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67화 (67/212)

67화 이제는 선제공격이다 (4)

흑천마교는 오랫동안 제국 사회를 어지럽혀 온 종교 단체다.

각종 범죄 조직과 결탁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다양한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흑천마교를 근절하지 못한 건 점조직 체계여서 발본색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러 가문이 흑천마교의 지도자인 ‘대주교’들을 찾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였다.

“이번에 우리가 토벌할 상대는, 흑천마교의 하부 조직이다.”

나는 세리느, 클로에, 슈미츠, 비올라를 모아 놓고 이번 임무를 설명했다.

“중소 도시인 필체스터 주위의 촌락에서 납치 사건이 다발하고 있는 상태다. 마교도들의 짓이라고 생각되지만, 필체스터를 관리하고 있는 가문에는 마교도들을 색출할 능력이 없지. 그래서 아카데미에 도움을 요청한 거다.”

“저기요.”

그때 비올라가 손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마교도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납치해서 뭘 어쩌려는 건가요? 요즘 세상에 노예 매매를 할 리도 없고.”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

나는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마교도들의 본거지… ‘총본산’으로 보내, 마교를 위해 싸우는 전력으로 키워 내려는 것이지. 어린애를 납치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쪽이다.”

“……!”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다만 이번에 납치된 사람들은 연령대가 제각각이라고 하지. 그렇기 때문에 이쪽은 아닐 거야.”

“그러면…….”

“마교도들이 사람을 납치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사용하는 영약(靈藥) ‘소마’를 제조하기 위해서지.”

“……!”

본래 마력이라는 건 수십 년에 걸쳐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축적하는 것이다.

우리들처럼 마력을 빠르게 획득하려면, 특별히 제조된 영약을 복용해야 한다.

“우리 아카데미 출신들은 엘릭시르로 마력을 얻지만, 마교도들은 소마라는 영약을 복용해 마력을 얻는다. 하지만 엘릭시르와는 달리… 소마를 만들 때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필수적이다.”

“사,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건…….”

“다른 동물이어도 가능하지만… 인간이 가장 좋다더군.”

“……!”

비올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원래 비올라는 마교도가 거의 없는 북부 출신이라, 마교 쪽 사정에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납치된 사람들은 전부 소마를 만들기 위해 희생된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세상에……!”

비올라가 화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놈들은 주로 치안이 허술한 지역에서 활동한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필체스터 주변도 해당 지역을 다스리던 가문의 지배력이 약해진 상태였지.”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의 도움이 필요한 거군요.”

세리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에르나스… 우리들 전력으로 가능할까요? 그래듀에이트 하급 두 명과 초입 세 명인데요.”

“게다가 정보가 너무 부족하네요. 놈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조사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클로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들 말대로, 전문가도 아닌 다섯 명이서 놈들의 은신처를 찾아내 토벌한다는 건 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놈들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것도.

놈들을 괴멸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 *

우리는 필체스터로 향했다.

물론, 아카데미 교복은 입지 않았다.

변장도 했기 때문에 평범한 젊은이들처럼 보일 것이다.

“아, 저거 먹고 싶어요!”

“비올라, 놀러 온 게 아닐 텐데.”

비올라가 노점상에서 파는 군것질거리에 눈을 빛내자, 슈미츠가 눈을 흘겼다.

“아니, 놀러 온 것처럼 행동해도 괜찮아. 그래야 위장이 되지.”

“그, 그렇군요.”

“헤헤, 그러면 사 먹을게요.”

허락을 받은 비올라가 잽싸게 노점상으로 뛰어갔고, 슈미츠도 쭈뼛쭈뼛 그 뒤를 따랐다.

내심 슈미츠도 먹고 싶었던 걸까.

“너희들도 가서 먹지?”

옆에 있던 세리느와 클로에에게 말을 건네자, 세리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길에서 뭘 먹는 것은 익숙지 않아서.”

“야외 실습 때 먹었던 야전 식량은?”

“그것하고는 다르죠.”

역시 교양 넘치는 귀족 아가씨다.

노점상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그러면 세리느 님은 내버려 두고 저희들끼리 군것질하러 갈까요? 사실 저는 저쪽에서 파는 사탕이 더 끌리는데요.”

그때 클로에가 눈웃음을 치며 내 팔을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세리느가 눈을 치켜떴다.

“크, 클로에, 뭐 하는 건가요?”

“평범한 젊은 커플처럼 위장하려고요.”

“굳이 그렇게 위장할 필요 없잖아요! 당신도 가만히 있지 말고 좀 떨어져요!”

세리느가 반대편에서 나를 잡아당기자, 클로에가 대항하듯이 내 팔을 더 끌어당겼다.

눈빛을 보니 세리느를 놀리려는 의도가 더 강한 것 같았다.

‘하여간 짓궂은 녀석이라니까.’

나는 굳이 두 사람을 제지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마교도를 색출하러 나온 아카데미 학생들이라고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러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마나 하트에서 소량의 마력을 끌어올려, 주위에 방출했다.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한 것이다.

“…….”

소리 없이 뻗어 나간 마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주위에 마나 하트를 지닌 사람이 있으면 이걸로 감지할 수 있다.

내 옆에 세리느와 클로에, 조금 떨어진 곳에 슈미츠와 비올라 그리고…….

‘찾았다.’

뒷골목 쪽에서 마력이 감지되었다.

상당한 양의 마력을 지닌 누군가가 뒷골목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저쪽으로 가 보고 싶은데.”

“저쪽이요? 너무 으슥한 곳 같은데.”

