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85화 (85/212)

85화 대주교를 토벌하라 (5)

나를 노려보는 브랜틀리 옆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랜틀리 님, 지금은 아르테클라스 대주교를 신속히 쓰러뜨리는 걸 우선해야 합니다.”

아직 아래쪽에서는 구조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고, 마교 측의 병력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아르테클라스를 빠르게 해치워야 나머지 뒷정리를 할 수 있다.

“협공하는 편이 빠를 겁니다.”

“…….”

브랜틀리 혼자서도 아르테클라스를 쓰러뜨리는 건 가능하다.

소설 설정을 생각해 봐도 브랜틀리가 아르테클라스보다 더 강하다.

다만 아르테클라스도 절정급의 실력자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하는 건 어렵다.

그러니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크크크, 웃기는군.”

그때 아르테클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그리파 가문의 가주라는 사람이, 고작 학생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 건가. 그것도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인데.”

“…….”

“황제에게 ‘청월검’의 칭호를 반납하는 게 어떻겠나, 브랜틀리 아그리파.”

아르테클라스의 조롱에도 브랜틀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도가 있는 조롱이라는 걸 꿰뚫어 봤을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대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마음대로 해라.”

“알겠습니다, 브랜틀리 님.”

검기를 전개하면서 브랜틀리 옆에 섰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르테클라스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아르테클라스 입장에서는 내가 끼어드는 게 싫을 수밖에 없겠지.’

아르테클라스도 내가 파르파티온 주교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안 그래도 브랜틀리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끼어들면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애송이 하나 가세했다고 유리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브랜틀리?”

아르테클라스가 이런 말을 던지는 것도, 자신이 불리해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말이 많군, 아르테클라스.”

침묵하고 있는 브랜틀리를 대신하여, 아르테클라스에게 쏘아붙였다.

“지금 그렇게 주절대고 있을 여유가 없을 텐데.”

“크흠…….”

아르테클라스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안겔라를 상대하고 있는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만약 안겔라가 그들을 전멸시키고 이쪽에 가세한다면, 아르테클라스도 승산이 없다.

“정말로… 당돌한 애송이구나!”

목소리를 높이면서 아르테클라스가 사복검을 휘둘렀다.

와이어로 연결된 칼날 조각이 채찍처럼 요동쳤다.

“갈기갈기 찢어 주마,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파앙!

사복검의 끝 부위가 파공성을 발생시키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내 몸에 닿았다면 살이 찢겨 나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그래듀에이트의 공격은 이렇게 위협적이었다.

‘확실히 속도가 빨라. 브랜틀리도 애먹을 수밖에 없지.’

원래 채찍은 끝부분의 속도가 엄청나다.

제대로 채찍을 휘두르면 끝부분의 속도는 음속을 돌파한다.

게다가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고,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채찍을 운용할 때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지만… 지금 아르테클라스는 마력을 사용해 사복검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점을 모조리 극복하고 있다.

“…….”

아르테클라스가 나를 공격하는 걸 보고, 브랜틀리가 움직였다.

옆으로 이동해 아르테클라스의 측면을 노리려 했지만, 곧바로 발을 멈췄다.

사복검의 중간 부분이 아르테클라스의 측면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크큭…….”

아르테클라스의 사복검은 채찍 같지만 결코 채찍이 아니다.

지금 사복검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아르테클라스의 주변을 둘러싸며 주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의 막대한 마력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견고한 방어막을 전개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복검의 유효범위는 일반적인 장검보다 훨씬 길어. 이걸 넓게 휘두르면 상대방의 접근 자체를 봉쇄할 수 있지.’

상대방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자신만 원거리에서 공격을 펼치는 공방 일체의 검술.

그것이 아르테클라스의 사복검술이었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접근하여 승부를 내는 스타일인 브랜틀리한테는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였다.

“목숨 걸고 달려들어 봐라, 검술명가의 검사들이여……!”

아르테클라스가 화려한 사복검술을 펼치며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사복검의 유효 범위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브랜틀리는 검을 휘둘러 사복검을 튕겨 낼 수 있었지만, 내 기량으로는 그냥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에르나스! 이렇게 하면 어떤가!”

나를 향해 사복검을 날리며 아르테클라스는 소리쳤다.

“자네 몸을 던져서 내 사복검을 막은 뒤, 그 틈을 이용해 브랜틀리가 공격을 하게 하는 거다! 비록 자네 몸은 갈기갈기 찢어지겠지만, 목숨을 희생하여 내 사복검을 끌어안는다면 나에게 빈틈을 만들 수 있겠지!”

“재미있는 작전이군.”

아르테클라스의 공격을 피하면서 나는 차갑게 내뱉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작전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뭐라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도망 다녔던 것이 아니다.

계속 사복검을 피해 다니면서 그 움직임을 계속 관찰했다.

절정급의 마력을 사용해 휘두르는 사복검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계속 안겔라에게 수련을 받았거든.’

안겔라도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다.

그리고 속도를 중시하는 검사이기도 했다.

그녀를 상대로 계속 수련을 해 왔기 때문에… 나는 초고속의 전투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음속을 초월하는 사복검 끝부분을 내 동체 시력으로 좇는 건 불가능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르테클라스는 매번 거창하게 팔을 휘두르고 있지만, 사복검의 움직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손목의 스냅이다.

이건 실제 채찍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소설에서도 묘사한 부분이다.

‘그러니 손목의 움직임에 사복검의 끝부분이 어떻게 동조하는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 기회라 생각한 아르테클라스가 사복검을 휘둘렀다.

