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랭커스터 멸망의 날 (4)
제국에서 생산하는 엘릭시르는 매우 섬세한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엄선된 원료를 정해진 분량만큼만 사용하며, 사람의 몸에 안정적으로 흡수될 수 있도록 복잡한 가공이 이루어진다.
완성된 엘릭시르는 적색, 청색, 황색, 녹색, 백색, 흑색 순으로 단계별로 제공되어 마력을 점진적으로 증진하도록 되어 있다.
마력을 한꺼번에 확 늘릴 수는 없으나, 부작용이 적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반면 마교에서 생산하는 소마는 전혀 다르다.
살아 있는 인간 등 동물성 원료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며, 제작자가 멋대로 배합을 바꾸는 일도 흔하다.
운 좋게 효과가 강력한 소마가 생산되기도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는 불량품이 나오기도 한다.
“크으으윽!”
그러면 지금 레스터가 복용한 소마는 어떤 것일까.
소설 속에 나왔던 것과 동일하다면, 저 소마는 매우 강력한 효과를 지녔다.
지난번에 내가 복용한 흑영초 못지않은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운이 매우 맹렬하고 독하다.
복용하여 체내로 흡수하면, 거센 마력이 혈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결국 마력은 마나 하트에 저장되지 않고 이곳저곳에 파고든다.
지금 레스터의 온몸에서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다.
“크아악!”
레스터가 주먹을 휘두르자, 탁자가 일격에 산산조각 났다.
근력이 엄청나게 증진되었다는 증거였다.
“에르나스, 에르나스……!”
하지만, 레스터는 지금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짐승처럼 으르렁대고 있다.
마력이 중추신경계에 침투하여 극도의 흥분 상태를 만든 탓이다.
반사 신경 등이 극대화되어 전투력 자체는 향상되었겠지만, 냉정한 판단이나 정밀한 동작은 어려워졌을 것이다.
“죽여 버리겠다……!”
레스터가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즉각 그 공격을 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내 검기가 레스터의 어깨를 스쳤지만,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호신기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레스터의 마력이 피부로 새어 나와 호신기와 비슷한 작용을 하고 있다.
마력의 영향으로 근육이 팽창하고 피부도 딱딱해진 상태라, 방어력이 극한까지 상승해 있었다.
“네 공격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레스터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두 자루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헨리와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랭커스터 비익검술로… 너를 해치워 주마!”
랭커스터 비익검술.
랭커스터 가문의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로, 두 자루의 소검을 사용한다.
변화무쌍한 서부 검술 중에서도 가장 현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스터, 그건 아니다.”
“뭐가 아니란 말이냐!”
“지금 네 상태로는 랭커스터 비익검술을 펼칠 수 없어.”
레스터는 너무 흥분한 상태다.
랭커스터 비익검술의 복잡한 기술들을 펼치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너는 랭커스터 비익검술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못했을 텐데.”
“닥쳐라……!”
레스터가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쌍검을 휘두르면서 나를 향해 돌격했다.
“나는 이 검술로… 아버지처럼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가 될 것이다!”
“네가 그 목표만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이었다면, 나도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었을 거다.”
나는 하체에 마력을 집중하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너무 야심이 컸다. 그리고 그릇이 작았다.”
“그 입을 다물어라, 에르나스……!”
파팟!
레스터의 쌍검이 나를 덮쳤다.
랭커스터 비익검술의 교묘한 움직임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검술 초보가 휘두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소용없어.”
“……!”
휘익!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사용하여 레스터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레스터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큭……!”
팔에 작은 생채기가 났지만, 레스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대해진 몸을 움직여 계속해서 나를 공격하려 했다.
“거기 서라, 에르나스!”
그런다고 해서 내가 멈춰 설 이유는 없다.
나는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의 스피드를 사용하여 종횡무진 움직였다.
레스터의 온몸에 수십 개의 칼자국이 남겨졌다.
“그 정도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호신기가 찢겨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지만, 레스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내 움직임을 쫓기 어렵다는 점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으으윽!”
레스터가 양손에 검을 들고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소마의 마력 덕분에 육체 능력이 급격히 향상되었기 때문에, 그냥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정말로 눈꼴사나운 광경이군, 레스터.’
원래 레스터는 짧고 가벼운 검을 사용하여 뛰어난 기술을 선보이는 검사였다.
저렇게 무식하게 힘만 내세우면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움까지 느껴졌다.
‘이제 슬슬 편하게 해 주마.’
푸욱!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레스터의 검이 벽에 박혔다.
레스터가 힘으로 검을 빼내려 한 순간, 그 배후에 커다란 빈틈이 생겼다.
나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에…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조합한다.’
