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교수에게 맞서다 (1)
안겔라 클래스는 아카데미를 구성하는 여러 섬 중에서도 상당히 외딴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를 타고 꽤 오래 이동해야만 했다.
“정말로 여기에 클래스가 있는 겁니까?”
“그냥 바위섬처럼 보이는데요…….”
슈미츠와 비올라가 배 위에서 당혹스러워했다.
다른 클래스들처럼 그럴듯한 건물이 세워져 있지 않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안겔라 클래스는 지하에 있어요.”
클로에가 설명을 해 줬다.
“소문에 의하면 지하 던전을 방불케 한다더군요.”
“지하 던전이라니…….”
“마녀라 불리는 분이니까, 어울리긴 하네요.”
안겔라는 단순히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마녀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 중에서 가장 기이한 짓을 많이 하는 것이 안겔라 베르틴스키라는 인물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일단 상륙하자고.”
“네…….”
배에서 내린 뒤, 우리는 섬을 살펴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 거죠?”
“여, 여기 정말로 안겔라 클래스 맞아요?”
당황하는 슈미츠와 비올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칼자국이 많은 바위를 찾아냈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돼.”
“네?”
나는 검을 뽑아 검기를 전개했다.
그리고 바위를 강하게 내리쳤다.
“앗……!”
쿠쿵!
바위가 좌우로 나뉘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클래스거든.”
“그러고 보니 에르나스는 안겔라 교수님한테 초대를 받았다고 했죠.”
사실 안겔라에게 이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들은 적은 없다.
내가 소설 속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소설에서는 입구를 못 찾아서 한 번 헛걸음을 하지.’
여기서 굳이 헛걸음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냥 소설 속 지식을 사용해서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
“네, 에르나스.”
우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은은한 조명이 있어서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어라, 학생들이 들어왔군.”
넓은 공간에 도달하자, 바쁘게 움직이는 조교들 중 한 명이 우리한테 말을 걸어왔다.
“자력으로 들어온 건가? 용케도…….”
조교가 내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잠깐, 혹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인가?”
“네, 맞습니다.”
“……!”
다른 조교들도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리히테나워 대공의 소문은 아카데미의 말단 조교들한테도 영향이 있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 지도 교수님을…….”
“무슨 호들갑이냐.”
바로 그때,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교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리, 리스틸 교수님!”
애시 블론드… 잿빛이 섞인 금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조교들이 주눅 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 학생들이 찾아왔다고 지도 교수님을 찾게 됐지?”
“교수님, 하지만…….”
“변명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리스틸 브라드네프.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검사로, 안겔라 클래스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평교수였다.
사실 원래 수련생을 상대하는 건 이런 평교수나 조교수들이다.
욜스나 페르디난드처럼 클래스의 지도 교수가 직접 학생을 상대하는 게 이례적인 일이었다.
“너희들, 이름을 말해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입니다.”
“세리느 바스티안입니다.”
“클로에 유스부르크예요.”
“슈미츠 하르트만입니다.”
“비, 비올라 오리셔스입니다…….”
말을 더듬는 비올라의 모습에 리스틸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비올라는 주눅 들어 고개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내가 담당해 주겠다. 수련을 받으러 온 거라면 앞으로 내 지시에 따르도록.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
내가 차분히 대답하자, 리스틸이 날카로운 눈동자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따라와라.”
우리는 리스틸의 뒤를 따랐다.
분위기가 워낙 냉랭해서 우리들끼리 잡담을 나눌 수도 없었다.
한참 통로를 걸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신술을 수련하기 위한 훈련장이었다.
‘내가 만든 설정이긴 하지만, 이런 훈련장을 지하에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현실 세계의 유격 훈련장을 연상케 하는 지하 공간에서, 리스틸이 우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너희는 여기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
다들 숨을 삼켰다.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배울 기회가 왔으니, 다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할 때까지 너희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
“네?!”
비올라가 무심코 목소리를 높였다가, 리스틸의 매서운 눈빛에 다시 몸을 움츠렸다.
“유트리드 조교수, 학생들을 훈련시켜라.”
“알겠습니다, 리스틸 교수님.”
리스틸은 훈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교수에게 명령을 내린 뒤, 그대로 쓱 나가 버렸다.
“리스틸 교수님 말씀은 다 들었겠지?”
조교수가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할 때까지 여기서 합숙을 하는 거다. 식사 같은 건 제공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
“재능 있는 사람은 열흘 정도 걸린다. 몇 달이 걸려도 터득 못 해서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말이다.”
정말로 여기에 갇혀서 리히테나워 경신술만 수련해야 한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보다시피 여기에 훈련용 코스가 있다. 여러 장애물과 함정을 돌파하여 1분 안에 종착점에 도달하면 합격이다.”
“1분 안에……!”
훈련장은 지하 공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종착점은 아예 여기서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1분 안에 주파해야 한다고 하니… 경신술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이다. 질문 있나? 질문 없으면 바로 기초 설명을…….”
“조교수님.”
나는 조교수의 말을 끊으면서 손을 치켜들었다.
“한 가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뭐냐?”
“제가 만약에…….”
내 얘기를 듣고, 조교수가 눈을 크게 떴다.
* * *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안겔라 클래스에 올 줄이야.’
리스틸은 교수실에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랭커스터 가문을 토벌할 때 안겔라 교수님과 함께 행동했었지. 그때 권유를 받은 건가.’
그렇다면 안겔라는 에르나스를 높게 평가한 모양이다.
안겔라를 설득하여 베리스리제를 지원해 주도록 만들 생각이었는데,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다.
