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발트펠트 가문의 폭군 (3)
소설에서 욜스는 미하일과 싸우다가 죽는다.
원래 욜스는 주인공 아칸델의 멘토가 되어 많은 가르침을 주는 캐릭터였다.
아칸델도 욜스를 존경하며 따랐고, 발트펠트 가문에서의 싸움에서도 욜스 부대에 소속되어 행동한다.
하지만 미하일과의 결전에서 욜스는 혈투 끝에 목숨을 잃게 된다.
스승을 잃은 충격에 아칸델은 새로운 힘을 각성하고,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진화시켜 미하일을 쓰러뜨리게 된다.
…이것이 소설의 줄거리였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동안 계속 암약해 왔지.’
그동안 내가 별동대로서 발트펠트 진영을 휘젓고 다닌 건, 소설과는 다른 전개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정찰 부대를 섬멸하고,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를 기습하고, 요네스 발트펠트를 해치우고, 보급선까지 끊어 놓았다.
그 결과, 지금 전황은 소설보다 상당히 양호한 상태였다.
하지만… 욜스가 위기에 처하는 것만큼은 소설하고 똑같았다.
‘그래도, 명백히 달라진 게 있지.’
소설의 주인공은 욜스가 미하일의 마검에 목숨을 잃는 걸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세계의 주인공,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5식, 창뢰검강.’
푸른빛의 검강.
이 세계에서는 나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펼쳐, 미하일의 배후를 기습한다.
미하일이 욜스의 숨통을 끊기 위해 검을 치켜든 틈을 노려서.
“음……!”
파앗!
검강이 미하일의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미하일은 매우 두껍고 견고한 호신기를 전개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래듀에이트 상급 따위의 공격에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용하는 것은 검기가 아니라 검강.
절정급의 호신기까지 뚫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견고하다.
“……!”
촤악!
미하일의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상처는 깊지 않았다.
여기서 더 파고들 수도 있었지만, 미하일의 반격이 더 빨랐다.
“웬 놈이냐.”
휘익!
거대한 마검이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낮추면서 빠르게 피신하지 않았다면, 내 머리통이 터져 나갔을 것이다.
“어떻게, 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욜스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일어나십시오, 욜스 교수님.”
다시 자세를 정비하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알겠다……!”
욜스가 근처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하일은 더 이상 욜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
미하일은 무서운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공격을 펼치지도 않고, 그저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어깨에서 흐르는 피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친아들인 고르트나 여동생 테오도라, 사촌 동생 요네스처럼 거칠게 소리를 질러 대지도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차가운 분노를 불태우고 있을 뿐이었다.
* * *
‘이놈이다.’
눈앞에 있는 은발의 청년을 보면서, 미하일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놈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청년이야말로 란즈슈타인의 가문의 후계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
‘그리고… 이놈이 테오도라를 죽였다.’
이것 또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테오도라는 이놈에게 당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인 테오도라가 고작 아카데미 학생에게 당할 리가 있겠냐고 하던 놈들은 전부 멍청이들이다.
‘요네스를 죽인 것도 이놈이 맞다.’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에서 에르나스가 요네스를 죽였다는 얘기도 사실일 것이다.
아카데미 측에서 일부러 퍼뜨린 헛소문이라고 주장하는 놈도 있었지만, 어리석은 소리다.
‘이놈은… 위험한 놈이다.’
수십 년 동안 검사로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지닌 인물인지,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이냐 중급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검사는 마력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신보다 강한 적이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쓰러뜨리는 것이 진정한 검사다.
미하일이 보기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그런 검사였다.
‘그러니…….’
미하일은 마나 하트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의 막대한 마력을 전신으로 흐르게 했다.
두꺼운 호신기를 두르자 어깨의 출혈조차 멎었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금색 검기가 한층 더 두꺼워졌다.
‘테오도라와 요네스의 원수를 갚으려면, 학생이라고 얕봐서는 안 된다.’
방금 전에 욜스를 상대할 때보다, 더 진지하게.
미하일이 마검을 휘둘렀다.
* * *
쿠웅!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미하일의 대검이 나를 덮쳤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다면 내 몸은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공격이군.’
마검 ‘발트슬라이프’는 끝으로 갈수록 칼날이 두꺼워진다.
무게중심이 칼끝 쪽에 있어, 마치 도끼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검이다.
평범한 그래듀에이트는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겠지만, 미하일은 저 마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수많은 적을 분쇄해 왔다.
‘그리고 마검의 효과로…….’
마검이라고 해서 무슨 사악한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마력에 잘 반응하여, 검기의 효율을 극대화해 주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마검 발트슬라이프에 전개된 금색 검기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흐읍!”
쿠쿵!
미하일이 검을 휘두르면서 발생한 충격파 때문에 땅이 갈라졌다.
검기가 직접 닿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조차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에르나스, 협공이다!”
그런 가운데, 오로지 욜스만이 미하일에게 달려들었다.
미하일이 나한테 검을 휘두르고 있는 사이, 그 배후로 달려가서 공격을 하려 했다.
“방해하지 마라.”
“……!”
쿠웅!
미하일의 공격에 욜스가 또다시 밀려났다.
힘 대결에서는 욜스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한테 기회가 생겼다.
‘여기다.’
발렌티아노 교수에게서 집중적으로 교육받은 덕분에 상대방의 빈틈을 꿰뚫어 보는 안목도 갖추게 되었다.
