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랭커스터 멸망의 날 (3)
함성과 함께 수백 명의 검사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칼레온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욜스 교수, 안겔라 교수, 각각 좌측과 우측을 맡아라.”
욜스와 안겔라에게 좌우를 맡긴 뒤, 칼레온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전방을 돌파해 헨리를 제압할 테니.”
“교수님, 저는 어떻게 합니까?”
“네 뜻대로 움직여라.”
내 질문에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꾸하며, 칼레온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 검에는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압……!”
콰콰쾅!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자, 막대한 불꽃이 방출되었다.
이 세계에 ‘공격 마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칼레온의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은 마치 광범위 공격 마법 같은 위력을 보여 줬다.
“크아악……!”
불꽃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는 검사들.
그렇게 불꽃의 검기로 길을 만들며 칼레온이 앞으로 나아갔다.
두 자루의 검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헨리 랭커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와아아아!”
하지만, 구경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다른 그래듀에이트들이 이쪽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칼레온의 지시대로 욜스는 좌측, 안겔라는 우측을 맡고 있었지만, 적들의 숫자가 많아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딱히 보호해 줘야 하는 상황도 아니지만.’
나는 검기를 전개하며 움직였다.
적들의 숫자가 많다. 이럴 때는 파르티잔 기사검술도 발트펠트 패검술도 비효율적이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이 정답이지.’
안겔라에서 얻어 낸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을 펼치기 위해, 하체에 마력을 집중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은 그 이름대로 신속(神速)을 추구한 검술이라, 경신술과 일체화되어 있다.
‘빠르게 간다.’
파앗!
땅을 박차면서 움직였다.
나를 향해 달려들던 검사의 측면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걸 뒤로하고, 다음 표적을 향해 움직였다.
“커헉!”
휘리릭!
계속해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은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검을 휘두르는 일이 없다.
항상 위치를 이동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공격과 이동이 일체화된 검술이다.
“윽!”
“크윽!”
적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를 붙잡으려 한 검사의 팔을 절단하면서 날아오르고 있을 때,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하네.”
“안겔라 교수님.”
안겔라가 나와 교차했다.
방금 전에 내가 팔을 절단한 검사의 목을 날려 버린 뒤,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그런 움직임은 학생 중에서는 하인리히 아그리파만 가능할 줄 알았는데, 너도 가능하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안겔라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시커먼 검기가 종횡무진 뻗어 나가며 그래듀에이트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저것이 베르틴스키 흑쇄검술…….’
안겔라가 직접 개발한,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만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다.
그 위력에 감탄하면서 나는 안겔라의 뒤를 쫓아갔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빠른 그래듀에이트인 그녀의 전투를 지켜보는 것으로, 뭔가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용케 그 속도를 유지하고 있군.”
안겔라가 흑색 검기를 뻗으면서 말했다.
“그 속도로 움직이면서 검기를 펼치면 마력 소모가 클 텐데 말이다. 너, 정말로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냐?”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겔라도 별로 대답을 원한 것 같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녀석. 다음에 내 클래스로 와라. 자세히 봐줄 테니.”
안겔라가 나에게 관심을 드러냈을 때,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거대한 백색 검기가 불꽃의 검기와 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칼레온과 헨리의 대결이군.”
“…….”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끼리 격돌하고 있다.
마음만 같아서는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자칫하면 말려들 것 같았다.
“교수님.”
“뭐지?”
“단독으로 행동해도 되겠습니까?”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말을 꺼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서, 레스터 랭커스터를 확보하고 싶습니다.”
“헨리의 아들 말이군.”
안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중요 참고인이니 확보해 두는 게 좋겠지.”
“이 혼란을 틈타 도망치면 곤란하겠죠.”
“나는 그 녀석 얼굴을 모르니, 네가 잡아 와라.”
“알겠습니다.”
그때 거대한 백색 검기를 전개한 그래듀에이트가 우리들한테 달려들었다.
검기의 수준을 보니 그래듀에이트 상급인 것 같았다.
“내가 진로를 확보해 주마.”
파앗!
안겔라의 흑색 검기가 백색 검기를 분쇄하고 상대의 가슴을 관통했다.
흑색 검기는 계속 뻗어 나가, 그 뒤에 있던 그래듀에이트들까지 덮쳤다.
“커헉!”
“크으윽!”
안겔라가 검기를 거둬들이자, 몸을 관통당한 그래듀에이트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덕분에 전진하기가 쉬워졌다.
“감사합니다.”
“다녀와라, 에르나스.”
검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안겔라를 뒤로하고, 빠르게 전진했다.
다른 검사들이 다급히 나한테 달려들었지만 다들 역부족이었다.
칼레온과 헨리의 싸움을 곁눈질하면서, 나는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해 랭커스터 가문의 저택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면… 레스터를 찾아볼까.’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했다.
저택 안에도 그래듀에이트가 꽤 있는 것 같았다.
‘레스터가 지금 어느 정도 마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복도를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자, 내부 경비를 맡고 있던 검사들이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래듀에이트도 섞여 있었지만 내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들을 신속히 제압하면서 나는 레스터를 찾았다.
‘이쯤인가?’
마력을 지닌 자들이 바쁘게 드나드는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러자 예상대로 레스터의 모습이 있었다.
“에, 에르나스?!”
레스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경실색했다.
