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6검 회의 (1)
6검 회의.
그 참석을 요청받는 검술명가의 가주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이그니아스 가문의 칼레온은 6검 회의로 제국의 혼란이 더 심해질 거라 우려했다.
이 시기에 가주들을 모아 봤자 서로 갈등만 심해질 뿐이며, 결국 무력 충돌로 발전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그리파 가문의 브랜틀리는 궁내부의 요청에 묵묵히 협조하기로 했다.
궁내부의 요청은 황실의 요청과 같다. 6검 회의에 참석하는 건 검술명가 가주의 의무이기도 하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었다.
슈라이에르 가문의 클라우비체는 궁내부에 다른 속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6검 회의를 개최하여 검술명가의 가주들을 불러 놓은 뒤, 앞으로 제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공통된 의문을 느꼈다.
의문은 두 가지였다.
첫째, 랭커스터 가문과 발트펠트 가문의 빈자리가 있는 상태로 6검 회의를 진행해도 되는 것인가.
둘째, 계속 침묵 중인 란즈슈타인 가문의 가주는 6검 회의에 참석을 할 것인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가주들은 6검 회의가 개최되는 제국 중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 * *
“이제 곧 중부 지역에 진입할 것 같습니다, 클라우비체 님.”
“그래, 알겠다.”
마차를 몰고 있는 루클레치아의 말을 듣고, 클라우비체는 바깥을 내다봤다.
확실히 중부 지역에 가까워지니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역시 제국 중부가 가장 발전된 지역이군요.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말입니다.”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가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처럼 순한 인상이었지만, 그 실체는 정반대였다.
그는 혈검장로회에서 파견한 간부… 하르페시온 장로였다.
“황실에서 직접 다스리는 황실령이니 당연한 일이지.”
“하긴, 황궁도 있는 지역이고 말입니다.”
하르페시온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 한번 황궁도 구경해 보고 싶군요.”
“괜한 기대 갖지 마라, 하르페시온.”
클라우비체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6검 회의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다. 그 이상 바라지 마라.”
“후후, 알고 있습니다, 클라우비체 님.”
하르페시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앞으로 제국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는 6검 회의… 그 내용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지요.”
“…….”
평소 혈검장로회는 돈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평범한 암살자로는 해치울 수 없는 ‘거물’을 죽여 달라고 요구할 경우, 돈이 아니라 ‘정보’를 요구한다.
그 결과 혈검장로회는 제국 곳곳의 기밀 사항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단체가 되었다.
암살자 단체인 혈검장로회가 지금까지 토벌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온 건, 이런 생존 전략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걱정 마십시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저희 혈검장로회가 책임지고 암살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암살.
그것이 클라우비체가 혈검장로회에 의뢰한 내용이다.
본래 다른 정보를 대가로 지불해 주기로 되어 있었으나, 6검 회의가 열리게 되자 급히 변경되었다.
6검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가 주고, 회의 내용도 가장 빨리 알 수 있게 해 주기로.
“현재 에르나스는 서부 지역의 고대 유적을 탐색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한동안 그런 식의 외부 활동을 할 것 같으니, 놈을 해치울 기회는 많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요즘 베리스리제가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가서 에르나스의 동향을 수시로 보고해 주고 있다.
며칠 전에 에르나스가 서부 지역의 고대 유적으로 들어갔다는 것도 베리스리제가 보내 준 정보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클라우비체 님.”
“뭐냐.”
“클라우비체 님이라면 직속 부하들을 움직여 에르나스를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으십니까? 왜 굳이 저희들에게 의뢰하신 건지?”
하르페시온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클라우비체는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르페시온,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척해도 나는 다 꿰뚫어 볼 수 있다.”
“……!”
“이번 기회에 많은 대화를 나누며 내 사고방식을 파악하고 싶겠지만, 내가 응해 줄 이유는 없지.”
클라우비체의 지적에 하르페시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어차피 너희도 내 성향을 알고 있을 거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라.”
“이것 참, 못 당하겠군요.”
