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91화 (91/212)

91화 북쪽에서 내려오는 폭군 (3)

일반적으로 검술명가들은 자신들의 세력권에서만 활동한다.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최소한의 병력만 데리고 움직여야 하며, 너무 많은 병력을 운용해서는 안 된다.

다른 지역을 ‘정복’하여 마치 왕 같은 세력을 구축하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번 아르테클라스 대주교 토벌 때 브랜틀리 아그리파가 최소한의 병력만 데리고 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미하일 발트펠트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서부 지역으로 진군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 * *

아카데미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렸다.

“발트펠트 가문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 정도 병력을 이끌고 서부 지역으로 쳐들어오다니.”

여러 교수들이 우려를 표했다.

아카데미도 서부 지역에 있는 만큼, 발트펠트 가문의 진군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예전 같았으면 랭커스터 가문이 가만있지 않았을 거요.”

“그렇지. 강하게 반발하면서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견제했을 테니.”

원래 서부 지역을 책임지던 건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랭커스터 가문이었다.

하지만 마교와 결탁했다는 추문 때문에 괴멸되었기 때문에, 서부 지역에서 발트펠트 가문을 막아 줄 만한 가문이 없는 상태였다.

“혹시 이번 기회에 서부 지역을 먹겠다는 생각 아니오? 랭커스터 가문의 빈자리를 발트펠트 가문이 차지하겠다는 것이지.”

“아니, 그러면 발트펠트 가문이 북부도 서부도 다 차지해 버린다는 얘기입니까?”

“그런 게 용납될 것 같소? 너무 세력이 커져 버리는데… 황실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발렌티아노 교수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발트펠트 가문은 역심을 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여, 역심?”

“황실에 반역한다는 얘기입니까?!”

발렌티아노의 발언에 다른 교수들이 경악했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발트펠트 가문이 황실에 반역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여러 검술명가가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상황이지. 하지만 발트펠트 가문은 좀 불리한 상태에 있네.”

“아…….”

숨을 삼키는 교수들 앞에서, 발렌티아노가 회의실 구석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건장한 체격의 교수가 앉아 있었다.

“안 그런가, 아킬레온 교수?”

“크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는 북부 출신의 아킬레온이라는 교수로, 젊은 나이로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북부 출신이기 때문에 발트펠트 가문하고도 친분이 있지만, 딱히 충성을 바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후계자인 고르트 군이 별로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스티안 가문의 세리느 양이나, 파브리스 가문의 카밀로 군이 더 나을 정도죠.”

세리느는 에르나스의 측근이고, 카밀로는 하인리히의 측근이다.

고르트는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은커녕 그 측근들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 고르트 군이 리히테나워 대공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동감일세.”

아킬레온의 말을 듣고, 발렌티아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발트펠트 가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 가문과 일찌감치 연합하는 것이고…….”

“…….”

“또 다른 하나는, 아예 판을 뒤엎어 버리는 것일세.”

판을 뒤엎어 버린다.

그 말을 듣고 여러 교수가 숨을 삼켰다.

“발렌티아노 교수님, 그 말은…….”

“랭커스터 가문은 제대로 시도도 못 하고 멸망했지만, 발트펠트 가문은 아예 작정을 한 것 같네.”

발렌티아노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트펠트 가문이 북부와 서부를 모조리 차지하고 거대한 세력을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리히테나워 대공 같은 건 신경 쓸 필요도 없어지는 것일세.”

“……!”

“리히테나워 대공이 예법상으로 서열이 높다고 해도, 북부와 서부를 한꺼번에 장악한 발트펠트 가문이 리히테나워 대공의 말을 듣겠나?”

황실에서는 리히테나워 대공을 임명하여 차기 황제의 황권을 강화하려 한다.

하지만 발트펠트 가문이 거대한 세력을 거느리고 그 권위를 위협한다면…….

“리히테나워 대공의 권위는 물론이고, 황실의 권위도 땅에 떨어질 걸세.”

“그, 그렇게 되면…….”

여러 교수들이 침을 삼켰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예 황제를 끌어내리고 발트펠트 가문이 제위를 차지해도 이상할 게 없다.

