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98화 (98/212)

98화 발트펠트 가문의 폭군 (2)

‘이럴 수가……!’

발렌티아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킬레온이 미하일을 쓰러뜨릴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일격에 목숨을 잃을 줄은 몰랐다.

‘아킬레온 교수가 방심했기 때문인가? 아니, 그것만은 아니야!’

아킬레온이 미하일 앞에서 주절주절 떠들어 대며 허점을 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평범한 그래듀에이트가 상대였다면 아킬레온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하일의 공격이 너무 빠르고, 강력했던 탓이다.

‘전성기를 지나 퇴물이 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 전성기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킬레온은 미하일이 퇴물이 되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해진 상태였다.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인데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건 놀라운 얘기였다.

‘대체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해 온 건가, 미하일 발트펠트……!’

아킬레온이 그냥 부상을 입은 정도만 되었어도 발렌티아노가 욜스와 함께 달려가 미하일을 협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킬레온은 일격에 머리가 깨져 죽었고, 발렌티아노도 욜스도 끼어들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은 미하일을 상대하는 것보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발트펠트 가문의 병력을 막아 내는 게 우선이었다.

“전원, 진형을 유지하면서 적의 돌격을 방어하라!”

발렌티아노는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아군은 아킬레온의 갑작스러운 전사 때문에 심리적 충격을 받은 상태다.

여기서 적의 돌격을 막아 내지 못 한다면 아군의 진형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다.

“두려워할 것 없다! 종합적인 전력은 그래듀에이트가 많은 우리 쪽이 더 강하다!”

사실 이런 대규모 야전이라면 발트펠트 가문 쪽이 더 유리하다.

아카데미의 검사들은 이런 전투를 경험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미하일 발트펠트 덕분에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

어떻게든 방어를 한 뒤 반격에 나서야 했다.

“발렌티아노 교수님, 제가 앞으로 나서서 놈들의 돌격 진형을 붕괴시키겠습니다.”

“욜스 교수?!”

그때 욜스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쪽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적병에게 혼자서 달려가는 모습은 얼핏 보기에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그 직후.

“하압!”

쿠쿠쿵!

욜스의 검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검기가 적들을 휩쓸었다.

동시에 수십 명이 휩쓸려 비명을 지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건… 그라투시아 도룡검술(屠龍劍術)!’

그라투시아 도룡검술은 거대한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한 일인 전승의 검술이다.

욜스는 저 검술로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황제에게서 ‘도룡검’의 칭호를 받았다.

“아……!”

그때 우측에서도 빛이 번쩍였다.

고개를 치켜들어 보니, 하인리히 아그리파가 홀로 전방으로 뛰쳐나가 적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욜스처럼 거대한 검기를 펼치지는 못했지만,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최대한 적들의 돌진을 방해하는 중이었다.

‘저 녀석들, 진형을 무시하고…….’

순간, 발렌티아노도 그들처럼 앞으로 뛰쳐나가 적들을 도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발렌티아노는 총지휘관으로서 아군을 통솔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들처럼 적들을 휘저어 줄 수 있는 검사가 더 있다면…….’

지금 발렌티아노 주위에도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해당되는 교수가 여러 명 있다.

하지만 그들을 앞으로 돌진시킨다고 해서 전황을 바꿀 수 있을까.

‘크윽, 지금 그 녀석이 있어 줬다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학생.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발렌티아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동안 잔뜩 치켜세워 줬는데, 이렇게 필요할 때 자리에 없으니 원망스러웠다.

‘정말로 별동대 역할을 할 생각이라면, 이런 때 적의 측면을 친다든가 해서…….’

그렇게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검기를 전개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혹시나 해서 적의 측면을 살펴봤지만, 그쪽이 아니었다.

저 멀리, 적진의 후방.

그곳에서 푸른 번개가 번뜩이고 있었다.

“설마… 에르나스?!”

지금 이 타이밍에 발트펠트 진영의 후방을 급습할 수 있는 인물.

그런 사람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밖에 없었다.

* * *

“크악……!”

창뢰검강이 검기를 분쇄하고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목숨을 앗아 갔다.

갑자기 후방에서 나타난 우리들의 기습에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은 완전히 허를 찔렸다.

“세리느!”

다음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목소리를 높이자,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세리느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에르나스!”

“클로에와 슈미츠, 비올라를 중심으로 적들을 혼란시켜!”

“알겠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내 측근은 10명 정도다.

콜러르 가문의 곡물 창고를 불태우고 보급 물자를 운반하던 수레까지 습격한 뒤, 나는 측근들과 함께 은밀히 움직였다.

아카데미 본대와 미하일 발트펠트가 격돌하는 날, 발트펠트 측의 후방을 쳐서 결정적인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몰래 발트펠트 본대의 뒤를 밟으며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나설 타이밍 같았다.

“그러면 에르나스는…….”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

“…….”

세리느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검을 휘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습니다! 뒷일은 저한테 맡기고, 에르나스는 뜻대로 움직이도록 하세요!”

“그래, 부탁한다!”

이번에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세리느는 잘 이해하고 있다.

최대한 아군의 피해가 없도록 하면서 적진을 유린해 줄 것이다.

