 중량감 있는 움직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갑자기 공격에도 방어에도 무게감이 실리자 빈첸티오는 당혹감을 느꼈다.

‘북부 검술인가?’

아카데미에서는 여러 검술을 다양하게 가르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선호하는 계열의 검술만 사용하게 된다.

한 가지 검술을 제대로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 검술 저 검술 왔다 갔다 수련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검사가 될 뿐이니까.

‘육중한 북부 검술과 경쾌한 남부 검술을 섞어 가며 사용하다니… 비정상적이다!’

에르나스가 펼치는 북부 검술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빈첸티오가 빠르게 공격하여 빈틈을 파고들려고 해도, 철벽처럼 견고한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남부 검술로 전환하여 종횡무진 빠르게 움직였다.

‘대체 어떻게 된 놈이지?!’

너무 당혹스러웠다.

빈첸티오의 아버지인 살바토레도 저렇게 여러 검술을 자연스럽게 전환하면서 싸우지는 못 한다.

처음부터 저런 식으로 수십 년 동안 수련해야 가능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빈첸티오가 이제부터 북부 검술을 수련한다고 해도… 에르나스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수십 년은 걸릴 것이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기에…….’

빈첸티오는 몸을 떨었다.

기껏해야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청년을 앞에 두고, 언제부터인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검술의 천재인 것인가?’

압도적인 재능 차이에 전율하는 빈첸티오 앞에서.

에르나스의 검이 금색으로 빛났다.

* * *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군.’

빈첸티오에게 빈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빈첸티오는 그래듀에이트 상급으로서는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하지.’

소설에서 빈첸티오는 절정급에 근접한 그래듀에이트 상급이라는 설정이었다.

본인의 선천적 재능 자체가 우수한 데다가, 아버지인 살바토레가 어렸을 때부터 영재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임기응변에 약하다는 설정도 있었지.’

빈첸티오는 실전 경험이 다양하지 않다.

특정 가문 소속도 아니고, 아카데미 소속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부 구석에 있는 검술 도장 소속이라, 다양한 전투를 경험할 수 없었다.

빈첸티오가 아틸리온 신뢰검술의 달인으로서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한 건 맞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북부 검술과 남부 검술을 자유자재로 전환하면서 싸우는 내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쿠웅!

빈첸티오가 결사의 각오로 덤벼들었지만, 나는 단칼에 튕겨 냈다.

뒷걸음치는 빈첸티오를 쫓아가 연속 공격을 꽂아 넣었다.

“윽……!”

빈첸티오는 어떻게든 막아 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빈첸티오의 방어를 완전히 무너뜨린 뒤, 그 가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윽……!”

파앗!

창뢰검강이 빈첸티오의 호신기를 뚫고 깊은 상처를 입혔다.

빈첸티오는 신음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수십 년 동안 검술 도장의 제자들이 땀을 흘려왔던 연무장 바닥이…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끝이군.”

나는 빈첸티오의 숨통을 끊기 위해 검을 치켜들었다.

딱히 얻어낼 정보도 없고, 고통 없이 숨을 거두게 해 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어볼 게, 하나 있다…….”

그때 빈첸티오에게서 힘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나를 더 빠르게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거 아니냐……?”

“…….”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는데…….”

맞는 말이었다.

이번에 나는 파천검강을 쓰지도 않았으니까.

“어째서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미안하게 됐군, 빈첸티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말했듯이, 한 수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아틸리온 신뢰검술을 관찰하고 싶었던 거군…….”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빈첸티오는 금방 알아챘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내 검술을 구경했다고 해서 그게 아틸리온 신뢰검술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빈첸티오가 헐떡이면서 말했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겠지.”

나는 이미 소설 속에서 살바토레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상세히 묘사했다.

살바토레는 빈첸티오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날카롭고, 훨씬 치명적일 것이다.

“그래서 너를 상대로 연습을 한 거다, 빈첸티오.”

“…….”

“저승에서 기다려라. 곧 네 아버지도 따라가게 될 테니.”

빈첸티오에게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완전히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헉……!”

내가 시선을 향하자, 싸움을 지켜보던 살바토레 검술 도장의 제자들이 뒷걸음쳤다.

빈첸티오를 쓰러뜨린 나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걱정 마라. 너희들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

다들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하다.

