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그래듀에이트 상급을 향해 (1)
내가 아르테클라스 토벌에 참가한 또다른 이유.
그것은 아르테클라스에게 ‘능력 재현’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토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소설 속에서 아르테클라스는 10여 화 동안 등장하면서 주인공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악역이다.
그렇기에 능력 재현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었다.
[인물 ‘아르테클라스 알렉피투로스’에 대한 이해도가 55%입니다.]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므로 ‘능력 재현’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재현’에 실패할 경우, 동일인물에게 ‘능력 재현’을 두 번 다시 시도할 수 없습니다.]
[인물 ‘아르테클라스 알렉피투로스’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하겠습니까?]
앞으로 아르테클라스를 또 만날 일도 없을 테고, 실패하더라도 손해 볼 건 없다.
능력 재현을 시도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니, 곧바로 능력 재현이 시작되었다.
[인물 ‘아르테클라스 알렉피투로스’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판정: 성공]
[인물 ‘아르테클라스 알렉피투로스’의 주요 능력을 획득합니다.]
[흑천사복검술(SS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흑천괴리검술(S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흑천마도연공법(SS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기 때문에 능력을 더 이상 획득할 수 없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삭제하고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결정해야 한다.
‘흑천사복검술, 흑천괴리검술, 흑천마도연공법… 어떤 것을 취해야 할까.’
흑천사복검술은 사복검을 다루는 검술이다. 최고 숙련도인 SS랭크라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문제는 내가 사복검을 주무기로 삼을 일이 없을 거란 점이다.
흑천괴리검술은 흑천마교에서 고위 사제 이상만이 배울 수 있는 검술로, 실전성이 뛰어나면서 잔인한 검술이다. 제국의 검술 분류로 치자면 서부 검술에 가깝다.
흑천마도연공법은 마력 연공법인데, 흑천마교에서 사용하는 영약인 ‘소마’의 거친 기운을 다스릴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어떤 것을 버려야 할까.’
리히테나워 경신술이나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은 필수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
그러니 검술 중 하나를 삭제하여 슬롯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검술은 네 가지…….’
동부 계통의 파르티잔 심판검술.
북부 계통의 발트펠트 패검술.
남부 계통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
서부 계통의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이렇게 네 가지 검술을 익혔는데,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영구 귀속 상태이기 때문에 슬롯 확보와는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사전에 생각해 둔 것도 있었지만, 마지막 검토가 필요했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점검했다.
‘역시 이렇게 해야겠군.’
짧게 고민한 뒤, 결론을 내렸다.
[파르티잔 심판검술(S랭크)의 삭제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동안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잘 써먹어 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듀에이트 하급이었던 안네리제도 잘만 썼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로서 수준이 높지는 않다.
방어 기술이 뛰어나긴 하지만, 다른 검술로 대체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의 스피드로 적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니, 파르티잔 심판검술은 삭제해도 된다.
그리고 그 대신…….
[흑천마도연공법(SS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습니다.]
[앞으로 12일 동안 ‘능력 재현’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새로 획득한 능력은 마교의 연공법인 흑천마도연공법이었다.
물론, 마교의 소마를 복용하기 위해서 터득한 것은 아니다.
소마는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제조 과정에서 인명이 희생되기 때문에 영 꺼림칙하다.
게다가 내가 소마를 복용했다는 것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흑천마도연공법은 다른 곳에서 사용할 수 있지.’
흑천마도연공법은 소마의 거친 기운도 흡수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기에… 다른 것을 흡수할 때도 도움을 준다.
‘어쨌든 이걸로…….’
나는 유스레흐트를 만지면서 현재 내가 지닌 능력을 점검했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랭크)]
[발트펠트 패검술(S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아틸리온 마력탐측술(A랭크)]
[흑천마도연공법(SS랭크)]
== 영구 귀속 ==
[칼레시우스 창뢰검술(B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SS랭크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다만 슬롯에 너무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 다음에는 리히테나워 경신술이나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성장시켜 영구 귀속으로 넘어가게 하고 싶었다.
‘A랭크에서 S랭크로 올리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 님!”
뒤늦게 도착한 클로에와 슈미츠가 옥상 위로 올라왔다.
“전투는… 다 끝난 듯하군요.”
“그렇지.”
나는 슈미츠에게 아르테클라스를 떠넘겼다.
“앗, 이놈은…….”
“아르테클라스 대주교야. 아래쪽으로 데려가.”
“네? 설마 에르나스 님이 쓰러뜨리신 겁니까?”
“내가 대주교를 어떻게 잡겠냐.”
그렇게 아르테클라스를 맡긴 뒤, 나는 브랜틀리에게 시선을 향했다.
“브랜틀리 님, 건물 내부에도 놈들의 잔당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안겔라와 대화를 나누던 브랜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내부로 들어가서 소탕해도 되겠습니까?”
“…….”
브랜틀리가 잠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할 수 있겠나?”
