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이제는 선제공격이다 (3)
다음 날, 나와 세리느는 슈미츠, 클로에, 비올라의 마력 연공을 도와줬다.
2차 시험 통과자에게는 청색 엘릭시르가 주어지는데, 이 녀석들은 청색 엘릭시르를 복용하는 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도 빨리 초입을 벗어나야 해.’
나와 세리느가 함께 봐준 덕분에, 녀석들은 청색 엘릭시르의 마력을 상당량 마나 하트에 정착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우리는 드디어 페르디난드 클래스로 향했다.
“이곳이 페르디난드 클래스…….”
신축이었던 욜스 클래스와는 달리,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낡은 건물에 있었다.
그렇다고 허름한 느낌은 아니었고,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들어가자.”
“네, 에르나스.”
무거운 문을 열어젖히고 내부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저택 안에는 인적이 별로 없었다.
“사람이 없네요?”
비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게요. 평교수와 조교수, 조교들까지 서른 명 가까이 소속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전부 다 바깥에 나가 있겠지. 돈벌이를 위해서 말이야.”
비올라와 클로에의 의문에 대답해 주면서, 나는 눈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향했다.
“지도 교수는 자리에 있을 테니, 가 보자고.”
“아, 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3층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쪽 세계의 언어로 ‘지도 교수실’이라 적혀 있는 문이 보였다.
“그러면…….”
“에르나스, 노크도 없이 그렇게 문을 열어젖히면……!”
문을 벌컥 여는 내 모습에 세리느가 당황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도 교수실은 상당히 넓었는데, 곳곳에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저기 계시는군.”
“앗…….”
흔들의자에 회색 머리카락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한쪽 눈에만 끼는 외눈 안경을 착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바로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수장인 페르디난드 교수였다.
“주, 주무시고 계시는데요?”
비올라가 말한 대로 그는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우리들이 들어와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답지 않은 모습이군.’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댔다.
“누구냐.”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우리들이 소곤거리는 소리에도 전혀 잠에서 깨지 않던 사람이, 칼자루에 손을 대는 미약한 기척에 반응한 것이다.
“뭐냐, 학생들인가.”
“안녕하십니까, 페르디난드 교수님.”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그는 인상을 쓰면서 옆으로 팔을 뻗었다.
책상 위를 한참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해 줬다.
“안경을 낀 상태이십니다.”
“이런, 젠장.”
페르디난드가 손으로 얼굴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 우리들을 쳐다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명이나 왔군. 벌써부터 이렇게 수련생이 찾아오는 건 드문 일인데.”
“그렇습니까?”
“적어도 반년은 지나야 수련생들이 찾아오지. 다른 클래스에서 수료증을 받지 못해서 궁지에 몰린 다음에야 내 클래스를 찾아오니까.”
그렇게 말하며 페르디난드가 우리를 노려봤다.
“너희들, 혹시 착각하고 온 거 아니냐? 발렌티아노 클래스는 바로 옆 건물이다. 칼레온 클래스는 그 옆이고.”
“페르디난드 클래스를 찾아온 게 맞습니다, 교수님.”
“알고 있다. 그냥 해 본 소리다, 젠장.”
페르디난드는 또 욕을 입에 담았다.
“대체 뭘 바라고 이곳에 온 거지? 내 클래스에서는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울 수 없다는 얘기, 듣지 못했나?”
“다 알고 왔습니다.”
“다 알고 왔다고?”
“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에 쌓여 있는 온갖 잡동사니는… 전부 고대의 유물들이었다.
“페르니단드 교수님이 아카데미 최고의 고고학자라는 것, 다 알고 왔습니다.”
“…….”
물론, 이곳은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다.
고고학이라고 해도 연구 대상은 검술과 관련된 것에 한정된다.
말하자면 ‘검술 고고학’이라고 할까.
“고대의 검술, 고대의 영약(靈藥), 고대의 신검(神劍)이나 마검(魔劍)까지… 정말로 많은 업적을 남기셨죠.”
“흥, 잘 알고 있군.”