클로에와 슈미츠, 비올라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사용하여, 발트펠트의 검사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 녀석… 으윽?!”

“크헉!”

발을 멈추는 일 없이,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검을 휘둘렀다.

내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피가 튀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래도 내 목적은 적들을 많이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발트펠트 측의 머릿수가 많기 때문에 나 혼자 아무리 애써 봤자 한계가 있다.

‘슬슬… 아카데미 측도 반격에 나서고 있군.’

우리들이 적의 후방을 급습한 덕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반격에 나선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이 마음껏 검기를 펼치면서 적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발트펠츠 진영을 괴멸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다.

‘그래,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장 한가운데,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남자가 있다.

사자처럼 뻗은 갈색 머리카락.

떡 벌어진 어깨와 두꺼운 가슴 근육.

사냥감을 노리는 야수 같은 눈빛.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마검.

‘미하일 발트펠트……!’

미하일이 마검 ‘발트슬라이프’를 휘두르자, 금색 검기가 퍼져 나가며 주위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 위로 뛰쳐나와 푸른색 검기를 내리꽂는 남자가 있었다.

“하압……!”

욜스 칼레시우스가 전력을 다해 미하일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 * *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미하일 발트펠트를 막아야 한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1식 ‘낙뢰’를 펼치며, 욜스는 투지를 불태웠다.

이미 아킬레온 교수가 쓰러졌고, 발렌티아노 교수는 아군을 정비하여 반격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여기서 미하일을 막을 수 있는 건 욜스뿐이었다.

“……!”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미하일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거대한 검을 치켜들어, 욜스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 냈다.

“윽……!”

쿠쿠쿵!

주위에 엄청난 충격파가 퍼졌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푸른 검기와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금색 검기가 충돌한 탓이었다.

“크억!”

“미, 미하일 님……!”

미하일을 도우려던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이 충격파에 나가떨어졌다.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한 그래듀에이트의 대결에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이다.

“윽……!”

손목이 저려 오는 것을 느끼면서, 욜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방금 전의 공격은 미하일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미하일이 타고 있던 흑마에게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흠…….”

결국 미하일은 말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그리고 냉혹한 눈으로 욜스를 노려봤다.

“아까 그 애송이보다는 낫군, 욜스 칼레시우스.”

“알아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미하일 님.”

그렇게 말을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검기와 검기가 격돌하는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미하일은 강력한 일격으로 욜스를 찍어 누르려 했고, 욜스는 속도와 기술로 미하일의 빈틈을 파고들려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호각처럼 보이는 공방을 이어 갔다.

‘아니, 실제로는 호각이 아니다……!’

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이 아킬레온처럼 당할 거라고 예감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보다 기량이 뛰어난 데다가… 상성도 좋지 않아!’

욜스의 주무기는 그라투시아 도룡검술이다.

그런데 이건 드래곤처럼 거대한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한 검술이라, 인간과의 일대일 대결에는 부적합하다.

미하일이 아무리 몸집이 크다고 해도, 결국 인간에 지나지 않으니까.

‘게다가 미하일의 발트펠트 금강검술이… 내 검기에 계속 흠집을 내고 있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은 발트펠트 패검술의 상위 호환이다.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의 막대한 마력으로 금색 검기를 펼치면, 욜스의 검기에도 흠집을 낼 수 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만 제대로 완성했어도 대항할 수 있었겠지만……!’

에르나스와 함께 연구하면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여전히 미완성이었다.

지금의 욜스가 펼치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로는 미하일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공격을 주고받던 도중, 미하일의 눈빛이 갑자기 번뜩였다.

“너는 내 동생인 테오도라의 죽음에 관여한 것 같더군, 욜스 칼레시우스.”

“……!”

테오도라 발트펠트가 사망했을 때, 욜스도 서부 대미궁에 있었다.

다만 그녀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뒷수습을 했을 뿐이다.

“대답해라. 내 동생은 왜 죽었지?”

“그건, 대미궁에서 몬스터에게…….”

“아직도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는가.”

“윽……!”

콰앙!

미하일의 공격이 갑자기 육중해졌다.

그걸 가까스로 받아 낸 순간, 욜스의 검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미하일은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 동생인 테오도라가 몬스터 따위에게 죽을 것 같으냐?”

“큭……!”

욜스는 다급히 검기를 재구성하려 했다.

하지만 미하일은 그걸 허용해 줄 정도로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소용없다.”

콰앙!

불완전한 검기를 뚫고, 금색 검기가 욜스의 검을 직격했다.

칼날은 산산조각 나 버렸고, 욜스 본인도 충격 때문에 뒤로 튕겨 나갔다.

“테오도라의 죽음을 더럽힌 죄… 죽어 마땅하다.”

차가운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으며.

미하일이 마검 발트슬라이프를 높게 치켜들었다.

“테오도라에게 사죄하면서 죽어라, 욜스 칼레시우스.”

“……!”

욜스는 죽음을 각오했다.

그리고 육중한 마검이 욜스의 머리를 향해…….

“엉뚱한 사람을 붙잡고 사과를 요구하지 마라, 미하일 발트펠트.”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푸르게 빛나는 칼날이 미하일의 배후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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