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신동을 꺾어라 (4)
초고속의 4연격, 더 크럭스.
아그리파 절검술(絶劍術)의 대표적 기술답게, 평범한 그래듀에이트는 대응하기 어려운 속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 이 기술을 사용하는 건 그래듀에이트 초입인 하인리히다.
아무리 하인리히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지.’
빈틈이라고는 해도, 그래듀에이트 하급이 파고들기에는 너무 비좁은 빈틈이다.
정형화된 움직임을 추구하는 파르티잔 심판검술로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조합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마력을 극대화하여, 한계를 넘어선 검기를 펼치게 해 주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
불세출의 신동 하인리히가 펼친 고난도 기술 앞에서, 내 푸른색 검기가 번뜩였다.
4연격의 첫 번째 공격은 파르티잔 심판검술의 방어 자세로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을 받아 낸 순간, 팔이 흔들리면서 방어 자세가 흐트러졌다.
‘상관없다!’
나는 세 번째 공격을 받아 낼 생각이 없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의 자세에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다음 자세로 전환한다.
정형화된 움직임만을 추구하는 파르티잔 심판검술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지금 내가 펼치고 있는 건 파르티잔 심판검술이 아니라, 칼레시우스 창뢰검술과 조합한 새로운 검술이었으니까.
‘지금이다.’
원래 그런 기술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이 뻗어 나갔다.
푸른색 검기가 하인리히의 검기와 충돌하여, 더 크럭스의 세 번째 공격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완벽한 더 크럭스였다면 내 공격 전에 이미 내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놨겠지만, 이건 하인리히가 펼치는 불완전한 더 크럭스다.
내가 충분히 틈을 파고들 수 있었다.
“……!”
하인리히의 표정이 경직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하인리히의 육체는 4연격의 마지막 공격에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걸 용납해 줄 이유가 없다.
“하압……!”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순간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해 준다.
번개처럼 번쩍이는 푸른색 검기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면서 하인리히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 시점에서, 하인리히가 펼친 더 크럭스는 완전히 파훼되었다.
* * *
“크윽……!”
푸른색 검기가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느낀 순간.
하인리히는 전신의 마력을 활용해 몸을 뒤로 움직였다.
이것은 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반사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이런……!’
찢어진 교복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아니다.
즉각 뒤로 물러선 덕에, 검기에 살짝 스쳤을 뿐이다.
하지만, 하인리히의 자존심에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내가… 에르나스의 검에 목숨을 잃는 게 두려워 뒷걸음쳤다고?’
하인리히가 펼친 더 크럭스는 완전히 파훼당했다.
4연격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했다.
두 번의 공격은 에르나스의 방어에 막혔고, 한 번은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으며, 마지막 한 번은 아예 공격을 시도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에르나스의 반격은 하인리히에게 굴욕적인 상처를 입혔다.
‘에르나스의 방어를 확실히 무너뜨릴 자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에르나스가 전개한 푸른색 검기 때문일까.
아니, 검기만이 아니다. 중간부터 움직임이 바뀌었다.
정형화된 움직임밖에 못하는 동부 검술이 아니다. 변칙적인 서부 검술 같은 움직임이었다.
‘동부 검술과 서부 검술은 정반대다. 그런데 그걸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한다고?’
하인리히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주 높은 경지에 올라 검술의 구분 따위는 상관없는 수준에 오른다면 모를까, 한낱 아카데미의 학생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체 이 녀석은… 뭐지?’
그 순간, 하인리히는 두려움을 느꼈다.
강자(强者)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하인리히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두려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
‘에르나스가… 그 정도일 리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에르나스의 재능이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노는 존재라면, 그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지닌 존재라면…….’
검술의 천재.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에, 억지로 지워 버렸다.
‘나는 인정 못 한다, 에르나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다시 검을 들려 했다.
다행히 가슴의 상처는 그리 깊지 않다.
충분히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수준이다.
‘에르나스의 공격에 당할까 봐 뒷걸음쳤다는 굴욕은, 최종적인 승리로 만회하면 된다!’
하지만, 위화감이 느껴졌다.
목검을 들고 있는 오른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에르나스도 뭔가 이상했다.
제대로 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 하인리히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인리히, 검을 거둬라.”
“……?”
무슨 소리일까.
설마 무승부로 하자는 건 아닐 테고.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
하인리히는 무심코 손으로 입가를 만졌다.
그리고 입가가 피로 젖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그리파 절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상급은 되어야 쓸 수 있는 검술이다. 이제 겨우 초입에 들어선 네 힘으로는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
아까도 이 녀석은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어떻게 아그리파 절검술을 쓰려고 한다는 걸 눈치챈 걸까.
심지어 하인리히가 더 크럭스를 사용한다는 것까지 간파했던 것처럼 보였다.
대체 이 녀석은…….
“지금 너는 더 이상 싸워서는 안 되는 상태다. 마력 폭주가 일어나지 않은 걸 다행스럽게 여겨라.”
“그럴 수는, 없…….”
그 순간, 하인리히는 현기증을 느꼈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아그리파 가문의 후계자로서, 아카데미의 정점에 올라야…….”
“하인리히.”
비틀거리는 하인리히를 향해, 에르나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받아들여라, 네 패배다.”
“……!”
패배.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굴욕감이 엄습했다.
그 굴욕감 속에서… 하인리히는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 * *
“제4시합,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승리입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시합장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정말로 대단한 시합이었다!”
“이게 아카데미 신입생들의 시합이라니……!”