하르페시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군요. 이번에는 칼레온 이그니아스와 브랜틀리 아그리파를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겠습니다.”
“칼레온은 그렇다 쳐도 브랜틀리는 감각이 날카롭다.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혈검장로회의 장로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하르페시온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 란즈슈타인 가문의 가주는 이번에 참석하는 겁니까?”
“…….”
클라우비체가 눈썹을 찡그렸다.
“나도 모른다.”
“네?”
“궁내부 쪽에 문의를 해 봤지만 대답을 얻지 못했다.”
“으음…….”
“나는 결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6검 회의가 아니라 3검 회의가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클라우비체는 창문 밖을 응시했다.
“그 미치광이가 모습을 감춘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군…….”
* * *
6검 회의는 황실이 보유하고 있는 별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호수 위에 세워져 있는 별장이라, 외부인의 접근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었다.
사전에 도착해 있던 궁내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검술명가의 가주들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군, 브랜틀리, 클라우비체.”
6각형의 탁자에 앉은 두 남자를 보며, 칼레온 이그니아스가 입을 열었다.
“브랜틀리는 지난번에 아카데미에 왔었지만, 서로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
“그랬지.”
브랜틀리 아그리파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클라우비체는… 남부 바깥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오랜만 아닌가? 무슨 바람이 분 거지?”
“궁내부 요청으로 열리는 6검 회의인데, 참석하지 않을 수 없지.”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세 사람밖에 없군.”
“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세 사람뿐이다.
이그니아스 가문, 아그리파 가문, 슈라이에르 가문의 가주들만 있다.
랭커스터 가문, 발트펠트 가문, 란즈슈타인 가문의 가주는 자리에 없었다.
“이러면 6검 회의가 아니라 3검 회의가 되는 걸 텐데… 의미가 있나?”
“음, 그건…….”
“참석자의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클라우비체.”
브랜틀리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궁내부는 제국 사회의 혼란을 수습해 달라고 6검 회의의 개최를 요청한 거다. 여섯 명이든 세 명이든, 최선을 다해 대책을 강구하면 된다.”
“여전히 너는 재미가 없군, 브랜틀리.”
“…….”
클라우비체의 빈정거림에 브랜틀리가 눈썹을 찌푸렸다.
“재미를 따질 문제인가.”
“그렇다면 표현을 바꾸지. 네 말에는 아무 알맹이가 없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다.”
클라우비체가 차갑게 웃으면서 쏘아붙였다.
“여전히 모범생이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클라우비체.”
“그만들 좀 하게!”
클라우비체와 브랜틀리의 신경전을 보고 있던 칼레온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은 아카데미 시절과 다를 바 없군! 말다툼의 내용이 그 시절과 똑같아!”
공교롭게도… 여기 있는 셋은 아카데미 동기였다.
가장 성적이 우수했던 건 브랜틀리였고, 그다음이 클라우비체, 칼레온 순이었다.
다만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재학 중에도 여러 번 순위가 바뀌곤 했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학생 때와 똑같은데, 칼레온.”
“그렇다. 조금만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목소리를 높이면서 화를 내곤 했지.”
“무, 무슨……!”
클라우비체와 브랜틀리의 지적에 칼레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카데미 교수가 되면서 성격이 좀 차분해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불같은 성격이군.”
“클라우비체……!”
칼레온이 화를 냈지만, 클라우비체는 비꼬는 말투를 계속 유지했다.
“어쨌든… 너희들이 뻔한 얘기만 한다면 나는 귀 기울일 생각이 없다. 슈라이에르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테니까.”
“클라우비체, 너는 너희 가문의 미래만 생각하는 건가.”
“마치 본인은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라, 브랜틀리. 너도 아그리파 가문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모욕적인 발언이군.”
“이게 어디가 모욕이지?”
“…….”
브랜틀리가 대꾸하지 않고 클라우비체를 노려봤다.
칼을 뽑지 않아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이었지만, 클라우비체는 태연했다.
