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새로운 힘 (1)
적색 엘릭시르 두 병.
그 마력을 마나 하트에 모조리 저장한 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까 표시된 메시지의 정체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의 성장과 함께 영구 귀속이 진행됩니다.]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의 영구 귀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이게 대체 뭘까.
소설 속에 이런 건 없었다.
‘물론, 유스레흐트의 능력 재현 자체가 소설에는 없었던 기능이지만…….’
아무래도 유스레흐트의 진짜 기능 중 일부인 것 같았다.
타인의 능력을 복사하는 걸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서 랭크가 올랐다는 소리인 것 같은데……..’
동부식 마력연공법의 숙련도는 B랭크였다.
그런데 이번에 A랭크로 올라간 것이다.
‘그동안 계속 동부식 마력연공법을 사용해 왔으니까, 랭크가 오르는 것 자체는 이해가 돼.’
아마 두 가지 요소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첫째는 징벌동 지하의 야광초 풀밭에서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마력을 효율적으로 흡수한 경험이다. 최고 효율로 마력을 흡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력연공법의 이해도가 더욱 깊어진 것이다.
둘째는 내가 이 소설의 작가로서 온갖 깨달음을 숙지한 상태라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마력의 진정한 이치를 묘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마력연공법에 능숙해진 게 아닐까.
‘다른 검술이나 체술도 내가 깨달음을 얻으면 이런 식으로 성장할 거야. 스킬에 따라, 혹은 현재 랭크에 따라 요구되는 이해도가 다르겠지만.’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 랭크가 성장한 것은 이해했다.
그런데 영구 귀속이라는 건 뭘까.
‘일단 목록을 확인해 봐야겠어.’
나는 손에 낀 반지를 만졌다.
그러자 내가 지금까지 획득한 능력들이 표시되었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랭커스터 소검술(S랭크)]
[바스티안 기사검술(A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C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
== 영구 귀속 ==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나는 숨을 삼켰다.
새롭게 변화한 목록을 확인하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거였나!’
그동안 계속 다섯 번째 칸을 차지하고 있던 동부식 마력연공법이 따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원래 있던 자리에 공란이 생겼다. 스킬 슬롯이 하나 비게 된 것이다.
‘이렇게 빈자리가 생기면, 페널티 없이 검술이나 체술을 하나 더 배울 수 있어!’
그동안 새로운 능력을 복사하려면 12일 동안 페널티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빈자리가 생기면 페널티 없이 새 능력을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동부식 마력연공법은 영구 귀속… 계속 유지가 되는 거야!’
지금까지 내가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은 최대 다섯 개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동부식 마력연공법이 따로 빠져나온다면,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여섯 개로 늘어나는 것이다.
‘내가 유스레흐트로 복사한 능력에 익숙해져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면… 이런 식으로 점점 늘어나는 거겠지.’
예를 들어 내가 바스티안 기사검술에 익숙해져서 S랭크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바스티안 기사검술(S랭크)과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이 영구 귀속으로 분리된다.
== 잠정 획득 ==
[랭커스터 소검술(S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C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
[---]
== 영구 귀속 ==
[바스티안 기사검술(S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이런 경우 두 개의 빈자리가 생기니, 일곱 개의 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복사한 능력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면, 내가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의 숫자도 늘어나는 것이다.
‘사실 동시에 다섯 개만 보유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했어.’
남에게서 복사한 능력은 어디까지나 유스레흐트의 ‘능력 재현’으로 재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능력으로 덧씌우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 능력에 능숙해지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완전히 나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 재현’의 제약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다재다능한 검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남에게서 능력을 복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능력의 숙련도 내지는 이해도를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해진 건가.’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과 딱 맞는 시스템이다.
이 검술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검술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검술이 아니니, B랭크로 진화시켜 귀속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이제부터 나는 다양한 검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을 여러 개 확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만으로는 청색 2반의 신동을 이길 수 없다.
‘처음 세리느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처럼…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야 해.’
나는 단순히 남의 검술이나 체술을 복사하는 능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펼칠 수 있다.
이런 건 원래 매우 높은 경지에 올라 ‘깨달음’을 얻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소설 세계의 창조주인 나는 그 깨달음을 이미 숙지하고 있다.
‘검술과 검술의 조합… 그걸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검술을 펼쳐야 한다.’
청색 2반의 신동을 꺾기 위해.
진정한 검술 천재가 되기 위해.
나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 * *
안네리제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담당하는 흑색 6반이 진지전에서 공동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에르나스가 징벌동에 갇히고, 서바이벌 실습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을 때는 우울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에르나스가 복귀하면서 흑색 6반은 다시 멋지게 날아오르게 되었다.
담당 교관으로서 콧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오늘은 강의 없이 자율 훈련입니다.”
야외 훈련장에 모인 학생들을 둘러보며, 안네리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엘릭시르를 복용하여 마력을 획득했겠죠. 오늘은 그 마력에 몸을 적응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몸을 적응시키세요. 기껏 얻은 마력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흑색 6반 학생들은 대부분 모범생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없고, 다들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
초반에 에르나스가 실력으로 학급 전체를 휘어잡은 뒤, 세리느와 클로에 등이 분위기를 조성해 준 탓일 것이다.
