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외부 활동 (4)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강력한 일격.
푸른색 검기가 무방비한 목덜미를 향해 파고들자, 오크 챔피언이 눈을 치켜떴다.
“카아악!”
즉각 나를 떨쳐 내려 했다.
워낙 몸집이 크고 힘이 강하기 때문에, 몸부림치는 것만으로도 나를 굴러떨어지게 만들었다.
“큭……!”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활용해 가까스로 착지했다.
거리를 벌리면서 고개를 치켜들자, 오크 챔피언이 목덜미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깊이 들어갔군.’
완전히 목을 날리지는 못했다.
치명상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대미지를 입혔다.
“에르나스……!”
바로 그때, 하인리히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오크들을 베어 넘기며 질풍처럼 접근해 오고 있었다.
“카악……!”
오크 챔피언이 하인리히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지금까지도 하인리히의 움직임에 잔뜩 우왕좌왕했던 터라, 하인리히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고, 한쪽 손으로는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상황.
빈틈투성이였다.
‘지금이다.’
발라하일 중검술에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조합하여, 다시 한번 공격을 펼쳤다.
벼락같이 뻗어 나간 검이 오크 챔피언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카악……?!”
오크 챔피언의 상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번 도약해, 목을 향해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카, 아…….”
쿵!
목에서 피를 뿜으며 오크 챔피언이 무릎을 꿇었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하인리히가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끝났어.”
“……!”
오크 챔피언이 산성 위에 쓰러진 모습을 보며, 하인리히가 입술을 깨물었다.
“도와주러 오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야.”
“도와주러 온 게 아니다. 네가 사냥감을 독점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달려왔을 뿐이니까.”
하인리히가 투덜거리고 있자, 마테우스가 다가왔다.
“에르나스… 정말로 오크 챔피언을 쓰러뜨린 건가?”
“네, 조교수님.”
나는 담담히 말했다.
“말씀드린 것처럼, 오크 챔피언은 지능이 낮고 다혈질입니다. 이성을 잃고 흥분한 상태라면 빈틈을 찌르기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단하군. 혹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몬스터의 생태를 연구했나?”
“연구했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때 클로드가 피로 물든 검을 들고 접근했다.
이미 주위의 잔챙이 오크들을 상당히 해치운 뒤였다.
“오크들이 도망치고 있어. 정신적 지주였던 오크 챔피언을 잃은 탓이겠지.”
클로드의 말대로, 오크들은 성벽 안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다만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 도망치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크 타이런트 쪽으로 집결하려고 할 겁니다.”
오크 타이런트.
오크들을 통솔하는 강력한 지배자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놈들이 방어 진형을 갖추기 전에 해치웁시다.”
“알겠다……!”
우리는 즉각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산성 안에는 오크들이 생활한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젠장, 놈들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시체까지…….”
마테우스가 까득 이를 갈았다.
“클로드, 생존자가 있을 것 같나?”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오크들에겐 포로를 잡아 놓는 습성이 없으니까.”
“큭……!”
“게다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오크가 몰려 있던 것 같아.”
클로드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최소 100마리 이상의 오크가 여기에 집결한 상태야.”
“확실한가?”
“그래, 확인했어.”
몬스터가 일반적인 동물과 다른 점은, 체내에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력이나 생명력이 일반 동물들보다 강하다.
그래듀에이트처럼 그 마력을 활용할 수 있는 건 일부 상위종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마력을 갖고 있으니, 아틸리온 마력탐측술로 탐지할 수 있지.’
나도 시험 삼아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해봤다.
클로드의 말대로 100마리 이상의 오크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숫자가 더 늘어나겠지. 빨리 토벌해야 할 것 같아.”
“동감이다.’
이윽고 오크가 몰려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을 쌓아서 만든 조잡한 ‘궁전’ 앞에서 수많은 오크가 방어선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저 안에 오크 타이런트가 있는 모양이군.”
“그러면… 에르나스,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
클로드가 나한테 의견을 물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작전이고 뭐고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맞아.”
