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3화 (2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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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징벌동 속에서 (2)

황족 전용 수련장.

황족 전용 무기고.

징벌동 지하 깊숙한 곳에는 이런 특별한 장소가 숨겨져 있었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대단한 명검들이라는 걸 알 수 있어.’

무기고에 진열되어 있는 명검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탄성을 질렀다.

레스터의 검은 목검 속에 숨기는 형태라서 모양새는 별 볼 일 없었는데, 여기 있는 검은 전부 디자인에도 공을 들인 것 같았다.

‘황족들이 쓰기 위한 검이니, 겉모양도 신경 썼겠지.’

기껏 만든 명검들을 이런 지하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멋대로 반출해서 다른 곳에 써먹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철혈검제의 후예들을 위해 준비해 둔 검들인데, 어찌 감히 일반 학생들이 휘두르도록 하겠는가.

‘그렇게 고이 간직해 둔 검들이 내 눈앞에 있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아직 이 검에 손댈 때가 아니다.

나는 무기고를 뒤로하고 야광초 풀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 앉은 뒤, 약병을 꺼냈다.

‘아까 교관이 건네준 적색 엘릭시르…….’

1차 시험에 통과하면서 받은 보상이다.

지난번 대항전에서 승리했을 때도 받았으니, 두 번째로 복용하는 엘릭시르가 된다.

나는 약병에서 적색 액체를 들이마셨다.

‘좋아. 이제는…….’

야광초 사이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동부식 마력연공법을 활용하여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적색 엘릭시르의 마력 정도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지.’

엘릭시르의 마력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체외로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전신의 혈맥으로 보내 순환시켜야 한다.

‘이번에는 주위의 야광초에서 전해지는 기운도 느껴야 해.’

야광초는 대지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

그 기운을 내 몸에 받아들이면서 마력을 운용하면, 더 많은 마력을 정착시킬 수 있다.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면서, 차분하게…….’

전신을 순환하는 마력을 조금씩 가슴에 정착시켰다.

무형(無形)의 심장 ‘마나 하트’에 마력이 제대로 저장되도록.

‘지난번에는 적색 엘릭시르의 마력을 90% 이상 정착시켰어. 하지만 이번에는…….’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마력을 제어했다.

혈맥을 흐르는 마력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제대로 내 몸에 정착할 수 있도록.

‘그 이상을 목표로 해야 한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소설 속에서 가짜 천재라 야유받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진정한 천재로 만들기 위해.

나는 집중력을 한계까지, 아니 한계 이상까지 끌어올렸다.

* * *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은은한 야광초의 빛 사이에서 몸을 일으킨 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후우…….”

그리고 가슴의 마나 하트에서 마력을 운용했다.

마나 하트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이 머리로, 팔로, 다리로, 전신으로 뻗어 나가며 육체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

나는 천천히 무기고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짧은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내려놓았다.

“이게 아니지.”

장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평소 사용하던 목검보다 훨씬 묵직했다.

그것을 들고 풀밭으로 나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자세였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마력을 끌어올렸다.

심장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을 오른팔로 보낸 뒤, 손에 든 장검을 향해 방출했다.

마력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칼날을 향해 밀어 넣었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마력이 칼날을 감싸면서 안정되기 시작했다.

“…….”

하얀 빛으로 감싸인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이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둘렀다.

칼날을 휘감은 마력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레스터의 소검보다 칼날이 훨씬 넓은데도…….’

상체뿐만 아니라 하체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텝을 밟으면서, 풀밭 위에서 연속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여기서… 버티컬 트리니티!’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대표적 기술.

전광석화 같은 삼연격을 허공에 펼쳤다.

날카로운 검기로 허공을 가르는 짜릿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거다.’

두 번째로 복용한 적색 엘릭시르의 마력은 나에게 완벽히 정착했다.

적어도 95% 이상… 아니, 100% 가까이 정착된 게 분명했다.

야광초의 기운과 조화를 이루면서 마력연공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력을 훨씬 더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어.’

장검의 칼날을 전부 다 휘감고도 마력이 남았다.

마력을 더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이것도 야광초 덕분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한 대로야.’

야광초가 발산하는 기운 속에서 호흡하며 마력을 운용한 결과다.

내 육체가 마력에 더욱 친화적인 상태가 되었다.

이미 나는 그래듀에이트 초입을 훨씬 넘어선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 이 정도라면…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도 쓸 수 있어.’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

마력 제어에 능숙해진 그래듀에이트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다.

마력 사용을 전제로 한 검술이기 때문에, 충분한 마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예 배우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그니아스 가문에는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이라는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 있지만, 적색 1반의 루퍼스 이그니아스는 일반 검술인 ‘이그니아스 기사검술’만 터득한 상태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을 배우는 건 2차 시험 이후…….’

2차 시험은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한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한 시험이다.

여기서 통과할 경우, 그동안 머물던 섬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그래듀에이트를 위한 교육을 받게 되며,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도 그때부터 배운다.

‘하지만, 나는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을 더 일찍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지.’

나에게는 유스레흐트가 있다.

그 힘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을 복사할 수 있다.

‘검술마다 요구하는 마력량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 복사할 수 있는 검술은 한정되어 있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쟁쟁한 그래듀에이트들.

그들 중에서 현재의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검술을 얻어 내야 된다.

‘그때까지, 여기서 최대한 준비를 해 둬야 해.’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무기고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소설 속 묘사대로라면,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에 적합하도록 마력 효율이 높은 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검들로 연습하면서, 그래듀에이트로서 마력을 활용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

‘다들 기다려라.’

