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비무전 (2)
슈미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슈미츠의 눈앞에는 하인리히 아그리파의 모습이 있었다.
‘저 녀석이 청색 2반의 신동…….’
그동안 이름은 많이 들었다.
1차 시험에서는 누구보다 빨리 교관에게 합격증을 받았으며, 진지전에서는 앞장서서 적색 1반과 백색 5반을 괴멸했다.
아카데미 입학 전에도 아그리파 가문에 신동이 있다는 소문은 여러 번 들었다.
‘언젠가는 꺾어 주겠다고 생각했었지…….’
원래 슈미츠는 6대 검술명가를 꺾는 것이 목표였다.
에르나스에게 패배하면서 포기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향상심만큼은 남아 있다.
‘그래, 여기서 주눅 들 필요는 없어.’
슈미츠는 주먹에 힘을 줬다.
입술을 깨물며 투지를 불태웠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에르나스 님하고 비슷한 정도겠지. 아니, 에르나스 님보다 못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을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현재 슈미츠는 마력 활용에 능숙해진 상태니까.
‘최고의 속력을 보여 주지.’
지금 슈미츠는 그래듀에이트 초입이다.
예선에서는 검기를 쓰지 못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마력으로 육체 능력을 강화하는 건 가능하다.
민첩성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하르트만 쾌검술을 펼치면 아무리 신동이라고 해도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 내가 더 빠를 거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고무하고 있었을 때, 마침내 예선 개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서로 눈치를 보며 움직이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슈미츠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
파앗!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십여 명의 학생이 동시에 쓰러졌다.
그 중심에는 목검을 든 하인리히의 모습이 있었다.
‘설마…….’
슈미츠는 하인리히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다급히 마력을 눈에 집중해 동체 시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녀석……!’
파팟!
또다시 십여 명의 학생이 쓰러졌는데, 여전히 슈미츠는 하인리히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었다.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들어선 슈미츠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하인리히는 빨랐다.
‘에르나스 님, 이 녀석은 위험합니다……!’
그동안 무패를 자랑했던 에르나스도, 이 규격 외의 신동 앞에서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그런 위기감에 휩싸인 채, 슈미츠는 그 자리에서 몸을 떨었다.
* * *
예선 3조 시합장.
그곳에 발을 들이자,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인 나와 베리스리제가 동시에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과 베리스리제 슈라이에르…….”
“우리 조에서 본선에 진출하는 사람은 저 두 사람이겠군.”
“아니, 혹시 모르잖아. 우리들한테도 기회가 있을 거야.”
“그래, 일단 포위해서…….”
숙덕대는 학생들을 곁눈질하며, 나는 베리스리제에게 말을 건넸다.
“베리스리제, 그럼 부탁하지.”
“흥, 너나 잘해.”
그리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베리스리제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
숨을 삼키는 학생들을 향해, 베리스리제가 화려한 연속 기술을 펼쳤다.
기회를 엿보던 학생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제를 모르고 덤벼들 생각을 하다니…….”
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베리스리제가 몸을 날렸다.
“후회하게 해 줄게.”
“……!”
베리스리제가 그동안 성적이 안 좋긴 했지만, 명색이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다.
어렸을 때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아 왔고, 선천적인 재능도 뛰어나기 때문에 평범한 학생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을 베리스리제에게 맡긴 채,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에르나스!”
쿠웅!
바람처럼 날아온 카밀로의 공격을, 내 목검으로 막아 냈다.
위력적인 상단 공격이었지만, 마력을 끌어올려 방어 자세를 취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에르나스!”
나하고 힘겨루기를 하면서 카밀로가 소리쳤다.
안경 너머의 검은색 눈동자가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
“내 손으로 너를 탈락시킨 뒤… 별것 아닌 놈이라고 하인리히 님에게 보고드리겠다!”
“내 아이디어에 귀 기울여 줘서 고맙군, 카밀로.”
쿵!
카밀로의 목검을 밀어내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닥쳐라……!”
카밀로가 바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왼쪽 팔을 앞으로 내민 뒤, 목검을 든 오른쪽 팔을 뒤로 당겼다.
빠른 속도로 돌진한 뒤 오른쪽 팔을 뻗어 찌르기 공격을 하기 위한 자세였다.
“흐읍!”
파앗!
시합장 바닥을 박차고 카밀로가 질주했다.
슈미츠가 잘하는 직선적인 돌격이다.
