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발트펠트 가문의 폭군 (4)
한계에 달한 욜스를 내버려 둔 채, 혼자서 미하일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미하일은 더 이상 오른팔을 쓸 수 없게 된 상태.
왼팔로 검을 들면 되긴 하지만, 그렇게 검을 바꿔 드는 동작만으로도 빈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큭……!”
촤악!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사용해, 미하일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입혔다.
이번에는 등이었다. 어깨에 이어 등 근육에도 부상을 입었으니, 상체의 움직임에 큰 제약이 생길 것이다.
‘물론, 아직 치명상은 아니지만.’
내 공격을 버텨 낸 미하일이 왼손에 검을 들고 자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여 줬다.
“흐읍!”
“……!”
툭!
아래로 늘어져 있던 미하일의 오른팔이 아예 땅으로 떨어졌다.
미하일이 자신의 검으로 오른팔을 절단했기 때문이다.
‘미친 건가?’
어차피 쓸모없어졌으니, 몸을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잘라 낸 걸까.
아니면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려서 방해가 될까 봐 잘라 낸 걸까.
어떤 이유에서든, 정상적인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오른팔을 포기한 미하일이 왼손으로 마검을 치켜들었다.
“너는 정말로 대단한 놈이다.”
“…….”
“그러니, 발트펠트 가문의 미래를 위해 여기서 너를 죽이겠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미하일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죽여야 고르트에게 미래가 열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
미하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 미하일은 친족들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이었지.’
이번에 미하일이 서부 지역으로 쳐들어온 것도, 테오도라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여자 승려’가 현혹했다고 해도, 여동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미하일은 북부에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미하일이 자신의 팔을 절단한 건 테오도라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인 고르트를 위해, 나를 확실히 죽여 놓고 싶은 것이다.
‘고르트 세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나니까… 여기서 확실히 해치우고 싶겠지.’
더 확실한 승리를 위해 한쪽 팔을 잘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통증이나 출혈 때문에 전투력이 저하되겠지만, 미하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에르나스, 너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
“그러니 지금 여기서, 내 손으로 죽여 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미하일의 머릿속에는 여자 승려의 꼬드김도 제국의 패권도 사라진 상태일 것이다.
아들의 미래, 발트펠트 가문의 미래를 위해 가장 걸림돌이 될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죽어라, 에르나스.”
쿵!
땅을 박차며 미하일이 달려들었다.
무서운 기세의 돌격이다. 지금까지는 저런 공격을 펼친 적이 없었다.
‘빠르다!’
경신술을 사용해 돌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미하일은 신속한 움직임으로 계속 나를 추격했다.
‘정말로 오른팔을 버려서 몸을 가볍게 한 건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면서, 미하일이 나한테 검을 휘둘렀다.
왼손으로 휘둘러도 여전히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
쿠웅!
검강으로 공격을 받아 냈다.
하지만 미하일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육중한 대검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란한 기술을 펼치며 나를 몰아 세웠다.
‘역시… 북부 최강의 그래듀에이트다.’
쿵, 쿠쿵! 콰앙!
금색 검기과 푸른 검강이 부딪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주위에 퍼져 나간 충격파 때문에 흙먼지가 자욱했다.
“와아……!”
“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살짝 시선을 돌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넋을 잃고 우리들의 대결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아카데미의 검사들도 있었고,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케도…….’
하긴,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한 눈 호강도 되겠지만, 검사라면 이 전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얻는 게 많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나는 미하일과의 전투에서 많은 것을 얻어 내고 있었다.
‘정말로… 훌륭한 검사다.’
문득, 미하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난번에 만난 브랜틀리 아그리파보다 훨씬 양호한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하일도 나름대로 인간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으니까.
‘폭력적인 성향이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가주들하고 비교하면 인간적인 면이 있지.’
아직 만나지 못한 슈라이에르 가문의 가주라든가.
에르나스의 아버지인 란즈슈타인 가문의 가주라든가.
그런 괴물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인간다운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제대로 친분을 쌓아 우호 관계를 맺었다면,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줬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적이지 못한 얘기지만.’
먼저 칼을 들이댄 건 발트펠트 가문 쪽이다.
테오도라가 먼저 나를 죽이려 들었으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테오도라를 해치워야 했다.
거기서부터 이미 미하일과의 우호 관계는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내가 테오도라를 죽인 게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면서 미하일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지만… 그런 짓은 소설 속의 에르나스나 할 일이다.
‘인간성을 잃은 괴물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거든.’
그리고 이번 전란을 뒤에서 조종한 흑막도 있기 때문에… 결국 미하일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오늘 나는 미하일 발트펠트를 쓰러뜨릴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으로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하압!”
미하일이 기합을 내지르며 절묘한 공격을 펼쳤다.
