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82화 (82/212)

82화 대주교를 토벌하라 (2)

안겔라는 아르테클라스 토벌전에서 공적을 세우면 충분한 포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만일 기대했던 것 이상의 공적을 세울 경우… 황색 엘릭시르와 함께 ‘수료증’을 주겠다고 했다.

‘안겔라 클래스에서 수료증을 받으면, 3차 시험에 더 가까워지지.’

나는 안겔라에게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내 측근인 클로에와 슈미츠를 함께 데리고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녀석들의 생사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니, 안겔라는 쾌히 승낙해 줬다.

‘원래 발이 빠른 데다가… 이번에 리히테나워 경신술도 익혔으니까.’

나는 이번 토벌전에서 신속한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측근들 중에서 클로에와 슈미츠를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흑천마교의 대주교를 토벌하러 간다는 얘기를 듣고 클로에와 슈미츠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앞으로 계속 내 곁을 지키겠다는 말을 한 직후였기 때문에… 결국 나를 따라 토벌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에르나스 님, 클라수스 산맥이 보이는군요.”

행군 도중, 슈미츠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듣던 대로 험준해 보입니다.”

“그래, 몬스터도 많고 별다른 자원도 없어서 평소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곳이지.”

제국 서부 변방이 대부분 그렇듯이, 클라수스 산맥은 척박한 땅이다.

험준한 산속에 몬스터들만 배회하고 있을 뿐이라, 평범한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 않는다.

“이런 곳이라 아르테클라스 대주교가 숨어 있을 수 있었던 거군요. 식량이나 식수를 확보하기 어려울 텐데, 용케도 여기에 거점을 마련했네요.”

옆에 있던 클로에도 입을 열었다.

“저도 서부 출신이긴 하지만, 이쪽에는 가까이 온 적이 없었어요. 이런 곳에 본거지가 있다면 확실히 찾아내기 어려울 것 같네요.”

“그렇지.”

겨우 찾아낸 대주교의 거점이다.

아그리파 가문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대주교를 잡고 싶을 것이다.

“에르나스 님, 그런데… 괜찮은 건가요?”

“뭐가?”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요. 이번에는 아그리파 가문의 검사들과 뒤섞여서 움직이게 되니까.”

클로에가 주위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만약에 브랜틀리 님이 이번 기회에 에르나스 님을 제거하라고 지시를 내리면…….”

“…….”

나는 하인리히의 경쟁자다.

그러니 브랜틀리가 전투의 혼란을 틈타 나를 제거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브랜틀리 아그리파는 그런 수단을 취할 사람이 아니니까.”

“그럴까요?”

“고작 학생에 불과한 나를 죽이기 위해 칼을 뽑을 사람이 아니야.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돼.”

브랜틀리도 아들인 하인리히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는 걸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일찌감치 제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브랜틀리가 보기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아직 평범한 애송이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에르나스 님이 그렇게 판단하신다면…….”

“물론, 브랜틀리 아그리파가 그럴 거라는 얘기지.”

“네?”

“그 아랫놈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날렵한 인상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인가?”

“맞습니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그리파 가문을 섬기는 카시르 라디우스라고 한다.”

“…….”

카시르 라디우스.

선대부터 아그리파 가문을 보좌해 온 라디우스 가문 출신으로,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실력자다.

이번에 브랜틀리가 데려온 그래듀에이트 중에서는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옆에 있는 두 사람도 학생들인가.”

“네, 맞습니다.”

“쯧, 정말로 학생들을 참가시켰군.”

카시르가 대놓고 혀를 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너희들, 이번 토벌대에서 빠져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슈미츠가 다급히 묻자, 카시르가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그냥 지방에서 활동하는 말단 사제들을 토벌하는 것이 아니다. 마교의 주요 간부인 대주교를 토벌하기 위한 작전이란 말이다.”

“…….”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참가할 만한 작전이 아니다. 걸리적거려서 오히려 방해만 된다.”

카시르의 독설에 클로에도 슈미츠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니 자진해서 토벌대에서 빠지도록 해라. 아카데미 측에는…….”

“카시르 님.”

나는 카시르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지금 누구의 명령을 전달하시는 겁니까?”

“뭐라고?”

“브랜틀리 님입니까, 아니면 안겔라 교수님입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설마 카시르 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그런 말씀을 하는 건 아니시겠죠?”

카시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쏘아붙였다.

“저는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 소속입니다. 아그리파 가문의 일개 가신(家臣)의 지시를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만.”

“……!”

카시르가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월권행위는 자제해 주십시오, 카시르 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감히……!”

“만약 아그리파 가문에서 그렇게 판단한 거라면, 안겔라 교수님에게 정식으로 요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주이신 브랜틀리 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

물론,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카시르 님, 이번 토벌대에 제가 참가한 건 안겔라 교수님의 의향입니다. 여기 있는 두 사람은 제가 추천한 거지만, 어쨌든 안겔라 교수님이 승인한 사항입니다.”

“…….”

“불만이 있으시면 공식적으로 안겔라 교수님에게 요청해 주십시오.”