‘여기서 슈미츠라면 빠르게 방향을 꺾겠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꾼 뒤 상대의 측면을 노리는 ‘측면 파고들기’는 슈미츠의 주특기다.
하지만 카밀로는 슈미츠하고 스타일이 다르다.
“하앗……!”
마지막 한 걸음에서 바닥을 강하게 차서 도약한다.
순간적으로 높이 날아올라,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격을 펼친다.
이번에는 찌르기였다.
‘이 속도로 돌진하면서 상체를 향해 찌르기를 하다니,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얘기군.’
머리나 목에 꽂히면 치명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공격을 한다는 건, 나 정도면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걸까.
‘아마 후자겠지.’
쿵!
목검을 휘둘러서 찌르기의 궤도를 비틀었다.
카밀로의 목검은 내 왼쪽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진 상황.
그 거리를 이용해, 나는 랭커스터 소검술을 펼쳤다.
이미 나는 목검을 ‘짧게’ 잡고 있는 상태였다.
“으윽!”
퍼퍽!
여러 대를 얻어맞고 카밀로가 신음했다.
다급히 뒤로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했다.
“네 녀석, 목검을 짧게 잡고 곤봉처럼 사용하다니… 서부식 검술이냐?”
“글쎄, 상상에 맡기지.”
진검이라면 불가능하지만, 목검은 중간 부분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
검의 길이를 짧게 만들어 랭커스터 소검술을 펼친다면 접근전에서 유리해진다.
진짜 소검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다재다능한 녀석……!”
또다시 카밀로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번에는 도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낮추고 내 하단을 노렸다.
나는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방어 자세로 맞섰다.
“큭……!”
탄탄한 방어에 카밀로의 하단 공격이 막혔다.
카밀로는 그 이후로도 계속 공격을 펼쳤지만, 매번 아슬아슬하게 막혔다.
‘바스티안 기사검술로는 카밀로를 아슬아슬하게 막을 수 있어.’
카밀로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 하인리히를 바스티안 기사검술로 막는 건 어렵겠군.’
하인리히는 카밀로보다 훨씬 뛰어나다.
카밀로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을 수 있다는 건, 하인리히의 공격이라면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하인리히 상대로는 다른 검술로 대항해야 한다.
‘이걸로 카밀로를 상대로 한 연습은 충분하겠지.’
내가 카밀로와 일대일로 싸우려 한 건, 하인리히와의 싸움을 대비한 것이다.
카밀로는 하인리히의 전투 스타일을 흉내 내고 있기 때문에, 스파링 상대로는 최적이다.
“크윽…….”
계속 공격이 가로막히자 카밀로는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냉정한 말을 건넸다.
“카밀로, 너는 하인리히를 어설프게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뭐, 뭐라고?”
“하인리히는 고속 전투가 특기지. 너처럼 빠르게 달려들어 상대방을 제압하는 걸 잘한다.”
물론, 그건 하인리히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 그렇다!”
카밀로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하인리히 님과 대결했을 때, 나는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 빠른 스피드에 감명받아, 나도 하인리히 님 같은 검술을 추구하고 싶어서……!”
“하인리히는 종횡무진 움직이며 전장 전체를 자신의 무대로 삼는다.”
나는 카밀로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하지만 너는 좌우의 움직임 없이 전후로만 움직이지. 일직선으로 달려들기만 하고, 기껏해야 위아래로 높이를 바꿀 뿐이다.”
“……!”
“그런 식이라면 아무리 노력해 봤자 하인리히를 쫓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인리히가 카밀로를 일일이 지도해 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카밀로는 하인리히의 검술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큭……!”
정곡을 찔린 카밀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쳐다보며, 나는 자세를 바꿨다.
“더 발전하고 싶다면, 무작정 하인리히를 흉내 내는 건 그만두도록 해라.”
“닥쳐라……!”
카밀로가 다시금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 목검 끝에 마력이 감도는 모습이 보였다.
‘흥분한 나머지 검기를 사용하고 있군.’
예선에서 검기를 쓰는 건 금지되어 있다.
발각되면 실격 처리가 된다.
하지만, 목소리를 높여 교관에게 알릴 생각은 없었다.
‘내가 처리하는 게 더 빠를 테니.’
쿵!
빠르게 도약한 카밀로가 내 머리를 향해 목검을 뻗었다.
하지만 나는 그 궤도를 완벽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방어는 어렵지 않았다.
‘파르티잔 심판검술로, 마무리한다.’
안네리제에게서 획득한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
그것을 활용해, 전신의 육체 능력을 보강하면서 움직인다.
