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94화 (94/212)

94화 질풍노도의 별동대 (3)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는 서부 중앙의 중요한 길목에 세워져 있다.

폴라이스 가문이 직접 건설한 것이 아니라 옛 전쟁 때 세워졌으며, 오래 전부터 난공불락의 요새로 이름이 높았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그 방어 성능을 발휘할 일이 없었다.

폴라이스 가문의 영지로 몬스터 군단이 몰려오는 일도 없었고, 주위 영주들과의 관계도 양호해서 무력 충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부에 발트펠트 가문이 쳐들어오면서 그 가치가 재조명되게 되었다.

만약 폴라이스 가문이 발트펠트 가문에게 맞서 싸우기로 결의했다면, 서부의 저항 세력은 이 성채를 중심으로 발트펠트 가문과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폴라이스 가문이 스스로 문을 열고 발트펠트 가문을 맞아들이면서… 오히려 이 성채는 발트펠트 가문이 서부를 차지하기 위한 최대 거점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발트펠트 가문이 제국의 패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폴라이스 가문의 가주인 어델트 폴라이스는 성벽 위를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황제 폐하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황녀 전하는 아직 어린 소녀… 황권이 추락하고 검술명가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

최근 어델트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서 폴라이스 가문이 번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줄곧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을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삼아 황녀 전하를 보필하게 한다고 하지만…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면 아무 의미 없지.’

리히테나워 대공이 힘을 발휘하려면 나머지 가문들이 리히테나워 대공을 존중해 줘야 한다.

하지만 다른 가문들이 ‘네가 우리 가문의 후계자를 꺾은 건 인정하지만, 우리 가문 전체를 꺾은 건 아니다.’라는 태도로 나오면서 리히테나워 대공을 깔아뭉개려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짓을 하면 황실 및 다른 가문들의 비난을 받겠지만…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발트펠트 가문이 북부와 서부를 차지하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면, 차기 황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돼!’

안 그래도 발트펠트 가문은 6대 검술명가 중에서 가장 병력이 많다.

발트펠트 가문을 따르는 중소 가문들의 병사들까지 합치면 다른 검술명가들이 연합해서 덤벼들어도 상대가 안 된다.

이제 서부 지역의 가문들까지 모조리 집어삼킨다면… 그야말로 ‘왕’과 같은 위세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발트펠트 가문에서 차기 황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미래를 예상하고, 어델트는 자진해서 발트펠트 가문에 복종했다.

난공불락의 성채의 문을 활짝 열어, 발트펠트 가문의 군세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발트펠트 가문이 서부의 각 지역을 제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협조를 해 주고 있었다.

훗날 발트펠트 가문이 제국의 패권을 손에 넣었을 때… 서부 제압의 1등 공신(功臣)으로서 우대받기 위해.

“요네스 님!”

어델트는 첨탑에 올라간 요네스 발트펠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하일 발트펠트의 사촌 동생으로, 본진에 남아 있는 미하일을 대신하여 전선에서의 지휘를 담당하고 있었다.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자, 첨탑 위에 있던 요네스가 훌쩍 뛰어내렸다.

꽤 높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착지하는 모습을 보고 어델트는 감탄했다.

“역시 그래듀에이트 상급이십니다!”

“내가 북부에서는 경신술이 가장 뛰어나지.”

요네스가 코웃음을 치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어델트의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여기서 남서쪽에 있는 사르한 남작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발트펠트 가문과 잘 지내고 싶은데 주선을 해 줄 수 없냐고 묻더군요.”

“사르한 남작? 어느 정도 가문이지?”

“무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재력이 상당합니다. 협력을 얻으면 한동안 군자금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그래? 그러면 백작이 알아서 처리해 줬으면 좋겠군. 그런 부분은 일임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어델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 사람들은 거칠고 폭력적이라는 인상이 있었지만, 이 요네스라는 남자는 쾌활하고 호탕한 성격이었다.

그동안 어델트는 요네스와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과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조만간 아카데미 쪽에 가 봐야 해서, 그런 쪽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네? 아카데미 쪽에?”

“테오도라 누님의 사인(死因)을 조작한 책임자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하니까.”

“아, 그것 말이군요…….”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테오도라 발트펠트의 죽음.

이건 발트펠트 가문이 서부로 쳐들어온 명분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냥 형식적인 거지. 우리도 굳이 아카데미와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미하일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미하일 형님은 뭐…….”

요네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 같아서 어델트는 다급히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고르트 공자님을 모셔 오지는 않는 겁니까?”

“그건 고르트하고 의논을 해 봐야지. 사실 부하들한테 연락을 취해 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갑자기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네스 님!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무슨 일이냐?”

“아카데미에서……!”

상당히 급박한 목소리였다.

“아카데미에서 나온 검사들이 제6부대를 격파하고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절정급의 경지에 오른 교수가 최소 세 명은 있는 것 같다고……!”

“……!”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듣고, 요네스와 어델트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 * *

아카데미에서 출발한 토벌대는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를 향해 진격했다.

행군 도중 발트펠트 가문의 제6부대와 조우하자, 주저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제6부대를 괴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50분.

1시간도 안 되어 발트펠트 가문의 부대 하나를 괴멸할 수 있을 정도로 아카데미 측의 전력은 막강했다.

게다가 아카데미는 최대 전력을 투입한 것도 아니었다.

알드바우트 총장이나 칼레온 이그니아스 등 절정급 교수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아카데미에 머무르고 있었다.