실력 있는 녀석들은 전부 살바토레가 데려간 것 같았다.

“살바토레는 지금 어디 있지?”

“스, 스승님은, 지금 슈라이에르 본성에…….”

“그러면 슈라이에르 본성에 빨리 전해라.”

나는 바닥에 쓰러진 빈첸티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빈첸티오를 죽였다고 말이다.”

“……!”

이 소식을 들은 살바토레가 어떻게 행동할지, 나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연무장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던 베리스리제의 팔을 잡았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베리스리제까지 약탈해 갔다는 것도, 똑똑히 전해 주길 바란다.”

“……!”

갑자기 나한테 약탈당하게 된 베리스리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 * *

소식이 전달되자 지휘 본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나타나… 도장에 남아 있던 빈첸티오를 죽였다고?”

지도를 살피며 작전을 논하고 있던 살바토레가 부르르 몸을 떨었고, 주위에 있던 살바토레의 제자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편 그 맞은편에 있던 클라우비체는…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크, 클라우비체 님.”

옆에 있던 루클레치아가 다급히 클라우비체에게 말을 건넸다.

“당장 추격대를 구성하겠습니다. 에르나스를 쫓고 베리스리제 님을 구출하도록…….”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하지만, 클라우비체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루클레치아의 말을 끊었다.

“이건 에르나스의 계략이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

“에르나스는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거다!”

클라우비체가 지도를 노려봤다.

지도 위에는 아카데미와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서쪽 전선의 현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카데미를 상대하기 위해 우리 쪽의 정예 그래듀에이트를 모조리 서쪽 전선에 투입하고 있는 상태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살바토레 검술 도장에 지원을 요청한 거고! 이런 상황에서 베리스리제를 구출하기 위해 전력을 분산시키면 어쩌라는 거냐!”

“……!”

이제는 클라우비체도 에르나스가 얼마나 교활한 놈인지 잘 알고 있다.

에르나스가 베리스리제를 납치해 간 것도 결국 전략적 의도가 있는 행동일 것이다.

“크, 클라우비체 님, 그렇다고 해서 베리스리제 님을 포기할 수는…….”

“놈도 베리스리제를 해칠 생각은 없을 거다. 걱정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에르나스를 추적하는 건 혈검장로회 놈들한테 맡기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클라우비체는 입술을 깨물었다.

혈검장로회에서 계속 에르나스를 추격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전혀 성과가 없었다.

혈검장로회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무능한 걸까, 아니면 에르나스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유능한 걸까.

“살바토레, 동요할 필요는 없소. 빈첸티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힘을 모아 아카데미 놈들을…….”

클라우비체가 뒤늦게 살바토레에게 말을 걸었을 때.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던 살바토레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

콰앙!

지휘 본부의 책상이 박살 났다.

지난번에 클라우비체가 부숴 버린 뒤 새것으로 교체했지만, 이번에 살바토레의 주먹에 의해 다시 박살 나 버렸다.

“클라우비체… 나는 에르나스를 잡으러 가겠다.”

“살바토레……!”

살바토레의 음산한 목소리에 클라우비체는 눈을 치켜떴다.

“여기서 에르나스를 잡기 위해 이탈하면 놈의 함정에 말려드는 것이오! 지금까지 논의한 작전대로 서쪽 전선에 나서줘야 하오!”

살바토레가 없으면 아카데미의 절정급 교수 4명을 막는 게 어려워진다.

클라우비체가 구상한 전략이 또다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말했지 않소! 그동안 에르나스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남부를 휘젓고 다녔다고!”

에르나스의 목적.

그것은 슈라이에르 가문이 최대의 전력을 갖추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주력 부대가 보다 유리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여기서 당신까지 빠지게 되면 에르나스에게 좋은 일만…….”

“클라우비체, 이미 나는 마음을 정했다.”

살바토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아들의 복수를 하러 갈 것이다. 이건 나한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큭……!”

클라우비체는 꽉 주먹을 쥐었다.

지휘 본부 책상이 아직 멀쩡했다면, 클라우비체가 주먹을 휘둘러 책상을 부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책상은 이미 살바토레가 박살낸 상태였고, 클라우비체가 분노를 표출할 만한 대상은 없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이 개자식……!’

클라우비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붓는 것뿐이었다.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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