“각자 전력을 다해서 섬멸하죠.”
서로 알아서 움직이면서, 오크들을 해치운다.
그렇게 방침이 정해지자 하인리히가 가장 먼저 튀어 나갔다.
“먼저 가지.”
휘익!
바람을 가르며 하인리히가 오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카악?!”
“칵……!”
잔챙이들은 제대로 눈으로 좇지도 못하는 속도다.
질풍처럼 움직이는 하인리히에 의해, 수많은 오크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클로드와 마테우스도 뒤이어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일반 오크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는군.’
클로드와 마테우스는 그래듀에이트 중급이고, 하인리히도 이미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도달한 상태다.
잔챙이들은 그냥 일격에 목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문제는 안쪽에 있을 오크 타이런트지.’
오크 타이런트는 마력을 사용할 줄 안다는 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기와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오크 챔피언과는 달리 지능도 뛰어나다.
그놈을 공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에서 오크 타이런트와 싸웠을 때는, 주인공이 동료들과 협공을 했었어.’
소설 속에서는 오크들 너머로 보이는 조잡한 궁전에서 결전이 펼쳐졌다.
상당히 강한 적이라, 주인공 아칸델 혼자서 쓰러뜨리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바로 그때.
나는 오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살기로 가득한 눈빛인 건 지금까지하고 똑같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건가?’
이상했다.
소설에서는 인간들에게 죽어 나가는 동족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걸로 묘사되었다.
아무리 오크 타이런트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해도, 이렇게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목숨 걸고 덤벼드는 건 부자연스럽다.
‘자포자기에 빠져서 날뛰는 것도,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도 아니야. 이 느낌은…….’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다시 사용했다.
미세한 마력을 사방으로 뻗자, 즉각 마력을 지닌 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오크들이 갖고 있는 미약한 마력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큰 마력을 지닌 존재만 찾으면 돼.’
클로드, 마테우스, 하인리히… 그리고 그들과는 별개로 커다란 마력이 하나 더 있다.
문제는 놈이 궁전 안에 없었다는 점이다.
“클로드 조교수님!”
“……!”
꽈앙!
굉음과 함께 클로드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오크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곡도(曲刀)를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고 밀려 나간 것이다.
“크윽……!”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클로드를 향해, 다른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즉각 달려온 마테우스가 검을 휘둘러 오크들을 물러서게 했다.
“클로드, 괜찮나?!”
“호신기 덕분에 살았어. 하지만… 윽!”
충격 때문에 관절을 다쳤는지, 클로드의 자세가 부자연스러웠다.
마테우스가 클로드의 전방을 막아 주는 사이, 클로드에게 부상을 입힌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
몸집 자체는 다른 오크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얼굴 생김새가 더 흉악한 느낌이고, 눈빛도 날카로웠다.
그리고 손에는 커다란 곡도를 들고 있었다.
“누런 살색 놈들…….”
그 입에서 인간과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부 다 죽여 주마.”
“카아악!”
“카아아악!”
주위의 오크들이 시끄러운 목소리로 호응했다.
틀림없었다.
저놈이 오크를 지배하는 폭군, 오크 타이런트였다.
소설처럼 궁전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나와서 부하들을 고무하기 시작한 것이다.
“큭……!”
방어 자세를 취하는 마테우스를 향해 오크 타이런트가 움직였다.
몸집은 오크 챔피언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 기세는 오크 챔피언 못지않았다.
그리고 그 공격은… 오크 챔피언보다 더 강력하다.
“으윽……!”
“마테우스!”
마테우스는 그라셔스 후검술로 방어한 뒤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오크 타이런트의 공격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반격을 펼치지 못했다.
놈이 들고 있는 곡도에는 마력이 전개되어 있었다.
“역시 이놈… 검기와 비슷한 힘을 사용하고 있어!”
“마테우스, 협공하자!”
클로드가 마테우스와 연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검기를 전개하여 오크 타이런트를 협공했다.
“카아악!”
“카악!”
하지만, 오크 타이런트를 둘러싼 일반 오크들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클로드와 마테우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몸을 내던져 스스로 고기 방패가 되었다.