“칼레온 교수가 화를 내더군. 왜 자기를 토벌대에 참가시키지 않느냐고.”

행군하는 도중에 발렌티아노가 입을 열자, 옆에서 욜스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요. 칼레온 교수가 전면에 나섰다가 이그니아스 가문과 발트펠트 가문의 싸움이라는 모양새가 되면 곤란하니까요.”

이번 전쟁은 아카데미가 발트펠트 가문의 야욕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다.

그러니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인 칼레온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맞았다.

“칼레온 교수님은 요전번에 헨리 랭커스터를 쓰러뜨리셨고 말입니다. 만일 칼레온 교수님이 미하일 발트펠트까지 쓰러뜨리면 여러 가지 말이 나올 테니… 이번에는 뒤에서 기다리게 하시는 편이 낫죠.”

그렇게 말한 건 북부 출신의 아킬레온 교수였다.

발렌티아노, 욜스, 아킬레온… 이렇게 세 명이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투입한 절정급의 지도 교수였다.

랭커스터 가문 때와 마찬가지로 3명의 절정급 검사를 투입하게 되었는데, 그때와는 달리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을 잔뜩 데려왔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아, 슬슬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가 보이는군요.”

아킬레온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 멀리 거대한 성벽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제가 선봉으로 나서겠습니다.”

“아킬레온, 괜찮은 건가? 아는 얼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하, 걱정 마십시오.”

북부 출신인 아킬레온은 원래 발트펠트 가문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충성을 바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이제는 완전히 갈라선 상태였다.

“다른 북부 출신 교수들도 이번 기회에 발트펠트 가문에게 한 방 먹여 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가?”

“네, 다들 발트펠트 가문에게 당한 게 많아서 말입니다. 의욕이 넘쳐 나고 있죠.”

그렇게 말한 뒤, 아킬레온이 피식 웃었다.

“물론, 가장 의욕이 넘쳐나는 건 하인리히 아그리파입니다만.”

“하인리히… 그러고 보니 지금은 자네 클래스에서 수련을 받고 있었지.”

“네, 이번 기회에 큰 공적을 세우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흠…….”

그때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욜스가 입을 열었다.

“하인리히는 에르나스를 따라잡겠다는 생각이 강할 겁니다. 얼마 전에 에르나스가 아르테클라스 대주교 토벌에서 큰 공을 세웠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그 이상의 공적을 세우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겠죠.”

“음, 그러면 요네스 발트펠트를 자기 손으로 잡는 수밖에 없을 텐데… 하인리히에게 가능할지 모르겠군.”

발렌티아노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에르나스 소식을 알 수 없군. 정찰 부대를 잡았다고 연락을 해 오긴 했는데…….”

“에르나스라면 그리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욜스가 저 멀리 보이는 성채를 보면서 말했다.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 * *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성벽 위에서 짜증을 내는 요네스를 보면서, 어델트는 불안한 심정에 휩싸였다.

“요, 요네스 님, 아카데미는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 다들 그렇게 예상했었다고. 근데 왜 이런 규모의 병력을…….”

물론, 머릿수 자체는 폴라이스 성채에 있는 요네스의 병력이 더 많다.

하지만 아카데미 측에서 동원한 병력은 전원이 그래듀에이트일 것이다.

심지어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한 교수가 최소 세 명은 있을 거라 하니… 종합적인 전력은 아카데미 측이 훨씬 우위에 있다.

“제6부대를 순식간에 괴멸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으로 파견 나간 부대들을 불러들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미 늦었어. 우리가 너무 늦게 상황을 파악한 탓이지.”

“아카데미 쪽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정찰 부대도 파견하지 않았습니까?”

“그쪽도 이미 당한 거겠지. 젠장.”

욕설을 내뱉는 요네스를 보면서, 어델트는 침을 삼켰다.

“괘, 괜찮은 겁니까?”

“일단 이 성채를 활용해서 최대한 방어전을 펼쳐야지.”

요네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상황을 봐서 본진 쪽에 원군을 요청하든가… 후퇴하든가 해야지.”

“후, 후퇴라고요?”

“이곳을 버리고, 본진 쪽으로.”

“요, 요네스 님,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어델트가 다급히 물어보려 했지만, 요네스는 더 이상 대꾸해 주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공성전 준비를 시작하는 요네스를 보고, 어델트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젠장, 이러다가 우리 폴라이스 가문만 남겨 두고 발트펠트 가문의 병력이 후퇴하기라도 하면…….’

아카데미가 이 성채를 함락하면, 폴라이스 가문은 어떻게 될까.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다.

‘본진으로 후퇴할 때 우리도 따라가야 하나? 아니, 그런다고 해 봤자…….’

절박한 심정에 휩싸인 채, 어델트는 성벽을 걸어갔다.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하니, 일단 성안으로 내려가서 가신들과 의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침착해지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야. 아무리 아카데미가 절정급 검사들을 데려왔다고 해도, 이쪽에는 발트펠트 가문의 병력이 있으니 쉽게 함락될 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을 때.

어델트는 주위에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을 때.

갑자기 목덜미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델트 폴라이스, 맞나?”

“……!”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이름 모를 청년이 어델트의 목덜미에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성문의 개폐 장치를 작동하려면 당신이 끼고 있는 인장 반지가 필요하던데, 좀 빌려줬으면 좋겠군.”

“……!”

아카데미의 누군가가 이미 성채 안에 침입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어델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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