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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39화 (39/212)

39화 신동을 꺾어라 (1)

클로에와 슈미츠에게 얘기를 해 둔 뒤, 나는 하인리히와 함께 자리를 떴다.

이제 막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되려는 참이니, 우리의 네 번째 시합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다.

“…….”

우리는 인적이 드문 통로로 이동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비로소 하인리히가 입을 열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카밀로를 쓰러뜨리고 예선을 돌파했다고 들었다.”

“그랬지.”

청색 2반의 카밀로는 하인리히의 측근이었다.

나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지만, 결국 예선에서 나한테 패배했다.

“카밀로는 그래듀에이트 초입이었다.”

“검기를 쓰더라고. 예선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그건 몰랐군.”

“걱정 마. 교관한테 알리지 않았으니까.”

“딱히 걱정한 건 아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녀석이라고는 생각 못 했기 때문에, 잠시 허를 찔렸을 뿐이다.”

“…….”

본의 아니게 하인리히에게 카밀로의 험담을 한 셈이 되었다.

“그나마 쓸 만한 놈 같아서 곁에 둔 건데,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일 줄은 몰랐다. 내가 보는 눈이 없었군.”

“그 정도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건가?”

“우리들은 검사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하인리히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실수였다는 변명은 용납될 수 없지.”

“…….”

“실수를 저질러도 눈감아 줄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녀석이라면, 나도 다르게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하인리히의 말투는 냉혹했다.

광신에 가까운 충성을 바치던 카밀로에게 조금의 연민도 없는 모양이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아카데미에 오면서 새삼스레 느낀 것이 있다.”

“뭐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

“처음에 있었던 대항전에서, 나는 청색 2반의 학생들에게 백색 5반과의 싸움을 일임했다. 그랬더니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 주더군.”

청색 2반과 백색 5반의 대항전은 신동과 영재의 대결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하인리히가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탓에 레스터의 백색 5반이 승리를 거뒀다.

“단순히 검술 실력만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까지 포함한, 인간으로서의 종합적인 능력 얘기지.”

“…….”

“그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쓸 만한 인간이 너무 부족하다.”

거만하기 그지없는 발언이다.

하지만 하인리히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냉정했다.

자기 나름대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다른 녀석들?”

“너를 제외한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 말이다.”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내 질문에 하인리히가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굳이 필요 없는 인간들이다.”

“어째서 그런 결론을 내렸지?”

“다들 너무 야심이 강하다.”

“…….”

“루퍼스 이그니아스도, 고르트 발트펠트도, 베리스리제 슈라이에르도, 레스터 랭커스터도… 너무 야심이 강하다. 게다가 그런 야심이 본인들의 인격적 결함과 어우러져, 형편없는 인성을 보여 주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루퍼스는 자기 자신이 공명정대하고 의욕 넘치는 리더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랫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의욕을 요구하며,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가혹 행위를 하며 혹사시킨다.

“잠깐, 나는 어떻지?”

내 이름이 누락된 걸 깨닫고, 물어봤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그 녀석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쓰레기다.”

“…….”

“자신의 실력을 절대로 검증받으려 하지 않는 겁쟁이, 그럴듯한 말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다니는 사기꾼, 누구에게도 성실한 태도를 보여 준 적이 없는 난봉꾼… 다른 네 사람의 인격적 결함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형편없는 것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라는 인물이다.”

신랄하기 그지없는 평가였다.

너무 적나라해서 말문이 막혔을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기에 기억에서 지워 놓고 있었다.”

하인리히의 얼음 같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기만전술이었던 모양이다.”

“뭐?”

“너는 아카데미에 들어오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말이다.”

“…….”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 너는 과거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

미안하다.

사람이 바뀐 게 맞다…….

“이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과거의 너는… 모든 사람들을 속이면서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

“네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겠다. 아마 란즈슈타인 가문의 내부 사정과 관련이 있겠지.”

란즈슈타인 가문의 내부 사정.

소설에서는 중반 이후에나 드러나는 비밀이다.

현재 아카데미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싸움에 란즈슈타인 가문이 참가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는 오랫동안 본성을 숨겼다.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생각으로 말이다.”

“…….”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실제로 실천에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에게 흥미를 느낀다.”

하인리히의 푸른 눈동자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너는 내가 이 아카데미에 와서 처음으로 매력을 느낀 인재다.”

“…….”

“너 같은 인재와 다투는 걸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안한다.”

그렇게 말하며, 하인리히가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에르나스,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의 파란색 눈동자가 내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 수하가 되어서 나를 보좌하도록 해라. 너에게 2인자의 자리를 약속해 주마.”

* * *

“루퍼스 이그니아스의 승리다!”

“칼레온 교수가 이 광경을 못 봐서 아쉽겠군!”