“가능합니다.”
“알겠다. 그럼 맡기겠다.”
브랜틀리의 말을 듣고, 안겔라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브랜틀리가 나한테 ‘맡기겠다.’라는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을 것이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생포할 필요는 없는 겁니까?”
“그렇다. 내부 시설도 전부 불태워 버려라.”
“알겠습니다.”
브랜틀리 앞에서 고개를 숙인 뒤, 클로에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건물 안에 남아 있던 마교도들이 우리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에르나스 님.”
“뭐지?”
덤벼드는 마교도를 베어 넘기면서, 클로에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아까 슈미츠 님한테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아르테클라스 대주교를 쓰러뜨릴 때, 에르나스 님도 공헌을 하신 거죠?”
클로에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브랜틀리 님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 사람 눈빛이 어땠는데?”
“에르나스 님을 보면서 ‘이 녀석, 대단한 놈이군.’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너무 구체적이군.”
“후후, 어쨌든 에르나스 님이 아르테클라스 대주교를 쓰러뜨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맞나 보네요.”
클로에는 상당히 기쁜 표정이었다.
“지난번에 우리가 토벌했던 건 기껏해야 일개 지부의 책임자였죠. 주교급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대주교를 쓰러뜨린 거죠.”
“나 혼자서 쓰러뜨린 건 아니지만 말이지.”
“그래도 이번 일은 널리 알려질 거예요.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황실에도 알려지겠죠.”
“…….”
“에르나스 님을 더더욱 눈여겨보게 될 거예요.”
클로에의 예상은 정확했다.
황실 및 궁내부에서는 리히테나워 대공 후보자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내가 흑천마교의 대주교를 잡는 데 공헌했다는 걸 알면, 나에게 더 큰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궁내부 쪽에서 별도로 에르나스 님에게 접촉할 수도 있겠네요.”
“글쎄, 두고 봐야지.”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앞을 가로막는 마교도들을 해치웠다.
그렇게 전진하다 보니 거대한 시설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건… 지난번 필체스터 지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네요.”
“그래, 소마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이지. 훨씬 더 본격적이지만.”
필체스터 지부의 시설에 비해 청결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해도 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클로에, 혹시 붙잡혀 있는 민간인이 있는데 살펴봐.”
“네, 알겠습니다.”
“확인이 끝나면, 브랜틀리 님의 지시대로 모든 걸 불태워 버리자.”
클로에에게 지시를 내린 뒤, 나는 근처에 있던 약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약장 안에 보관되어 있던 소마 약병들이 깨지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혹시 모르니 이런 것들은 철저히 부숴 놓는 편이 낫겠지.”
“그렇겠죠.”
클로에가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 나에게서 멀어졌다.
홀로 남겨진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
검을 휘둘러 제조 설비를 적당히 파괴하며,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원통 형태의 설비 안에서 원하던 물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 있군.’
내가 꺼낸 물건은 하얀색의 ‘뼛조각’이었다.
하지만 단단하지는 않고 물렁물렁했다.
아르테클라스가 이곳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공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용골(龍骨)이지.’
용골.
드래곤의 뼈, 그중에서도 심장에 가까운 부위의 흉골(胸骨)을 가리키는 말이다.
판타지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드래곤 하트’와 비슷한 것으로, 막대한 마력이 누적되어 있어 소마의 원료로 사용하면 효과가 엄청나다.
문제는 드래곤의 마력은 워낙 성질이 맹렬해서 웬만한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는 점이다.
함부로 복용하면 혈맥이 전부 터져 버려서 즉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에서도 엘릭시르를 제조할 때 용골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르테클라스에게서 얻어낸 흑천마도연공법이라면…….’
아르테클라스의 흑천마도연공법은 SS랭크.
이건 극한의 깨달음을 얻어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내 소설 속 설정대로라면, 드래곤의 거친 마력조차 제어할 수 있을 터.
‘아르테클라스는 용골과 다른 원료를 조합하여 강력한 소마를 제조한 뒤, 그걸 부하들에게 나눠 먹일 생각이었겠지.’
이곳에서 아르테클라스는 대규모 작전을 위해 병력을 육성하는 중이었다.
여기 있는 용골도 그걸 위해 입수한 원료였다.
‘하지만 나는… 이 마력을 그대로 흡수한다.’
용골에 저장되어 있는 막대한 마력을, 내가 직접 흡수한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흑천마도연공법으로 제어하면서, 내 마나 하트에 저장할 것이다.
‘이번 공적으로 아카데미에서 녹색 엘릭시르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것까지 활용하면…….’
소설 속 설정을 되새기면서, 나는 뼛조각을 품 안에 숨겼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설비를 다시 한번 파괴했다.
‘이걸로,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
절정급의 바로 아래 단계.
나는 소설 속 주인공보다 더 빠르게 이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벌어질 싸움에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머지않아 커다란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서부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검사로서 그 싸움에 임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