오크 타이런트는 그런 부하들의 희생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흉악한 눈빛으로 두 검사를 노려보며 공격을 펼칠 뿐이었다.
“크윽!”
“마테우스!”
오크 타이런트의 공격에 마테우스가 이를 악물었다.
마테우스는 전력을 다해 반격하려 했지만, 옆에서 몸을 던진 일반 오크가 마테우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자세가 무너진 마테우스의 머리를 향해, 오크 타이런트의 칼날이 떨어지려던 순간.
“물러서십시오, 조교수님.”
휘익!
오크들의 머리 위로 도약한 하인리히가 검을 휘둘렀다.
하인리히의 검기가 스쳐 지나가면서, 오크 타이런트의 칼날이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하인리히!”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 직후, 하인리히가 오크 타이런트를 향해 격렬한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주위의 오크들이 고기 방패가 되려 했지만, 종횡무진 움직이는 하인리히의 스피드에 대응하지 못했다.
“카악, 재빠른 놈……!”
촤악!
하인리히의 검기가 오크 타이런트의 어깨를 스쳤다.
하지만 상처는 깊지 않았다.
오크 타이런트는 검기뿐만 아니라 호신기와 비슷한 힘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쯧…….”
하인리히가 혀를 찼다.
자신의 검기로는 오크 타이런트에게 대미지를 입히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도와주지, 하인리히.”
나는 잔챙이 처리를 클로드와 마테우스에게 맡기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하인리히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에르나스.”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나 보지?”
“큭…….”
입술을 깨무는 하인리히를 곁눈질하며, 오크 타이런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오크들이 덤벼들었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누런 살색 놈들……!”
오크 타이런트가 포효하면서 곡도를 휘둘렀다.
나는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펼치면서 그 공격을 받아 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검기들보다 더 육중해!’
콰앙!
충격에 몸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역시 파르티잔 심판검술……!’
내가 방어에 치중하는 사이, 하인리히가 바람처럼 움직였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오크 타이런트에게 대미지를 입히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카아악……!”
하인리히의 찌르기에 눈이 꿰뚫릴 뻔한 오크 타이런트가 포효했다.
그 순간, 오크 타이런트의 전신 근육이 팽창했다.
“어떻게 된 거지?”
“마력을 사용해 근육을 강화한 거야. 우리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근육 돼지가 되었다고 해서 움직임이 둔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이며 하인리히를 향해 곡도를 뻗었다.
“윽……!”
한 단계 빨라진 오크 타이런트의 공격에 하인리히가 뒷걸음쳤다.
그 순간을 노린 일반 오크들이 하인리히한테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오크 타이런트를 지키던 오크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나는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
오크 타이런트에게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다른 오크들의 방해 없이, 오크 타이런트를 향해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펼쳤다.
“소용없다, 누런 살색……!”
오크 타이런트가 곡도를 휘둘렀다.
내 검기와 부딪쳐 불꽃이 튀었다.
“아니, 그건 내가 할 얘기다.”
“……!”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에 의해 검기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 힘을 파르티잔 심판검술에 조합하여, 오크 타이런트의 공격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 보냈다.
“카악……!”
곧바로 발라하일 중검술로 전환.
무게중심의 변화를 의식하면서, 전력을 다한 공격을 펼쳤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까지 조합하여, 검기를 한 번 더 강화하면서.
‘예전 같으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이렇게 연발할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나에게는 청색 엘릭시르를 복용하여 획득한 마력이 있다.
마나 하트의 마력 밀도도 향상되어, 마력을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미완성 검술이다.
창시자인 욜스도 아직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미완성 검술이… 내 안에서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는 감각이 느껴졌다.
“네놈……!”
오크 타이런트가 눈을 치켜뜨며 곡도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의미 없었다.
이미 내 검에서는 역대 최고의 검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소용없다고 말했을 텐데.”
“……!”
콰앙!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간 검기가 오크 타이런트의 팔을 자르고, 이어서 그 가슴까지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