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59화 (59/212)

59화 거물 사냥 (1)

“서부 대미궁에 들어간다고?”

수련생 기숙사 식당.

몇몇 수련생들만 앉아 있는 작은 식당 안에서, 베리스리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욜스 칼레시우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위험한 곳에 수련생을 데려가다니.”

“확실히 서부 대미궁은 위험한 곳이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세리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세리느와 베리스리제는 발렌티아노 클래스에서 함께 수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서로 사이는 좋지 않지만, 양쪽 다 우등생이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다고 한다.

“오크들을 토벌하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놀랐는데… 설마 서부 대미궁에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에르나스,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너무 위험한 곳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어.”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트펠트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는 표층부에만 들어갈 거고 말이야.”

“아, 올해는 발트펠트 가문에서 그래듀에이트를 파견했군요.”

서부 대미궁에서는 다양한 희귀 물자를 얻을 수 있다.

그중에는 엘릭시르의 원료도 있기 때문에 엄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제국 정부에서는 6대 검술명가에 협력을 요청했고, 각 가문은 매년 돌아가면서 그래듀에이트를 파견하고 있었다.

“발트펠트 가문이라…….”

얘기를 듣던 베리스리제가 코웃음을 쳤다.

“그놈들이 관리한다고 하니 더 안심이 안 되는데? 던전에서 너희들 뒤통수를 칠 수도 있잖아.”

“베리스리제, 그런 짓을 저지르면 발트펠트 가문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던전 안에서 증거를 싹 없애 버리면 되지.”

그렇게 말하고 베리스리제가 고개를 돌렸다.

“하인리히, 너는 걱정 안 돼?”

“…….”

베리스리제가 지목한 건,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식사 중이던 하인리히였다.

“놈들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

“뭐?”

“발트펠트 가문에서 나를 죽이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온다면, 전부 해치워 버리면 된다.”

“…….”

“그리고 대미궁 바깥으로 나가서 놈들의 부정을 폭로하면 되는 거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한 뒤, 하인리히는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그 모습을 보며 베리스리제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근거 없는 자신감… 여전하네.”

그렇게 말한 뒤, 베리스리제는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에르나스, 저런 대책 없는 녀석하고 같이 움직이면 위험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걱정해 줘서 고맙다, 베리스리제.”

“거, 걱정은 무슨!”

베리스리제가 말을 더듬으며 화를 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거야? 내 입장에서는 너희들끼리 싸우다가 공멸(共滅)하는 편이 더 낫다고!”

“너무하는군.”

틀린 말은 아니다.

6대 검술명가는 현재 아카데미의 정점 자리를 놓고, 나아가서는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발트펠트 가문이 나하고 하인리히를 죽여 버린 뒤, 그 책임을 추궁당해 궁지에 몰리면… 베리스리제의 슈라이에르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거니까.

“에르나스, 저는 발트펠트 가문보다 서부 대미궁에 있는 몬스터들이 더 걱정되는데요.”

세리느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표층부만 간다고 해도, 위험한 몬스터가 대량으로 몰려나오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걱정하지 마.”

물론, 세리느 말대로 위험하긴 하다.

지형도 복잡하고, 오크 토벌보다 위험한 일인 건 사실이다.

“첫 번째 실습이고, 안전한 루트로만 진행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안전한 루트라면… 괜찮겠지만요.”

그렇다.

안전한 루트라면 아무 문제 없다.

문제가 생기는 건… 그 루트에서 벗어날 경우다.

* * *

며칠 뒤.

나와 하인리히 그리고 욜스는 서부 대미궁에 도착했다.

‘여기가 서부 대미궁…….’

서부 대미궁은 지상에서 보면 그냥 다 쓰러져 가는 평범한 유적지다.

하지만 그 밑에는 거대한 지하 던전이 펼쳐져 있다.

오늘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주어진 청색 엘릭시르는 다 복용했나?”

“네, 교수님.”

“복용했습니다.”

나와 하인리히는 지난번 오크 토벌의 보상으로 청색 엘릭시르를 한 병씩 받았다.

학생은 금전적인 보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실적에 따라 엘릭시르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미 너희들은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다. 엘릭시르를 계속 복용하면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만… 단순히 마력량만 늘린다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

“마력을 운용하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나는 실전 경험을 통해 감각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욜스 클래스에서는 실전 위주의 커리큘럼을 실시하려고 하는 것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욜스가 나와 하인리히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번에 너희들과 함께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이 방식을 정착시킬 수 있을 거다.”

“저희들의 책임이 막중하군요.”

“그러게 말이다. 원래는 좀 더 차분히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너희 같은 유능한 학생이 와 버리는 바람에…….”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들이 원한 것이기도 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을 향해 십여 명의 검사가 다가왔다.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쓰지 않아도, 다들 일정 수준 이상의 그래듀에이트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쪽 세계 여성의 평균 신장보다 훨씬 큰 장신(長身).

마치 사자의 갈기와 같은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금색 칼자루의 대검(大劍).

소설에 묘사되었던 것과 똑같은 모습의 테오도라 발트펠트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도룡검.”

“오랜만입니다, 테오도라 님.”

서로 안면이 있는 욜스와 테오도라가 악수를 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서부 대미궁에서 실전 훈련을 시킨다니, 너다운 발상인 것 같군.”

“제 경험으로 생각할 때,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보았습니다. 이제 그걸 증명해야죠.”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욜스에게 덕담을 건넨 뒤, 테오도라가 고개를 돌렸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과 하인리히 아그리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군.”