입 밖에 내기도 주저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군. 비로소 모든 게 이해가 되는군.”

바로 그때, 계속 침묵을 지키던 칼레온 이그니아스가 입을 열었다.

“미하일 발트펠트가 왜 이런 폭거를 저지르나 이해가 안 되었는데, 그런 생각이었던 건가.”

“칼레온 교수…….”

“도저히 용납할 수 없군!”

쾅!

칼레온이 회의실 탁자를 주먹으로 쳤다.

“내가 동부로 돌아가서 이그니아스 가문의 병력을 끌고 오겠소. 그리고 발트펠트 가문 놈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릴 것이오.”

“……!”

칼레온의 선언에 여러 교수가 숨을 삼켰다.

하지만 칼레온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안 될 말이네, 칼레온 교수.”

방금 전까지 발언하던 발렌티아노였다.

“이그니아스 가문은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걸세.”

“어째서요!”

“일단, 동부에서 이곳 서부로 병력을 끌고 오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네.”

“그렇지 않소! 가장 빠른 길로 행군하면…….”

“가장 빠른 길로 행군하려면 황궁 근처를 지나야 하지. 그게 용납될 것 같은가?”

“……!”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황궁 가까이로 접근한다.

이건 발트펠트 가문의 행보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발트펠트 가문을 물리친 뒤, 이그니아스 가문이 서부에 계속 머무르면 어떻게 되겠나?”

“무, 무슨 소리요?”

“이그니아스 가문이 발트펠트 가문을 대신해서 서부를 차지해, 동부와 서부를 아우르는 거대 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네.”

“발렌티아노 교수……!”

칼레온이 목소리를 높였다.

모욕감을 느꼈는지 그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소!”

“그쪽이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한편 발렌티아노는 냉정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이그니아스 가문이 아니라 다른 가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네. 아그리파 가문, 슈라이에르 가문, 란즈슈타인 가문… 어느 가문이든 그런 의심을 사게 되겠지.”

“그렇다면 발트펠트 가문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이오!”

칼레온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발렌티아노를 향해 검을 뽑아 들 분위기였다.

하지만, 발렌티아노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리가 막으면 되지 않나.”

“우리가……?”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가 직접 막으면 된다는 걸세.”

“……!”

숨을 삼키는 칼레온 앞에서, 발렌티아노가 계속 말했다.

“랭커스터 가문이 몰락한 이후, 서부에서 가장 큰 세력은 우리 아카데미라 할 수 있네. 그러니 발트펠트 가문에 맞서 서부를 지키는 건 아카데미의 의무라 할 수 있겠지.”

“발렌티아노 교수, 하지만…….”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교육 기관이오. 아카데미가 이런 일에 관여하는 건…….”

아카데미도 외부 활동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몬스터나 마교 등과 관련된 일일 경우다.

지난번에 랭커스터 가문에 쳐들어간 것도, 랭커스터 가문이 마교와 결탁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려하는 바는 잘 알겠네. 하지만 아카데미가 나서는 편이 가장 뒤탈이 없지 않겠나?”

“발렌티아노 교수…….”

“아카데미가 나서지 않으면 결국 다른 가문들이 개입하게 될 테고, 서부 지역은 전란에 휩싸이게 되겠지. 이건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네.”

발렌티아노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른 교수들을 설득했다.

“우리 아카데미는 권력을 탐하지 않네. 서부의 평화를 위해 발트펠트 가문을 격퇴하면 되는 걸세.”

그렇게 말하며 발렌티아노가 고개를 돌렸다.

“총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아카데미의 1인자, 알드바우트 총장.

그가 발렌티아노의 질문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 *

발렌티아노 클래스의 지도 교수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발렌티아노가 돌아오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네가 말한 대로 되었네.”

발렌티아노가 미소를 지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아카데미는 발트펠트 가문을 막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네. 알드바우트 총장도 동의했고.”

“다행이군요.”

“자네의 분석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지.”

오늘, 발렌티아노는 교수 회의에서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장 대부분은 발렌티아노 본인이 생각한 것이 아니다.

발트펠트 가문의 진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을 어떻게 막아 내야 하는지… 전부 다 내가 얘기해 줬던 것들이다.

