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73화 (73/212)

73화 랭커스터 멸망의 날 (5)

레스터 랭커스터가 죽었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를 내 손으로 죽이게 된 것이다.

‘이걸로 정국이 크게 요동치겠군.’

사적으로 살해한 것이었다면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스터가 마교의 영약인 소마를 복용한 흔적이 있기 때문에, 명분은 나한테 있다.

‘레스터가 마지막에 말했듯이, 앞으로 혼란이 벌어지겠지.’

이번에 랭커스터 가문은 완전히 괴멸될 것이다.

그리고 리히테나워 대공 문제도 세상에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

‘소설 속에서 이와 같은 혼란이 벌어졌을 때, 주인공인 아칸델은 큰 관심이 없었지.’

아칸델은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세계의 권력 다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한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권력 다툼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세계의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그 정보를 바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행동하지 않았다.

랭커스터 본가에 직접 에르나스가 쳐들어오다니, 소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권모술수로 타인을 이용하기만 했던 에르나스가 스스로 행동에 나서고 있어. 다툼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소설 속 전개하고 다른 부분이 더 많이 늘어나겠지.’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다른 세력들의 움직임을 완벽히 예상할 수 없는 이상, 소극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방향성이 중요해.’

이 세계에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저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는 것만 생각하면 될까.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지.’

이미 랭커스터 가문이 무너졌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건전한 경쟁만 해서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게다가 에르나스는 란즈슈타인 가문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다양하게 후계자들을 지원해 주고 있는 다른 검술명가들과는 달리, 란즈슈타인 가문은 그냥 침묵 중이다.

이건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떡밥인데, 현재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요소다.

‘소설의 에르나스처럼 여러 세력들 사이를 오가며 권모술수를 펼칠 수도 없는 노릇…….’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 할까.

‘정답을 찾아내야 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랭커스터 가문의 비밀 창고다.

소마처럼 철저히 숨겨야 하는 물건뿐만 아니라, 랭커스터 가문의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레스터는 이것들을 처분 혹은 운반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을 것이다.

“…….”

나는 창고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장신구부터 랭커스터 가문의 기밀이 적혀 있는 극비 서류까지 다양한 물건이 있었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찾았다.’

내가 찾아낸 건 다름 아닌 흑영초였다.

대미궁 심층부에서 찾아냈던, 흑색 엘릭시르의 원료다.

랭커스터 가문에서는 모종의 방법으로 이 흑영초를 입수하여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원료들도 있군.’

소설 속에서 언급되었던 엘릭시르의 원료들도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다.

언젠가 엘릭시르의 제조법을 알아내어 직접 엘릭시르를 제조해 볼 생각이었을 것이다.

‘일단… 흑영초만 챙겨야겠어.’

나는 잘 건조된 상태로 종이에 싸여 있는 흑영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품 안에 숨긴 채 바깥으로 나갔다.

“헉……!”

“꺄악……!”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을 보고, 랭커스터 가문 사람들이 뒷걸음쳤다.

나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며 저택 밖으로 향했다.

‘마침 마무리가 된 모양이군.’

콰쾅!

바깥으로 나간 직후, 헨리가 정원 조각상에 처박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조각상은 산산조각 났고, 헨리도 일어서지 못했다.

“헉, 헉…….”

헨리를 제압한 칼레온이 숨을 헐떡였다.

욜스와 안겔라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 걸 보니, 결국 칼레온 혼자서 헨리를 제압한 모양이었다.

‘칼레온은 정정당당한 일대일 승부를 선호하니까.’

칼레온도 온몸에 부상이 많았다.

아슬아슬한 승부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겨우 끝났네. 내가 도와줬으면 더 금방 끝났을 텐데 말이야.”

안겔라가 검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만약 칼레온이 쓰러졌다면 곧바로 안겔라가 나서서 헨리를 해치우지 않았을까.

“에르나스, 안쪽은 어떻게 되었지?”

“레스터 랭커스터는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흑천마교의 소마를 복용하고 저항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처단했습니다.

“소마를? 정신 나갔군.”

안겔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욜스도 눈썹을 찌푸렸다.

“에르나스, 그게 정말인가?”

“네, 몸이 이상하게 부풀어 오르더군요.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덤벼들어서, 숨통을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군. 어쩔 수 없지.”

욜스가 칼레온에게 시선을 향했다.

“칼레온 교수님, 들으셨습니까?”

“그래, 들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칼레온이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수고 많았다, 에르나스.”

“아닙니다.”

“레스터를 생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쩔 수 없지.”

칼레온은 쓰러진 헨리에게 시선을 향했다.