“회의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군…….”
칼레온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가주들이 모이면 이렇게 될 게 뻔한데, 대체 궁내부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들을 모은 건지…….”
칼레온의 기억에 의하면, 마지막 6검 회의는 15년 전에 있었다.
그때도 서로 의견 충돌만 하고 끝났기 때문에, 그 이후로 6검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궁내부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6검 회의를 다시 개최한 걸까.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바로 그때.
회의장 안으로 콧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궁내부의 1급 사무관인 칼데아스였다.
“오랜만이오, 칼데아스 사무관.”
칼레온은 바로 인사를 했다.
“비무전 때 아카데미에 왔다고 들었는데, 마침 그때 내가 자리를 비워서 인사를 나누지 못했군.”
“저도 아쉬웠습니다, 칼레온 님.”
칼데아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랜틀리 님도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물론이오.”
“클라우비체 님도…….”
“인사는 그 정도로 하지, 칼데아스 사무관.”
클라우비체가 칼데아스의 인사를 중간에 끊었다.
“이번 회의의 취지가 무엇인지 궁내부에서 제대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군.”
“아, 그렇군요.”
칼데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단… 다른 참석자분들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군요.”
“……?”
그 직후.
회의장 안으로 중년의 남녀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들은……!”
“이번에 6검 회의에 참가해 주실, 유스트 바스티안 님과 올레아나 클라리온 님이십니다.”
유스트 바스티안.
올레아나 클라리온.
두 명 다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유스트는 6대 검술명가 바로 아래 서열이라 할 수 있는 바스티안 후작 가문의 가주다. 현재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세리느 바스티안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올레아나도 바스티안과 동격인 클라리온 후작 가문의 가주다. 몇 년 전에 외동딸이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위상이 높아졌다.
“랭커스터 가문과 발트펠트 가문의 공석을 채워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군요.”
“…….”
유스트와 올레아나의 인사를 받으며, 다들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바스티안 가문과 클라리온 가문은 6대 검술명가 바로 아래 서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랭커스터 가문과 발트펠트 가문을 대신할 자격이 있다.
다만 그들이 아예 새로운 6대 검술명가의 일원이 되는 건…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칼데아스 사무관.”
클라우비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이번 6검 회의에 참석하는 건 이렇게 다섯인가?”
“아닙니다. 한 분 더 계십니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가주가 참석한다는 건가?”
클라우비체뿐만 아니라 칼레온과 브랜틀리도 흠칫 놀랐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가주는 1년 가까이 외부 활동을 안 하고 있다.
만약 란즈슈타인 가문이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면 제국의 정세가 크게 바뀌게 된다.
“아닙니다.”
“뭐라고?”
“그 대신 란즈슈타인 가문을 대표하실 수 있는 분이 오셨습니다.”
“그게 무슨…….”
“마침 들어오시는군요.”
모든 이의 시선이 회의장 출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참석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칼레온도, 브랜틀리도, 클라우비체도,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6대 검술명가 혹은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가문의 가주들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에… 한 젊은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은백색 머리카락을 지닌, 단정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에르나스가 아카데미 교복을 몸에 걸친 모습으로 회의장에 들어왔다.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궁내부가 이번에 6검 회의를 소집한 것도, 에르나스 님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뭐, 뭣……!”
“궁내부는 에르나스 님에게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6대 검술명가 및 그에 필적하는 가문의 가주가 아니면 자격이 없다.
대체 무슨 근거로 궁내부는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건가.
“칼데아스 사무관!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소……!”
칼레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나스는 아직 일개 학생이오! 우리 같은 가주들하고 동격으로 취급해 준다는 건 받아들일 수가……!”
“칼레온 님.”
바로 그때, 에르나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자리에 앉으시죠.”
“뭐, 뭣?”
칼레온이 무섭게 노려봤지만, 에르나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대로 빈자리에 앉아, 손을 깍지 끼고 미소를 지었다.
“슬슬 6검 회의를 시작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
지금 이 순간.
모든 주도권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