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8화 (28/212)

28화 쓰러뜨리기 위한 준비 (2)

야외 서바이벌 훈련에서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협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르트 발트펠트와 베리스리제 슈라이에르는 처음부터 동맹 관계였어.”

“……!”

세리느와 슈미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편 클로에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하루아침에 급조된 동맹 같지는 않았어요.”

“딱히 의기투합한 건 아니고,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동맹이지만 말이지.”

나는 소설 내용을 되새기며 말했다.

“고르트도 베리스리제도 자신들의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과 비교했을 때의 얘기인가요?”

“그렇지.”

청색 2반의 신동과 백색 5반의 영재.

이 두 사람에 비하면 고르트와 베리스리제는 개인 역량이 부족하다.

적색 1반의 루퍼스라면 어떻게든 맞붙어 볼 수 있지만, 루퍼스에게는 아버지가 아카데미 교수라는 강점이 있다.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은 것이다.

“지금은 백색 5반의 레스터가 탈락했기 때문에, 청색 2반의 그 녀석이 1강(强)으로 군림하게 되었지. 고르트와 베리스리제는 힘을 합쳐 대항할 수밖에 없어.”

나를 제외한다면 현재 아카데미는 1강 1중 2약의 구도다.

2약에 해당되는 고르트와 베리스리제가 손을 잡는 건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에르나스 님, 그들은 청색 2반의 신동뿐만 아니라 에르나스 님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슈미츠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이 이번 훈련에서 저희들을 집중 공격 한 것도, 결국 에르나스 님에게 타격을 주려는 목적이었을 겁니다.”

“그래, 내가 돌아왔을 때 흑색 6반이 부상자로 가득하면 곤란할 테니까 말이야.”

“결국 저도 발목을 다쳐 버려서… 젠장!”

현재 슈미츠는 발목을 삔 상태다.

주특기인 속도를 살린 전투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저도 이런 꼴이 되어 버렸고 말이죠.”

클로에도 손목의 붕대를 보여 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예 검을 휘두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관둬.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움직이면 장기화될 수 있어.”

그래듀에이트 초입만 되어도 마력을 운용하여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두 사람 다, 활동을 자제하고 회복을 우선해.”

“네…….”

“알겠습니다.”

슈미츠와 클로에는 전력(戰力)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비올라, 그리고 부상이 거의 없는 세리느 정도만 전력이 될 것이다.

“에르나스, 일주일 뒤 여섯 학급이 동시에 참가하는 대규모 훈련이 있습니다.”

“그래, 진지전이지.”

진지전.

그것은 6개의 진지를 뺏고 빼앗는 형식의 훈련이다.

각 학급은 자신의 진지를 지키면서 다른 진지를 공격하여 함락하면 된다.

우수한 전적을 기록한 학급에는 엘릭시르가 주어진다.

“그때 황색 3반과 녹색 4반이 우리를 집중 공격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그래도 부상자가 많은 상태니 말이지.”

소설 속 묘사에 의하면,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진지는 흑색 6반을 협공하기 쉬운 곳에 있다.

“그리고… 고르트와 베리스리제는 에르나스를 집중 공격 하겠죠.”

세리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2 대 1이 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협공당하지 않도록 제가 에르나스를 곁에서 지킬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네?”

“고르트와 베리스리제는 나 혼자서 상대할 테니까.”

“……!”

세리느는 물론, 슈미츠와 클로에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르나스 님, 가능하시겠습니까?”

“두 사람 다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세리느 님과 함께 대항하는 편이…….”

“세리느는 진지를 지키는 것에 집중하면 돼. 부상자들이 많은 만큼, 세리느의 역할이 중요해.”

나는 세리느를 쳐다보며 말했다.

“세리느, 다른 학생들을 지휘하면서 진지를 철저히 지켜.”

“그동안 당신은 고르트와 베리스리제를 쓰러뜨리겠다는 얘기인가요?”

“그래, 그 녀석들을 상대하면서 진지 전체의 방어를 신경 쓰는 것까지는 할 수 없으니까.”

전장 전체를 살피며 지휘하는 능력은 세리느 쪽이 더 뛰어나다.

이건 유스레흐트로 복사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 세리느한테 일임하는 것이 최선이다.

“알겠습니다, 에르나스.”

세리느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마음 놓고 그 두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나머지 부분은 제가 맡아서 할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 * *

늦은 밤.

나는 기숙사 옆 훈련장에서 목검을 휘둘렀다.

징벌동에서는 진검으로 연습했지만, 진지전에서는 목검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검 사용에 다시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역시 목검은 검기에는 맞지 않아.’

훈련용 목검은 마법적으로 강화되어 있다.

날이 서 있지 않을 뿐, 진검과 부딪쳐도 웬만해서는 부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력을 흘려보내 검기를 형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징벌동 지하에 있던 무기들은 검기에 잘 반응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검기 자체를 만들 수 없는 건 아니다.

사람 하나의 목숨을 빼앗기에 충분한 검기를 만들 수 있다.

효율이 많이 떨어질 뿐이다.

‘빨리 진검 사용이 허가되면 좋겠어.’

앞으로 있을 2차 시험에 통과하여 ‘진급’하면 진검 사용이 허가된다.

검기를 사용하는 그래듀에이트라면 목검으로도 사람을 벨 수 있으니까, 진검 규제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다.

“에르나스.”

“……?”

그때 세리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숙사에서 목검을 든 세리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안 잤어?”

“잠이 안 와서요.”

그렇게 말하며 세리느가 내 눈치를 살폈다.

“괜찮다면, 같이해도 될까요?”

“나한테 허락받을 필요는 없어.”

“네, 감사합니다.”

세리느가 자세를 잡더니 목검에 검기를 전개했다.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도달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리느, 흑색 6반에 너 말고 검기를 터득한 사람이 있나?”