그 손목의 스냅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내 칼날에는 발트펠트 패검술의 금색 검기가 전개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금이다.’

지난번에 테오도라 발트펠트와 싸웠을 때, 그녀가 나를 일격에 죽이기 위해 펼쳤던 기술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단순하지만 완벽한 자세로 전개되는 육중한 일격.

발트펠트 패검술을 대표하는 공격기, 그랜드 스매시를 펼쳤다.

“……!”

쿠웅!

음속을 초월한 사복검의 끝부분이, 금색 검기와 충돌했다.

마력을 깨부수는 것에 특화된 금색 검기가 사복검의 붉은색 검기에 균열을 발생시켰고…….

“음?!”

콰직!

마침내 사복검의 끝부분을 파괴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복검은 그 구조상 강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기에 균열이 생기면 일반적인 검보다 훨씬 충격에 약했다.

“이 녀석, 설마 방금 그 검기는……!”

발트펠트 가문의 금색 검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아르테클라스가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크윽……!”

아르테클라스의 사복검은 매우 정교한 구조다.

끝부분이 파괴되는 건 단순히 공격 범위가 줄어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채찍과 마찬가지로 끝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속도도 위력도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절정급의 마력과 기량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긴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지금이군.”

“……!”

그리고, 브랜틀리 아그리파는 그 ‘완벽하지 않음’을 놓칠 검사가 아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뒤, 검을 찔러 넣어 사복검의 궤도를 흐트러뜨렸다.

아르테클라스가 다급히 손목을 움직여 궤도를 수정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커헉……!”

빠르게 파고들면서 브랜틀리가 묵묵히 휘두른 검에 의해, 아르테클라스의 오른팔이 떨어져 내렸다.

아르테클라스도 나름 호신기를 전개하고 있었지만, 브랜틀리가 펼치는 아그리파 절검술(絶劍術)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었다.

브랜틀리의 접근을 허용한 시점에서 아르테클라스의 패배는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으윽, 내 팔, 내 팔이… 커헉!”

브랜틀리는 아르테클라스의 왼쪽 손까지 베어 버렸다.

이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르테클라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끄으…….”

아르테클라스는 거품을 물면서 기절했다.

그동안 각지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흑천마교의 대주교가… 마침내 제압당한 것이다.

* * *

‘드디어 아르테클라스를 잡았군.’

브랜틀리는 쓰러진 아르테클라스를 응시했다.

20년 넘게 추적하던 대주교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감개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건 브랜틀리의 냉담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청년 탓이기도 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전투 도중, 브랜틀리는 에르나스가 자기 몸을 희생하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아르테클라스가 말한 것처럼, 몸을 던져 사복검을 막으려는 전법을 취하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 전투에서 에르나스가 공헌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사복검의 약점이 끝부분이라는 건, 브랜틀리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다.

에르나스가 사복검의 끝부분을 파괴해 준 덕분에 아르테클라스에게 빈틈이 생겼다.

덕분에 브랜틀리는 아르테클라스를 빠르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브랜틀리는 에르나스에게 이용당한 걸지도 모른다.

에르나스가 이번에 브랜틀리에게 협력한 건, 본인의 힘만으로는 아르테클라스를 쓰러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에르나스가 그래듀에이트 상급만 되었어도 브랜틀리를 제쳐 놓고 혼자 힘으로 아르테클라스를 쓰러뜨리려 하지 않았을까.

에르나스는 아르테클라스에게 마무리를 하기 위한 ‘검’으로 브랜틀리를 사용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놀라운 녀석이다.’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 중에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녀석이 있을까.

하인리히조차 이렇게는 못 할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란 말인가.

‘그런 녀석이 아카데미의 정점에 올라,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번에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에르나스는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면 6대 검술명가를 해체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린놈의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이 녀석은 정말로… 그걸 실현할 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브랜틀리는 에르나스를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을, 일개 학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이 녀석과 대화를 나눠 봐야 한다.’

검술명가의 일원으로서, 이 제국의 미래를 논해야 한다.

브랜틀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에르나스.”

브랜틀리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승리에서 네 공적은 크다. 네 덕분에 아르테클라스 대주교를 신속히 제압할 수 있었다.”

파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브랜틀리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공적, 아카데미 측에도 명확히 전달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브랜틀리 님.”

이번에 나는 흑천마교의 대주교를 생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공적은 나에게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안겔라는 공을 세우면 황색 엘릭시르를 주겠다고 했지만, 그 위의 단계인 녹색 엘릭시르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르나스.”

“네, 브랜틀리 님.”

“나중에 너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

나도 모르게 브랜틀리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빛이 여느 때와는 달리 강렬했다.

“알겠습니다, 브랜틀리 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브랜틀리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나를 ‘일개 학생’이라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한 명의 검사이자 검술명가의 일원으로서… 제국의 미래를 논할 만한 상대라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저쪽도 이제 거의 정리가 된 모양이군요.”

나는 고개를 돌려 안겔라 쪽을 확인했다.

안겔라가 아르테클라스의 마지막 부하의 목을 치는 중이었다.

“그러면 아르테클라스 대주교를 포박하겠습니다.”

“맡기겠다.”

현재 아르테클라스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상태다.

사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 놓는 것보다 목숨을 잃지 않도록 응급처치를 하는 게 더 중요했다.

어차피 나중에 참수형을 당할 테지만, 여기서는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끌고 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지혈을 해 주는 척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이건 나에게 매우 큰 기회였기 때문이다.

[인물 ‘아르테클라스 알렉피투로스’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흑천마교의 대주교.

그의 능력을 빼앗을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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