‘그래도… 재능 차이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겠지.’
이미 1차 시험에서 10명 정도가 탈락하여 흑색 6반을 떠났다.
2차 시험은 탈락해도 재도전할 수 있지만, 연 단위의 시간이 흘러도 2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그래듀에이트 초입조차 되지 못한 채, 이 섬에서 계속 기초 훈련만 받다가 떠나는 것이다.
‘사실 젊은 나이에 그래듀에이트 초입만 되어도 훌륭한 거지만.’
안네리제는 초입을 넘어선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능 있는 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만하지는 않는다.
하급 위에는 중급, 중급 위에는 상급, 상급 위에는… 절정급.
더 뛰어난 존재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재능 있는 사람들은, 아카데미 재학 도중에 하급을 넘어 중급까지 도달하기도 하지.’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흑색 6반에서는 에르나스가 기대된다.
저 학생은 이미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들어섰다.
2차 시험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건 확정적이고, 조만간 그래듀에이트 하급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안네리제의 실력을 추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투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 재능 있는 학생을 지도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뿐이다.
“안네리제 교관님.”
그때였다.
자율 훈련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에르나스가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이죠?”
“한 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에르나스가 부탁을 하다니.
웬일일까.
“무슨 일이죠? 말해 보도록 하세요.”
“주말에 따로 약속 같은 게 있으십니까?”
“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듣고, 안네리제는 눈을 깜박였다.
“주말에야… 그냥 평소처럼 숙직실에서 쉬고 있을 뿐인데요.”
안네리제의 주말 아침은 숙취 속에서 시작한다.
전날 밤에 폭음을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라고 해서 따로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면… 부탁드립니다. 주말에 저를 위해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네?!”
에르나스, 설마…….
“아, 안 됩니다, 에르나스.”
“네?”
“학생과 교관이 그런 관계가 되는 건… 저는 집안도 별로 좋지 않고, 란즈슈타인 가문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안네리제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얼굴을 붉혔다.
“무, 물론, 에르나스가 진지하게 구애하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그, 그래도 한때의 불장난 상대가 되는 건…….”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에르나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개인 지도를 요청드리는 겁니다. 그래듀에이트로서 선배이신 안네리제 교관님께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요.”
“…….”
안네리제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면서,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농담한 거예요.”
“…….”
에르나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안네리제는 홀로 눈물을 삼켰다.
* * *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안네리제하고 노닥거리기도 했는데 말이야.’
주말 아침.
나는 기숙사를 나와 맞은편 학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안네리제와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칸델은 이쪽 세계의 상식을 모르는 녀석이었지. 그래서 안네리제한테 신세 질 일이 많았고, 사적인 교류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나는 소설처럼 느긋하게 진행할 수 없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하드 모드이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그래, 6대 검술명가의 싸움에서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말이지.’
이미 나는 다른 가문들의 후계자 대부분을 꺾은 상태지만, 그 녀석들은 어디까지나 애송이들이다.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강해져야 한다.
‘물론, 지금은 다음 시합 준비부터 해야 하지만.’
오늘 안네리제에게 개인 지도를 부탁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래듀에이트 하급의 검사이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상대다.
‘무엇보다…….’
유스레흐트의 새로운 기능.
그것을 활용해 다음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안네리제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만있자, 혹시 아직도 숙직실에서 잠들어 있는 건…….’
나는 숙직실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안네리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한창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침구도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
나는 실내 훈련장으로 향했다.
나무 바닥을 밟으며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던 안네리제의 모습이 보였다.
“왔군요, 에르나스.”
“네, 교관님.”
안네리제는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옷매무새에 흐트러진 부분이 없고, 눈빛도 뚜렷했다.
안네리제가 주말에 이런 상태로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에르나스, 당신이 저한테 이런 부탁을 한 건… 조만간 있을 ‘비무전’을 대비한 거겠죠.”
“맞습니다.”
비무전.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학생 개인이 참가하는 형태의 시합이다.
학급 단위의 시합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 대 개인의 싸움으로 승패를 정한다.
소설과 똑같이 흘러간다면, 나는 그곳에서 청색 2반의 대표와 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1위를 노리고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대련 형식의 지도가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안네리제가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어제 잠시 보여 줬던 푼수 같은 모습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소설 속 시리어스한 장면에서 보여 줬던, 진지한 검사의 모습이었다.
“에르나스, 지난번 1차 시험에서 저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죠.”
“네, 공격을 명중시키느라 고생했었죠.”
“그때보다 더 진지하게 가겠습니다. 물론, 검기는 사용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검기도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호신기(護身氣)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면 너무 위험합니다.”
“상관없습니다.”
내 말을 듣고, 안네리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검기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요구한 대로 하겠습니다. 부상을 입더라도 원망 마세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네?”
“부상을 입더라도 원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
안네리제가 잠시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당신은 정말로… 대단한 학생입니다, 에르나스.”
우웅!
안네리제의 목검에 하얀빛이 깃들었다.
나 같은 초보 그래듀에이트의 검기와는 명백히 질이 다른… 정순하기 그지없는 검기다.
“그렇다면 정말로… 전력을 다해 상대해 드리죠!”
쿠웅!
바닥을 박차면서, 안네리제가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