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77화 (77/212)

77화 교수에게 맞서다 (2)

‘당혹스럽겠지, 리스틸.’

안겔라 클래스의 평교수 리스틸은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 훈련장에서 최소 열흘은 갇혀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열흘은커녕 1시간도 안 되어서 바깥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리히테나워 경신술에 능숙한 상태야.’

나는 흑색 6반의 교관이었던 안네리제를 통해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획득했다.

안네리제는 마력 연공에 재능이 없어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상당히 우수했다.

유스레흐트를 사용해 그녀에게서 얻어 낸 리히테나워 경신술은 A랭크.

이 정도 숙련도면 훈련 코스를 1분 안에 주파하고도 시간이 남는다.

‘나를 훈련장에 가둬 놓고 슈라이에르 가문과 연락할 생각이었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소설 속에서 리스틸은 슈라이에르 가문의 지시를 받으며 움직인다.

현재 리히테나워 대공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상황이라, 리스틸 입장에서는 더더욱 슈라이에르 가문의 지침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면, 리스틸은 자신의 생각만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교수님, 다음에는 무엇을 수련하면 됩니까?”

“으음…….”

리스틸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나를 제거해 버리고 싶겠지만, 슈라이에르 가문의 지시가 없으면 그럴 수 없다.

“안겔라 클래스는… 기본적으로 남부 검술 위주의 클래스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남부 검술은 속도를 중시하는 검술이다.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중에서는 하인리히와 베리스리제가 남부 검술을 사용한다.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하면, 그다음에 배우게 되는 건 리히테나워 쾌검술이다.”

“아카데미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검술이군요.”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는 다른 검술들을 창조하여 새로운 검술을 만들기도 한다.

여러 남부 검술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 바로 리히테나워 쾌검술이다.

“이제 막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입문한 학생들이, 마력을 사용하여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에 능숙해질 수 있도록 구성된 검술이지.”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훈련용 검술 같습니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충분히 실전에서도 쓸 만한 검술이다.”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는 리히테나워 쾌검술을 배우는 겁니까?”

“다른 학생이라면 그랬겠지.”

리스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너는 굳이 리히테나워 쾌검술을 배울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그렇다면…….”

“그 위의 단계,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

그 이름을 듣고, 나를 안내해 준 조교가 흠칫 놀랐다.

“교, 교수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은… 안겔라 클래스 전속이 되어야 배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내 판단이다.”

리스틸의 차디찬 대답을 듣고, 조교는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괜히 이의를 제기해 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르나스, 너도 이왕이면 수준 높은 검술을 배우는 편이 좋겠지. 안 그런가?”

“저야 좋습니다만, 괜찮은 겁니까?”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스틸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직접 지도해 주마. 따라와라.”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겁니까?”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제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죠.”

* * *

에르나스를 훈련장으로 데려가면서, 리스틸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모처럼 에르나스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에르나스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에르나스를 죽여 버리고 싶다.

가만 내버려 뒀다가는 분명 슈라이에르 가문을 크게 위협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슈라이에르 가문의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에르나스에게 부상을 입히는 게 최선이겠군.’

훈련 도중 부상을 입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에르나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다가 부상을 입혔다고 하면 된다.

몇 달 동안 검을 휘두르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에르나스가 주춤하는 동안, 베리스리제 공녀님이 치고 나가면 된다.’

훈련 도중에 에르나스에게 부상을 입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터.

일부러 부상을 입힌 거라고 에르나스가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다른 목격자도 없고, 증거 같은 것도 제시할 수 없을 테니까.

“이곳에서 하지.”

“…….”

리스틸이 안내한 곳은, 안겔라 클래스 구석에 있는 훈련장이었다.

조교를 대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을 닫으면 리스틸과 에르나스 단둘이 있게 된다.

“왜 그러지?”

“상당히 넓어서 말입니다.”

에르나스가 훈련장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교수님과 둘이서만 쓰기에는 너무 공간이 넓은 것 같아서, 살짝 신경 쓰였습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터득하려면 이 정도 공간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리스틸은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에르나스, 남부 검술은 속도를 중요시한다. 이것은 검을 휘두르는 속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검이 닿는 거리로… 그렇게 신속하게 거리를 좁히는 것도 남부 검술에서 중요한 요소다.”

리스틸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마나 하트에서 마력을 끌어올린 뒤, 그중 상당량을 하체에 집중했다.

“경신술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것하고 별 차이 없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단순히 경신술을 사용한 뒤 검을 휘두르는 것하고 큰 차이가 있다.”

파앗!

리스틸은 단번에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에서는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검을 휘두른다. 발을 멈추는 일 없이, 계속해서 위치를 바꿔 가면서 공격을 하는 거다.”

“…….”

휘익! 파앗!

계속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리스틸은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보여 줬다.

