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질풍노도의 별동대 (2)
고르트가 아카데미에서 탈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곧장 추격을 개시했다.
물론, 무단으로 뛰쳐나간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측의 허가를 받았다.
아카데미에서도 고르트를 잡기 위해 추격대를 보낸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들의 도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소설 내용을 바탕으로 고르트를 추적했고, 작은 마을의 여관에서 묵고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도망칠 생각 마라, 고르트.”
고르트의 멱살을 잡은 채,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관은 내 측근들이 포위한 상태다. 네 부하들도 세리느가 다 처리했고.”
“……!”
방문도 세리느가 막고 있기 때문에, 고르트가 도망칠 곳은 없다.
“에르나스 이 자식……!”
고르트가 다시금 몸을 비틀어 내 손을 쳐 냈다.
마력을 끌어올려 전신의 힘을 극대화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내 목을 조르려는 듯이, 고르트가 팔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고 흥분한 상태였다.
“소용없다, 고르트.”
“……?!”
쿵!
내 주먹이 안면에 꽂힌 고르트가 뒤로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
고르트는 몸집이 크지만, 주먹 한 방으로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윽, 아, 아윽, 내 얼굴……!”
코뼈가 주저앉은 고르트를 보면서, 세리느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르트, 이제 저항은 포기하세요.”
“세, 세리느…….”
“당신은 더 이상 에르나스한테 상대가 안 됩니다.”
“……!”
고르트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호감을 갖고 있던 세리느한테 저런 말을 들으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으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고르트가 세리느한테 달려들었다.
하지만 세리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달려드는 고르트를 가볍게 피한 뒤, 칼자루의 폼멜로 고르트의 뒷머리를 내리쳤다.
“컥…….”
신음 소리를 흘리면서, 고르트가 쓰러졌다.
기절한 고르트의 모습을 보며 세리느가 한숨을 내쉬었다.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였던 사람이… 너무 처참하게 몰락했네요.”
허름한 여관방에서 얼굴이 뭉개진 채 쓰러진 상태.
예전에 고르트 곁에서 으스대던 학생들은 거의 다 떠났고, 그나마 고르트를 따라온 남학생 두 명은 세리느한테 제압당해 바깥에 쓰러져 있다.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고 처절하게 몰락한 모습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었어.”
고르트는 인성에 문제가 많았다.
황색 3반 시절에는 다른 학생들의 엘릭시르를 갈취하여 자신의 마력을 늘리기도 했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인망을 잃었고, 본인의 실력도 정체 상태에 놓이면서 점점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고르트는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채 답답해하면서 뭔가 외적인 계기가 생기는 것만 기다렸다.
이렇게 몰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에르나스, 그러면 이제 고르트를 데리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되겠네요.”
“아니, 우리는 돌아가지 않아.”
“네?”
“고르트는 다른 녀석들이 끌고 가게 하면 돼.”
오늘 나를 따라온 건 세리느와 클로에, 슈미츠, 비올라뿐만이 아니다.
2차 시험을 통과하여 새롭게 내 밑으로 들어온 학생들도 함께 여관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 중 몇 명한테 고르트를 맡겨 아카데미로 데려가게 하면 된다.
“고르트가 합류하려 했던 발트펠트 측의 부대를 쳐야지.”
나는 고르트의 품 안에서 편지를 하나 찾아냈다.
서부 지역에 침투한 정찰 부대가 보낸 편지로, 무슨 일이 생기면 아카데미에서 나와서 합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괜찮을까요? 저희가 맡은 임무는 고르트를 잡는 거였잖아요.”
“아니, 이 정도 재량권은 주어진 상태야. 발트펠트 측의 정보를 입수했으니, 우리가 신속히 움직이는 편이 좋지.”
“그렇군요.”
세리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르트를 아카데미로 보내는 건 제가 처리해 둘게요.”
“그래, 여관 측에 영업 방해 배상도 해 주고.”
“영업 방해보다 벽을 부순 게 더 클 것 같은데요?”
“내가 안 부쉈으면 고르트가 부쉈어.”
소설 속에서도 고르트가 벽을 부수고 도망쳐서 추격전을 벌여야 했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고르트를 잡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아카데미의 별동대로서 발트펠트 가문을 궁지에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 * *
“발트펠트 가문은 병력을 8개 부대로 나누어 서부 지역 전체를 제압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 본관에 마련된 지휘 본부.
이곳에서는 아카데미의 주요 교수들이 모여 외부에서 전달된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병력이 얼마나 많은 건가? 8개 부대로 나눠서 진격하다니, 비상식적이군.”
“8개로 나눠도 아무도 대항 못 할 거라 생각한 거겠지.”
“랭커스터 가문이 몰락한 지금, 8개 중 1개 부대를 막을 만한 가문도 없습니다.”
“놈들의 목적은 서부 지역 전체를 신속히 장악하는 것이오. 그러니 부대를 저렇게 나눠서 여러 방향으로 보낸 것이지.”
발트펠트의 군세는 서부의 중소 가문들을 두려움에 빠뜨리고 있었다.
서부에 발을 들이자마자 앞길을 가로막은 오큘러스 가문을 궤멸했다든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던 페스톨 가문의 영지를 초토화했다든가, 그런 소문이 빠르게 퍼진 탓도 있다.
“가장 먼저 달려가서 충성을 맹세한 콜러르 가문은 엄청 으스대고 있다고 하더군요.”
“페스톨 가문의 영지가 유린당한 것도 예전부터 앙숙이던 콜러르 가문이 요청했기 때문 아니오?”
