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02화 (102/212)

102화 3차 시험을 통과하라 (1)

“수료증을 받게, 에르나스.”

“감사합니다, 발렌티아노 교수님.”

나는 발렌티아노 클래스의 지도 교수실에서 수료증을 받았다.

이걸로 나는 4개의 수료증을 확보하여 3차 시험의 응시 자격을 얻었다.

“바로 3차 시험에 응시할 건가?’

“네, 그럴 생각입니다.”

1차, 2차 시험과는 달리 3차 시험은 자격만 된다면 원하는 시기에 도전할 수 있다.

나중으로 미룰 이유도 없기 때문에 바로 응시할 생각이었다.

“에르나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3차 시험을 통과한 뒤,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올 생각은 없나?”

“죄송합니다, 교수님.”

3차 시험을 통과하면 특정 클래스 전속의 ‘전공생’이 될 수 있다.

발렌티아노는 나를 발렌티아노 클래스의 전공생으로 만들어 자신의 후계자로 육성하고 싶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어떤 클래스에 들어갈 생각이지?”

“그건…….”

“아니, 말하지 않아도 되네.”

발렌티아노가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도 다 생각이 있겠지.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니.”

“…….”

“오해하지 말게. 나는 진심으로 자네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다만…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

씁쓸하게 웃으면서 발렌티아노가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건투를 빌겠네, 에르나스.”

“감사합니다. 그동안 가르쳐 주신 것들, 잊지 않겠습니다.”

동부 검술의 대가인 발렌티아노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보다 깊이 있게 검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큰 가르침을 준 스승의 손을 잡으며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 * *

수료증을 받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여러 학생이 모여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루퍼스 파벌과 하인리히 파벌인가.’

야외 훈련장 사용 때문에 다툼이 있는 모양이었다.

루퍼스 파벌에서는 루퍼스가 직접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하인리히 파벌은 평소 실무를 담당하는 카밀로가 앞장선 상태였다.

‘지난번 사건 이후로 충돌이 늘어난 것 같은데.’

발트펠트 가문이 무너지고 고르트가 퇴장하면서 아카데미 내부의 분위기도 살벌해졌다.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명문가의 후계자들이 건전한 경쟁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될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인리히와 루퍼스, 베리스리제가 아카데미에서 이성을 잃고 폭주할 가능성은 없지만…….’

이미 퇴장한 레스터나 고르트에 비하면, 하인리히와 루퍼스, 베리스리제는 상대적으로 인성이 괜찮은 편이다.

다만 그 아랫놈들이 멋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있다.

‘예를 들어… 하인리히는 파벌 간의 다툼에 별 관심이 없지만, 그 밑에 있는 카밀로는 다르지.’

카밀로가 하인리히를 위한답시고 파벌을 움직여 유혈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도 그런 사태가 발생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까지 내가 챙길 필요는 없겠지. 세리느와 클로에한테 얘기해 둘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기숙사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

내 접근을 눈치챈 학생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동안 나에게 굽히는 일이 없었던 루퍼스, 언제나 공격적으로 굴었던 카밀로조차 마찬가지였다.

‘미하일 발트펠트까지 쓰러뜨린 걸 보고… 이제는 깨닫게 된 거지.’

나한테 함부로 덤벼들었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는 나와의 접촉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살짝 쓸쓸하군.’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 사이를 지나쳤다.

기숙사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려 하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르나스.”

화려한 외모를 지닌 금발의 여학생.

그녀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리스리제, 무슨 일이지?”

“발렌티아노 클래스에서 수료증을 받았다는 것 같은데.”

지금 막 받았는데, 어디서 정보가 흘러 나간 걸까.

“그러면 이제 3차 시험에 응시하게 되겠네.”

“그렇지.”

“흥… 아주 빨라서 좋으시겠어.”

베리스리제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방금 전 루퍼스와는 달리, 베리스리제는 예전과 다름없는 태도로 나를 대해 주고 있었다.

“말해 두는데 나도 얼마 전에 세 번째 수료증을 받았어. 머지않아 나도 3차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길 테니, 금방 따라잡아 줄 거야.”

“그래, 열심히 해 봐.”

“큭…….”

