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2화 (22/212)

22화 징벌동 속에서 (1)

“에르나스가 징벌동에 들어가게 되었다고요?”

1차 시험이 끝난 밤.

세리느는 클로에의 얘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에르나스가 돌아오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징벌동이라니요!”

“징벌동이… 뭐지?”

옆에서 듣고 있던 슈미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클로에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징벌동은 아카데미의 감옥 같은 곳입니다. 섬 하나에 깊은 동굴이 있는데, 죄를 저지른 학생은 그곳에 갇히게 되죠.”

“왜 굳이 동굴에 가두는 거지? 그냥 감옥 하나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가둬야 될 때도 있기 때문이겠죠.”

“아, 그렇군.”

그래듀에이트라면 벽을 뚫고 탈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차라리 깊은 동굴 속에 가둬 놓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편이 더 확실하다.

“아니, 그런데 왜 에르나스 님이 그 동굴에 갇히는 거지?”

“그, 그래요. 그것부터 설명해 주세요, 클로에.”

“에르나스 님이 진검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로 다른 학생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하더군요.”

클로에의 설명을 듣고, 세리느도 슈미츠도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에르나스 님이 진검? 그런 걸 들고 다니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네, 에르나스 님이 몰래 반입한 게 아니라, 어쩌다가 시험장에서 입수한 거라고 합니다. 자세한 건 저도 아직 듣지 못했지만요.”

클로에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에르나스 님이 자진해서 출두했다고 합니다. 아직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금방 풀려나실 것 같다고 하더군요.”

“금방 풀려난다면… 다행이긴 한데 말이죠.”

세리느는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서 슈미츠도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에르나스 님은 몰래 진검을 숨기고 있다가 사람을 공격하실 분이 아니다. 진상이 밝혀지면 금방 풀려나시겠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쯧, 1차 시험 통과를 함께 축하하려고 했는데, 기분 잡쳤군.”

슈미츠가 머리를 긁으며 투덜댔다.

그 모습을 보며 클로에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대적으로 축하하는 건 어려웠을 거예요. 탈락자들도 있으니까.”

흑색 6반이 있는 섬에서는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시험에서 탈락한 사람 그리고 학우의 탈락을 슬퍼하는 사람의 울음소리였다.

“50명 중에 10명 가까이 탈락했으니… 합격한 사람들도 그렇게 기뻐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흥, 쓸데없는 우정이군.”

슈미츠가 차갑게 내뱉었다.

“어차피 머지않아 흩어지게 돼. 흑색 6반으로 똘똘 뭉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것도 그렇지만요.”

얼마 뒤, 2차 시험을 치르게 된다.

2차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이 섬을 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탈락자는 이 섬에 남아서 재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2차 시험에 대비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상한 동굴에 갇히게 되셨으니 에르나스 님도 답답하시겠군.”

“그러게 말이에요.”

그렇게 말한 뒤, 클로에가 세리느에게 시선을 향했다.

“세리느 님, 에르나스 님이 안 계신 동안에는 세리느 님이 임시 대표를 맡아 주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제가요?”

“지난번에 에르나스 님이 저한테 부탁하셨어요. 본인이 불의의 사태로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 세리느 님이 대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이죠.”

“에, 에르나스가 그런 말을…….”

세리느는 잠시 고민했다.

에르나스가 없는 사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대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에르나스가 세리느를 지목해서 뒷일을 맡겼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에르나스는 왜 저한테 직접 말 안 하고 클로에한테만 말한 거죠?”

“글쎄요? 세리느 님이 맨날 쌀쌀맞은 태도여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저처럼 나긋나긋한 태도로 대해 줘야죠.”

“벼, 별로 쌀쌀맞지 않았거든요?”

세리느가 얼굴을 붉히자, 옆에서 슈미츠가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평소에 에르나스 님한테 공손하게 구는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씀 없으셨던 거지? 젠장…….”

바닥을 발로 차며 분통해하는 슈미츠를 보며, 클로에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세리느 님, 대표 역할 맡아 주실 건가요?”

“어쩔 수 없네요.”

세리느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흑색 6반을 이끌도록 할게요. 에르나스가 돌아올 때까지, 흑색 6반을 지키겠어요.”

에르나스가 트집 잡을 구석 하나 없도록, 완벽하게 흑색 6반을 이끌어 나가겠다.

세리느는 그렇게 다짐했다.

* * *

“이쪽이다, 에르나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 교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나는 동굴 입구로 들어섰다.

아카데미의 죄인을 가두는 징벌동이었다.

“레스터는 지금 다른 곳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징벌동에는 갇히지 않겠지만.”

“벌써 퇴학 처리가 끝난 거군요.”

“지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퇴학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교관을 사주해서 몰래 진검을 반입하고, 다른 학생을 모함하기까지 했으니… 랭커스터 가문에 정식으로 항의하게 되겠지.”

“…….”

교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레스터는 내가 예상한 대로 움직여 줬어.’

레스터 랭커스터는 소인배다.

어떻게든 나한테 앙갚음을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나는 레스터에게 좋은 ‘건수’를 던져 주기로 했다.

레스터가 몰래 반입한 진검을 빼앗아 간 것이다.