“아직은 저뿐이에요. 그래도 클로에와 슈미츠는 조만간 가능해질 것 같았어요.”

“그렇군. 다른 반에서는?”

“황색 3반에서는 고르트가 검기를 쓰고 있었어요. 녹색 4반의 베리스리제는 아직…….”

역시 고르트는 이미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한 건가.

소설과 같다면 상당한 양의 마력을 확보한 상태일 것이다.

‘고르트는 파워 위주의 북부 스타일 검사… 그 녀석의 발트펠트 중검술을 받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야.’

고르트는 선천적인 육체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마력으로 근육을 강화하면서 발트펠트 중검술을 펼치면, 내 힘으로는 받아 낼 수 없다.

욜스가 지적한 대로 내 육체는 아직도 다른 사람들보다 부실한 편이니까.

‘그리고, 베리스리제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

베리스리제는 초고속의 슈라이에르 세검술을 사용한다.

찌르기 공격에 한정하자면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아직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나는 목검을 잡고 마력을 전개했다.

하얀빛이 깃들면서 검기가 형성되었다.

‘내 힘으로, 두 녀석 전부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내 검기를 보고, 세리느가 숨을 삼켰다.

자신의 검기에 뒤지지 않는, 아니 자신의 검기를 능가하는 완성도에 놀란 것이다.

“에르나스, 언제 그렇게…….”

“징벌동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거든.”

“징벌동에서 검기를 수련했다고요? 목검 소지가 허용되었을 리 없을 텐데.”

세리느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대체 어떻게 한 거죠?”

“글쎄, 상상에 맡길게.”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사람.”

예전처럼 세리느가 나한테 쓴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적개심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그러면 세리느, 한 판 부탁해도 될까? 징벌동에는 대련을 할 상대가 없었거든.”

“알겠어요. 대련 상대가 되어 드리죠.”

세리느가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기본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곧바로 자세를 바꿨다.

펜싱처럼 한쪽 팔과 다리를 앞으로 내민 자세였다.

“베리스리제인가?”

“네, 고르트의 발트펠트 중검술은 제가 흉내 내 봤자 의미 없을 것 같아서.”

세리느는 베리스리제의 슈라이에르 세검술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냥 흉내만 내는 수준이지만… 도움이 안 될까요?”

“아니, 도움이 될 거야.”

흉내만 내는 정도라도, 세리느의 실력이면 충분히 연습 상대가 된다.

“그럼 부탁할게.”

“네!”

살짝 미소 지으면서 세리느가 베리스리제처럼 찌르기 공격을 펼쳤다.

* * *

녹색 4반의 검술 실습 시간.

훈련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베리스리제는 가까이서 들려온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욜스 교수님, 에르나스가 벌써 복귀했다고요?”

“실습 도중이다, 베리스리제.”

베리스리제가 다가가자, 교관과 대화하고 있던 욜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하지만 그런 것에 주눅 들 베리스리제가 아니었다.

“무슨 사건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들었는데요.”

“에르나스가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다. 오히려 에르나스는 피해자 입장이지.”

“피해자?”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나중에 너희 가문 쪽에서 듣도록 해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베리스리제는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투덜댔다.

“그러면, 조만간 있을 진지전에 출전하겠군요.”

“그렇지. 그때가 되면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다.”

“따, 딱히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

“어, 어쨌든.”

헛기침을 한 뒤, 베리스리제는 다시 욜스에게 말을 걸었다.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교수님이 보시기에 에르나스의 실력은 어떤가요? 흑색 6반의 검술 강의도 담당하고 계시잖아요?”

“굳이 나한테 물어볼 필요가 있나? 에르나스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소문이 난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소문 같은 건 믿을 수 없어요. 저는 직접 눈으로 본 것만 믿으니까.”

베리스리제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특히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사기꾼에 관련된 거라면 말이죠.”

“사기꾼이라.”

“루퍼스 이그니아스와 레스터 랭커스터를 쓰러뜨렸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 어려워요. 분명 무슨 속임수를 쓴 거겠죠.”

“흠…….”

욜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순수한 실력으로 이겼다고 말하기 어렵긴 하지. 관점에 따라서는 속임수를 썼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죠? 역시 그 남자는…….”

“하지만 속임수도 결국 검술의 일부다.”

“네?”

“베리스리제, 눈앞에 있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만 검술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 전부터 검술 승부는 시작되고 있는 거니까.”

베리스리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철학적인 얘기인가요?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에는 관심이 없어서.”

“전술적인 얘기라 받아들여라, 베리스리제.”

욜스는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너도 타인과 대결할 때 페인트를 섞으면서 상대방을 속이지 않나? 그걸 직접 검을 맞부딪치기 전부터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때로는 이게 더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

“흐음, 그러면 에르나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만 않으면 제가 이기겠네요. 실력은 제가 더 뛰어날 테니.”

“속임수도 실력에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다, 베리스리제.”

베리스리제를 보면서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너한테 확신이 있다면 그걸 믿고 에르나스에게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지.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마치 에르나스가 이길 거라는 말씀 같네요.”

“그런 얘기는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너한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욜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제 에르나스를 만났을 때도, 헤어지기 전에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에르나스를 만나셨나요?”

“그래, 너하고 고르트 얘기도 했었지.”

“그, 그러면… 에르나스가 무슨 특별한 얘기라도 했었나요? 저에 대해서라든가…….”

베리스리제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다. 특별한 건 딱히… 아.”

“뭐, 뭔가요? 저에 대해서 무슨…….”

“아니, 너하고는 상관없다.”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 베리스리제 앞에서, 욜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헤어지기 전에 악수를 했는데, 이상하게 내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더군. 그게 좀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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