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그래듀에이트의 길 (4)
보름 전.
나는 흑색 6반의 비올라 오리셔스를 상대로 ‘능력 재현’을 시도했다.
비올라는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조연이기 때문에 이해도는 충분했다.
내가 비올라에게서 얻어낸 스킬은 A랭크의 오리셔스 수렵술… 북부의 몬스터 사냥꾼인 오리셔스 가문의 사냥 스킬이었다.
오리셔스 수렵술에는 몸을 숨기고 있는 몬스터를 찾아내는 기술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레스터 옆에는 항상 유세르가 있으니까 말이야.’
레스터의 측근인 유세르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꽤 수준 높은 은신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유세르의 은신술도 비올라의 오리셔스 수렵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비올라에게서 오리셔스 수렵술을 얻어 낸 것이다.
‘이걸로 유세르를 쓰러뜨려 레스터를 고립시켰고… 검도 손에 넣은 거지.’
지금 내 손에는 레스터가 몰래 아카데미에 반입한 진검이 들려 있다.
평소 유세르에게 맡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랭커스터 소검술(S랭크)
[바스티안 기사검술(A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오리셔스 수렵술(A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
오늘 연무장에서 레스터와 긴 악수를 하는 것으로, S랭크의 랭커스터 소검술을 터득했다.
랭커스터 소검술은 6대 검술명가인 랭커스터 가문이 자랑하는 소검 전투술로,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비(非)그래듀에이트 검술 중에서는 손꼽히는 완성도를 지녔다.
이런 검술을 무려 S랭크의 숙련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눈을 부릅뜨고 레스터가 소리쳤다.
“그건 랭커스터 소검술의 제6형(形)! 어떻게 네가 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지?!”
“궁금한 게 너무 많군, 레스터.”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똑똑한 머리로 추리해 보시지.”
“제대로 대답해라!”
레스터가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랭커스터 소검술은 가문 내부 사람들에게만 전수되는 검술이다! 설마 분가(分家)의 사람을 매수하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궁금하면, 결투라도 할까?”
“뭐라고?”
결투.
그 단어에 레스터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서는 결투를 장려하지. 갈등이 벌어졌을 때 검술 대결로 깔끔하게 결판을 내라는 거야.”
“그, 그래서…….”
“네가 이기면, 내가 어떻게 랭커스터 소검술을 익혔는지 알려 주지.”
“……!”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로서, 자기 가문만의 독문 검술이 어떻게 유출되었는지 알아내고 싶을 것이다.
레스터는 이 제안을 결코 거부할 수 없다.
“그 대신, 내가 이기면…….”
나는 길이 60cm 정도의 소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이 검을 나한테 넘겨줬으면 좋겠군.”
“뭐, 뭣……!”
레스터가 눈을 크게 떴다.
“네놈, 그 검이 뭔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수많은 명검을 제작해 온 슈페르트 공방(工房)에서 만든 검이지. 정교한 구조를 보니 1급 장인(匠人)인 트로츠 슈페르트의 솜씨군.”
“……!”
내가 정확히 맞히자 레스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다. 나도 거금을 주고 만든 검이라, 너한테 넘겨줄 수는 없다.”
“그러면 어쩔 수 없군. 교관에게 레스터 랭커스터가 진검을 몰래 반입했다고 고발하는 수밖에.”
“……!”
내 협박에 레스터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물론, 그렇게 압수당해도 너희 가문의 힘을 써서 회수할 수 있겠지만…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이 되겠지.”
“크윽……!”
레스터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너는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건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어, 내 검까지 빼앗으려고?”
“그렇다면 어쩔 거지?”
“좋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레스터가 목검을 치켜들었다.
“나도 이번 시험을 이용해 너를 손봐 줄 생각이었다. 시험에서 탈락하게 만들어 아카데미에서 쫓아내려고 했었지.”
레스터가 나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의 목검도 60cm 길이의 특제 목검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모습은 완전히 똑같았다.
“봐주지 않겠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고맙군, 나 따위에게 전력을 다해 주다니.”
“허세 부리지 마라……!”
비가 쏟아지는 새벽의 숲.
그 안에서 우리는 동시에 움직였다.
첫 번째로 펼친 공격은 양쪽이 똑같았다.
“윽……!”
“……!”
진검과 목검이 부딪쳤다.
그렇다고 해서 목검이 잘려 나가지는 않았다.
마법적인 특수 처리를 한 목검이기 때문에, 진검과 부딪쳐도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칼날이 없어서 사람을 벨 수 없을 뿐이다.
“이 녀석……!”
레스터가 목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랭커스터 소검술 특유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이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짧으면서 신속하다!’
예전 같았으면 순식간에 빈틈을 공략당해 결정타를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레스터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랭커스터 소검술을 레스터와 동일한 수준으로 터득한 상태였으니까.
“네놈, 정말로 랭커스터 소검술을……!”
랭커스터 소검술을 활용해, 레스터의 랭커스터 소검술을 되받아친다.
내 육체 능력은 레스터보다 약하지만, 마력을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레스터와는 달리… 체력을 온존한 상태니까.’
그동안 나는 동굴 안에 숨어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비올라가 잡아 온 토끼로 허기도 채웠다.
