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6검 회의 (3)
탁자가 박살 났다.
클라우비체가 이성을 잃고 주먹을 휘둘렀다는 증거였다.
“에, 에르나스!”
클라우비체보다 먼저 칼레온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미하일 발트펠트의 서부 침공을, 클라우비체가 유도했다고? 그리고 6검 회의의 정보를 대가로 혈검장로회에 너를 죽이라고 의뢰해?”
칼레온의 어조가 점점 격해졌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인가? 설명해라!”
“에르나스.”
칼레온뿐만 아니라 브랜틀리도 나를 노려보며 다그쳤다.
“자세히 얘기해 봐라. 근거 없이 하는 얘기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오늘 클라우비체 님이 데려온 수행원 중에, 루클레치아라는 여자가 있을 겁니다.”
“루클레치아?”
“변장… 아니, 변신술의 달인입니다. 그 여자가 정체를 숨긴 채 미하일 발트펠트에게 접근해 현혹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칼데아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칼데아스 사무관님, 명단에 루클레치아라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잠시만요. 루클레치아… 아, 클라우비체 님의 수행원 중에 있습니다.”
서류를 확인하고 칼데아스가 대답해 주자,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고로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활용해 루클레치아가 가까이 있는 것을 확인해 놓은 상태였다.
“브랜틀리 님, 아그리파 가문에는 상대방의 육체에 마력을 불어넣어 마나 하트를 살피는 기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용케도 알고 있군. 하인리히가 알려 줬을 리는 없는데.”
“그 기술로 루클레치아의 마나 하트를 살펴보면, 부정한 방법을 통해 마력을 축적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설마 흑천마교의 방식인가?”
“그건 아닐 겁니다. 다만 고대의 비술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겠죠.”
“알겠다.”
브랜틀리가 고개를 끄덕인 뒤 칼데아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칼데아스 사무관, 그 루클레치아라는 사람을 여기로…….”
“잠깐!”
그때, 클라우비체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왜 에르나스의 헛소리에 호응해 주는지 모르겠군.”
“클라우비체…….”
“루클레치아가 고대의 비술을 사용해 마력을 축적했다? 그게 왜 내가 미하일의 서부 침공을 뒤에서 조종했다는 증거가 되는 거지?”
클라우비체가 나한테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에르나스, 내가 떳떳하지 못한 인물을 측근으로 삼고 있다는 건 인정하마. 하지만 그 정도는 어느 가문이나 다 하고 있…….”
“오해하고 계신 것 같군요, 클라우비체 님.”
“뭐라고?”
“루클레치아의 마나 하트를 조사하는 건, 그녀가 수상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한 겁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 있으니까요.”
“검증?”
“북부 발트펠트 가문의 가신들 중에도 비슷한 시도를 했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미하일 발트펠트에게 접근했던 정체불명의 승려를 상대로 말이죠.”
“……!”
“아그리파 가문보다 기술의 정확도는 떨어지겠지만… 그 사람한테 루클레치아를 검증해 달라고 부탁하면, 동일한 마나 하트를 지닌 인물인지 확인 가능할 겁니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발트펠트 가문에 그런 시도를 했던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내가 소설에 그런 언급을 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서로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블러핑을 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예상대로, 클라우비체가 반발했다.
“그런 걸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네가 중간에 수를 썼을 수도 있는데!”
“검증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이런 검증은 검증도 아니다! 수용할 수 없다!”
“그러시군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칼레온 님, 브랜틀리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클라우비체 님은 검증을 거부하시는군요.”
“크흠, 이건 좀…….”
“클라우비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칼레온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꼬리를 흐렸고, 브랜틀리는 냉정한 눈으로 클라우비체를 쳐다봤다.
“결백을 증명한다면 에르나스를 몰아세울 수 있다. 왜 거부하지?”
“에르나스의 일방적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측근을 북부로 보내라고? 그렇게는 못 한다! 이런 것을 다 받아 주면 한도 끝도 없을 거다!”
“흠…….”
클라우비체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클라우비체가 흑막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몰아세웠다.
“클라우비체 님, 그러면 일단 루클레치아를 이쪽으로 불러주시죠. 브랜틀리 님이 마나 하트를 살펴본 뒤, 제가 심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심문?”
“네, 확인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
클라우비체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구대로 루클레치아를 여기에 세웠다가,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당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것이다.
“주저하시는군요. 정말로 결백하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실 텐데 말입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 녀석……!”
“그런 게 아니라면 여기로 데려오십시오. 그리고 루클레치아에게 모든 걸 사실대로 대답하라고 명령을 내려 주시면 됩니다.”
“큭…….”
클라우비체는 슬그머니 주위를 살폈다.