“그런 얘기가 퍼지면 퍼질수록, 발트펠트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는 가문이 늘어날 겁니다.”
“이미 늦었소. 폴라이스 가문 같은 경우는 아예 성문을 활짝 열고 발트펠트 가문의 군세를 받아들였다더군.”
지도를 보면서 떠들어 대던 교수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발렌티아노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우리가 빠르게 움직여야 하네.”
“발렌티아노 교수…….”
“저들은 8개 부대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네. 하지만 그걸 일일이 격파하는 건 어렵지. 아카데미에는 그럴 만한 병력도 없네.”
발렌티아노가 지도 위에 손을 뻗었다.
“병력을 하나로 모아, 노웨르트 산맥 남쪽에 머물고 있는 발트펠트 가문의 본진을 치는 게 최선이지. 미하일 발트펠트도 그곳에 있을 테니.”
“미하일 발트펠트가 있는 본진을…….”
“하지만, 발렌티아노 교수님.”
북부 출신의 아킬레온 교수가 지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발트펠트 가문의 본진을 친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려면 도중에 다른 부대와 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방금 얘기가 나온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를 돌파해야 합니다.”
폴라이스 가문은 옛 전쟁에서 사용된 성채를 본거지로 쓰고 있는 가문이다.
하지만 방금 얘기가 나온 대로 자진해서 성문을 열고 발트펠트 가문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중요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를 무시하고 발트펠트 본진까지 가는 건 어렵습니다. 다른 길로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하죠.”
“서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를 무시하고 작전을 진행할 수는 없을 걸세. 거기부터 공략해야지.”
다른 교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방침이 정해진 모양이군요.”
“아, 욜스 교수.”
잠시 자리를 비웠던 욜스가 돌아오자, 여러 교수들의 시선이 욜스에게 향했다.
“어떻게 되었소?”
“고르트 발트펠트가 잡혔습니다.”
“오오……!”
아직 발트펠트 가문은 아카데미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고르트가 발트펠트 측과 합류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런데 고르트를 잡은 건…….”
“에르나스와 그 측근들입니다.”
“하하, 역시 그렇군.”
발렌티아노가 미소를 지었고, 다른 교수들도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이번 작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겠군.”
“그런데 에르나스는 아카데미에 복귀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
“고르트에게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발트펠트 가문의 정찰 부대를 급습하겠다고 떠난 모양입니다.”
욜스가 전해 준 얘기에 다들 숨을 삼켰다.
“아니, 에르나스가 그런 행동을…….”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혹스러워하는 교수들 앞에서 욜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나스는 리히테나워 대공 후보로 촉망받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런 에르나스가 적진을 휘젓고 다니면, 발트펠트 가문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게 되죠.”
“욜스 교수, 그러면…….”
“아예 에르나스를 정식으로 아카데미의 별동대로 활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그래듀에이트가 된 지 1년도 안 된 학생을 별동대로 활용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리에 있던 교수들 중에서 이 작전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메마른 황야.
사람들이 떠나 버려진 마을에 십여 명의 그래듀에이트들이 잠복해 있었다.
그들은 경신술과 은신술에 능한 정찰 부대로, 아군들보다 선행하여 서부 지역을 정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고르트 도련님 쪽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는 건가?”
“그래, 아무런 소식도 없어.”
“무슨 일이 있으면 고르트 도련님도 움직이겠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서부 지역의 지도를 펴 놓은 채 그들은 대화를 나눴다.
“이쪽 근방에는 별거 없었고… 역시 아카데미 쪽으로 가 봐야겠군.”
“아카데미의 동향을 살펴보는 것도 우리 임무이긴 한데…….”
“아카데미는 교육기관이야. 황실에서 직접 명령이 떨어진다면 모를까, 적극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지는 않겠지.”
“그래도 칼레온 이그니아스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그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 바깥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비가 오는 건가?”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는데.”
창문 쪽에 가까이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젖히고 바깥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컥……?!”
창문을 뚫고 들어온 칼날에 의해, 그 목이 꿰뚫렸다.
“……!”
다들 빠르게 반응했다.
근처에 놓아 뒀던 검을 집어 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방에서 적들이 뛰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이 자식들……!”
정찰 담당이라고 해도, 여기 있는 사람은 전부 그래듀에이트였다.
하지만 습격자들의 실력이 그들의 실력을 능가했다.
게다가…….
“이 녀석들, 설마 아카데미 학생인가?!”
“설마……!”
동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청년이 종횡무진 움직였다.
그가 지나칠 때마다 피가 튀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 이놈……!”
정찰 부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인가?!”
“알아봐 줘서 고맙군.”
은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빠르게 리더에게 접근했다.
리더는 자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내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
콰앙!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온 검이 리더의 검을 날려 버렸다.
리더는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한 실력자였지만, 에르나스의 푸른 검기를 전혀 받아 내지 못했다.
“윽……!”
어느새 다른 동료는 전부 다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홀로 살아남은 리더는, 목에 칼을 들이대는 에르나스 앞에서 숨을 삼켰다.
“사, 살려 다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려 줄 테니, 제발…….”
“필요 없어.”
촤악!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힘없이 쓰러지면서, 리더는 다른 학생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에르나스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부를 수색해라. 놈들이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확인한 뒤 아카데미 측에 전달한다.”
“알겠습니다, 에르나스 님!”
“그러면 다음 목적지는 어떻게 됩니까?”
“폴라이스 가문의 성채다. 아카데미도 그쪽으로 진군할 테니, 우리도 측면에서 지원한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리더는 절망적인 예감을 느꼈다.
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라는 청년이… 발트펠트 가문을 패배시킬지도 모른다는 예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