함께 있던 랭커스터의 가신들이 다급히 레스터를 둘러쌌다.
그중에는 레스터와 함께 퇴학당한 유세르의 모습도 있었다.
“네 녀석, 어떻게 여기에……!”
“얼굴이 많이 성숙해졌군.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야.”
“윽……!”
레스터는 상당히 단정한 외모를 지닌 청년이었지만, 몇 달 사이 얼굴이 많이 핼쑥해진 상태였다.
“상황을 봐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짐은 다 꾸렸나?”
“다, 닥쳐!”
“여기서 네 아버지가 쓰러지고, 너까지 붙잡히면 랭커스터 가문은 그냥 멸망하게 되지. 하지만 네가 도망치면 조금이나마 역전할 가능성이 생기니까.”
나는 레스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겠지. 마교 쪽으로 가 본다든가, 발트펠트 같은 다른 검술명가에 몸을 의탁한다든가, 그런 것들 말이야.”
“어, 어떻게 그걸…….”
정확히 지적당한 레스터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 정도야 다 예상할 수 있으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하나 더 맞혀 볼까? 나를 죽이기 위해 마교의 힘을 빌리는 것도 네가 제안한 아이디어였지?”
“……!”
“멍청한 녀석. 네 어설픈 지혜 때문에 랭커스터 가문은 이렇게 멸망의 위기에 처한 거다.”
내 독설에 레스터가 숨을 삼켰다.
“레스터, 너는 자기 자신이 꽤나 영리하고 지혜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
“무, 무슨 소리를…….”
“계략을 꾸며 봤자 어딘가 하나씩 부족하지. 너는 아무리 봐도…….”
레스터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를 던졌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보다 한참 아래야.”
“……!”
그렇다.
소설 속에서도 레스터는 나름 계략을 꾸미려 하지만, 몇 단수 위인 에르나스에게 당하기만 했다.
그 구도는 지금 이곳에서도 다를 바 없다.
지혜 싸움에서 레스터는 에르나스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소설에서는 레스터가 검술만큼은 더 뛰어났지만… 여기서는 그것조차 역전당했지.’
레스터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내 도발 때문에 평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저런 상태에 놓이면 레스터는 정말 구제불능이 된다.
“죽여 버려! 저놈을 죽여 버려……!”
절규 같은 명령에, 호위 담당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중에서 가장 앞장선 건 유세르였다.
“아버지의 원수……!”
“네 아버지가 먼저 내 목숨을 노렸다.”
촤악!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유세르의 앞에서 담담히 말했다.
“원망하려면 네 아버지에게 명령을 내린 헨리 랭커스터를 원망해라.”
다른 검사들이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중에는 검기와 호신기를 전개한 그래듀에이트도 있었다.
‘그래듀에이트 중급인가.’
나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펼쳤다.
푸른 검기가 전개되며 스파크가 튀었다.
“크윽!”
그래듀에이트 중급의 호신기를 푸른색 검기로 찢어발겼다.
이어진 공격으로 그 가슴을 찌른 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로 전환했다.
“헉!”
“으윽!”
파파팟!
빠르게 움직이며 모든 적들을 베어 버렸다.
내가 움직임을 멈췄을 때, 방 안에 서 있는 건 나와 레스터밖에 없었다.
“더 이상 너를 지켜 줄 사람이 없어졌군, 레스터.”
“크으윽……!”
레스터가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백색 5반의 영재라 불리며 추앙받던 유망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이렇게 되면……!”
그때 레스터가 탁자 위에 있던 나무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둬라, 레스터.”
레스터가 손을 대려 하는 건, 예전에 랭커스터 가문에서 마교도를 토벌하고 얻은 전리품이다.
원래 불에 태워 소각해야 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몰래 빼돌린 물건이었다.
“거기까지 가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다, 닥쳐!”
눈을 치켜뜨며 레스터가 소리쳤다.
“모든 게 다 너 때문이다! 너만 없었어도, 너만 죽여 놨었어도, 랭커스터 가문이 이렇게 궁지에 몰릴 일은 없었다!”
“책임을 돌리지 마라, 레스터.”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네가 먼저 아카데미 1차 시험에서 나를 노렸다. 그 이후 라지엘을 자객으로 보낸 것도, 마교에 나를 제거해 달라고 의뢰한 것도, 전부 다 너와 네 아버지의 결정이다. 모조리 너희들 책임인 거다.”
“닥쳐……!”
“너희들이 멸망하는 건 전부 너희들 책임이다. 책임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마라.”
“닥쳐! 너만 없었어도……!”
그렇게 소리치면서, 레스터가 상자 안에서 꺼낸 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엘릭시르와 비슷하지만 훨씬 혼탁한 액체… 마교의 영약인 ‘소마’였다.
“전부 다 너 때문이다……!”
“네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한참 마력 연공을 해야 하는 엘릭시르와는 달리, 소마는 복용하자마자 효과가 나타난다.
다만 소마를 복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러니, 내가 책임을 져 주마.”
소마 중에서도 최상급의 소마를 복용한 탓에, 레스터의 전신에서 마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레스터의 근육이 괴물처럼 부풀어 올랐고, 눈빛에서도 이성이 사라졌다.
“책임지고, 네 폭주를 멈춰 주겠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포효하면서 달려드는 레스터.
그 숨통을 끊어 주기 위해 나는 검기를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