“이미 원숙한 그래듀에이트들의 대결을 보는 느낌이었어……!”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중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흑색 6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에르나스 님! 정말로 멋지셨어요!”
“청색 2반의 신동을 쓰러뜨리시다니, 정말로 대단하세요!”
“솔직히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요!”
비올라를 비롯한 동급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서 답해 줬다.
그러는 사이, 의료진이 시합장으로 들어와 하인리히를 이송했다.
‘마력 폭주는 아니지만, 한동안 후유증이 있겠지.’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은 충분한 마력을 갖춰야만 사용할 수 있다.
검술마다 요구되는 마력량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수준에 안 맞는 검술을 사용하려고 하면 저렇게 몸이 망가진다.
내가 그래듀에이트 하급 수준에 맞는 검술만 익히는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절정급 검술을 익혀 봤자 아무 소용 없으니까.
‘그러면 슬슬 퇴장해야지.’
이제 8강전이 끝났을 뿐이다.
준결승, 결승이 남아 있다.
나는 천천히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에르나스 님……!”
대기석에 발을 들이자, 슈미츠가 감격한 표정으로 나한테 달려들었다.
“저는 에르나스 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에르나스 님이라면 청색 2반의 신동을 반드시 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단 말입니다!”
“내 시합 전까지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마음속으로는 에르나스 님의 승리를 믿고 있었습니다!”
“알겠으니 이만 떨어져라.”
슈미츠를 밀쳐 내자, 이번에는 세리느가 나한테 다가왔다.
“에르나스,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을 많이 했어요.”
“걱정?”
“네, 당신이 하인리히 아그리파와 격전을 벌이다가 다치는 게 아닌가 해서요.”
“…….”
의외였다.
세리느가 나를 그 정도로 걱정해 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군요.”
세리느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존경심을 갖게 될 정도로.”
“세리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었는데… 지금은 감정이 많이 변한 듯했다.
“너희들, 본선 첫 시합이 끝났을 뿐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바로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루퍼스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준결승도 결승도 남았는데, 에르나스가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군. 대체 뭐 하자는 거야?”
“…….”
“이제 곧 서로 싸우게 될 사이인데, 친목질은 적당히 해 두라고.”
그렇게 말한 뒤, 루퍼스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래도, 하인리히를 꺾은 건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나하고 싸웠을 때보다 훨씬 성장한 것 같더군.”
“루퍼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만하지 마라. 금방 내가 쫓아가 줄 테니까.”
루퍼스는 강압적인 성격이지만, 타인의 실력을 인정할 줄 아는 녀석이다.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내가 하인리히를 꺾는 모습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곧 준결승을 치러야죠.”
세리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저하고 루퍼스가 준결승 첫 번째 시합이고, 두 번째 시합은… 슈미츠와 에르나스네요.”
“헉,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나? 멍청한 녀석이군.”
머리를 부여잡는 슈미츠를 보고 루퍼스가 한심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슈미츠,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도록 하자.”
“크윽… 에르나스 님과 싸울 수 있는 건 좋습니다만, 이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건…….”
부담감에 짓눌린 채, 슈미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 * *
“정말로 대단한 공방이었습니다, 발렌티아노 교수님.”
“하인리히도 에르나스도 훌륭했습니다. 양쪽 다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영입을 검토하는 게… 교수님?”
주위에서 말을 거는 측근들을 무시한 채, 발렌티아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실례하겠네.”
“교수님, 어디에…….”
발렌티아노는 곧장 관중석을 빠져나갔다.
그러곤 통로를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준결승 진출자가 대기하고 있을 대기석이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지금 발렌티아노는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였다.
에르나스는 분명 파르티잔 심판검술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부터 전혀 다른 검술이 되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쓰다가 다른 검술로 전환한 것이 아니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전혀 새로운 검술로 승화시킨 거였다!’
변칙적인 서부 검술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해진 형태를 중시하는 동부 검술에서 갑자기 서부 검술로 변화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10년 넘게 정석만 추구해 온 동부식 검사처럼 싸우다가, 갑자기 변화무쌍한 서부식 검사가 된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대체 뭐 하는 놈이란 말인가?
‘다른 클래스의 지도 교수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슬쩍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클래스의 지도 교수들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르나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다들 고민 중인 것이다.
‘흥, 굼뜬 녀석들.’
발렌티아노는 마음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 교수들이 자리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는 동안, 발렌티아노는 직접 에르나스를 찾아가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래, 확인해야 한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검술을 펼치는 건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 여하에 따라…….
‘진급하면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찾아오라고 제안할 것이다.’
지도 교수가 직접 자신의 클래스에 오라고 제안한다.
이건 아카데미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클래스 측에서 먼저 영입 제안을 하지는 않는다.
방금 전의 세리느처럼 뛰어난 인재를 발견해도, 지도 교수가 아니라 아랫사람들이 찾아간다.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아니, 제국을 대표하는 절정급 검사가 어떻게 일개 학생을 찾아가 영입 제안을 한단 말인가.
‘내 체통 같은 건 중요치 않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발렌티아노는 들뜬 마음에 휩싸였다.
‘검술의 천재일지도 모른단 말이다!’
검술의 천재.
만약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그런 존재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속 제자로…….
“……?”
하지만, 통로를 걷던 도중 발렌티아노는 발을 멈췄다.
자신보다 먼저 대기석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궁내부……?’
제국 황실을 보좌하는 궁내부.
그곳의 인사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기석을 향해 우르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