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80화 (80/212)

80화 봐줄 필요가 없는 연습 상대 (2)

휘익!

어두운 숲속에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지금 나는 검기를 전개하지 않은 채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느낌이 좋아.’

계속 검을 휘두르면서,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특정 검술에 의존해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그냥 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꽤 그럴 듯한 동작이 나왔다.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단순히 남의 검술을 흉내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여러 검술을 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고, 미완성 상태였던 검술을 진화시키기도 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기에, 검사로서의 기량도 점점 향상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만의 검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가, 곧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세계에서 검술은 특정 가문에서 여러 대에 걸쳐서 완성하는 것이다.

검술 이름에 가문의 이름을 붙이는 건 이런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서 검술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욜스나 안겔라 같은 절정급의 검사한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나만의 검술을 만든다는 건 먼 훗날에나 가능한 얘기였다.

‘소설의 주인공 아칸델도 자신만의 오리지널 검술은 만들지 못했고 말이야.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독자적으로 완성해서 사용했을 뿐이었지.’

하지만, 만약 내가 나만의 오리지널 검술을 만들어 낸다면… 소설의 주인공조차 뛰어넘었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나는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척하면서 마력을 주위에 뻗었다.

‘드디어 포위망을 완성했군.’

숲 곳곳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다들 기척을 잘 숨기고 있었지만, 나한테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이 있다.

은신술에 능한 녀석도 마력을 감추지는 못한다.

“…….”

하지만,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하품까지 한번 해 준 뒤,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압!”

여전히 마음 가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주위에 마력을 뻗어 놈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슬슬… 오는 건가?’

벨리드 앤드류스를 중심으로 하는 어중이떠중이들.

그들이 어둠을 틈타 포위망을 좁혀 왔다.

내가 빈틈을 보인 순간, 일제히 움직여 나를 기습할 것이다.

‘그러면… 빈틈을 보여 줄까.’

나는 왼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오른손은 축 늘어뜨리고, 일부러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 줬다.

부스럭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

사방에서 놈들이 뛰쳐나왔다.

다들 움직임이 일사불란했다. 호흡이 아주 잘 맞는 것 같았다.

‘미리 연습이라도 했던 걸까.’

절묘한 협공이었다.

내가 정면에서 달려드는 녀석을 막는 사이, 후면과 측면에서 달려드는 놈들이 내 사각을 찌를 것이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면, 당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오른손에 모아 놓은 마력을 칼날 쪽으로 밀어 넣고… 검기를 전개했다.

“앗……!”

놈들이 긴장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뒷걸음치는 놈은 없었다.

한두 명이 다쳐도 그사이에 나를 제압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4식.’

제1식, 낙뢰(落雷).

제2식, 무뢰(舞雷).

제3식, 자뢰(刺雷).

여기까지는 욜스도 아는 기술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나만이 아는 기술이다.

‘편뢰(鞭雷)……!’

파직!

스파크를 발생시키면서 검기가 뻗어 나갔다.

안겔라가 나한테 보여 준 편검기와 비슷했지만, 안겔라의 편검기처럼 흐느적대지는 않았다.

제대로 탄력을 지닌, 진짜 채찍 같은 편검기였다.

“……?!”

채찍처럼 꿈틀거리는 푸른색 검기가 날아오자, 전방에서 달려오던 녀석이 눈을 크게 떴다.

“컥……!”

검기가 녀석의 팔을 훑고 지나가자, 피부가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녀석만 당하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손목의 스냅을 활용해 푸른 채찍을 움직였다.

실제 채찍과 마찬가지로, 푸른색 검기 끝부분의 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크악!”

“억……!”

휘리릭!

푸른 채찍이 순식간에 주위를 휩쓸었다.

내가 일일이 검을 휘둘렀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고, 그사이 놈들 중 하나가 내 사각을 찔렀을지도 모른다.

‘좋아.’

촤악!