‘베리스리제 공녀님에게 최대한 힘을 실어 드려야 하는데…….’
리스틸은 슈라이에르 가문과 깊은 관계가 있다.
아버지는 슈라이에르 가문과 거래를 하던 상인(商人)이고, 어머니는 슈라이에르 가문의 분가(分家) 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틸에게도 슈라이에르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슈라이에르 가문에서 수년간 검술을 배운 적도 있어서, 리스틸 입장에서는 베리스리제를 돕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가 걸려 있다니, 더더욱 베리스리제 공녀님을 도와드려야해.’
사실 리스틸은 얼마 전에도 슈라이에르 본가에 연락을 취했다.
리히테나워 대공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앞으로의 방침을 문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장이 돌아오기도 전에 에르나스가 리스틸 앞에 나타나 버렸다.
‘지금 시점에서 에르나스는 공녀님보다 앞서 나가고 있어. 어떻게든 끌어내려야 할 텐데…….’
문제는 함부로 행동했다가 오히려 슈라이에르 가문에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랭커스터 가문이 에르나스를 제거하려다가 파멸한 것을 생각하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냥 바로 죽여 버리고 싶지만 말이다.’
에르나스는 고작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불과하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인 리스틸이 검을 휘두르면 쉽게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죽여 버린 뒤, 훈련장에서 사고를 당한 걸로 위장하는 게 최선이겠지.’
안겔라 클래스의 지하 훈련장에는 위험한 시설이 많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시설들이다.
그런 곳에서 사고를 당한 걸로 위장하면 어떨까.
‘아니… 역시 내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게 만약 다른 녀석이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해치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
랭커스터 가문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고, 테오도라 발트펠트의 죽음에도 에르나스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틸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슈라이에르 가문에 의견을 묻는 수밖에.’
슈라이에르 가문의 가주는 매우 지혜로운 인물로 유명하다.
그쪽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편국을 통해 마법적 서신을 보내야겠어.’
먼 거리에 마법적 신호를 보내서 문장을 전송하는 기술이 있다.
그걸 활용하면 종이로 된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 빠르게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에르나스는 리히테나워 경신술 훈련장에 있으니, 적어도 열흘은 밖으로 나오지 못할 터.’
열흘이면 여유 있다.
슈라이에르 측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방침을 결정하기에는 충분하다.
‘좋아. 그러면…….’
리스틸은 찻잔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아카데미 본관에 있는 우편국에서 서신을 보낼 생각이었다.
“……!”
하지만, 교수실 문을 열어젖힌 순간.
리스틸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계셨군요.”
“에, 에르나스?”
에르나스가 조교를 대동하고 서 있었다.
훈련장에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수련하고 있을 녀석이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
설마 리히테나워 경신술 터득을 포기한 건가?
“어떻게 된 거지?”
리스틸은 에르나스를 데려온 조교를 노려봤다.
하지만 조교가 답변하기도 전에 에르나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 끝냈습니다.”
“뭐라고?”
“훈련, 완료했단 말입니다.”
에르나스는 리스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해 훈련용 코스를 1분 이내에 주파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수련을 해야 하는지 여쭙고 싶어서, 조교님의 안내를 받아 교수님을 찾아온 겁니다.”
“……!”
녀석들을 훈련장에 가둔 지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담당 조교수의 이론 강의도 끝나지 않았을 시간인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대체 어떻게…….”
해당 코스는 리히테나워 경신술에 충분히 익숙해져야 돌파 가능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에르나스, 설마…….”
리스틸은 에르나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다른 경신술을 사용한 것이냐?”
“네?”
“따로 배운 경신술을 사용해서 코스를 주파했냐는 말이다.”
에르나스가 경신술을 사용할 줄 안다는 건, 지금까지의 실적을 살펴보면 알 수 있었다.
그냥 평범한 경신술이라면 1분 이내에 주파할 수 없지만, 만약 에르나스가 안겔라 교수의 시그나이저 경신술 같은 특급 경신술을 배운 적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용납할 수 없다.”
“…….”
“이건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터득하기 위한 훈련이다. 네가 다른 경신술에 아무리 능숙해도, 그걸 인정해 줄 수는 없다.”
사실 이런 규정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교수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에르나스의 발목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 교수님.”
그때 에르나스를 데려온 조교가 입을 열었다.
“에르나스 수련생은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해서 훈련 코스를 주파했습니다.”
“뭐라고?”
리스틸은 귀를 의심했다.
“유트리드 조교수님이 직접 지켜보며 확인했습니다. 에르나스 수련생은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한 게 맞습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리히테나워 경신술은 아카데미에서만, 그것도 전용 훈련장이 있는 안겔라 클래스에서만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해도, 전용 훈련장에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터득할 수 없다.
“에, 에르나스.”
리스틸은 에르나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대체 너는… 어디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배운 거지?”
“교수님.”
에르나스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제가 그걸 교수님에게 알려 드릴 의무가 있습니까?”
“……!”
건방지기 그지없는 말투.
하지만 리스틸은 분노보다는 오싹함을 느꼈다.
예전에 슈라이에르 가문의 가주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녀석… 대체 뭐지?’
이게 정말로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송이란 말인가.
이게 정말로…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밖에 안 되는 검사란 말인가.
‘어째서… 나보다 격상(格上)의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극한의 당혹스러움 속에서, 리스틸은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교수님.”
에르나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거리가 좁아지자, 리스틸은 무심코 뒷걸음칠 뻔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가르쳐 주실 겁니까?”
“……!”
슈라이에르 가문의 지시를 기다리기에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