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대주교를 토벌하라 (1)
브랜틀리 아그리파.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아그리파 가문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칼레온 이그니아스, 헨리 랭커스터와 마찬가지로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에 도달한 실력자이며, 남부 최강의 검사로 이름 높다.
‘그리고 하인리히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2층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중, 나는 슬쩍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하인리히는 침대에 앉아 마력을 순환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뭐냐, 에르나스.”
내 기척을 느끼고 하인리히가 눈을 떴다.
역시 감각이 날카로운 녀석이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냥 조용하길래 잠든 줄 알았지.”
“마력 연공 중에 잠드는 녀석이 어딨냐.”
얼마 전, 하인리히도 황색 엘릭시르를 복용했다.
최대한 마력을 흡수하여 마나 하트에 저장했지만, 아직 완벽히 육체에 적응시키지는 못한 상태였다.
“나는 바쁘다. 방해하지 마라.”
“그래, 알겠어.”
“흥…….”
하인리히가 코웃음을 치면서 다시 마력 연공을 시작했다.
소설 내용대로라면 하인리히도 3차 시험 전에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인리히의 재능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이지.’
브랜틀리 아그리파도 아카데미 재학 중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줬다고 한다.
결국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그리파 가문의 이름을 널리 떨쳤다.
‘그리고 성격도 마찬가지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에게 패배하기 전,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하인리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게 브랜틀리라 생각하면 된다.
‘브랜틀리 아그리파에 비하면 헨리 랭커스터나 칼레온 이그니아스는 무난한 성격이지.’
사실 6대 검술명가의 가주들 중에서 정상적인 성격을 지닌 인간은 헨리와 칼레온 정도다.
나머지는 다들 상대하기 골치 아픈 인간들뿐인데, 브랜틀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브랜틀리하고 이제 곧 대면하게 된단 말이지.’
내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나는 브랜틀리와 엮이게 될 것이다.
* * *
“아, 에르나스 님!”
“좋은 아침이에요, 에르나스 님.”
안겔라 클래스에 발을 들이자, 슈미츠와 클로에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건 일주일 만이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했나 보지?”
“네, 저희가 먼저 통과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금방 통과할 것 같았지만요.”
그동안 내 측근들은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하기 위해 안겔라 클래스에서 합숙 중이었다.
슈미츠와 클로에는 내 예상대로 일주일 만에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했다.
“에르나스 님, 조교들이 나누는 얘기를 얼핏 들었는데…….”
클로에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습격을 받으셨다는 게 정말인가요?”
“그래, 벨리드 앤드류스를 중심으로 한 떨거지들이었지.”
내 대답을 듣고 슈미츠가 눈을 치켜떴다.
“지난번 그놈입니까? 어떻게 감히……!”
“진정해. 이미 내가 다 처리했으니까.”
나를 습격했던 놈들은 전부 다 큰 부상을 입었다.
다들 치료를 위해 아카데미를 떠난 상태고, 그중 일부는 영원히 아카데미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에르나스 님, 이번에는 잘 격퇴하신 것 같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클로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혼자서 움직이시는 건 최대한 피하시는 게 어떨까요?”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괜찮아.”
“하지만…….”
“다른 가문 녀석들도, 벨리드가 당하는 걸 보고 느낀 게 있을 테니까.”
벨리드 일당이 처참하게 당한 것을 보고, 다들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자신들이 더 위험해진다는 것을.
‘어차피 하인리히나 루퍼스는 사적으로 나를 습격할 성격이 아니야. 베리스리제도 비슷하고.’
현시점에서 나를 습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고르트다.
하지만 그 녀석도 상당히 위축된 상태라,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 벨리드 일당이 당한 걸 봤으니, 더더욱 움츠러들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고르트가 수하들을 이끌고 습격해 와도, 내 힘으로 충분히 격퇴할 수 있고 말이다.
“에르나스 님, 그래도 만일의 사태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슈미츠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되도록 저희가 에르나스 님 곁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
“네, 혹시 모르니까요.”
“흠… 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슈미츠와 클로에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몇 명 데려가고 싶었으니 말이야.”
“네?”
“……?”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눈을 깜박였다.
* * *
아카데미 본관, 총장실.
그곳에서는 아카데미의 총책임자인 알드바우트 총장이 손님과 마주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중년의 남자… 아그리파 가문의 가주, 브랜틀리 아그리파였다.
“잘 알겠네, 브랜틀리.”
흰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알드바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6대 검술명가인 아그리파 가문의 수장이지만, 아카데미 총장인 알드바우트는 대등한 입장에서 응대할 수 있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아카데미에서도 협조하는 것이 맞을 것 같군.”
알드바우트는 브랜틀리가 건네준 자료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흑천마교의 대주교를 잡을 수 있다면 최대한 도와야지.”
흑천마교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건 ‘총대주교’다.
하지만 총대주교는 평상시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총대주교를 대신하여 세상에 나와 마교도들을 총지휘하는 것이 바로 ‘대주교’들이다.
“특히 악명 높은 아르테클라스 대주교의 본거지를 찾아냈다면… 우리 아카데미에서도 전력을 다해 돕고 싶군.”
아르테클라스.