마지막 한 놈의 허벅지 살이 터지는 걸 확인한 뒤, 나는 편검기를 거둬들였다.

주위를 쓱 둘러보니, 다들 팔이나 다리가 처참하게 찢겨 나간 상태였다.

‘진짜 채찍에 공격당한 것 같군.’

칼에 베인 상처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편검기 끝부분을 날카롭게 만들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내가 좀 더 수련을 한다면, 편검기로도 충분한 절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걸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제4식을 터득했어.’

제4식 ‘편뢰’는 편검기에서 힌트를 얻은 기술이다.

푸른색 검기를 채찍처럼 길게 늘려,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을 공격하거나 주위의 적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것이다.

편검기는 위력이 약해 실용성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푸른색 검기를 사용해 편검기를 펼치면 이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이걸로 전술의 폭이 훨씬 넓어졌어.’

흐느적거리지 않고 탄력 있게 움직이기 때문에, 진짜 채찍처럼 끝부분의 순간적인 가속으로 위력을 배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검기를 더 확실히 제어하여 절단력까지 향상시킨다면, 안겔라의 베르틴스키 흑쇄검술처럼 종횡무진 검기를 뻗으며 적을 학살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크윽, 에, 에르나스……!”

마지막으로 쓰러졌던 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얼굴을 확인해 보니 벨리드 앤드류스였다.

“우, 우리들의 습격을, 눈치채고 있었나……?”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지.”

“크윽……!”

벨리드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신음했다.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해서 기습한 걸 텐데, 사전에 눈치챘다고 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그런데, 방금 그 검술은 대체 뭐지?”

벨리드가 헐떡이면서 물었다.

“푸른색 검기가 채찍처럼 꿈틀거리며 주위를 싹 쓸어버리다니… 그런 검술, 본 적이 없어. 대체 무슨 검술이지?”

“그거까지 알려 줄 이유는 없지.”

“큭…….”

나는 벨리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다른 녀석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니, 다들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래서는 리스틸처럼 몇 달 동안 아카데미 바깥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2차 시험을 통과해서 기분 좋았을 텐데, 이래서는 남들보다 한참 뒤처지게 되겠군.”

“……!”

내 독설에 다들 숨을 삼켰다.

“너희들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알고 싶나?”

“흐읍!”

바로 그때.

배후에 쓰러져 있던 벨리드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틈을 타서, 내 등을 검으로 찌르려 한 것이다.

“헉?!”

“그 이유는, 너희들이 내 역량을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벨리드의 칼은 내 몸에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내가 이미 호신기를 전개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한 지도 꽤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호신기도 상당히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호, 호신기? 어떻게 그래듀에이트 하급이 호신기를…….”

“그래, 이렇게 머리가 나쁘니 나를 습격하는 거지.”

“크악……!”

나는 칼 옆면으로 벨리드의 오른쪽 어깨를 후려쳤다.

검기를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마력으로 근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뼈가 으스러졌다.

“서, 설마 그래듀에이트 중급?!”

다들 당혹스러워했다.

평소 그들이 접하는 그래듀에이트 중급은 아카데미 조교수들이다.

한낱 학생에 불과한 내가 어느새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했다고 하니 다들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 엘릭시르를 많이 복용한 건가?”

“아니, 엘릭시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그래듀에이트 중급이 될 수 없는데…….”

“그래도 방금 호신기를 쓴 게 맞다면, 정말로…….”

다들 마음속으로 후회하고 있겠지만, 이미 늦었다.

녀석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

나는 고개를 돌려 벨리드를 다시 쳐다봤다.

허벅지 살이 터지고 어깨뼈가 박살 난 모습이 처참했다.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군. 아카데미에 복귀하는 것도 어려울 거다.”

“크윽……!”

“자업자득이군.”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혼자서 숲에서 빠져나왔다.

뒤에서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숙사를 향해 걸었다.

“멈춰, 에르나스.”

하지만, 기숙사 앞에서 나를 가로막은 학생이 있었다.