내 반응이 불만스러웠는지, 베리스리제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베리스리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차이가 너무 벌어져 버려서, 자력으로 나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내 앞에서 선언하는 건… 그녀 나름의 오기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베리스리제, 아버지는 잘 계시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클라우비체 님을 뵌 지 오래 되어서 말이야. 문득 궁금해져서.”

“…….”

베리스리제가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딱히 다른 의도는 없어.”

“글쎄, 헨리 랭커스터와 미하일 발트펠트를 생각하면 영 꺼림칙한데.”

베리스리제의 감은 날카로웠다.

“나한테서 아버지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애초에 나는 아버지가 요새 뭘 하시는지조차 모르니까.”

“그런가?”

“그래, 비밀스러운 분이시거든.”

“…….”

베리스리제는 딱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평소 베리스리제는 아버지와 거의 소통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그니아스 가문처럼 가주와 후계자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클라우비체에게 베리스리제는 체스말에 지나지 않으니까.’

아그리파 가문의 브랜틀리는 하인리히한테 냉담한 태도를 취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발트펠트 가문의 미하일도 고르트의 미래를 위해 나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클라우비체에게 이런 측면은 없다.

베리스리제는 그냥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왜 그렇게 쳐다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흥… 내 아버지 안부가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가서 보고 오든가.”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농담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베리스리제 옆을 지나쳤다.

베리스리제가 내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무시하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다.

3차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이번에 받은 엘릭시르를 복용하며 마력 연공에 집중하고 싶었다.

* * *

엘릭시르는 청색, 적색, 황색, 녹색, 백색, 흑색 순으로 질이 좋아진다.

그동안 내가 받은 엘릭시르 중에 가장 좋은 건 녹색이었는데, 이번에는 백색 엘릭시르를 받게 되었다.

발트펠트 가문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것 때문에 수여된 것으로, 3차 시험도 통과하지 않은 학생에게 백색 엘릭시르를 주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흑색 엘릭시르는 황실에서 직접 수여하기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받는 엘릭시르 중에서는 가장 상급이라 할 수 있지.’

아카데미 상층부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 나한테 백색 엘릭시르를 주기로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나한테 힘을 실어 주는 결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발트펠트 가문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아카데미는 검술명가 이상의 존재감을 지닌 ‘세력’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리히테나워 대공 후보의 존재를 부각한다면 아카데미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는 훗날 황제를 보필할 리히테나워 대공이 있다… 이렇게 강조하면 더 효과적일 테니까.’

다만, 아카데미 상층부 전체가 나를 전폭적으로 밀어주기로 합의한 건 아닐 것이다.

아직 내가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도 교수 중 한 명인 칼레온은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다.

루퍼스를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만드는 꿈을 아직 버리지 않았을 테니, 어떻게든 나를 견제하려 할 것이다.

‘나보다 하인리히를 지지하는 교수도 있을 테고, 아직 결정된 건 없어.’

기숙사 방에 하인리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부 곳곳에 남아 있는 발트펠트 가문의 잔당을 토벌하러 갔기 때문이다.

하인리히도 아직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할 일은… 더 힘을 기르는 것.’

나는 우윳빛 액체를 마시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동부식 마력연공법이 아니라 흑천마교의 흑천마도연공법을 사용해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동부식 마력연공법은 A랭크에 불과하지만, 흑천마도연공법은 흑천마교 대주교에게서 얻어 낸 거라 SS랭크였기 때문이다.

‘최대한 힘을 길러서 3차 시험을 통과하고… 움직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백색 엘릭시르의 마력을 혈맥에서 순환시켰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마나 하트가 점점 견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그리고 마침내 3차 시험에 도전하는 날이 되었다.

나는 측근들의 배웅을 받으며 기숙사를 떠났다.

3차 시험을 치르는 곳은 예전에 징벌동이 있던 섬과 가까운 곳이었다.

“어서 와라, 에르나스.”

“욜스 교수님?”

바위섬에 도착하자 욜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이 이번 시험을 감독하십니까?”

“아니, 오늘만이다.”

욜스가 내 얼굴을 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3차 시험 전에 네 얼굴을 보고 싶었다.”

“교수님…….”

“에르나스, 알고 있겠지만 3차 시험은 1차나 2차 시험보다 훨씬 위험하다.”

1차 시험은 그냥 교관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거였다.

2차 시험은 실전 형식이었지만, 그래도 위험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3차 시험은 달랐다.