나와 하인리히 쪽을 쳐다보면서, 테오도라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지난번에 비무전을 관전했다. 양쪽 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유망주더군.”

“…….”

하인리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비무전에서 하인리히는 나한테 패배했기 때문에, 그때 일을 언급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문의 고르트도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앞으로도 정진하길 바란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 테오도라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모범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인격을 지닌 무인(武人) 같았다.

하지만 나는 테오도라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나를 어떻게 죽일까 생각만 하고 있겠지.’

테오도라는 고르트의 숙모이자 스승으로, 서부에 머무르면서 고르트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번 2차 시험 이후로 아카데미 내부에 개입하는 것이 어려워져, 현재는 직접 나를 죽이려 하는 중이었다.

‘혈검장로회의 암살자까지 고용했는데, 그것도 실패해 버렸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여기에 나타났으니…….’

지금 나는 테오도라가 관리하는 서부 대미궁에 왔다.

세리느는 뒷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아무 짓도 못할 거라 말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테오도라는 이곳에서 나를 제거하기 위한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도룡검.”

“왜 그러십니까, 테오도라 님.”

“아카데미 측의 연락으로는 이렇게 셋이서 들어간다고 했는데, 맞나?”

“맞습니다.”

“그건 좀 곤란하지.”

테오도라가 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대미궁에 들어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 쪽 책임이 발생한다.”

“그렇지는 않을 텐데요.”

“너 혼자 들어가는 거라면 괜찮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 어린 학생들을 데려가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검술명가의 후계자이니…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뒷감당을 하기가 어렵다.”

“흐음…….”

“그래듀에이트를 세 명 정도 붙여 주지. 그 정도면 안심할 수 있을 거다.”

친절한 척하는 테오도라 앞에서, 욜스가 고개를 저었다.

“테오도라 님, 그건 곤란합니다.”

“어째서지?”

“이건 아카데미 교육입니다.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수는 없습니다.”

“…….”

“또한, 저는 그래듀에이트가 진정으로 성장하려면 위험을 감수한 실전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욜스는 우리를 쳐다봤다.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에게 보호받으며 대미궁 탐색을 한다……. 그건 실전 훈련이 아니라 소풍이나 다름없지요.”

“도룡검, 그런 거면 너도 들어가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 마십시오. 저는 보호자로서 동행하는 게 아닙니다.”

“흐음…….”

“이미 서류로 제출했듯이, 저는 입구 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학생들과 동행하지는 않습니다.”

거절의 말을 듣고, 테오도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테오도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사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발언해도 괜찮겠습니까?”

“뭐지?”

“저 학생들이 대미궁 안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지, 여기서 시험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시험이라.”

테오도라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이디어로군.”

“테오도라 님, 어쩌실 생각입니까?”

“지난번 비무전 이후로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보고 싶다. 그때 수준에서 발전하지 못했다면 서부 대미궁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봐야겠지.”

“…….”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이었다.

테오도라의 목적은 현재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본인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방금 아이디어를 낸 녀석도, 사전에 테오도라와 얘기를 마쳐 놓았을 것이다.

“으음…….”

“저는 상관없습니다, 교수님.”

고민하는 욜스에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시험에 응하겠습니다.”

“에르나스, 괜찮겠나?”

“발트펠트 가문의 협력을 얻어야 앞으로도 실습을 진행하기 편하겠죠.”

그렇게 말하며 나는 테오도라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쪽에서 대표 한 명을 내세워 주셨으면 합니다. 대련 형식으로 제 자격을 증명하겠습니다.”

“좋다. 너희는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니 이쪽도 그 정도 수준을 내보내지.”

테오도라가 아까 발언한 검사에게 손짓했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래듀에이트 하급이지만, 테오도라 밑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일 것이다.

“상대해 줘라, 칼로스.”

“네, 테오도라 님.”

칼로스라 불린 검사가 앞으로 나왔다.

“검기는 쓰지 않겠다. 같은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라고는 해도, 내가 훨씬 선배이니까 말이다.”

“아카데미 출신이십니까?”

“그렇지. 성적은 평범했지만 말이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검을 뽑았다.

서로 자세를 잡으며 대치하고 있자, 테오도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시작해라!”

파앗!

땅을 박차고 칼로스가 달려들었다.

직선적인 움직임이 꽤 위협적이었다.

‘북부 검술 특유의 육중한 공격이 오겠지.’

칼로스가 검을 휘두르기 직전.

나는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해, 공중으로 도약했다.

“……!”

허를 찔린 칼로스가 다급히 몸을 틀었다.

공중에서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막아도 소용없다, 칼로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리히테나워 경신술에 발라하일 중검술을 조합하여, 공중에서 강렬한 일격을 꽂아 넣었다.

“으윽!”

꽈앙!

칼로스의 검이 저 멀리 날아갔다.

손목이 꺾인 칼로스가 신음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 녀석…….”

“검기를 사용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칼날에서 검기를 거둬들였다.

저쪽이 나한테 양보해 준답시고 검기를 안 썼을 뿐이니, 내가 검기를 안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테오도라 님.”

나는 고개를 돌려 테오도라를 쳐다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나 버려서인지,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만족하셨습니까?”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공격적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테오도라가 말했다.

“그래듀에이트 하급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군. 더 수준 높은 상대를 내세울 걸 그랬다.”

“더 수준 높은 상대라.”

나는 테오도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테오도라 님이 상대해 주실 겁니까?”

“……!”

내 거침없는 발언에 테오도라가 눈을 치켜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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