페르디난드가 회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연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랫놈들을 매일같이 닦달하는 악덕 교수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비용이 많이 드는 연구이니, 어쩔 수 없지요.”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성과를 얻어 내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지.”
페르디난드의 말대로, 검술 고고학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현실 세계의 고고학과는 달리, 검술 고고학은 결국 ‘힘’을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청난 노력 끝에 지하 던전 속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 검술을 찾아냈다고 하자.
그런데 막상 그 검술이 현대 검술보다 나을 게 없다면, 그냥 헛수고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허탕’을 칠 때가 많고… 아카데미에서 예산을 따내기가 어렵다.
“내 아래에 있는 교수들은 전부 외부 의뢰 때문에 바깥에 나가 있다. 보수를 받아 연구 비용에 보태기 위해서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 클래스에 들어와 봤자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단 말이다. 과제랍시고 외부로 내보내서 돈벌이나 시키겠지.”
욜스 클래스 때도 나는 조교수들과 함께 외부로 나가 오크를 토벌했다.
그때는 클래스의 실적을 쌓기 위한 것이었지만…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돈벌이의 측면이 크다.
“알고 있나? 외부 의뢰를 수행해 봤자 너희는 학생이기 때문에 보수를 배분받지 못한다. 그 대신…….”
“엘릭시르를 받을 수 있죠.”
나는 담담히 말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네 녀석…….”
“아니, 그게 가장 중요하죠.”
“뭐라고?”
“저희가 외부 의뢰를 해결하면 해결할수록, 그만큼 대량의 마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
페르디난드가 눈을 크게 떴다.
내 뒤에 있던 다른 녀석들도 숨을 삼켰다.
“이 녀석…….”
“보상으로 주어지는 엘릭시르는 클래스 예산하고는 관계없죠. 안 그렇습니까?”
“…….”
“교수님, 저희가 원하는 건 마력입니다. 충분한 엘릭시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저희를 지도해 주십시오.”
“네 녀석… 그런 전략이 아카데미에서 통할 거라 생각하나?”
인상을 찡그린 채, 페르디난드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력만 늘린다고 검사로서 대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 하지만 외부 의뢰를 수행하면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겠죠.”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사실 이것도 마력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전 경험… 혹시 네 녀석, 욜스에게 영향을 받은 건가?”
“직전에 욜스 클래스에서 수련을 받긴 했습니다.”
“쯧, 그런 건가.”
욜스는 아카데미에서 실전 경험을 가장 중요시하는 교수다.
내가 욜스 클래스에서 수련을 받고 왔다고 하니, 페르디난드는 대충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이름이 뭐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입니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가 네 녀석이었군. 소문대로 별종이었나.”
별종 소리를 듣고, 뒤에서 비올라가 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슈미츠가 비올라를 째려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좋아. 정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
“그러면…….”
“너희를 받아들이마. 원하는 대로 마음껏 부려 먹어 주지.”
결국 페르디난드는 우리들을 수용했다.
이걸로 우리는 정식으로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수련생이 된 것이다.
“혹시 몰라서 말해 두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검술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을 거다. 나한테 배워 봤자 별 도움도 안 될 거고.”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그래듀에이트이신데, 도움이 안 될 리는 없겠죠.”
“아니, 내 검술은 워낙 특수해서 남에게 가르쳐 줄 수 없다. 흔하디흔한 범용 검술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니, 나한테 배워 봤자 의미가 없다.”
“…….”
페르디난드가 주로 사용하는 검술은 일인전승(一人傳承)의 특수한 검술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도록 되어 있으며, 실제 소설 속에서도 남한테 가르쳐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유스레흐트의 능력으로 복사하면 지금 당장 터득할 수 있겠지만… 막대한 마력이 필요한 검술이니, 지금 얻어 봤자 의미가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페르디난드가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거렸다.
“에르나스, 외부 의뢰를 수행하는 방법은 알고 있나?”
“네, 욜스 클래스에서 다 배웠습니다.”
“그럼 굳이 내 입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가만있자…….”
페르디난드가 서류를 뒤적거리는 동안, 나는 잠시 주위를 살펴봤다.
