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클래스의 문을 두드리다 (2)
“에르나스, 다른 곳으로 가라.”
“싫다니까.”
욜스 클래스에 발을 들이자, 하인리히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네가 다른 클래스로 가면 되잖아.”
“그럴 수는 없다. 네가 가라.”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건… 말할 수 없다.”
하인리히가 욜스 클래스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는 딱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한테 패배한 이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너야말로 첫날부터 욜스 클래스에 와야 할 이유가 있나?”
“그건…….”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건 어려웠다.
그것 때문에 세리느와도 동행하지 않고 혼자 욜스 클래스로 온 것이다.
“흥, 너도 나와 똑같군.”
“그러면 간섭 마라. 똑같은 처지니까.”
“이봐!”
하인리히를 뿌리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욜스 클래스는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통로에 자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너, 정말로 나하고 함께 욜스 클래스에서 수련을 받을 생각이냐?”
“어쩔 수 없지.”
“나는 싫다!”
“싫으면 네가 빠져야지. 지금이라도 루퍼스 따라서 칼레온 클래스로 가든가.”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한테 가르침을 받으라니 무슨 망발을……!”
그렇게 말싸움을 하고 있었을 때.
아직 문짝이 달려 있지 않은 방에서 얼굴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시끌벅적하군.”
“욜스 교수님……!”
하인리히가 내 팔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옆에서 고개를 숙이자, 욜스가 우리 두 사람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이가 좋군. 그새 친구가 된 건가?”
“전혀 아닙니다.”
하인리히는 즉각 부정했다.
“이런 녀석하고 친구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첫날 아침부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찾아와서 친구 사이인 줄 알았다.”
“그건 어쩔 수 없이…….”
하인리히가 입 다물고 있는 나를 째려봤다.
너 때문에 이런 오해를 받게 되었다, 하고 원망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진급하고 첫날부터 나를 찾아왔다는 건… 혹시 내 클래스에서 수련을 받을 생각인가.”
“맞습니다, 교수님.”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인리히가 말했다.
“지난번에 해 주신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흠, 그런가.”
하인리히의 대답을 듣고, 욜스는 나를 쳐다봤다.
“에르나스, 너도 욜스 클래스에서 첫 번째 수련을 받고 싶은 건가?”
“네, 교수님.”
“그렇군.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다.”
욜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신생 클래스라, 아직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것밖에 모르던 사람이라, 이런 부분에서는 서투를 수밖에 없더군.”
“그러면…….”
“다만, 수련은 진행할 수 있다. 너희가 몇 가지 불편한 점만 감수해 준다면, 정상적으로 수련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지.”
수료증을 받으면 해당 클래스에서의 수련 과정을 마친 것이다.
4개의 수료증을 모으면 3차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겠다.”
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욜스 클래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너희가 이 클래스의 첫 번째 수련생이다.”
* * *
규모는 크지 않으나,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아카데미 본관 근처에 위치한 ‘칼레온 클래스’에서, 루퍼스는 아버지인 칼레온과 마주하고 있었다.
“에르나스와 하인리히는 욜스 클래스에 간 것 같다.”
“욜스 클래스? 그런 클래스도 있었습니까?”
루퍼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욜스 칼레시우스는 유명한 절정급 검사지만, 교수로서는 아직 신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본인의 클래스가 없었을 터였다.
“이번에 신설되었다. 조교수 두 명을 데리고 소소하게 시작하더군.”
“에르나스와 하인리히가 왜 그런 곳에…….”
“발렌티아노 클래스에서 사전에 접촉하는 걸 보고, 그쪽을 택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욜스 교수가 사전에 두 사람을 설득한 걸까요?”
“모르겠다. 앞으로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더군.”
욜스는 아카데미 안에 세력이 없고, 특정 가문과도 인연이 없다.
하지만 황제에게서 ‘도룡검’의 이름을 받은 절정급의 검사이니만큼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욜스가 에르나스나 하인리히하고 손을 잡고 정치 싸움에 참가하면 좀 골치 아파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어제 있었던 그 마교도 사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 조사 중이지만, 북부 출신 녀석들이 얽혀 있는 것 같다.”
“북부 출신이라면… 설마 발트펠트 가문?”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고르트의 출신 가문인 발트펠트 가문은 북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검술명가다.
발트펠트 가문이 에르나스를 제거하기 위해 마교의 고위 사제를 침투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발트펠트 가문이 사주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고 싶지만, 지금은 좀 어렵다.”
칼레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도 칼레온은 헨리 랭커스터를 찾아가서 따졌지만, 큰 수확을 얻지 못했다.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공세를 펼친 탓이었다.
“그리고 발트펠트 가문이 에르나스 한 명을 표적으로 삼은 거라면,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고 말이다.”
“아버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루퍼스.”
“…….”
이그니아스 가문은 정정당당한 승리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트펠트 가문이 에르나스에게 자객을 보냈다면, 발트펠트 가문을 규탄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나중에 가면 우리도 그런 비겁한 수단을 사용하게 될까?’
루퍼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루빨리 에르나스나 하인리히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퍼스, 그런 일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네 개인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만 신경 써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맞는 말이다.
지금 루퍼스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직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불과한 자신의 역량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미 칼레온 클래스에서 준비를 다 해 놨다.”
“…….”
칼레온의 뒤를 따라가자, 커다란 실내 훈련장에 십여 명의 검사가 모여 있었다.
칼레온 클래스에 소속된 평교수, 조교수들이다.
그들은 모두 칼레온에게 충성을 바치는 그래듀에이트로, 이그니아스 가문의 후계자인 루퍼스를 위해 모여 있는 것이었다.