파아앗!
초고속으로 움직이면서, 푸른 검기가 전개된 칼날을 뻗었다.
레스터의 뒷목에서 오른쪽 견갑골에 이르는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에르나스……!”
목뼈까지 보이는 심각한 부상이었다.
하지만 레스터는 여전히 포효하면서 나한테 달려들려 했다.
소마의 마력이 통각까지 마비시킨 걸까.
‘그렇다면, 한 번 더.’
레스터가 나를 향해 쌍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공격이 너무 조잡해서 가슴에 빈틈이 생겼다.
그 사이로 파고들면서, 나는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크아아악!”
나를 향해 레스터가 다시금 공격을 하려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을 느꼈다.
레스터의 다음 공격이 꽂히기 전… 내가 제대로 된 공격을 꽂아 넣을 수 있다면, 레스터를 확실히 침묵시킬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 지금 이 감각이라면…….’
욜스와 함께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연구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때는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이 푸른색 기운을… 칼날뿐만 아니라, 내 전신에도 전개해야 한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터득한 것이 예상 외로 큰 도움이 되었다.
마력으로 육체 능력을 어떻게 강화하면 될지,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칼날에 전개된 검기뿐만 아니라 육체 능력 또한 한계까지 강화한다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B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B랭크)의 성장이 진행됩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A랭크)의 획득이 완료되었습니다.]
육체 전신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지금 레스터가 하는 것처럼 전신의 근육을 부풀릴 필요도 없다.
그저 한순간, 내 육체의 능력을 한계 이상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면 충분하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3식… 자뢰(刺雷).’
콰쾅!
그야말로 전광석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초고속의 찌르기가 펼쳐졌다.
푸른색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뻗어 나가, 레스터의 가슴을 꿰뚫었다.
“……!”
레스터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검기는 레스터의 호신기를 찢고 두꺼워진 근육조차 관통하여, 심장을 터뜨려 버렸다.
* * *
심장이 꿰뚫렸다.
그 사실을 깨닫고도, 레스터는 딱히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육체는 심장이 터지더라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래서 마교도들이 소마의 힘에 중독되는 거군.’
흑천마교는 힘을 추구한다.
힘을 얻기 위해 인신 공양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강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마교도들의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 마교에 대해서 더 조사를 해 봐야겠어.’
어차피 레스터는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다.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을 제치고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려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마교의 도움을 받아 그래듀에이트 상급, 아니 절정급에 준하는 힘을 손에 넣는다면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유능하고 영리한 인물이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야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루퍼스?
난폭하고 비겁한 고르트?
허영심만 가득한 베리스리제?
자신밖에 모르는 하인리히?
그런 놈들이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에르나스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는 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겠지.’
그러니, 여기서 에르나스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최대한 비참하게, 굴욕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해야 한다.
‘그래, 그러니…….’
에르나스를 찢어발기기 위해 팔을 뻗었다.
이상하게도 어느새 레스터의 손에서 검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힘이라면 맨손으로도 에르나스를 죽일 수 있으니까.
‘그래, 이 손으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에르나스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레스터.”
에르나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다 끝났다.”
“…….”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리고… 자신이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소마의 영향으로 이성이 마비되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던 근육들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도 느껴졌다.
전신이 마력으로 가득 차면서 육체 능력이 극대화되었지만, 결국 그 마력이 유실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에르나스를 쓰러뜨렸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똑같지 않았을까.
“에르나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흥분 상태가 끝난 반작용 때문일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냉정한 관점에서 에르나스를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은 너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할 거다.”
에르나스는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랭커스터 가문을 멸망시킨 주역이다.
그 존재감은 날로 커지게 될 것이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가 괴멸된 상황이다. 그 배경에 리히테나워 대공 문제가 있다는 것도 금방 세상에 알려지겠지.”
그러면 지금처럼 조용히 아카데미에서 수업이나 듣고 실습이나 하면서 지내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제국의 미래를 두고 거대한 혼란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앞으로 벌어질 혼란 속에서… 너는 어떻게 대처할까.”
솔직히 말해서, 직접 구경하고 싶었다.
에르나스는 경쟁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권모술수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런 에르나스가 앞으로 벌어질 혼란 속에서 어떻게 싸워 나갈지,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만약에, 내가 너를 적대하지 않았다면…….”
에르나스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레스터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하, 의미 없는 상상이군…….”
쓴웃음을 지으며 레스터는 에르나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만 이제는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에르나스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가 앞으로 어떻게 싸워 나갈지… 지옥에서 지켜보고 있으마.”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레스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제국의 차기 권력을 두고 경쟁하던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중에서… 처음으로 탈락자가 나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