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질풍노도의 별동대 (5)
발트펠트 패검술의 금색 검기는 상대방의 검기를 깨부순다.
파워를 중시하는 북부 검술의 특성을 극대화한 검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요네스 발트펠트는 움직임도 빠른 편이라,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소용없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5식 ‘창뢰검강’.
이걸 통해 만들어지는 건 검기가 아니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견고하기 그지없는 ‘검강(劍鋼)’이다.
“하압……!”
내 칼날에 전개된 푸른색 기운이 뭔지도 모르고, 요네스가 검을 휘둘렀다.
금색 검기가 푸른 검강에 격돌한 순간, 주위에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
요네스가 경악했다.
발트펠트 패검술을 사용하는 자신의 검이 밀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검기에 흠집이 났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당황하면서 주춤하는 요네스.
명확한 빈틈이 보이고 있었기에, 바로 치고 들어갔다.
“윽!”
요네스는 가까스로 방어했지만, 자세가 크게 흔들렸다.
내 검강에 의해 금색 검기가 찢기면서,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 탓이다.
요네스가 신체 조건이 좋은 발트펠트 가문의 남자였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벌써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네놈, 그 푸른 검기는 대체 뭐냐?!”
계속해서 몰아치는 공격을 다급히 막아 내면서, 요네스가 소리쳤다.
“어째서 우리 가문의 금색 검기에도 끄떡 않고… 오히려 이쪽 검기를 찢어발기다니!”
나는 대꾸해 주지 않았다.
슬슬 요네스의 방어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로군.’
발렌티아노 클래스에서의 수련을 통해, 전반적인 검술의 이해도가 성장한 상태였다.
어디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지, 이제는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이걸로 끝이다.’
콰앙!
요네스의 검이 튕겨져 나간 직후.
좌측 쇄골에서 명치까지 이어지는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호신기가 두터웠지만, 내 검강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크으윽……!”
요네스는 엄청난 피를 쏟아 내며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반격하려 했지만, 쓸데없는 발악이었다.
아무리 발트펠트 가문의 남자라고 해도 이 정도 상처를 입으면 가망이 없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
“우리 발트펠트 가문이 서부를 장악해서, 제국의 패권을 손에 넣어, 황제든 리히테나워 대공이든 다 짓밟아 버리고, 우리가…….”
헐떡이는 요네스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발트펠트 가문의 문제가 뭐였을까 생각했다.
일단 발트펠트 가문 자체의 공격적인 성향이 문제였다.
고르트가 아카데미에서 뒤처지면서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를 자력으로 차지하기 어려워진 것도 있다.
랭커스터 가문이 몰락하면서 서부가 무주공산 상태가 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내가 테오도라를 죽인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건 지금도 미하일 발트펠트 곁에 있을 정체불명의 ‘승려’지만…….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서, 발트펠트 가문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은 거지.
발트펠트 가문은 서부를 장악하여 제국 최대의 세력으로 발돋움하려 했다.
하지만 그 야망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막아 낼 테니까.
“에르나스!”
그때 거구의 남자 한 명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아카데미에서 아킬레온 클래스를 이끄는 절정급의 검사, 아킬레온 교수였다.
“거기 쓰러져 있는 건, 설마…….”
“요네스 발트펠트입니다.”
“……!”
숨이 끊어진 요네스의 모습에 아킬레온이 숨을 삼켰다.
“아킬레온 교수님이 공표해 주십시오. 지휘관이 죽었다는 걸 알면 발트펠트 가문의 병력들이 크게 동요할 겁니다.”
“아, 알겠다!”
“그러면 저는 다른 쪽을 지원하러 가겠습니다.”
요네스도 쓰러뜨렸고,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다.
나머지는 아카데미의 본대에게 맡긴 뒤, 세리느 등과 합류하여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야 할 것이다.
“에르나스, 잠깐……!”
뒤에서 아킬레온이 나를 불러 댔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 * *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요네스 발트펠트를 쓰러뜨렸다……!”
마력이 담긴 아킬레온의 목소리가 성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은 환호했지만, 발트펠트 가문의 병사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에서 농성전을 하려고 했었는데, 성문은 저절로 열려 버렸고 지휘관도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심지어 폴라이스 가문의 가주인 어델트 폴라이스조차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북부 검사 특유의 기질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성채를 피로 물들였다.
“에르나스가 움직여 줬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잡아먹을 뻔했군.”
“네, 북부 검사들이 예상보다 훨씬 끈질겼습니다.”
시체로 가득한 성채를 둘러보며, 발렌티아노와 욜스는 대화를 나눴다.
“이래서는 미하일 발트펠트를 쓰러뜨려도 각지로 흩어진 부대들이 계속 저항할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합시다, 발렌티아노 교수님.”
