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이제는 선제공격이다 (1)
테오도라 발트펠트의 사망은 여러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서부 지역의 검술명가인 랭커스터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 저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랭커스터 가문의 가주, 헨리 랭커스터는 인상을 찡그렸다.
1차 시험에 탈락하여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아들… 레스터 랭커스터의 의견이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이다.
“레스터, 에르나스는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라고 한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인 테오도라를 죽였다는 게 말이 되나?”
“정말로 에르나스가 그래듀에이트 하급일까요?”
“…….”
“그 녀석은 자신의 진짜 실력을 감추는 놈입니다. 그리고 방심한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여 주죠.”
레스터도 에르나스의 그런 전략에 당했다.
에르나스와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어 1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아카데미에서 퇴출당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아버지도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크흠…….”
헨리도 에르나스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에르나스는 멀쩡히 살아남았다.
그 이후 헨리는 배후로 의심당했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아마 테오도라가 에르나스를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팠을 겁니다. 하지만 에르나스는 그걸 예상하고 있었고, 오히려 테오도라를 함정에 빠뜨려 해치운 거죠.”
레스터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게 그 녀석의 방식입니다. 저도 그렇게 당했습니다.”
“…….”
“상대방의 계략을 꿰뚫어 보고, 그걸 역이용해서 계략을 꾸며…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자들을 짓밟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헨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대로라면, 에르나스는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건…….”
“너도 알다시피, 란즈슈타인 가문은 지금 에르나스를 지원해 주지 못한다. 에르나스 혼자서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하고 분석하고 있다는 건가?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헨리의 말대로, 현재 란즈슈타인 가문은 사정상 가만히 침묵하고 있다.
외부에서 활발히 움직이면서 에르나스를 지원해 주고 있다면 랭커스터 가문에서도 포착했을 것이다.
“아버지, 하지만… 그 녀석은 정말로 기만전술에 능한 놈입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의 행적만 생각해도 명백하지 않습니까?”
“흠…….”
“그런 녀석이 엄청난 실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아카데미의 정점에 올라,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될 겁니다.”
레스터도 이제는 알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는 것을.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 차기 황제를 보필하게 되면, 제국의 실권을 쥐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레스터가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 만약 다른 가문이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랭커스터 가문이 그 과정에서 협력자가 되어 준다면 지분을 나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저는 에르나스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제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녀석이 제국의 실권을 잡으면, 랭커스터 가문을 완전히 짓밟아 버릴 게 분명합니다.”
레스터의 열변을 듣고, 헨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레스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헨리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진 상태다. 게다가 네 말대로라면 그 녀석은 모든 걸 다 꿰뚫어 보는 희대의 책사인데… 또다시 역공당할 수도 있다.”
“네, 그러니 저희가 직접 나서면 안 됩니다.”
“뭐라고?”
“저희는 뒤에서 숨어 있으면서, 다른 놈들을 이용하는 겁니다.”
“…….”
아들의 말을 듣고, 헨리의 눈이 빛났다.
“자세히 얘기해 봐라, 레스터.”
귀를 기울이는 아버지 앞에서, 레스터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계책을 설명했다.
* * *
테오도라 발트펠트 사건의 진상은 아카데미에서 조사하게 되었다.
물론, 테오도라가 왜 죽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테오도라가 나를 해치려 했던 게 아닌가 조사하는 것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발트펠트 가문은 한동안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다.
‘고르트는 조만간 2차 시험을 통과해 진급하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이제 발트펠트 가문에서 경계해야 할 존재는 가주인 미하일 발트펠트밖에 없다.
미하일이 움직이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니, 한동안 발트펠트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내 힘을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해야지.’
대미궁 심층부에서 발견한 흑영초의 기운을 흡수하여, 마력을 대폭 증진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그래듀에이트 중급 수준의 마력을 확보하게 된 상태.
하지만 호신기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그래듀에이트 중급은 아니다.
‘너무 급격히 마력이 늘어났어. 이 마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눈앞의 문을 열었다.
욜스 클래스의 실내 훈련장 안에서 하인리히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지금 깨달은 감각을 잊지 마라, 하인리히.”
그 앞에는 욜스가 서있었다.
하인리히와는 대조적으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신동’ 하인리히라고 해도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욜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인리히는 굴욕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욜스와의 대결을 통해 자신이 아직 미숙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욜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하인리히는 바로 훈련장을 떠났다.