“자네 말대로 칼레온 교수가 반발하긴 했지만, 결국 수용했네.”

“칼레온 교수는 진지하게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분입니다. 옳은 길을 따라 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거기서 칼레온 교수가 독자적으로 군사를 일으킨다면 더 큰 혼란이 발생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발렌티아노가 미소를 지었다.

“에르나스, 자네는 검술뿐만 아니라 식견도 정말 훌륭하군.”

“과찬이십니다, 교수님.”

“아니, 자네 덕분에 아카데미는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네.”

발렌티아노의 목소리에는 나에 대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랭커스터 가문이 그렇게 되어 버린 이상, 아카데미가 서부 지역을 책임지고 지켜야 하지. 이게 옳은 일이야.”

“아카데미는 다른 가문들처럼 권력을 탐하지도 않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 그렇지.”

물론, 이건 틀린 말이다.

아카데미도 사람들의 모임인 이상 권력을 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술명가들처럼 혈연과 지연으로 뭉쳐 있는 집단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아카데미에 몸을 담은 채 그 방침에 관여하려는 것이다.

“에르나스, 조만간 본격적으로 토벌대가 조직될 걸세. 지도 교수들도 여러 명 참가하게 되겠지.”

“그렇군요.”

“그러니… 자네도 힘을 실어 주겠나?”

“당연한 일입니다.”

발렌티아노의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트펠트 가문을 막는 싸움에,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이미 준비는 마쳤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해 환골탈태도 했고, 칼레시우츠 창뢰검술을 진화시켜 검강을 터득했다.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들어가 기초부터 깊게 되짚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제… 격렬한 싸움에 몸을 던질 때가 된 것이다.

* * *

노웨르트 산맥.

제국 북부와 서부를 구분하는 경계라 할 수 있는 산맥이다.

그 산맥을 넘는 발트펠트 가문의 군세는 기세등등했다.

북부의 거친 환경에서 단련된 강병(強兵)들은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릴 것이다.

‘이것 참,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요네스 발트펠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미하일 형님이 아카데미로 쳐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당혹스러웠는데, 이런 거라면 나쁘지 않아.’

처음에 미하일은 친동생인 테오도라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기 위해 아카데미로 갈 것이라 했다.

하지만 막상 진행되는 걸 보니, 아카데미에 항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부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테오도라 누님 얘기는 그냥 명분으로 내세우면 되는 거야. 중요한 건 그걸 빌미로 서부로 쳐들어가는 거지.’

서부는 랭커스터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무주공산 상태.

발트펠트 가문이 진군하여 장악하면 된다.

‘발트펠트 가문이 서부 지역을 장악하면, 다른 가문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대 세력을 형성할 수 있어.’

남부는 아그리파 가문과 슈라이에르 가문이 나눠 갖고 있고, 동부는 이그니아스 가문과 란즈슈타인 가문이 나눠 갖고 있다.

발트펠트 가문이 북부와 서부를 동시에 차지하면,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

‘리히테나워 대공이 누가 되든 상관없는 거지. 우리 발트펠트 가문이 제국을 장악하게 되는 거야.’

요네스는 뒤를 돌아봤다.

커다란 흑마(黑馬)를 탄 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촌 형 미하일의 모습을 보며, 요네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미하일 형님이 제위에 오르실 수도 있고.’

미하일 옆에는 흑의(黑衣)의 여성이 있었다.

저 정체불명의 승려가 미하일을 부추겼다는 의혹이 있지만, 요네스는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발트펠트 가문은 제국의 패권을 손에 넣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요네스 님! 아래쪽 길을 병사들이 막고 있습니다!”

그때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웨르트 산맥 서쪽의 영주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길을 열어 달라 해라.”

요네스는 웃으면서 지시를 내렸다.

“만약 우리를 통과시켜 주지 않으려고 하면… 괜히 실랑이를 벌일 필요 없다. 그냥 다 죽여 버려라.”

“알겠습니다……!”

발트펠트 가문의 그래듀에이트들은 가주인 미하일을 닮았다.

그 거칠고 잔혹한 칼날 앞에서 서부 지역의 모든 가문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요네스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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