검기가 전개된 목검을 피하면서,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내 목검을 뻗었다.
목검에 검기를 전개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마력으로 육체 능력만 강화해도, 충분히 위력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었으니까.
“윽……!”
퍼억!
내 공격이 카밀로의 몸통을 덮쳤다.
카밀로는 높이 뛰어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그대로 튕겨져 나가 시합장 벽에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카밀로는 완전히 기절했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뼈 한두 군데는 부러졌겠군.’
이걸로 카밀로는 곧 있는 2차 시험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이번 패배를 통해 카밀로가 교훈을 얻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뭐야, 이제 끝난 거야?”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베리스리제가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었다.
그 뒤편에는… 마흔 명이 넘는 학생이 신음하면서 쓰러져 있었다.
“벌써 다 끝난 거야?”
“물론이지. 이런 잔챙이들 따위.”
베리스리제가 팔짱을 끼며 잘난 척했다.
적색 엘릭시르를 서너 병씩 복용한 학생들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전부 정리해 버리다니…….
“대단하네, 베리스리제.”
“그, 그래?”
“맡긴 보람이 있었어.”
그렇게 말하자 베리스리제가 얼굴을 붉혔다.
“다, 당연하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이걸로…….”
주위를 둘러봤다.
나와 베리스리제 외에 일어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선 통과로군.”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베리스리제 슈라이에르.
이렇게 두 사람이 예선 3조에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 * *
“이쪽이 대기실이다. 그곳에서 대진표를 확인하도록.”
교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나와 베리스리제는 대기실로 향했다.
“에르나스, 다른 조는 어떻게 되었을까?”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은 다 본선에 진출했겠지. 그리고 세리느도 가능성이 높고…….”
“세리느… 그 여자도 올라오는 건가.”
세리느를 언급하자 베리스리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 베리스리제는 세리느를 라이벌처럼 생각하는 구석이 있었다.
“에르나스, 지금 세리느는 어느 정도 수준이지?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는 진입했어?”
“거기까지 정보를 알려 줄 수는 없지.”
“잠깐, 나보다 세리느 편을 드는 거야? 약혼도 파기했다면서? 그럼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같은 흑색 6반인데, 편들어 줄 수밖에 없지.”
“큭… 치사하게.”
베리스리제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어. 직접 시합에서 확인할게.”
“대진표에 따라서는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지.”
본선은 8강 토너먼트 형식이다.
그러니 베리스리제가 세리느를 만나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대진표…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네.”
“…….”
“에르나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베리스리제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역시 네 입장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라서 청색 2반의 하인리히를 꺾는 게 가장 모양새가 좋은 건가?”
“글쎄… 모양새는 그게 가장 좋지.”
가장 주목받는 신입생 두 사람이 결승전에서 자웅을 가린다.
그게 가장 그럴듯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베리스리제를 내버려 둔 채, 눈앞에 보이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조의 통과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에르나스……!”
“오셨군요.”
세리느 그리고 클로에가 나를 반겨 줬다.
주위를 살펴보니 역시 예상했던 사람들이 본선에 진출한 듯했다.
흑색 6반 학생이 가장 많은데, 6개 학급 중에서 엘릭시르를 가장 많이 획득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조는 루퍼스와 세리느, 2조는 고르트와 클로에…….’
3조는 나와 베리스리제다.
그리고 4조는…….
“에르나스 님…….”
슈미츠가 초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선을 통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색이 영 아니었다.
“조심하십시오. 저 남자…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
슈미츠의 시선이 향한 곳에, 하인리히가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예선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듯했다.
“다들 모였군.”
그때 대기실로 담당 교관이 들어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벽에 붙였다.
“그러면 본선 대진표를 발표하겠다. 10분 뒤부터 시합을 개시하니, 준비하도록.”
그 직후, 대기실에 있던 학생들이 숨을 삼켰다.
놀라지 않은 건 나와 하인리히 정도였다.
“8강전 대진은 이렇게 정해졌다. 여기서 승리한 사람이 4강전에 진출하게 된다.”
대진표를 가리키면서, 교관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시합은 세리느 바스티안과 베리스리제 슈라이에르.”
“두 번째 시합은 루퍼스 이그니아스와 고르트 발트펠트.”
“세 번째 시합은 슈미츠 하르트만과 클로에 유스부르크.”
“마지막 네 번째 시합은… 하인리히 아그리파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결승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비무전 본선에서 내가 처음으로 싸울 상대가, 바로 하인리히 아그리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