입구에 서 있던 나한테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으며, 거친 발걸음으로.
“일찍 왔군, 에르나스.”
“빨리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차분히 대답하며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자,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인리히를 조금 더 빨리 보낼 걸 그랬군. 너하고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경쟁자로 생각하는 녀석한테, 지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
“…….”
“그래도 하인리히는 너한테 많은 자극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인리히가 떠난 자리를 응시하며, 욜스가 계속 말했다.
“하인리히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거다. 방심하면 추월당할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도록 해라.”
“그러면 저한테도 가르침을 주셔야 공평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
“하하, 그건 교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욜스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너희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내 나름대로 고심해서 커리큘럼을 생각해 봤는데,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더군.”
“이번 일은 사고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심층부로 추락하고 테오도라까지 사망한 탓에, 서부 대미궁 실습은 잠정 중단되었다.
욜스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실전 훈련이었는데 아카데미 측에서 멈추라고 지시한 것이다.
“저는 실전 훈련을 중시하는 교수님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맙군. 하지만 한동안은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면서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게 되었군. 새로 만들어진 클래스라 너무 주먹구구식이다.”
“아닙니다.”
주먹구구식인 덕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하기 쉬웠다.
발렌티아노 클래스처럼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곳이었다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전 훈련을 못 하게 된 대신, 너희가 수련을 마칠 때까지 내가 직접 지도해 주마.”
방금 하인리히가 욜스에게 직접 지도를 받고 있던 것도, 이렇게 방침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나도 욜스에게 일대일 개인 지도를 받게 된다.
“그러면 에르나스… 특별히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나?”
“저는…….”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배우고 싶은 건 욜스의 주무기인 ‘그라투시아 도룡검술’이다.
하지만 그 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의 마력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배워 봤자 의미가 없다.
지금 당장 나한테 필요한 건 호신기를 펼치는 법이지만… 내가 갑자기 호신기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특별한 희망 사항이 없다면, 내가 만든 검술을 가르쳐 주고 싶다.”
“교수님이 만드신 검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만든 검술을 보여 주고 싶다.”
그렇게 말하며 욜스가 검을 뽑았다.
그 직후, 칼날에서 푸른 검기가 전개되었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이라 한다.”
콰르릉!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욜스의 검이 허공을 베었다.
역시 원조가 사용하는 거라서 그런지, 내가 펼치는 것하고는 박력이 달랐다.
“에르나스.”
검을 거둬들이며, 욜스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할 수 있겠나?”
“네.”
나도 푸른 검기를 만들었다.
허공에서 검을 휘두르자, 욜스와 마찬가지로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욜스는 내 모습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내 검술과 거의 똑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다.
내가 푸른 검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욜스의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유스레흐트의 ‘능력 재현’으로 복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아무한테도 보여 준 적이 없다.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이지.”
“저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연히도 우리 둘이 비슷한 발상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야겠지.”
욜스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에르나스, 내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개발한 건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상대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검술을 개발한 것이지.”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저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검기의 위력을 일시적으로 증폭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해 뒀던 설명을 입에 담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칼날에 마력을 전개하여 이것저것 실험해 보다 보니, 검기가 푸른색으로 번쩍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단서를 얻었던 겁니다.”
“대단하군.”
“그리고…….”
나는 칼날의 마력을 초고속으로 순환시켰다.
그러자 마력이 서로 충돌하면서 스파크가 발생했다.
“이렇게 하면 더 강력한 검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
파직, 파직!
스파크가 튀는 푸른 검기를 보면서, 욜스가 눈을 크게 떴다.
“노, 놀랍군. 이 방식에 대해서는 네가 나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아닙니다, 교수님.”
겸손한 척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내가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욜스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C랭크에 머물고 있겠지만, 나는 검술의 이해도를 높여 B랭크로 성장시켰으니까.
소설 속에 묘사된 깨달음을 반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솔직히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도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여기서부터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에르나스, 그렇다면…….”
“욜스 교수님, 괜찮으시다면 조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이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절세 검술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 혼자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진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욜스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기 목표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A랭크까지 끌어올리는 것.’
현재 B랭크인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A랭크까지 성장시켜야 한다.
이것에 성공한다면… 다른 강적들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좋다, 에르나스.”
욜스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비로소 감을 잡은 것 같다.”
“교수님…….”
“에르나스, 함께 이 검술을 완성해 보자.”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낸 검사의 눈빛이었다.
“너와 함께라면, 절세의 검술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