미하일에게 생겨난 미약한 빈틈을 향해, 나는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미하일의 대응도 빨랐다.
“……!”
쿠웅!
미하일의 검에 내 공격이 가로막혔다.
하지만 나는 뒤로 밀려 나가지 않았다.
욜스와는 다른 모습에 미하일이 눈썹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푸른색 검기인가.”
미하일이 내 검에 전개된 푸른 기운에 주목했다.
“그걸로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검기를 버텨 내는 것이군.”
역시 미하일이다.
내가 검강을 활용해서 자신의 검기를 버텨 냈다는 걸 눈치챘다.
평범한 검기였다면 미하일의 금색 검기에 박살이 나면서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펼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검강은, 미하일의 금색 검기와 충돌해도 약간의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검강이 충격을 경감시켜 줬기에, 욜스처럼 뒤로 밀려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놀라운 놈.”
짧게 중얼거리며 미하일이 다시 공격에 나섰다.
나는 욜스와 협력해 미하일에 맞섰다.
“욜스 교수님, 마력 소비가 심합니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정면에서 받아 내는 건 최대한 피하십시오.”
“에르나스, 하지만…….”
“평범한 검술로는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막아 낼 수 없습니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은 상대방의 검기를 깨부순다.
욜스의 검기가 부서지면 그만큼 욜스도 마력을 잃게 된다.
물론, 욜스의 기량이라면 부서져 나간 검기에서 다시 마력을 회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유실되는 마력도 상당할 것이다.
“제가 막겠습니다. 교수님은 견제를 부탁드립니다.”
“에르나스……!”
쿠웅!
금색 검기와 푸른 검강이 충돌했다.
평범한 검기라면 산산조각 났겠지만, 견고하게 압축되어 있는 검강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미하일의 검기에도 흠집이 생기지 않은 상태야.’
요네스 때와는 달리, 내 검강이 금색 검기에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있다.
미하일의 마력이 요네스보다 훨씬 많은 데다가… 발트펠트 금강검술이 발트펠트 패검술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은 발트펠트 가문의 가주와 그 후계자만이 배울 수 있는 검술이지.’
발트펠트 가문의 후계자들은 그래듀에이트가 되기 전에 일단 발트펠트 중검술을 수련한다.
그래듀에이트가 되면 발트펠트 패검술을 배워서 금색 검기를 터득하고,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발트펠트 금강검술에 도전하게 된다.
‘무엇이든 부술 수 있고, 무엇에도 부서지지 않는 검… 그것이 발트펠트 금강검술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이다.’
그런 검술을 펼치고 있기에, 내 검강으로도 흠집을 내기 어렵다.
요네스처럼 검기를 박살 내서 무력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하일도 내 검강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지.’
무엇이든 부술 수 있었던 금색 검기가, 내 푸른 검강은 부수지 못하고 있다.
내 검강도 발트펠트 패검술의 검기 못지않게 단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하일이 펼치는 모든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내고 있었다.
‘물론… 이대로 계속되면 위험하다.’
내가 환골탈태를 거쳤다고는 해도, 종합적인 육체 능력은 미하일 쪽이 더 뛰어나다.
마력도 미하일이 더 많기 때문에, 이런 공방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내가 먼저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야만 했다.
“하앗……!”
바로 그때.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무시하고, 욜스가 정면에서 미하일에게 달려들었다.
그 검에 전개된 푸른빛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설마……!’
욜스가 검강을 펼친 것은 아니다.
지금 욜스가 펼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검기였다.
다만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견고해진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펼친 창뢰검강을 보고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걸까.
‘그래,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원래 욜스 본인이 창시한 검술이니까…….’
욜스 본인도 이 격렬한 싸움에서 진화하고 있었다.
내가 보여 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미래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으면서.
“제법이군.”
하지만, 미하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마검을 크게 휘둘러 욜스를 튕겨 내려 했다.
“……!”
그러나 욜스도 저력을 보여 줬다.
푸른색 기운을 전신에 두르고, 전광석화처럼 미하일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음……!”
촤악!
욜스의 검기가 미하일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물론, 미하일의 두꺼운 호신기를 찢고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조금 얕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미하일에게 큰 빈틈을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
나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커헉!”
욜스가 미하일의 왼쪽 주먹에 얻어맞고 땅을 굴렀다.
그리고 미하일은 검을 치켜들어 우측에서 파고들어 오는 나를 막으려 했다.
지금까지와 같다면, 이번에도 내 공격은 미하일의 방어에 막힐 것이다.
미하일의 역량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하지만……!’
그동안 나는 나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지닌 검사들을 쓰러뜨려 왔다.
지금 이 순간 미하일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이미 최적의 해답을 찾아낸 상태였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에…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조합한다!’
그 순간.
내 속도 자체가 달라졌다.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서, 미하일의 우측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냥 지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오니아 신속검술은 발을 멈추는 일 없이 적을 지나치면서 치명상을 입히는 검술이다.
스쳐 지나간 순간, 나는 미하일의 우측 어깨를 향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창뢰검강이 전개된 칼날로,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
미하일의 우측 어깨에서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미하일의 오른팔이… 마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 처졌다.
근육뿐만 아니라 주요 혈관까지 끊어졌을 테니, 마력을 흘려 보내는 것도 어려워졌을 것이다.
“에르나스, 네놈……!”
경악하는 거한을 향해, 나는 주저 없이 다음 공격을 펼쳤다.
북부의 폭군(暴君) 미하일 발트펠트는… 오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손에 쓰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