측근들도 거느리지 않고 혼자 나타난… 베리스리제였다.

“눈치채고 있었나 보군, 베리스리제.”

“내 밑으로 기어들어 온 놈들이니,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있지.”

베리스리제가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대꾸했다.

“상처 하나 없다니, 정말 대단하네. 역시 너는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한 거구나.”

“…….”

방금 녀석들과는 달리, 베리스리제는 내가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했다는 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

“녀석들한테 귀띔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내가 왜?”

베리스리제가 어깨를 으쓱하며.

“신분도 낮은 데다가, 나한테 흑심 가득한 눈빛을 향하는 녀석들인데.”

“그랬어?”

“훗날 내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면 내 반려가 되어서 권력을 잡겠다든가? 그런 역겨운 소리를 하던 거 같더라고.”

“…….”

할 말을 잃었다.

나도 그런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에르나스, 같은 남자로서 어떻게 생각해?”

“남자 여자를 떠나서, 딱히 바람직한 사고방식은 아니긴 하지.”

“흐음, 그래?”

베리스리제가 내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황녀 전하의 반려가 되어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다니, 놀랍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오해? 시치미 떼지 마. 네가 식당에서 루퍼스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알고 있어.”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에르나스, 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

“이번에 리스틸 교수도 축출했다지? 아주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슈라이에르 가문이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그렇게 내뱉은 뒤, 그녀는 나한테서 획 등을 돌렸다.

“네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 황녀 전하와 결혼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꿈도 꾸지 마.”

“…….”

베리스리제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황녀와 결혼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야.’

내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된다고 해서, 꼭 황녀와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약혼은 해야 하겠지만, 나와 세리느처럼 나중에 가서 약혼을 파기하면 되는 거니까.

‘이번에 리히테나워 대공을 부활시키려 하는 건 황녀가 아직 열두 살밖에 안 된 소녀이기 때문이야. 황녀가 나이를 먹고 검술을 깨우치면 리히테나워 대공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어.’

황제의 권위가 안정된 상태라면, 굳이 리히테나워 대공과 결혼할 필요도 없다.

중앙집권제로의 개혁이 추진되면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황녀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녀석하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황녀한테도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지.’

물론, 이건 나한테도 마찬가지다.

나한테도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면 반드시 차기 황제와 결혼해야 한다?

그런 건 싫다.

‘이런 얘기, 다른 사람한테는 하면 안 되겠지.’

루퍼스에게 했던 얘기와는 달리, 이 얘기는 나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니 베리스리제든 다른 사람한테든 이 얘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훗날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아니니까.’

나한테 중요한 건 6대 검술명가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아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결혼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다.

‘어쨌든… 이걸로 베리스리제 쪽은 한시름 놨군.’

베리스리제는 슈라이에르 가문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겁을 줬지만, 지금 당장 무슨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슈라이에르 가문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다.

‘그렇다면, 다음에 경계해야 하는 건…….’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소설 속 내용을 되새겼다.

내 예상이 맞다면… 슬슬 그 남자가 모습을 드러낼 시점이다.

* * *

어느 날 아침.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로 들어가기 위한 ‘정문’에 여러 대의 마차가 도착했다.

정문을 지키던 교관들은 예고 없이 나타난 방문자들에 당황스러워했다.

“누, 누구십니까!”

교관들의 질문에,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장신(長身)의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넘치는 예복을 걸치고 있어 명문 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그리파 가문에서 나왔다.”

“아, 아그리파 가문?!”

6대 검술명가 중 하나, 아그리파 가문.

현재 그 후계자인 하인리히 아그리파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다.

“알드바우트 총장에게 전해라.”

장신의 남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그리파 가문의 가주, 브랜틀리 아그리파가 왔다고 말이다.”

“……!”

남부 최강의 그래듀에이트.

황제에게 ‘청월검(靑月劍)’의 칭호를 받은 절정급의 검사, 브랜틀리 아그리파 공작이 아카데미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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