에르나스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관찰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움직임을 멈춘 뒤, 리스틸은 에르나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러면, 한번 시험해 볼까.”

리스틸은 에르나스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에르나스, 한번 흉내를 내 봐라.”

“흉내를……?”

“내가 지금 했던 움직임을 재현해 보란 말이다. 나를 상대로.”

“…….”

침묵하는 에르나스를 보면서 리스틸은 코웃음을 쳤다.

“기초적인 이론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줄 생각은 없다. 직접 몸으로 연습하면서 터득하는 게 더 빠르겠지.”

“혹시 교수님도 아이오니아 신속검술로 반격하시는 겁니까?”

“걱정 마라. 너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리스틸은 우연을 가장해서 에르나스에게 부상을 입힐 생각이었다.

‘에르나스는 경신술을 활용하면서 나한테 달려들겠지.’

어설프게 검을 휘둘러 공격해 오면, 그 빈틈을 파고든다.

그리고 일격에 에르나스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면 된다.

‘내 기량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에르나스는 시키는 대로 어설프게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흉내 내고 있는 상태.

리스틸이 빈틈을 파고들어 심각한 부상을 입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에르나스의 움직임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느려서 혹은 너무 빨라서 그렇게 된 거라고 해명하면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리스틸은 칼날에 마력을 불어넣을 준비를 했다.

* * *

‘지금쯤 검기를 준비하고 있겠지.’

나는 리스틸의 오른손을 응시했다.

그녀의 검에는 검기가 전개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언제든지 마력을 불어넣어 검기를 펼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어설프게 흉내 내면, 빈틈을 찔러 부상을 입힐 생각일 거야.’

소설 속에 이런 장면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리스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리스틸은 소설 속에서 꽤 비중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잘 알고 있거든.’

소설에서 리스틸은 꽤 오랫동안 주인공들과 충돌한다.

리스틸 시점의 심리 묘사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라면 리스틸이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어설프게 자세를 잡았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정확한 자세였다.

“…….”

그 모습을 보고도 리스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제대로 지도해 줄 생각이 없다는 증거였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와라.”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설프게 도움닫기를 한 뒤,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

리스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움직임이라면 자신이 빈틈을 찌르기 쉬울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다.’

리스틸과의 거리가 절반 정도로 좁혀진 순간.

미리 끌어올려 뒀던 마력을 한꺼번에 활성화했다.

나는 일부러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전력을 다해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펼친다.’

파앗!

파공음과 함께,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갑자기 내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리스틸이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리스틸은 다급히 검기를 펼치려 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마력으로 검을 휘두르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력도 결코 부족하지는 않아.’

지금 리스틸은 내가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전에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흑영초와 황색 엘릭시르를 동시에 복용하여 마력을 크게 늘렸다.

‘이 마력을 사용해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까지 조합한다면……!’

파직!

육체 전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방법론을 활용해, 일시적으로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낸다.

이미 전력을 다해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펼치고 있었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빨라진다.

“에르…….”

리스틸이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교수답게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파앗!

리스틸을 스쳐 지나가, 한참 더 전진한 상태에서 정지했다.

천천히 마력을 거둬들이면서 뒤를 돌아봤다.

“으윽……!”

오른쪽 어깨에서 피를 뿜으며 몸을 웅크리는 리스틸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스쳐 지나가면서 펼친 공격이 리스틸의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힌 것이다.

리스틸도 나한테 부상을 입히려고 검을 휘둘렀지만…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너무 어설퍼서, 실수를 했습니다.”

“……!”

“훈련 도중에 부상을 입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리스틸의 얼굴 살이 파르르 떨렸다.

아마 그녀는 나에게 부상을 입힌 뒤 비슷한 변명을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에르나스, 네놈……!”

리스틸이 분노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네놈, 설마 처음부터 나에게 부상을 입힐 생각으로……!”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수님.”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훈련 도중에 일부러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다니, 그런 미치광이가 아카데미에 있을 리 없죠.”

“……!”

리스틸의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하지만 여기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숙일 인물이 아니었다.

“에르나스……!”

그녀는 적반하장으로 분노하면서 검을 치켜들었다.

오른쪽 어깨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왼쪽 손을 사용해서.

“죽여 버리겠다……!”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그녀가 검기를 전개했다.

그냥 부상만 입히려던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교수님, 너무 목소리가 크십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태연히 대꾸했다.

방금 전…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해 주위를 확인해 뒀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곤란하실 텐데요.”

“닥쳐라! 너는 반드시 내가 죽인다……!”

그렇게 소리치면서 리스틸이 나를 향해 돌진하려던 순간.

음침한 목소리가 훈련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훈련을 실전같이 하는 건 좋지만… 학생한테 그렇게 강렬한 살기를 드러내는 건 교수 실격이지, 리스틸.”

“……?!”

안겔라 클래스의 지도 교수.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 안겔라 베르틴스키가 훈련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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