야광초 풀밭을 걸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더 강해진 뒤 바깥으로 나갈 것이다.’

* * *

짜악!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윽!”

레스터 랭커스터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땅을 굴렀다.

귀싸대기 한 번에 얼굴 살이 찢어지고 이빨이 부러졌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마력을 담아서 후려쳤다면, 레스터의 머리 자체가 터져 버렸을 테니까.

“아,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한 채, 레스터는 머리를 조아렸다.

무서운 눈으로 레스터를 노려다보고 있는 중년의 남자… 랭커스터 공작, 헨리 랭커스터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이번 실패, 제가 반드시, 반드시 만회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어떻게 만회한단 말이냐.”

헨리에게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회할 방법이 있나?”

“그, 그게…….”

레스터는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든 지혜를 쥐어짜 내서 말하려 했지만, 헨리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아카데미 1차 시험에 탈락해서 퇴학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에게 누명을 씌우려다가 들통나 버렸지.”

“윽…….”

“칼레온 이그니아스가 직접 자필로 통보했더군. 내가 직접 답장을 써 줘야 했다.”

헨리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랭커스터 가문의 가주가,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에게 사과 편지를 써야 했단 말이다. 이 굴욕을… 어떻게 만회할 생각이지?”

“아, 아버지,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레스터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치자, 헨리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알겠다.”

“……!”

헨리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죽을 죄를 지었다면, 죽음으로 갚아야지.”

“아, 아버지…….”

“뭐 하고 있나, 빨리 자결해라.”

“으, 으으, 으흑…….”

레스터가 몸을 웅크린 채 눈물을 터뜨리자, 헨리가 혀를 찼다.

“못난 놈. 저딴 머저리가 ‘영재’라 불리며 추앙받고 있었다니.”

“으흑,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울음을 그쳐라. 죽고 싶지 않다면.”

“네, 네엡…….”

억지로 울음을 삼키면서, 레스터는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헨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레스터, 나는 너한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라면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1차 시험에서 탈락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레스터가 이마를 바닥에 박으면서 다시금 말했다.

“제가, 제가 어떻게든 만회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오로지 가문을 위해 살겠습니다. 랭커스터 가문의 위상이 추락하지 않도록 진력할 테니, 부디…….”

“다 소용없다. 아카데미 1차 시험에서 탈락해 버렸으니.”

“아, 아버지,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다고 해도, 가문의 이름을 빛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몬스터들을 토벌한다든가, 각지에서 암약하는 마교도들을 소탕한다든가, 그밖에도…….

“제가 어떻게든 만회를…….”

“끈질기군!”

헨리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기수는 다르단 말이다! 네가 일찌감치 탈락해 버린 이상, 랭커스터 가문은 낙오자가 된 것이다!”

“네……?”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듣고, 레스터는 눈을 깜박였다.

“아, 아버지, 이번 기수는 다르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헨리가 흠칫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너는 몰라도 된다.”

“네?”

“네가 알 바 아니란 말이다! 기밀 사항이니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마라!”

“기밀 사항……?”

대체 무슨 소리일까.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국가적인 기밀이라는 얘기일 텐데…….

“어쨌든, 네가 아카데미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우리 랭커스터 가문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한테 남은 길은, 다른 가문에게 협조하는 것뿐이다.”

“…….”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레스터가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다고 해서, 왜 다른 가문에게 협조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여기서 캐물어 봤자 혼만 날 게 뻔하기 때문에, 레스터는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레스터,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네?”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 중에서, 누가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를 것 같지? 역시 그 신동(神童)인가?”

“아, 그 녀석과는 직접 싸워 보지 못해서…….”

“그러면 에르나스는 어떻지?”

“…….”

에르나스.

그 이름을 듣자마자 레스터는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아, 아버지, 그 녀석,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루퍼스 이그니아스와 싸울 때, 그 녀석은 엄청난 돌격기를 펼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검술이 주특기인 줄 알고 그것만 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막상 싸워 보니… 에르나스는 랭커스터 소검술을 능숙하게 펼쳤습니다.”

“랭커스터 소검술을?”

“네, 저와 동등한 수준으로 보였습니다.”

“…….”

“게, 게다가 검기까지 썼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놈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레스터는 다급히 덧붙였다.

“어쨌든, 그 녀석이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라, 앞으로 랭커스터 가문에 큰 장애가 될 겁니다.”

“흐음…….”

헨리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 녀석이라면… 그 기밀을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군.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한 건가?”

“네?”

“그렇다면…….”

혼잣말을 하던 헨리가 다시 레스터를 쳐다봤다.

“레스터, 그 녀석이 지금 징벌동에 들어가 있을 거라 했나?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그곳 말이다.”

“아, 네, 맞습니다.”

“하루 이틀 만에 나오지는 않을 테고, 그러면 시간이 있군.”

“네……?”

“안 그래도 이 굴욕을 어떻게 갚아 줘야 할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지.”

헨리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징벌동에 자객을 보내겠다.”

“……!”

레스터는 숨을 삼켰다.

에르나스가 징벌동에 갇혀 있다는 점을 이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해 버리겠다는 얘기인가?

“지금 그 녀석은 그래듀에이트 초입 정도일 거다. 더 성장하기 전에 미리 싹을 꺾어 버려야지.”

“아, 아버지…….”

“걱정하지 마라. 이런 일에 익숙한 그래듀에이트를 보낼 테니.”

헨리가 냉혹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뒤탈 없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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