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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41화 (41/212)

41화 신동을 꺾어라 (3)

‘이럴 수가!’

발렌티아노 교수는 관중석에 앉은 채 눈을 크게 떴다.

방금 하인리히의 공격을 에르나스가 막아 낸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들어선 수준으로는 절대로 막지 못하는 공격이었는데!’

하인리히는 아그리파 속검술을 사용한다.

아그리파 속검술은 경신술과 일체화된 남부 검술로, 마력을 활용하여 움직이면 압도적인 속력을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하인리히의 우수한 신체 능력과 마력 제어 능력이 더해졌다.

그 결과,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상의 속도를 구현한 것이다.

‘평범한 그래듀에이트 초입 수준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미리 동체 시력을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물론,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인 발렌티아노는 맨눈으로도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발렌티아노 곁에 있는 몇몇 조교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하인리히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 못했다.

‘신입생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였다. 그런데……!’

그 초월적인 속도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완벽히 대응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방어해 낸 것이다.

그것도 방어 자세를 취하고 공격이 오는 것을 기다린 게 아니라, 하인리히가 어느 쪽으로 공격하는지 파악하여 대응했다.

이건 하인리히의 속도를 좇을 수 있는 동체 시력과 민첩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발렌티아노는 침을 삼켰다.

관전 중인 다른 클래스의 지도 교수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이미 초입을 넘어선 그래듀에이트 하급 수준이라는 건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하인리히도 대단하지만, 에르나스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 아니,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발렌티아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것 하나만으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아직 하인리히가 신체 능력과 마력을 극한까지 활용해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상의 속도를 낸 것처럼, 모종의 수법으로 한계를 넘어선 퍼포먼스를 보여 준 건지도 모른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렌티아노는 눈을 부릅뜨고 에르나스를 관찰했다.

하지만, 곧바로 놀라게 되었다.

에르나스가 취하고 있는 자세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파르티잔 심판검술.

과거 마교도와 몬스터를 토벌하던 ‘성기사단’의 제식 검술이었으며,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에도 포함되어 있는 동부 검술이다.

발렌티아노도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수십 년 동안 수련했다.

그렇기에 착각할 리가 없었다.

지금 에르나스는 분명히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펼치고 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은 2차 시험에 통과하여 진급한 뒤에나 배울 수 있는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다!’

혹시 흑색 6반을 담당하는 교관이 개인적으로 가르쳐 준 것일까.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에르나스에게 특별 대우를 해 줬을 수도 있다.

그런 거라면 에르나스가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사용할 줄 아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자세가 너무 완벽해! 최소 10년 이상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수련한 검사 같단 말이다!’

동부 검술은 완성된 ‘형태’를 중요시한다.

한 가지 자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연 단위의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자세를 잡아도, 발렌티아노 정도의 절정 고수가 보면 그냥 겉모습만 흉내 낸 정도라는 걸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에르나스는 마치 10년 이상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수련해 온 베테랑처럼 완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각 부위의 근육을 적절히 이완시키고 있고, 마력 배분도 완벽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들어선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을 놈이 대체 어떻게…….’

지금 당장 시합장으로 내려가서 에르나스를 붙잡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시합 도중에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자제력이 없는 성격도 아닌 데다가… 에르나스가 마침내 반격을 개시하고 있었으니까.

* * *

파앗!

정순한 검기가 실린 목검을 휘둘렀다.

하인리히는 즉각 방어했지만, 검기가 부딪친 순간 하인리히 쪽이 밀려났다.

검을 휘두른 내 완력 때문이 아니다. 육체의 근력은 하인리히가 더 강하다.

그냥 내 검기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

파르티잔 심판검술의 검기는 평범한 검기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한 검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안네리제가 정순한 검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터득한 지금,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알게 되었지.’

현재 나는 안네리제와 같은 수준으로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이해하고 있다.

그 결과, 그냥 소설 속의 평범한 조연에 불과했던 안네리제가 검사로서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은 철저하게 계산된 자세 하나하나를 완성하는 검술이었어.’

인체를 구성하는 골격, 근육, 혈관, 신경,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열한다.

이걸 통해 마력을 흘려보내는 ‘경로’를 정돈하여 마력 효율을 극대화한다.

정순하고 위력적인 검기는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

‘동부 검술은 정석적인 움직임을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라, 아무래도 소설 전개에서 재밌게 활용하게 어려웠어. 그래서 다른 검술에 비해 홀대한 측면이 있었는데…….’

검술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내가 설정한 것 이상의 깊이가 있었다.

이건 나에게 감동에 가까운 놀라움을 안겨 주는 일이었다.

‘재미있어.’

소설을 쓰면서 내가 그동안 생각 못 했던 전개나 설정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다.

분명 내가 만든 세계일 텐데, 내가 몰랐던 요소가 있다.

그 흥분 속에 휩싸인 채, 나는 검을 휘둘렀다.

“……!”

쿠웅!

또다시 하인리히가 밀렸다.