‘내가 진검을 가져가면, 반드시 아카데미에 고발할 거라 생각했지.’

어떻게든 에르나스를 엿 먹여야 한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레스터는 에르나스가 진검을 소지하고 있다고 고발할 수밖에 없다.

진검을 아카데미에 반입한 건 레스터 본인이지만, 그건 어떻게든 얼버무리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행동할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일부러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진검을 자진해서 제출했다.

결국… 레스터는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되었다.

“너는 자진해서 진검을 제출했고, 스스로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으니 처벌은 가벼울 거다.”

“진검으로 학우에게 부상을 입힌 뒤, 그걸 계속 들고 다닌 건 사실입니다. 제대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녀석 참… 그래 봤자 며칠 갇혀 있고 끝일 거다. 길어 봤자 일주일이겠지.”

교관은 나한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교관 눈에는 내가 원리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 하는 성실한 인물로 보일 것이다.

“이쪽에서 생활하면 된다. 매일 아침마다 하루 분량의 빵과 물을 가져다줄 거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정된 장소에서 함부로 이동하지 마라. 자칫하면 이상한 곳으로 떨어져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표식이 있다고 하셨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러면 난 이만… 아차.”

교관이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붉은색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었다.

“깜빡할 뻔 했군. 1차 시험 통과자에게 주어지는 엘릭시르다.”

“지금 주시는 겁니까?”

“다른 학생들도 지금쯤 약을 받아 복용하고 있을 거다. 같은 시간에 복용할 수 있도록 해 주라는 게 교수님들 지시다.”

“감사합니다.”

교관은 엘릭시르를 건네준 뒤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나는 어두운 동굴 안에 홀로 남게 되었다.

“후우…….”

나는 기지개를 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내가 일부러 여기에 들어온 줄은 아무도 모르겠지.’

그렇다.

나는 단순히 레스터를 엿 먹이기 위해 자진 출두 한 것이 아니다.

이 동굴에 들어올 필요가 있었기에, 자진해서 처벌을 받겠다고 한 것이다.

‘이 징벌동은 소설 중반에 주인공이 갇히게 되는 곳이야.’

주인공 아칸델은 모종의 문제를 일으켜 징벌동에 갇히게 된다.

소설에서는 꽤 스토리가 진행된 이후에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나는 이걸 앞당겼다.

‘지금 흑색 6반에 있어 봤자, 고만고만한 사건들밖에 벌어지지 않아.’

1차 시험이 끝난 뒤, 소설은 한동안 쉬어 가는 내용이 된다.

수업과 실습을 진행하면서 캐릭터들 사이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는 흑색 6반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다 알고 있고, 캐릭터들의 속사정도 알 만큼 안다.

다 아는 내용을 복습하고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고, 굳이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징벌동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더 강해져야 하니까 말이지.’

나는 이동을 시작했다.

동굴 안은 어두웠다.

하지만 마력을 눈으로 집중하자 제대로 보이게 되었다.

‘편리하군.’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자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지형이 나타났다.

갑자기 땅이 꺼지는 곳이 있어서, 자칫하면 추락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추락사한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는 설정이고.’

하지만, 나는 이미 마력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게다가 리히테나워 경신술까지 익힌 상태.

여기서 떨어진다고, 죽지 않는다.

“…….”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감각.

도중에 바위가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충돌할 뻔했지만, 리히테나워 경신술로 대응했다.

‘방심해서는 안 돼……!’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하면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해 몸을 놀렸다.

이윽고 나는 지하 깊숙한 곳에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후우…….”

내가 착지한 곳은 지하수가 흘러 만들어진 비좁은 공간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전진했다.

10분 정도 걷자 막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소설 묘사대로야.’

나는 주위를 살폈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암석 중간에 살짝 질감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거인가.’

그곳에 손을 대고 살짝 마력을 흘려 보냈다.

검기를 펼칠 때와 비슷하게 말이다.

“……!”

아무것도 없던 동굴 벽에, 빛나는 문자가 표시되었다.

그리고 주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린다!’

쿠쿵!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문이 열렸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느껴져.’

은은한 빛이 퍼져 있는 공간이었다.

마력을 눈에 집중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하얀 풀 덕분이다.

‘야광초(夜光草)…….’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풀밭.

나는 조심스레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이 공간에서 이렇게 야광초가 자랄 수 있는 건, 대지의 기운을 흡수하여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지.’

야광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

이건 대지의 기운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이다.

‘먼 옛날,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 장소가 발견되었어.’

동굴 속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야광초 풀밭.

이곳은 비밀스러운 수련 장소로 개조되었다.

아카데미에서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 ‘황족’을 위한 전용 수련장으로.

‘하지만 결국 황족들은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게 되었고, 그냥 잊히게 되었지.’

현재 이 동굴은 징벌동으로만 사용된다.

이곳에 황족 전용 수련장이 숨겨져 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이곳은 오로지 나만이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풀밭 중앙에 솟아 있는 비석에 마력을 불어넣자, 주위가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리고 벽이 열리면서 새로운 공간이 출현했다.

‘좋아. 이것도 소설하고 똑같군.’

기대감에 휩싸인 채,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있던 건…….

“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단검, 소검, 장검, 대검… 황족들을 위해 준비된 수많은 명검이 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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