“루퍼스, 이들에게 수련을 받으면서 그래듀에이트 하급을 목표로 해라.”
“네, 아버지.”
“그래듀에이트 하급이 되면, 그다음은 중급이다.”
이제부터는 적색 엘릭시르가 아니라 그다음 단계인 청색 엘릭시르가 주어질 것이다.
계속 엘릭시르를 복용하며 마나 하트를 성장시킨다면, 언젠가는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하면…….”
칼레온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칼날에서 진홍색 기운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다.
동부 검술 중에서 톱클래스의 위력을 지녔으며, 이그니아스 가문을 6대 검술명가의 일각으로 만들어 준 검술이었다.
“정진해라, 루퍼스.”
“네, 아버지.”
루퍼스는 투지를 불태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힘을 길러… 에르나스와 하인리히를 꺾고,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겠습니다.”
* * *
나와 하인리히는 아직 내부 공사가 덜 끝난 방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욜스는 다른 업무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욜스 클래스에 소속된 조교수가 우리를 봐줄 거라 한다.
‘신설 클래스라, 여러모로 부실하단 말이지.’
다른 클래스에 가면, 수련생 담당 교수가 나와서 체계적으로 커리큘럼을 설명해 준다.
이 클래스에서는 어떤 검술을 추구하는지,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줄지, 어떤 식으로 수련이 진행되는지, 언제쯤 수료증을 받게 될지… 그런 것부터 알려 주고 시작한다.
물론, 나는 다 알고 있으니 그런 설명은 필요 없지만… 옆에 있는 하인리히는 많이 불만스러워 보였다.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으면서, 이게 뭔지…….”
지금 우리는 빈방에 멍하니 앉은 채 언제 올지 모르는 조교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인리히는 이런 무의미한 시간을 못 참는 성격이다.
“불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클래스에 가지?”
“닥쳐라, 에르나스.”
내가 옆에서 한마디 하자 하인리히가 눈을 치켜떴다.
“너야말로 다른 클래스로 가라.”
“이미 늦었어. 욜스 교수님이 우리 이름 등록했을걸.”
“그럼 왜 나한테 다른 클래스로 가라고 한 거냐!”
하인리히가 나를 노려보며 살기를 드러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검을 휘두를 듯한 분위기였다.
“아, 여기 있었네.”
“이 두 녀석인가.”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들어왔다.
한 명은 붉은색 곱슬머리의 청년, 또 다른 한 명은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 버린 청년이었다.
‘클로드와 마테우스…….’
양쪽 다 욜스 클래스의 조교수다.
예전부터 욜스를 존경해 왔기 때문에, 자원해서 욜스 클래스에 참가했다.
현재 욜스 클래스의 구성원은 욜스와 이 두 사람뿐이었다.
“이름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과 하인리히 아그리파, 맞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두 명 동시에 우리 클래스에 수련을 받으러 오다니.”
클로드와 마테우스가 손에 든 쪽지를 확인하며 우리 둘의 얼굴을 살폈다.
“첫날부터 둘이 함께 오다니 신기하네. 혹시 둘이 친해?”
“아닙니다.”
클로드의 질문에 하인리히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조금도 친하지 않습니다.”
“아, 그러냐…….”
하인리히의 강한 부정에 클로드가 붉은색 곱슬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 내 이름은 클로드고, 이쪽의 머리카락 없는 녀석은 마테우스야.”
“그런 식으로 소개하지 마라, 클로드.”
“이쪽의 대머리는…….”
“클로드.”
마테우스가 무서운 눈빛으로 클로드를 노려봤다.
하지만 클로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들을 쳐다봤다.
“그러면 너희들, 잠깐 나와라.”
“수련을 시작하는 겁니까?”
“아니, 시험을 실시하고 싶어서.”
시험.
그 단어를 듣고 하인리히가 눈썹을 찌푸렸다.
“시험을 치른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그렇겠지. 이건 나하고 마테우스가 개인적으로 실시하는 시험이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하인리히 옆에서,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교수님들은 우리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으신 거야.”
“에르나스, 그게 무슨 뜻이지?”
“욜스 클래스에서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시려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클로드와 마테우스를 쳐다봤다.
“시험을 통과 못 할 경우, 욜스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실 겁니까?”
“그렇다.”
마테우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재 욜스 클래스는 내실을 다지는 걸 우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희들 교육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아카데미의 클래스는 딱히 학생 교육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 활동 등을 통해 실적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며, 학생 교육은 부차적인 것이다.
현실 세계의 대학교 교수들은 강의보다 연구 활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너희들이 기준 미달이라 판단되면, 자습과 과제 위주로 수련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우리들의 시간, 그리고 욜스 교수님의 시간을 최대한 빼앗지 않도록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인리히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서, 시험 내용이 뭡니까?”
“복잡하게 할 필요 없지.”
마테우스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댔다.
“훈련장으로 이동해서 대련을 한다.”
“대련…….”
“내가 너희들을 상대하면서, 평가하겠다.”
그러자 클로드도 입을 열었다.
“너희 둘이서 동시에 덤비면 돼. 그래야 밸런스가 맞을 테니까.”
“…….”
하인리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에르나스.”
차가운 목소리로,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
나는 하인리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눈앞의 조교수들을 쳐다봤다.
“클로드 조교수님, 마테우스 조교수님.”
우리를 시험하겠다고 나선, 욜스 클래스의 조교수들.
그들을 쳐다보면서,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이 동시에 덤비시죠. 그래야 밸런스가 맞을 것 같습니다.”
두 조교수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