헨리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자업자득이다, 멍청한 것.”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검술명가의 가주가 저렇게 처절하게 몰락했으니,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훗날 자신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나는 칼레온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욜스와 안겔라에 의해 쓰러진 그래듀에이트들의 시체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만에 하나 헨리가 복귀한다 해도, 랭커스터 가문은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였던 랭커스터 가문은… 이제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 * *

헨리는 일단 아카데미로 압송되었다.

어느 정도 조사를 진행한 뒤 제국 수도로 이송할 거라 한다.

“에르나스, 오늘은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도록 해라.”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칼레온은 나한테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뒷일은 우리들에게 맡기면 된다.”

“…….”

“앞으로는 마음 편히 학업에 집중하도록.”

얼핏 듣기에는 귀찮은 일은 자신들이 맡아 주겠다고 배려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저런 말을 하는 건, 분명 의도가 있다.

“아닙니다, 교수님.”

“뭐라고?”

“제국 사회를 지탱하던 6개의 기둥 중 하나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

칼레온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제 증언이 필요한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제가 나설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협력을 요청해 주십시오.”

“…알겠다. 필요하면 요청을 하지.”

그렇게 말하며 칼레온이 나한테서 등을 돌렸다.

내가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자, 안겔라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정말로 재미있는 아이구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교수님.”

“지금 페르디난드 클래스라고 했지? 다음에는 내 클래스로 와라. 잘해 줄 테니까.”

내 어깨를 두드린 뒤, 안겔라가 자리를 떴다.

그러자 욜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안겔라 교수는 여전히 짓궂은 성격이군.”

“괜찮습니다.”

“그런가……. 네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지.”

욜스는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에르나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더군. 내가 모르는 사정도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맞습니다.”

검술명가들이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는 건, 욜스 선에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만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런가. 알겠다.”

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얘기해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를 받고, 욜스도 자리를 떴다.

이제 나도 기숙사로 돌아가면 된다.

“…….”

수련생용 기숙사가 있는 섬으로 이동하자, 여러 학생이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 슈미츠가 나를 발견하고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에르나스 님, 돌아오셨군요!”

“왜 여기 서 있었지?”

“에르나스 님이 귀환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세리느와 클로에, 비올라도 있었다.

그리고 흑색 6반 출신이 아닌 학생들까지 있었다.

“에르나스 님,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백색 5반 출신의 학생이었다.

“남작의 작위를 지닌 앤드류스 가문의 아들, 벨리드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군, 벨리드.”

내가 인사를 하자,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랭커스터 가문을 토벌하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토벌이라고 말하면 좀 어폐가 있지.”

“레스터 랭커스터를 처단하신 것도, 이미 들었습니다.”

“…….”

“저는 백색 5반에서 레스터 밑에 있었습니다.”

벨리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레스터는 겉으로는 차분하고 공평한 리더인 척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

“언젠가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에르나스 님, 저는 이번 토벌을 에르나스 님이 주도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토벌이 아니라니까.”

“아, 죄송합니다.”

일부러 이러는 걸까.

“괜찮으시다면 저를 수하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수하로?”

“네, 저도 에르나스 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세리느와 클로에 등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처럼 내 측근이 되고 싶다는 얘기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희도 에르나스 님을 따르려 합니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내가 랭커스터 가문에 다녀온 사이, 다들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클로에가 내 세력을 늘리기 위해 여론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속셈이 있겠지.’

원래 아카데미 학생들이 검술명가의 후계자를 추종하는 건 졸업 이후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친분을 쌓아 측근으로 인정받으면 훗날 검술명가의 위세를 빌릴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이 녀석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내가 아카데미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지.’

내가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면, 졸업 이후에도 검술명가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그걸 믿고 일찌감치 나에게 줄을 서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랭커스터 가문을 박살 내고 왔으니… 이 녀석들은 내가 졸업한 뒤에는 더 승승장구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 뜻은 잘 알았다.”

내가 천천히 입을 열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곧바로 내가 입에 담은 말을 듣고 다들 표정이 바뀌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나를 따라 봤자 권력을 누릴 일은 없을 거다.”

“……!”

내가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면, 리히테나워 대공의 작위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어마어마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기대하는 것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도와 봤자, 훗날 너희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내 이름을 들먹이며 위세를 부리는 건 쉽지 않을 거다.”

“……!”

이것은 단순히 호가호위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다.

내가 앞으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으로서 취할 ‘방향성’과 관계있는 얘기였다.

“어떠냐.”

나는 녀석들을 쓱 훑어보며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나를 따를 것이냐?”

내가 던진 까다로운 질문에, 녀석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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