나를 찾아 계속 산속을 헤매고 다녔을 레스터하고는 달리 체력을 온존한 상태인 것이다.
“윽……!”
하지만, 레스터도 만만치 않았다.
이를 악물면서 연속적인 공격을 펼쳤고, 내 빈틈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레스터의 신속한 공격이 급소를 찌를 것이다.
“너 따위에게… 질 수 없단 말이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레스터가 소리쳤다.
“나는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 6대 검술명가의 정점에 오를 남자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레스터.”
나는 레스터의 공격을 받아치면서 대꾸했다.
“너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는 수두룩한데 말이다.”
“네놈……!”
“어차피 네가 6대 검술명가의 정점에 오를 일은 없다.”
쾅!
목검이 움푹 파이는 모습을 보고 레스터가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마법적으로 강화한 목검이라도, 슈페르트 공방에서 제작한 명검에 이렇게 자주 충돌하면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자리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차지할 테니 말이다.”
“건방진……!”
레스터가 포효하면서 더 화려한 기술을 펼쳤다.
마치 검을 들고 춤을 추는 듯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나는 레스터가 무리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체력 배분을 제대로 못 하고 있군.’
내 도발에 흥분해서, 너무 조급하게 공격하고 있다.
평소의 레스터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저 공격을 제대로 방어해 낸다면, 레스터의 체력을 더 많이 소모시킬 수 있다.
“……!”
파파팟!
레스터의 연속된 공격을 완벽하게 흘려 보냈다.
S랭크의 랭커스터 소검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네놈……!”
레스터가 거친 숨을 내쉬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쏟아지고 있기에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기습적인 돌진기가 특기인 줄 알았는데, 랭커스터 소검술도 나하고 동등한 수준이라니…….”
“…….”
“네가 무슨… 검술 천재라도 된다는 것이냐?”
그 질문을 듣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가짜 천재, 위천재(僞天才).
소설 속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처럼, 나는 진짜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경지에 도달할 생각이다.”
가짜 천재가 아닌, 진짜 천재로.
그것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으로 다시 태어난 나의 목표다.
* * *
‘정말로 건방진 놈……!’
레스터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나도 영재(英才)라 불리며 칭송받았던 남자다. 너 같은 놈한테 질 수는 없다!’
하지만, 레스터가 불리한 상황인 건 사실이었다.
에르나스는 진검을 들고 있고, 체력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한편 레스터의 목검에는 흠집이 많아지고 있고, 체력도 이제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랭커스터 소검술의 비기(秘技) 몇 가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에르나스가 그런 기술들까지 다 숙지하고 있고, 파훼법조차 알고 있다면… 레스터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 방법밖에 없다.’
레스터는 비를 맞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마나 하트를 활성화했다.
‘내 마력을… 목검에 불어 넣는다!’
마력을 칼날에 불어넣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
마력 제어에 능숙해야 하며, 마력량 자체도 충분히 많아야 한다.
레스터는 자신이 이미 마력을 충분히 잘 제어한다고 생각하지만… 마력량은 살짝 부족하다.
적색 엘릭시르의 마력을 70% 정도밖에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
원래 레스터는 천천히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지금 여기서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전해야 한다.
“후우…….”
혈맥을 타고 흐르는 마력을 오른손에 집중했다.
그리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목검 쪽으로 마력을 흘려 보냈다.
‘마력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된다! 그러면 마력이 흩어져서, 기껏 엘릭시르를 복용해서 얻은 마력을 잃게 돼!’
목검에 서서히 하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순조롭게 마력이 깃드는 모습을 보면서, 레스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라면……!’
레스터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목검을 치켜들었다.
“어떠냐, 에르나스. 나는 이미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하지만, 그 순간.
레스터는 숨이 멎는 듯했다.
에르나스가 들고 있는 진검에도… 하얀 빛이 깃들고 있었으니까.
“무엇을…….”
현기증을 느끼면서, 레스터는 입을 열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에르나스…….”
“무엇을 하고 있냐니.”
빗줄기 속에서,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에르나스가 대꾸했다.
“네가 방금 말했지 않나.”
“내, 내가?”
“그래, 레스터.”
에르나스가 자세를 바꿨다.
랭커스터 소검술의 제7형(形).
상대방에게 결정타를 먹일 수 있다고 확신할 때 취하는 자세.
“그래듀에이트의 경지다.”
“……!”
레스터는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에르나스가 전개한 마력이 더 뚜렷해 보였다.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너 따위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에르나스가 마력을 더 잘 제어한단 말인가?
에르나스가 엘릭시르에서 더 많은 마력을 흡수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너 따위가, ‘영재’라 불리는 이 레스터 랭커스터보다 더 뛰어날 리가……!”
바로 그때.
레스터의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마력의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자 목검에 전개되었던 마력이 주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앗……!”
엘릭시르를 복용해서 손에 넣은 마력이, 사라져 버린다.
백색 5반의 ‘영재’ 레스터 랭커스터는… 아직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전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 에르나스가 움직였다.
레스터는 다급히 방어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하얀 빛을 휘감은 칼날이, 레스터의 목검을 완전히 절단해 버렸다.
‘저것이야말로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 검기(劍氣)!’
절망적인 패배감을 느끼는 레스터를 향해, 에르나스의 검기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