방어 자체는 나무랄 곳이 없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은 변화무쌍한 기교를 펼치는 검술이 아니기에, 공격을 막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검기의 차이가 하인리히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에르나스, 네놈…….”

하인리히가 푸른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어떻게 그런 검기를 펼칠 수 있는 거지?”

“글쎄, 상상에 맡기겠다.”

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굳이 설명해 줄 이유가 없으니까.

“어쨌든 하인리히, 이렇게 계속 검기를 부딪치면 네가 불리할 텐데.”

그 대신, 하인리히에게 조언을 해 줬다.

“종횡무진 도망치면서 내 검을 피해 다니는 편이 낫지 않겠나?”

“……!”

그 순간, 하인리히의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었다.

감히 자신에게 조언을 했다는 나에게 분노를 느낀 것이다.

“에르나스……!”

“기껏 조언을 해 줬는데 화를 내는군.”

“닥쳐라!”

반격에 나서는 하인리히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하인리히는 회피 위주의 전법을 취하기 어려워졌겠지.’

내가 하인리히에게 ‘조언’을 해 준 건 일종의 함정이다.

자존심을 자극하여 하인리히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만약 하인리히가 회피 위주의 전법을 취한다면 나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현재 내 능력으로는 하인리히의 속도를 쫓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인리히에게서 아그리파 속검술을 복사해도 소용없어.’

하인리히의 속도는 단순히 아그리파 속검술 하나만 베낀다고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인리히 본인의 천부적인 재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내가 따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인리히의 전법을 제한하는 건 가능하지.’

하인리히는 자존심이 강하다.

내가 잘난 척하면서 해 준 ‘조언’대로 움직이다니, 죽는 것보다 치욕적인 일일 것이다.

유효한 전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택할 수 없다.

‘정면에서 나하고 공방을 벌여라, 하인리히.’

파팟!

전광석화처럼 쏟아지는 하인리히의 공격을 철저히 막아 냈다.

동부 검술은 대체적으로 방어 면에서 우수하다. 파르티잔 심판검술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면, 하인리히의 쾌검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그리고…….

“……!”

쿠웅!

정확한 타이밍에 펼친 공격이 하인리히를 덮쳤다.

하인리히는 검기를 전개한 목검으로 막아 냈지만, 역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크윽……!”

물론, 꼭 정면에서 받아치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검이 충돌하는 각도를 조절해 공격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건 하인리히의 뛰어난 기량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미 초입을 넘어선 그래듀에이트 하급… 검기 컨트롤은 하인리히보다 능숙하지.’

상황에 맞춰서 검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게 그래듀에이트 하급의 조건이다.

검기의 흐름을 조절하면 적의 공격을 흘려보내는 것도 가능하고, 반대로 적이 공격을 흘려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에르나스, 네 녀석…….”

격렬한 공방 속에서 하인리히가 나를 노려봤다.

“그래듀에이트 하급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냐?”

“굳이 대답이 필요한가?”

“큭…….”

현재 하인리히는 그래듀에이트 초입이다.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녔고, 특히 속도에 한정하자면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상이다.

신동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는 성장 속도이고, 본인도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도달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하인리히의 자존심을 크게 상처 입히는 것이었다.

“잘난 척하지 마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하인리히가 자세를 바꿨다.

아그리파 속검술이 아니라 다른 검술을 사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소설 내용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관두는 게 좋을 거다, 하인리히.”

그렇기에, 나는 ‘조언’을 해 줬다.

“너희 가문의 독문 검술인 ‘아그리파 절검술(絶劍術)’은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을 위한 검술이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해도, 너에게는 너무 부담이 크다.”

“닥쳐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내 풀 네임을 부르면서, 하인리히가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닌 아그리파 절검술을 펼치려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너는 내 조언을 듣지 않는군.”

하인리히가 사용할 기술이 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아그리파 절검술을 대표하는 초고속의 4연격, ‘더 크럭스’다.

하인리히는 아직 정식으로 아그리파 절검술을 전수받지 못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것만으로도 이 기술을 재현할 수 있다.

그 정도로 하인리히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리고 더 크럭스라면 충분히 파르티잔 심판검술을 파훼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파르티잔 심판검술로 하인리히의 아그리파 속검술을 잘 막아 냈다.

하지만 아그리파 절검술의 더 크럭스를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걸 알면서… 나는 하인리히의 공격에 대비해 자세를 취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의 방어 자세였다.

“그걸로는 막을 수 없다, 에르나스……!”

나를 향해 포효하면서, 하인리히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혼신의 힘을 다한 초고속의 4연격이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이 검술로는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나는 준비를 마쳤다.

내 목검에 전개된 검기가 푸르게 물들었다.

‘도룡검’ 욜스에게서 얻어 낸,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검기다.

파르티잔 심판검술에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검술이 창조된다.

‘그러니, 나만의 검술로 막는다.’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만의 검술.

그 이름 없는 초식이 소리 없이 전개되면서, 하인리히가 펼친 초고속의 4연격과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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