유스트 바스티안과 올레아나 클라리온은 물론이고, 칼레온과 브랜틀리가 의심 어린 눈빛으로 클라우비체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거부하겠다. 루클레치아는 내 심복이어서 여러 기밀을 알고 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심문당하면 본인도 모르게 발설해 버릴 수 있으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시군요. 클라우비체 님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보시다시피, 클라우비체 님은 검증을 거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각자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클라우비체가 살기가 담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제가 두 번째로 한 얘기도 궁금하시겠죠.”
“그, 그렇다.”
칼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비체가 혈검장로회에 네 암살을 의뢰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 대가로 6검 회의의 정보를 넘기기로 했다는 것도?”
“6검 회의의 정보를 넘기기로 했다는 건, 제 추측입니다. 다만…….”
나는 회의장 한쪽 벽을 응시하며 말했다.
“벽 너머에 클라우비체 님이 데려온 수행원이 있습니다. 혈검장로회의 ‘장로급’ 암살자로 보이는데, 회의 내용을 엿듣고 있는 걸로 보이는군요.”
“……!”
그 말을 듣고, 칼레온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기로 벽을 날려 버리려 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제 발언을 엿듣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제 와서 벽을 뚫어 봤자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 그런가?”
“에르나스……!”
클라우비체가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허술하구나! 정말로 그쪽에 혈검장로회의 암살자가 숨어 있었다면 선제공격을 해서 제압했어야지! 네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상, 네 말은 단순한 허언(虛言)이다!”
“저게 혈검장로회의 장로급 암살자라면 제 공격은 먹히지 않을 겁니다, 클라우비체 님.”
그렇게 대꾸하며 나는 칼데아스에게 말을 건넸다.
“칼데아스 사무관님, 바깥으로 나가서 각 가문의 수행원들이 방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해 주시죠. 아마 클라우비체 님의 수행원 중에 행적이 불분명한 사람이 한 명 있을 겁니다.”
“아, 그렇게 하면 확실히…….”
“또 수작을 부리는군!”
클라우비체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서로 짜고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는 속셈인가! 그런 함정에 당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아니, 클라우비체 님.”
그때, 세리느의 아버지인 유스트 바스티안이 클라우비체의 말을 끊었다.
“아까부터 검증이란 검증은 다 거부하시는군요. 대체 뭐가 그렇게 껄끄러우신 겁니까?”
“바스티안 후작, 끼어들지 마라!”
“정말로 결백하다면 검증에 응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에르나스 님을 신용하지 못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너무 부자연스럽군요.”
“큭……!”
클라우비체도 자신의 태도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비체 입장에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떻게 자신의 음모를 꿰뚫어 본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까.
‘여기서 함부로 검증에 응했다가 명백한 증거가 드러나 버리는 것보다, 검증 자체를 거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사실 나한테는 클라우비체의 음모를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
내가 클라우비체가 어떤 음모를 꾸몄는지 지적할 수 있는 건, 소설에서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S랭크로 성장한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으로 주위를 살펴보면서 마치 모든 걸 다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 클라우비체는 이렇게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 저로서는 클라우비체 님이 저렇게 거부하시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슈라이에르 가문의 가주께 강제로 검증에 응하라고 명령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입니다.”
“…….”
클라우비체에게 그렇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은 이곳의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검증을 거부하면서, 클라우비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받게 되었다.
“클라우비체, 태도를 똑바로 해라!”
결국, 칼레온이 눈을 치켜뜨고 클라우비체를 노려봤다.
“오늘 네 태도는 확실히 수상하다! 설마 에르나스의 주장이 사실인 건가?!”
“그렇지 않다, 칼레온!”
“결백하면 검증에 응하면 되지 않나! 왜 그렇게 거부하는 거지?!”
“이런 무분별한 음해에 일일이 응대하면 한도 끝도 없단 말이다! 그리고 에르나스가 검증 과정에 손을 썼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말로 나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예상대로 칼레온은 불같이 화를 내며 클라우비체를 추궁했다.
한편 브랜틀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차가운 눈으로 클라우비체를 노려보고 있었다.
불신감이 담긴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클라우비체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칼데아스가 우리들을 향해 물었다.
“아까 에르나스 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수결로 정해야 할까요?”
“……!”
클라우비체가 눈을 치켜떴다.
내가 아까 꺼낸 얘기는, 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 하는 클라우비체를 제국의 공적(公敵)으로 지정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다수결로 투표를 해서 이 제안이 통과될 경우, 클라우비체는 정말로 공공의 적이 된다.
‘궁내부의 협조로 개최된 6대 가문의 공식 회의니까 말이야. 여기서 결정한 사항을 무시한다는 건 제국의 질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지.’