흑천마교의 대주교 중에서도 손꼽히는 악당이다.
20년 전, 남부 지역에서 아르테클라스의 음모 때문에 수천 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브랜틀리가 토벌에 나섰는데, 아르테클라스의 부하들은 싹 죽여 버렸지만 정작 아르테클라스 본인은 놓쳐 버렸다.
그 이후로 브랜틀리는 계속 아르테클라스를 쫓고 있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꼬리를 잡은 것이다.
“많은 병력은 필요 없소, 총장.”
브랜틀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숫자가 많으면 놈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갈 수 있으니, 소수 정예가 최선이오.”
“흠, 그렇게 생각하나?”
“아르테클라스는 클라수스 산맥 깊은 곳에 거점을 마련해 놨소.”
클라수스 산맥은 제국 서부에 위치한 산맥으로, 험준하고 척박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신술이 뛰어난 그래듀에이트 이십여 명 정도만 지원해 주면 될 것이오.”
“그렇게 말한다면… 안겔라 클래스에 부탁하는 게 좋겠군. 경신술은 그쪽이 전문이니.”
“인선은 맡기겠소.”
사실 브랜틀리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하들만으로 토벌을 진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랜틀리가 너무 많은 병력을 이끌고 서부로 진군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렇기에 서부에 위치한 아카데미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알겠네. 내가 안겔라 교수와 협의하여 준비를 마쳐 놓지. 조금만 기다려 주게.”
“고맙소, 총장.”
브랜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바깥에서 부하들과 대기하고 있겠소. 작전을 더 가다듬어야 하니.”
“브랜틀리.”
알드바우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아들을 보고 갈 생각은 없는 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소만.”
“여전히 아들에게도 냉정한 사람이군, 브랜틀리. 듣자 하니 아그리파 가문에서는 하인리히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던데.”
다른 가문들은 후계자들이 아카데미에서 잘 버틸 수 있도록 여러모로 지원을 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아그리파 가문은 하인리히에게 별다른 지원을 해 주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가 걸려 있는데, 자네는 모든 걸 하인리히의 개인 역량에 맡길 생각인가?”
“하인리히는 어린애가 아니오, 총장.”
브랜틀리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일이 챙겨 주지 않아도 본인이 알아서 잘할 것이오.”
“따로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로군.”
“그렇소.”
고개를 끄덕이면서 브랜틀리가 대답했다.
“그 녀석은 내 아들이오. 가문의 도움 없이도 아카데미의 정점에 올라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오.”
“방금 내 말을 취소해야겠군. 아들에게 냉정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건가.”
알드바우트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무 낙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걸세. 지금 하인리히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학생이 있으니 말이네.”
“…….”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결코 만만치 않은 놈일세.”
그렇게 말한 뒤, 알드바우트가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풍문으로 들었는데… 그 녀석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면 6대 검술명가를 해체할 생각이라더군.”
“…….”
자리를 뜨려던 브랜틀리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 * *
안겔라 클래스의 지도 교수실에서, 안겔라가 나한테 말을 건넸다.
“브랜틀리 아그리파의 요청으로, 안겔라 클래스에서 병력을 지원해 주게 되었다.”
이번 작전의 목적이 아르테클라스 대주교 토벌이라는 걸 설명한 뒤, 안겔라는 미소를 지었다.
“평교수와 조교수, 조교들 중에서 쓸 만한 녀석들을 골라서 데려갈 생각이다. 물론, 나도 함께 움직일 거고.”
“그렇군요.”
“그런데 살짝 불안하단 말이지.”
“불안할 게 있습니까?”
“리스틸 교수가 빠지니, 영 무게감이 없어.”
리스틸은 안겔라 클래스의 2인자였다.
하지만 나와의 대련에서 부상을 입었고, 지금은 치료를 위해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가 있었다.
“믿음직한 그래듀에이트가 한 명 정도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다른 클래스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 총장이 안겔라 클래스를 지목했는데, 다른 클래스에 손을 내밀면 치욕스러운 일이야.”
그렇게 말하며 안겔라가 웃었다.
“에르나스, 슬슬 지하 훈련장에서 나한테 일대일 지도를 받는 것도 질리지 않았나?”
“글쎄요.”
최근 나는 매일 안겔라 밑에서 일대일로 교육을 받았다.
편검기 말고도 다양한 수법을 배우면서 내 검술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좀 질렸다.”
“너무 솔직하시군요.”
“그러니 현장 학습을 나갈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안겔라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마교도 토벌 경험도 있잖아?”
“제가 참가해도 괜찮은 겁니까?”
확인차 물었다.
“아그리파 가문의 브랜틀리 님이 주도하는 작전인데 말입니다.”
“브랜틀리는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이 아니지.”
“…….”
“다른 문제가 없다면,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미소를 지으면서, 안겔라가 나한테 말을 건넸다.
“에르나스, 이번 작전에 참가해라. 안겔라 클래스의 수련생 자격으로 말이다.”
아그리파 가문의 가주 밑에서, 흑천마교의 거물을 토벌하는 작전에 참가한다.
이건 상당히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하지만, 나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테클라스 대주교 토벌에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테클라스 대주교 토벌전.
거기서 벌어질 일에 대처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한 명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