“징벌동보다 깊고 넓은 동굴… 철혈동(鐵血洞)을 통과하는 것이 3차 시험이다.”

철혈동.

이 바위산 지하에 있는 거대 시설이다.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가 처음 세워질 때, 철혈검제가 친히 지시하여 만들었다.

“2차 시험은 실전에 나설 수 있는 그래듀에이트인지 평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3차 시험은 그래듀에이트로서 온갖 역경을 이겨 낼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지.”

“…….”

“내부에는 온갖 위험이 존재한다. 자세한 건 말해 줄 수 없지만… 고대의 유물 ‘골렘’도 설치되어 있지.”

골렘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석상이다.

원래는 고대인들의 유적을 지키는 일종의 경비병이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가져다가 이런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매 기수마다 적지 않은 사망자가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3차 시험에 도전할 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아카데미에서 응시를 막기도 하지.”

그렇게 말하고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네 실력이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말이다.”

“교수님…….”

“너라면 3차 시험을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욜스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시험을 통과하고, 더 훌륭해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네, 다녀오겠습니다, 교수님.”

욜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철혈동 입구로 들어갔다.

시커먼 계단을 내려가자 본격적으로 동굴이 시작되었다.

‘어둡군.’

아무런 빛이 없었지만, 마력을 활용하면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인공적인 시설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적인 동굴이었다.

내 발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내리막길을 계속 내려가니, 앞길을 막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나보다 두 배 정도 큰 키를 지닌 석상… 골렘이었다.

그 앞쪽 바닥에 표식이 있었는데, 표식을 넘어가면 골렘이 공격한다는 뜻이었다.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직접 싸우지 않고 통과하는 방법도 있다.

경신술로 골렘의 다리 사이를 통과한다든가, 천장 쪽으로 뛰어올라 골렘의 머리 위로 넘어간다든가.

시간이 걸리지만, 우회로를 찾아서 그쪽으로 가도 된다.

‘골렘은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니까, 굳이 싸우지 않아도 돼.’

원래 아카데미도 학생들이 이놈을 쓰러뜨리는 걸 기대하고 배치한 게 아니다.

이 골렘은 워낙 단단하기 때문에 아카데미 교수들의 검기로도 파괴하기 어렵다.

싸우든 싸우지 않든, 그냥 저 너머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이 골렘을 돌파할 생각은 없었다.

“…….”

나는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골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골렘은 처음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내가 표식을 넘어 접근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기묘한 기동음을 발생시키며, 골렘이 팔을 움직였다.

저 커다란 주먹에 얻어맞으면 미하일의 주먹에 맞는 것보다 더 큰 부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 주먹을 관찰하면서, 나는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 골렘은 천 년 동안 이 곳을 지켜 왔다.

본래 이 골렘이 지켜야 하는 장소는 고대인들의 유적이지만, 강제로 끌려와서 엉뚱한 곳을 지키고 있다.

골렘에게 인격이 있다면 상당히 원통한 일일 것이다.

“이제 그만 쉬어라.”

내 혼잣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골렘이 나를 향해 커다란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내 몸을 향해 골렘의 주먹이 떨어져 내리던 순간.

“……!”

콰앙!

눈부신 금색 검기가 번뜩였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미하일 발트펠트에게서 얻어 낸 독문 검술…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검기였다.

내 몸을 찍어 누르려던 골렘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고… 잠시 뒤, 두 조각이 나서 파괴되었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시험해 보기에 딱 좋군.’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터득한 건 좋은데, 마땅히 시험해 볼 대상이 없었다.

여기에 배치되어 있는 골렘들은 평범한 그래듀에이트보다 내구력이 높으니,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연습하기에는 딱 좋다.

‘그리고 골렘은 이놈 하나뿐이 아니지.’

이 앞에 골렘이 몇이나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연습을 하기에는 충분한 숫자가 있을 것이다.

‘창뢰검강과 조합하는 연습도 할 수 있겠지.’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검기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검강을 조화시키는 것.

그것이 현시점에서 내가 추구하는 새로운 경지다.

이 시험을 마칠 무렵에는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진해 볼까.’

이 동굴에는 골렘뿐만 아니라 함정 등 온갖 난관이 존재한다.

나는 그걸 모조리 정면에서 돌파할 생각이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는 거침없이 철혈동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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