책상 너머에 있는 게시판에 여러 고문서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를 읽으려 하고 있자, 페르디난드가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쳐다봤다.
“뭐냐, 암리타에 관심 있나?”
“암리타…….”
“최초의 엘릭시르보다 한참 옛날에 개발된, 고대의 영약(靈藥)이다. 문헌에 의하면 엘릭시르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효과를 가진 것 같더군.”
“…….”
“몇십 년 동안 단서를 찾고 있지. 아무런 성과도 없었지만 말이다.”
소설 속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훗날… 페르디난드가 암리타의 복원에 성공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쯧, 너희한테 뭘 시켜야 될지 모르겠군. 너희가 어떤 놈들인지 잘 모르니.”
서류를 뒤적거리며 페르디난드가 투덜거렸다.
“에르나스, 원하는 게 있나?”
“되도록 대인전(對人戰)을 희망합니다.”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고 싶다고?”
“그래야 진정한 실전 훈련이 되지 않겠습니까?”
“크흠…….”
인상을 찡그리며 페르디난드가 서류 한 장을 빼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걸 맡길 수밖에 없겠는데?”
* * *
서부의 중소 도시, 필체스터.
으슥한 뒷골목 지하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하수인이 은밀한 만남을 갖고 있었다.
“선금(先金)은 이 정도 드리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오…….”
흑천마교 필체스터 지부의 책임자인 카스타리온이 눈을 빛냈다.
탁자 위에 놓인 금화 주머니가 상당히 묵직했기 때문이다.
“이것 참, 상당한 금액이군.”
“충분하겠습니까?”
“이런 금액을 선뜻 지불하다니, 그쪽 어르신이 누구일지 궁금해지는구려.”
“섣불리 캐묻지 마십시오.”
“알고 있소. 그것까지 포함한 금액일 테니.”
카스타리온이 진지한 표정으로 금화 주머니를 챙겼다.
“최대한 협조해 드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제님.”
“표적이 내 사제(師弟) 칼라일의 원수라고 하니, 더욱 의욕이 생기는군.”
그렇게 말한 순간, 카스타리온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칼라일이 아카데미에서 죽었다… 그것도 애송이들의 시험용 교재로 사용되어서 살해당했다니,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소.”
흑천마교의 고위 사제였던 칼라일은 아카데미 2차 시험에 참가했다.
학생 상대로 승리하면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는데, 칼라일은 학생을 죽이려 들었다가 역공당해 사망했다.
사실 칼라일은 발트펠트 가문 측의 사주를 받은 상태였지만… 랭커스터 측에서는 카스타리온에게 그 사실까지 알려 주지는 않았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녀석이 칼라일을 죽인 게 맞소?”
“네, 확실합니다.”
“알겠소. 내 사제의 원수도 갚을 겸, 확실히 해치우도록 하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랭커스터 가문에서 흑천마교 측에 부탁한 의뢰였다.
물론, 이것이 랭커스터 가문의 의뢰라는 것은 철저히 숨겼다.
“그러면 사제님, 결과는 언제쯤…….”
“그렇게 서두르지 마시오. 철저히 준비를 한 뒤에 움직여야 하니까.”
“…….”
“우리 필체스터 지부뿐만 아니라 다른 지부에서도 협력을 받아 진행해야 하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기다리시오.”
카스타리온이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소.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애송이는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테니까.”
* * *
“마교도 토벌이군요.”
“그래, 정확히는 필체스터 근처의 촌락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을 해결하는 거지.”
서류를 내밀면서 페르디난드가 말했다.
“그 배후에 있는 마교도들을 찾아내서 토벌하는 거다. 어때, 할 수 있겠나?”
“저희가 맡겠습니다, 교수님.”
나는 주저 없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제국을 어지럽히는 마교 놈들을 확실히 토벌하겠습니다.”
“흥, 자신만만하군.”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건 흑천마교 필체스터 지부다.
그 놈들이 필체스터 뒷골목 어디에 숨어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놈들이 랭커스터 가문의 의뢰를 받아 나를 노리기 시작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지.’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놈들을 잡은 뒤… 그 배후에 있는 랭커스터 가문까지 끌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