정면에서 막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경신술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그래도 미하일은 계속해서 나를 쫓으며 연속 공격을 펼치려 했다.
“음……!”
하지만, 미하일의 공격이 흐트러졌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 왔지만, 슬슬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절정급의 검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지금 미하일은 한쪽 팔을 잃은 상태다.
게다가 평소 안 쓰던 손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솜씨로 계속 검을 휘두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슬슬 끝을 내자, 미하일 발트펠트.’
나는 마력을 더 강하게 끌어올렸다.
전력을 다해 나를 상대해 준 미하일 덕분에, 나도 한 단계 성장한 상태였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의 속도를 더 끌어올리고,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검강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
격렬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나는 미하일의 측면으로 파고든 뒤, 곧바로 방향을 전환해 그 후면을 노렸다.
미하일은 몸을 비틀어 내 공격에 대응하려 했지만, 아까보다 움직임이 둔했다.
“큭……!”
콰악!
등에서 또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미하일은 이를 악물고 마검을 휘둘렀다.
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지만, 금색 검기만큼은 아까보다 훨씬 더 거대화된 상태였다.
마력이 유실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위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
쿵!
금색 검기가 푸른 검강과 충돌했다.
공격 자체는 아까보다 더 육중했지만, 검기의 견고함은 아까보다 못했다.
마침내 창뢰검강이 미하일의 검기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음……!”
처음으로 미하일의 검이 뒤로 밀려 나갔다.
검기가 찢겨 나가면서 검강의 충격이 그대로 전달된 탓이다.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여기다.’
미하일의 우측.
오른팔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흉협부(胸脇部)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나는 그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윽……!”
파앗!
휘청거리고 있던 미하일은 내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창뢰검강이 호신기를 뚫고 미하일의 흉협부를 파고들었다.
나는 몸을 회전시켜 미하일의 마지막 반격을 피해 내면서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도 한계까지 힘을 끌어낸 상태라서 숨이 찼다.
억지로 숨을 고르면서 미하일의 모습을 확인하니… 그는 원래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처참한 부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라고 해도 저런 상태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하일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자신의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에르나스 라즈슈타인.”
미하일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에 오르면 6대 검술명가를 해체하고 봉건제 자체를 개혁할 생각이라고 하더군.”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하일이 다시 말했다.
“그건 쉽지 않은 길이다. 6대 검술명가는 물론, 다른 가문들도 동조해 주지 않을 거다.”
“그렇겠지.”
“게다가… 란즈슈타인 가문의 방침도 아닐 것이다. 너희 가주가 그런 것에 동의했을 리 없다.”
맞는 말이다.
이건 나 혼자의 생각이다.
“너는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스스로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미하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내가 나아갈 길이다.”
“…….”
미하일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구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
“고르트도 그렇고, 테오도라도 그렇고… 너를 적으로 돌린 게 최대의 실수였던 것 같군.”
그렇게 말한 뒤, 미하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미하일.”
나는 미하일에게 냉정한 목소리로 말해 줬다.
“너를 부추긴 그 여자는 다른 가문에서 파견한 공작원이다. 발트펠트 가문과 아카데미를 충돌시켜, 양쪽의 힘을 약화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그렇다.
미하일에게 접근한 흑의의 승려는 어디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니다.
발트펠트 가문과 아카데미 양쪽을 공멸시키고 싶었던 다른 검술명가에서 보낸 것이다.
“발트펠트 가문은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한 세력이다. 한편 아카데미는 가장 많은 그래듀에이트를 보유한 세력이지. 이 두 세력을 충돌시켜 거대한 전란을 불러일으키려 했던 가문이 있었던 거다.”
“…….”
내가 발렌티아노를 통해 아카데미의 빠른 대응을 유도한 건, 이 전란을 조기에 종결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소설에서 아카데미는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발트펠트 가문과의 전면전이 시작되어 큰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나는 그동안 계속 암약했던 것이다.
싸움이 길게 이어져서 이 전란의 흑막이 어부지리를 얻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랬던 거군.”
미하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
“슈라이에르 가문인지 란즈슈타인 가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영악한 놈들이로구나. 그렇다면 우리 가문은 놈들의 계략에…….”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하일이 힘없이 쓰러졌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이 뒤늦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미하일이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미하일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나를 향해 기어왔다.
그리고 나를 붙잡으며 피를 토했다.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가문을 함정에 빠뜨린 그놈들을 네가……!”
“걱정하지 마라, 미하일 발트펠트.”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그들을 쓰러뜨릴 거다.”
“…….”
나는 죽어 가는 미하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하일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힘을 손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물 ‘미하일 발트펠트’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북부 최강의 그래듀에이트.
그의 검술이 나에게 깃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