물론, 실제로 투표를 한다고 해서 클라우비체가 제국의 공적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낮다.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안이 통과되려면 4명 이상이 투표해야 하는데, 솔직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클라우비체… 너는 투표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나는 클라우비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클라우비체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성격이다.
평소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움직여 음모를 꾸미는 것도, 방금 전까지 검증 자체를 거부한 것도… 위험 요소를 최대한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런 투표, 받아들일 수 없다.”
“클라우비체……!”
예상대로, 클라우비체는 도박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 투표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다. 정말로 그런 투표를 하여 다수결로 나를 몰아세우려 한다면…….”
클라우비체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나는 이 회의에서 퇴장하겠다. 나 없이 6검 회의를 진행하도록.”
“클라우비체, 네 녀석……!”
칼레온이 목소리를 높이며 클라우비체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내가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클라우비체 님,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애초에 이게 네가 추진한 6검 회의라면 굳이 내가 참석할 이유가 없었지. 페르펙티오가 추진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학생에 불과한 가주 대리가 추진한 6검 회의에 무슨 의미가 있나.”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나는 차갑게 내뱉었다.
“계속 이곳에 있다가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기라도 하면 위험하니까, 빨리 자리를 뜨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에르나스, 네놈…….”
클라우비체가 살기가 가득 담긴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지금 당장 검을 뽑아 네 목을 치지 않는 것을 고맙게 여겨라. 우리 둘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를 죽였을 것이다.”
“말씀이 심하시군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만약 여기서 클라우비체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달려든다면, 칼레온과 브랜틀리가 동시에 달려들어 제지할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클라우비체도 검을 뽑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난 이만 가겠다. 너희들끼리 회의를 하려면 마음대로 해라.”
“…….”
“슈라이에르 가문의 대표인 내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6검 회의 따위… 아무 의미 없겠지만 말이다.”
그 말대로, 클라우비체 없이 계속 회의를 해 봤자 소용없다.
6검 회의는 제국의 6대 검술명가가 모인 회의니까 의미가 있는 건데, 슈라이에르 가문이 퇴장해 버리면 의미가 퇴색된다.
“이봐, 클라우비체!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클라우비체.”
칼레온이 클라우비체에게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브랜틀리가 입을 열어 칼레온의 말을 끊었다.
“여기서 이런 태도를 보이며 퇴장한다면, 나는 두 번 다시 너에게 협조해 줄 수 없다.”
“…….”
“그 점 명심해라.”
클라우비체는 대꾸하지 않았다.
불쾌감이 담겨 있는 발걸음으로 회의장을 떠났을 뿐이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칼레온은 인상을 찡그렸고, 브랜틀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로… 이 셋이 손을 잡는 일은 두 번 다시 없겠군.’
내가 이번에 6검 회의를 진행한 최대 목적은, 칼레온과 브랜틀리에게 클라우비체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 주는 것이었다.
방금 브랜틀리가 말했듯이, 이제 그들이 연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클라우비체와 싸워도, 그들이 클라우비체를 도와줄 일은 없는 거지.’
클라우비체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나하고 전면 전쟁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클라우비체, 이제 더 이상 남들 뒤에 숨어서 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6검 회의를 진행한 또 다른 이유.
그건 나와 클라우비체 간의 대립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충돌한 이상, 클라우비체가 직접 나서서 나를 쳐야 한다.
그리고 클라우비체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한테도 클라우비체를 제거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상대해 주마, 클라우비체.’
이제 클라우비체는 궁지에 몰렸다.
이런 상태에서 클라우비체가 어떤 행동에 나설지… 나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 * *
“클라우비체 님, 이게 어떻게 된…….”
“죄송합니다. 설마 에르나스가 제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 줄은…….”
“시끄럽다!”
마차를 출발시키면서, 클라우비체는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에르나스한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당해 제국의 공적으로 몰리는 건 피했지만,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칼레온과 브랜틀리의 협력은 기대할 수 없다.
칼데아스의 태도를 보니, 이제는 궁내부 쪽에서도 클라우비체를 의심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슈라이에르 가문에 미래는 없다.
“하르페시온 장로.”
“아, 네.”
“내 의뢰, 빨리 완수해 줬으면 좋겠군.”
“네? 그게 무슨…….”
쾅!
클라우비체는 마차 벽을 치면서 소리쳤다.
“오늘 당장 에르나스를 죽여 버리란 말이다! 네가 주위에 부하들을 숨겨 놓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
말단 암살자들이 모습을 숨긴 채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걸 지적당하자, 하르페시온이 숨을 삼켰다.
“에르나스가 회의장을 나와서 혼자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걸 노려라! 반드시 오늘 죽여야 해!”
클라우비체는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된 이상,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에르나스를 시작으로,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모조리 제거한 뒤… 슈라이에르 가문이 홀로 정점에 서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