시합장에서 열린 제2시합은 루퍼스의 승리로 끝났다.

고르트는 평소처럼 파워를 살린 공격을 펼쳤지만, 루퍼스의 안정적인 동부 검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젠장, 젠장……!”

시합장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통해하는 고르트를 보며, 루퍼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세리느한테 덤볐다가 패배하는 수치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게 되었군, 고르트.”

“루퍼스, 이 자식……!”

“준결승에서 세리느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는 건 내가 될 것이다.”

물론, 루퍼스도 자신 있는 건 아니었다.

베리스리제와의 싸움에서 세리느의 실력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도 많고, 마력을 활용하는 기술도 매우 뛰어나다.

내심 루퍼스는 자신이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남의 실력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고르트와는 달리, 루퍼스는 타인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인정할 줄 아는 성격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퍼스가 고르트 앞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건, 스스로를 고무하기 위한 것이었다.

“흥, 결승전에 올라 봤자 네 상대는 에르나스나 하인리히야. 쉽지 않을걸?”

“마음대로 떠들어라. 8강전에서 탈락한 녀석의 말은 귀담아듣고 싶지 않으니.”

“이 자식… 아주 잘난 척을 하는군.”

고르트가 이를 갈았다.

“황실 쪽 사람들한테 좋은 모습 보였다고 들뜬 거냐?”

“황실 쪽 사람들?”

그 말을 듣고, 루퍼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객석 한구석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저분들은 궁내부의… 왜 여기에 오신 거지?”

“뭐야? 몰랐던 거야?”

고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 아버지가 알려 주지 않았냐? 네가 영 못 미더웠던 모양이군.”

“무슨 소리지?”

“8강전에서 탈락한 녀석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며?”

“고르트……!”

“화내면 어쩔 건데? 이미 패배한 사람한테 목검을 들고 다시 달려들게?”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난 뒤, 고르트는 루퍼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정 궁금하면 네 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6대 검술명가의 수장들은 다 통보를 받았을 테니까.”

* * *

“오늘 객석에는 황실을 보좌하는 궁내부 인사들이 앉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통로에서, 하인리히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무전 본선에 출전한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훗날 그들 중 한 사람이 아카데미의 정점에 올랐을 때, 특별한 중임(重任)을 맡기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

원래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출세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하인리히 말대로,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른 사람한테는 특별한 중임을 맡길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수는 특별하다.’라면서 6대 검술명가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국가 기밀이라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

“하지만,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우리는 서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피했다.

지금 이곳에는 우리밖에 없지만, 만약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큰 문제가 된다.

“에르나스…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는 것은 나다.”

“…….”

“내가 있는 한, 너에게는 가능성이 없다.”

절대적인 자신감.

이것이 하인리히라는 인물의 본질이다.

“그러니 내 밑으로 들어와서 나를 돕도록 해라.”

“…….”

“지금은 서로 다른 반에 소속되어 있지만, 2차 시험을 통해 진급하면 우리들이 함께 행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때 나를 보좌해 줬으면 좋겠다.”

그는 진지하게 제안하고 있었다.

평소 타인에게 무관심한 하인리히가 이런 말을 꺼냈다는 건, 그만큼 나한테서 가치를 느꼈다는 의미다.

‘그래, 소설에서도 하인리히는 주인공 아칸델에게 이런 제안을 했지.’

다만 소설에서는 지금처럼 보좌역을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적들을 해치우는 사냥개 역할을 맡기려 했다.

소설에서 하인리히는 주인공 아칸델의 순수한 전투력에 주목했던 거니까.

“거듭 말하지만, 나는 너를 높게 평가한다. 그렇기에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하인리히는 사심 없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그 얼굴을 보면서…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군, 하인리히.”

“뭐라고?”

“나를 높게 평가해서 하는 제안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텐데.”

나는 하인리히를 똑바로 쳐다봤다.

“지금 네 제안은, 내가 너보다 한 수 아래라는 판단이 있기에 나온 거다.”

“에르나스…….”

“미안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판단에 동의하기 어려워.”

“동의하기 어렵다고?”

“그래.”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하인리히를 향해,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인리히, 나는 네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아래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

“네가 나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건, 네 자만심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하인리히의 눈동자가 커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사람의 반응이었다.

“곧 있을 시합에서 그걸 증명해 주마, 하인리히.”

하인리히는 나와의 시합에서도 당연히 자신이 이길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자만심을 꺾어 줘야 한다.

“그래,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소설 속 에르나스처럼, 상대방을 도발하는 미소다.

“이번 시합에서 내가 승리하면, 네가 내 밑으로 들어와라. 2인자 자리는 경쟁자가 많으니 그 아래 자리를 노리는 걸 추천한다.”

“……!”

얼음처럼 차갑던 하인리히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분노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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