카시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브랜틀리가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너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이런 짓을 하는 거니까.’

카시르는 아그리파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검사다.

브랜틀리를 경애하고 있으며, 그 아들인 하인리히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내가 눈엣가시인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소문대로 오만한 녀석이군.”

카시르가 나에 대한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냈다.

“보나 마나 이번 토벌 작전에서 공적을 세워서 이름을 드높일 생각이겠지. 하지만 지나친 욕심이다.”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카시르가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 녀석이 전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에르나스.”

* * *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었다.

아그리파 가문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아르테클라스 대주교의 본거지는 클라수스 산맥 깊숙한 곳에 있다.

평범한 사람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작전에 나선 토벌대는 전부 경신술에 능한 그래듀에이트들이다.

짐승조차 오르기 힘든 산을 뛰어올라, 놈들의 본거지를 급습할 수 있을 것이다.

“카시르 님! 마교도들입니다!”

“전부 해치워라!”

산맥에는 몬스터 외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선봉대가 접근하니 마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봉대의 지휘를 맡은 카시르는 검기를 전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여기서 놈들을 완벽히 소탕해야 한다!”

“네!”

마교의 전투 사제들이 아그리파 가문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시르가 이끄는 선봉대만으로도 놈들을 쉽게 도륙할 수 있었다.

“여기가 아르테클라스 대주교의 본거지가 맞긴 맞는 것 같군!”

“그래! 이 정도로 저항이 격렬한 걸 보니 평범한 거점은 아니야!”

산맥 곳곳에 교묘하게 위장한 방어 시설도 있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마교도들을 제압하면서 선봉대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브랜틀리 님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군. 이 정도는 우리들만으로도 충분해.’

브랜틀리는 후방에서 본대를 이끌고 따라오는 중이었다.

아카데미 측의 지원 병력도 함께였다.

‘아카데미 녀석들… 특히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 에르나스는 후방에서도 측면 끄트머리에 배치되어 있다.

측면의 기습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긴 건데, 사실상 전장에서 가장 먼 거리에 배치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에르나스가 공적을 세우는 일이 없도록 카시르가 손을 쓴 것이다.

에르나스를 아예 토벌대에서 배제하는 건 어렵지만, 이 정도는 카시르의 권한으로도 가능했다.

‘만에 하나 이번 토벌전에서 에르나스가 공적을 세우면 꼴이 우스워진다.

아그리파 가문이 주도하는 작전에서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가 공을 세우다니…….’

카시르는 하인리히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에르나스를 견제하고 싶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전투의 혼란 속에서 슬쩍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카시르 님, 저쪽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깊은 산속에 인공적인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규모로 봤을 때 아르테클라스의 본거지가 맞는 것 같았다.

“저곳에서 아르테클라스는 온갖 사악한 실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 파괴해야겠군요.”

검사들은 목표 지점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아그리파 가문의 정예 그래듀에이트답게, 그 누구도 방심하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

카시르는 위화감을 느끼고 발을 멈췄다.

“카시르 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왠지 발밑이…….”

부하에게 대답하며 카시르는 고개를 숙였다.

묘한 진동을 느끼고, 발로 땅을 두드려 본 직후.

콰콰쾅!

굉음과 함께 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아무리 아그리파 가문의 그래듀에이트가 경신술에 능하다고 해도,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대처하기 어렵다.

아그리파 가문의 선봉대는 무너져 내린 바위 및 토사(土沙)에 깔려 큰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의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에, 선봉대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본대까지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에르나스 님, 이건……!”

산사태에 휩쓸리는 아군의 모습에 클로에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가장 외곽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사태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뭔가 이상합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선봉대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산사태가 벌어지다니……!”

“그래, 인위적인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마교 측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거다. 토벌대가 올라오면 산을 무너뜨려 싹 쓸어버리려고 말이다.”

“역시……!”

아르테클라스 대주교가 마교의 비술(秘術)로 지하 동굴을 폭파했을 것이다.

그 결과 산이 무너져 선봉대를 집어삼켰고, 본대까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마교 놈들도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하려는 것 같군.”

“……!”

저 멀리 산 위에서 마교의 전투 사제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사태에 휩쓸려 부상을 입은 선봉대를 일방적으로 도륙할 것이다.

“우리 쪽 본대는 사람들을 구조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침 외곽에 배치된 탓에 전혀 피해가 없었군.”

“……!”

우리가 가장 끄트머리에 배치된 건 카시르의 견제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택에 산사태에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내가 딱히 손쓴 게 없었는데도 말이다.

“클로에, 슈미츠, 마교의 전투 사제들이 내려오면 아군이 위험해진다.”

“그렇다면……!”

“그래, 여유가 있는 우리들이 움직여야지.”

클로에와 슈미츠는 원래부터 날렵한 녀석들이다.

이제는 리히테나워 경신술도 습득했으니, 빠르게 산을 뛰어 올라갈 수 있다.

“따라와라, 클로에, 슈미츠.”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우리가 전황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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