“자, 잠깐만요.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건가요?”

세리느와 클로에를 이끌고, 술집 등이 몰려 있는 유흥가 쪽으로 이동했다.

슈미츠와 비올라도 뒤늦게 우리 뒤를 따라왔다.

“흐음,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시나 보죠? 의외로 퇴폐적이셨네요.”

클로에가 옆에서 재잘거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이쪽으로 들어섰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마력이… 사라졌군.’

계속 느껴지던 반응이 갑자기 끊겼다.

이건 그 사람이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지금 내 실력으로는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으음, 여기는 아무래도 저희가 기웃거릴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향에 있는 제 약혼자가 알면…….”

유흥가의 분위기에 당혹스러워하는 슈미츠를 내버려 둔 채, 앞으로 걸어갔다.

구경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걸으면서, 마력이 사라진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가 맞군.’

아까 그 사람이 들어간 곳은 아직 영업이 시작되지 않은 유흥 주점이었다.

소설 속 묘사하고 똑같은 외관이었기 때문에, 헛다리를 짚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그래듀에이트가 이곳에 들어갈 리가 없지.’

방금 이곳으로 들어간 건, 흑천마교의 전투 사제다.

그리고 이곳은… 소설 속에서 묘사된 흑천마교 필체스터 지부가 분명하다.

“그러면… 어디 조용한 곳에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뒤따라오는 녀석들에게 말을 건넸다.

“작전 회의 좀 하고, 그 다음에 움직이지.”

“…….”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날 밤.

우리는 한 번 더 변장을 한 뒤 낮에 봤던 유흥 주점으로 향했다.

손님인 척하면서 안으로 들어서자, 주점 중앙의 무대에서 검투(劍鬪)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위의 테이블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취객들이 고성을 지르며 검투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시끄러운 음악까지 연주되고 있어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

“낮에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네요.”

세리느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한테 속삭였다.

이런 퇴폐적인 분위기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손님, 일단 테이블에 앉으셔서 주문을…….”

말쑥한 웨이터가 다가와 우리를 안내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쪽지부터 건네줬다.

“……!”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웨이터의 안색이 달라졌다.

“이, 일단 이쪽으로 와 주시죠.”

웨이터가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무대 뒤쪽에 있는 문을 열자, 별도의 방이 나타났다.

“여기서 대기해 주시면, 금방 오실 겁니다.”

“…….”

나는 대꾸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미리 지시한 대로 세리느가 내 양옆에 앉았고, 클로에와 슈미츠, 비올라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상태로 기다리고 있자, 말쑥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부하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일이 많아서…….”

그는 소파 맞은편에 앉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곳 책임자입니다. 정말로… 그곳에서 나오셨습니까?”

“굳이 돌려서 말할 필요 없다.”

나는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총본산에서 나온 게 맞다. 그러니 진짜 책임자가 나오도록 해라.”

“……!”

총본산.

마교도들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흑천마교의 본거지.

그곳의 이름을 말하자, 주위에 긴장이 흘렀다.

“이곳의 책임자는 네가 아니라 카스타리온일 텐데?”

“카, 카스타리온 사제님은… 지금 중요한 일을 진행하고 계셔서, 여기까지 올라오기 어려우십니다.”

“중요한 일?”

“소마를 제작 중입니다.”

“…….”

소마를 제작하고 있다.

그 말은… 그동안 납치해 간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다.

“굳이 이런 한밤중에?”

“소마를 제작할 때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렇게 가게가 시끌벅적할 때…….”

바깥을 가리키며 남자가 설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클로에.”

“네.”

짤막하게 이름을 부르자, 클로에가 어깨에 메고 있던 큰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검을 꺼냈다.

“지금 뭐 하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남자가 눈만 깜빡이고 있었을 때.

클로에의 유스부르크 유검술이 작렬했다.

“컥……!”

유스부르크 유검술은 빠르게 검을 날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검술.

처음 보는 상대는 대응하기 어려운, 초견즉살(初見卽殺)의 서부 검술이다.

“무, 무슨 짓이오?!”

남자가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걸 보고, 부하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찬가지로 가방에서 검을 집어 든 슈미츠가 하르트만 쾌검술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악……!”

현재 슈미츠는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가까워진 상태.

그 초고속의 참격에 그래듀에이트도 아닌 잔챙이들은 조금도 대항하지 못했다.

“비올라, 출입구를 막아 줘.”

“네, 맡겨 주세요!”

비올라에게 바깥쪽과 이어지는 출입구를 막아 달라고 부탁한 뒤, 클로에에게서 내 검을 받아 들었다.

“미안하지만, 작전을 변경해야겠어. 좀 더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죠. 놈들이 지하에서 소마를 제조하는 중인 것 같으니.”

이곳의 책임자인 카스타리온 고위 사제를 꾀어낼 생각이었는데… 지하에서 납치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중이라면, 우리가 먼저 지하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세리느, 우리가 앞장선다.”

“네, 알겠습니다.”

검을 든 세리느와 함께, 아까 남자들이 나타났던 통로로 이동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마교도들이 뛰쳐나와 우리를 막으려 했지만, 세리느는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이군.’

세리느는 발렌티아노 클래스에서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터득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바스티안 기사검술과는 달리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기 때문에,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도달한 세리느의 전투력을 극대화해 주었다.

“놈들이 아직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밀어붙이자.”

“네……!”

세리느를 비롯한 측근들을 이끌고,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 흑천마교 필체스터 지부는… 아카데미 학생들 손에 멸망할 것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