“흠, 그것도 그렇군.”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를 함락했으니, 이제는 계속 북진하여 미하일 발트펠트의 본진을 치면 된다.
물론, 미하일이라는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가 있으니 이번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가만, 그런데 에르나스는 지금 어디에…….”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적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테고, 혼자서 떠난 모양입니다.”
“허허… 이것 참.”
발렌티아노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다니…….”
“그래도 에르나스가 제멋대로 행동한 덕분에 이번 공성전을 빠르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카데미는 군대가 아니다.
검술명가의 사병(私兵)들보다 규율이 느슨하고, 에르나스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벌을 내릴 수도 없다.
“욜스 교수, 나도 딱히 벌을 내리겠다는 얘기는 아니오. 다만 에르나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지. 그래야 우리도 호응을 해 줄 것 아니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진격하고, 에르나스는 에르나스대로 별동대 역할을 하고, 그러다 보면 승리를 거둘 수 있겠죠.”
그렇게 말하며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어차피… 에르나스가 머릿속으로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우리들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 * *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가 함락되었다.
요네스가 사망했고, 그 부하들도 몰살당했다.
이 소식은 북쪽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하일 발트펠트에게도 전해졌다.
“…….”
소식을 들은 미하일은 천막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요네스의 죽음을 알고도 미하일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친동생이 아닌 사촌 동생이어서는 아니다. 테오도라의 죽음을 알았을 때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저 말없이, 깊은 슬픔에 잠겨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하일 님, 고통스러우시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미하일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건,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테오도라의 장례식 때 홀연히 나타나서 미하일을 위로해 준 승려였다.
그녀를 수상하게 여기는 가신이 많았지만, 미하일은 그런 우려를 무시하고 그녀를 곁에 두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생각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신앙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지만, 이런 게 신앙의 힘이라면 의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요네스 님은 오랫동안 발트펠트 가문을 위해 검을 휘둘러 왔습니다. 이번에도 발트펠트 가문을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죠.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 안타까운 일이다…….”
“그 원수를 갚아 주지 않으면, 요네스 님의 영혼도 편히 쉬지 못할 겁니다.”
“원수, 원수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를 반드시 처단해야겠죠.”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미하일은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쾅!
주먹을 휘두르자, 근처에 있던 탁자가 산산조각 났다.
그쪽에 사람이 있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테오도라를 죽인 그놈이, 이번에는 요네스까지……!”
“정말로… 용서해서는 안 될 놈이지요.”
“그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겠다! 찢어 죽이겠다……!”
포효하며 분노했다.
하지만 등에 닿은 그녀의 손길이 미하일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십시오, 미하일 님.”
“큭…….”
“흥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냉정하게, 북부를 지배하는 군주답게,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벌주시면 되는 겁니다.”
“군주답게…….”
“네, 군주… 아니, 제왕답게.”
제왕.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미하일은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미하일 님은 북부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지배하는 제왕이 되실 분입니다.”
“세상 전체를 지배하는 제왕…….”
“네, 그렇지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미하일의 귀를 간지럽혔다.
“테오도라 님과 요네스 님을 해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리고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서부 지역을 장악하여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면… 누구도 대항하지 못합니다.”
“…….”
“이그니아스 가문이나 아그리파 가문 등의 검술명가들은 물론이고… 황실조차도 말입니다.”
그렇다.
그녀가 말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발트펠트 가문이 패권을 잡을 수 있다.
리히테나워 대공이니 뭐니 하는 건 신경 안 써도 되는 것이다.
소식을 알 수 없는 친아들, 고르트 발트펠트가 경쟁에서 밀려나든 말든 상관없다.
“검을 잡으십시오, 미하일 님.”
“…….”
구석에는 거대한 검이 놓여 있었다.
끝으로 갈수록 칼날이 넓어지는 독특한 형상이라, 평범한 사람은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는 검이다.
저 검이야말로 발트펠트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검(魔劍) ‘발트슬라이프’였다.
“저 마검으로 에르나스도, 아카데미의 절정급 검사들도… 모조리 도륙해 버리는 겁니다.”
“…….”
미하일은 홀린 듯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검이 저절로 날아 들어왔다.
마력으로 멀리 있는 물건을 끌어당기는 기술로,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 중에서도 사용 가능한 사람은 드물다.
미하일이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 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자이기에 사용 가능한 기술이었다.
“알겠다.”
발트슬라이프에 찬란한 금색 검기가 전개되었다.
발트펠트 가문에서 가주와 그 후계자만이 배울 수 있는, 발트펠트 금강검술(金鋼劍術)의 빛이었다.
“내 검으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과 아카데미 놈들을 반드시 도륙해 버릴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성의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