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신입생 대항전 (3)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A랭크)]
[유스부르크 유검술(A랭크)]
[하르트만 쾌검술(A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
오늘 아침, 나는 슈미츠에게서 하르트만 쾌검술을 복사했다.
지난번에 안네리제에게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획득하면서 발생한 페널티는 12일이 경과해서 사라진 상태였다.
‘하르트만 쾌검술은 전형적인 남부 검술… 속도를 추구하지.’
하르트만 쾌검술은 마력 없이 사용하는 검술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속도를 자랑한다.
슈미츠와 대결했을 때도, 나는 하르트만 쾌검술의 속도에 대응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지만 하르트만 쾌검술만으로 루퍼스를 쓰러뜨릴 수는 없어.’
6대 검술명가 출신인 루퍼스는 이미 이그니아스 기사검술 S랭크에 도달했다.
이그니아스 기사검술 S랭크면 하르트만 쾌검술 A랭크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하르트만 쾌검술에…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조합한다.’
아카데미의 전용 시설에서 훈련을 받아야 터득할 수 있는 리히테나워 경신술.
이 뛰어난 경신술을 하르트만 쾌검술에 조합하면, 험준한 지형에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빠르게 기습하는 것이 가능하다.
‘쾌검술과 경신술의 조합… 이거면 루퍼스를 쓰러뜨릴 수 있다.’
원래 이건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애송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신술은 어디까지나 이동용 기술이고, 다른 유파의 검술과 조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작가다.
소설 속에 묘사되었던 온갖 심득(心得)의 창조자라 할 수 있다.
‘세리느를 쓰러뜨렸을 때, 바스티안 기사검술과 로렐리안 실전검술을 조합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기술을 조화시켜, 새롭게 진화시킨다.
본래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올라야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촤아악!
빗줄기를 뚫고, 험준한 지형을 뛰어넘어, 루퍼스를 향해 돌진한다.
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걸 깨닫고 루퍼스가 다급히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안 그래도 루퍼스의 이그니아스 기사검술은 형식을 중요하는 동부식 검술.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운 지형에서 다급히 방어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다.
“네놈……!”
목소리를 높이는 루퍼스를 향해 검을 뻗는다.
하르트만 쾌검술과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조합한, 초고속의 돌진기.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낼 수 있다.
“커억……!”
루퍼스의 불완전한 방어를 뚫고, 내 공격이 꽂혔다.
* * *
“이럴 수가!”
높은 위치에서 관전하고 있던 교수들이 경악했다.
적색 1반의 대표인 루퍼스가, 흑색 6반의 대표인 에르나스에게 당해 비탈에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어떻게 접근한 것이지?”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녀석이 어떻게 저런 경신술을……!”
“게다가 경신술에서 공격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러웠어! 그것 때문에 루퍼스도 대응하지 못한 거야!”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도룡검’ 욜스가 흑색 6반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에르나스가 루퍼스를 쓰러뜨릴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다.
“내 아들이… 단 두 번의 공격만으로 제압당했다고?”
루퍼스의 아버지, ‘염옥검’ 칼레온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곳에 있는 교수들 중에서 가장 충격이 컸던 건 역시 칼레온이었다.
6대 검술명가의 자식들 중에서 최약체라 생각했던 에르나스에게 당하다니…….
“아주 훌륭했습니다. 작전도 잘 짰고 말입니다.”
“……!”
칼레온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욜스가 말했다.
“에르나스는 다른 학생들을 이용해 일부러 루퍼스를 꾀어 낸 것 같습니다. 루퍼스가 험준한 지형을 단독으로 돌파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죠.”
“아, 역시 그렇군요!”
“처음에 흑색 6반 학생들이 밀리는 척한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었군요!”
“세리느 바스티안과 슈미츠 하르트만이 나선 것도 루퍼스를 유인하기 위한 술책……!”
모든 걸 이해한 교수들이 경탄했고, 칼레온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루퍼스가 지나갈 위치에 매복해 있던 에르나스는, 일단 검을 던져 기습을 했습니다. 그걸로 루퍼스를 흥분시킨 뒤, 날카로운 돌진 공격으로 완벽히 제압한 것이지요.”
“아……!”
루퍼스는 완전히 기절한 듯했다.
에르나스가 비탈을 내려가 루퍼스를 향해 접근했고… 그의 가슴에서 명찰을 쥐어뜯었다.
“오오……!”
“적색 1반의 명찰을……!”
에르나스가 보라는 듯이 명찰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교관이 호각을 불었다.
“적색 1반의 명찰이 흑색 6반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이번 대항전은 흑색 6반의 승리로 끝났다!”
“와아아아……!”
저 멀리서 흑색 6반 학생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적색 1반 학생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으로 수준 높은 싸움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대항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맞습니다, 욜스 교수님.”
“에르나스에게서는 청색 2반의 ‘신동’, 백색 5반의 ‘영재’ 이상의 가능성이 느껴집니다.”
다른 교수들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욜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에르나스는… 검술의 천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검술의 천재.
그 말을 듣고, 칼레온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 * *
“에르나스 님의 작전 덕분에 이겼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른 학생들과 합류하니, 다들 나를 둘러싸고 환호했다.
“에르나스 님 말대로, 자신감을 갖고 반격하니 놈들도 당황하더군요!”
“확실히 평균적인 실력은 적색 1반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만, 우리가 거세게 밀어붙이니 놈들의 진형이 금방 무너졌습니다!”
“그래, 아까도 말했지만 놈들은 루퍼스의 지옥 훈련 때문에 체력에 여유가 없는 상태였어.”
루퍼스는 적색 1반 학생들을 철저히 단련시켰다.
하지만 적절한 휴식을 취하게 하지 않아, 다들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 점을 공략한다면 흑색 6반이 적색 1반을 압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리느 님과 슈미츠 님이 앞장서서 적색 1반의 진형을 무너뜨려 줬습니다.”
“아, 그렇지.”
클로에의 말을 듣고, 나는 세리느와 슈미츠에게 시선을 향했다.
“두 사람 다 수고했어. 이번 승리는 너희들이 제 역할을 해 준 덕분에 가능했던 거야.”
“아니요, 저는 그냥…….”
“에르나스 님의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세리느와 슈미츠가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르나스 님, 저한테는 칭찬 안 해 주시나요?”
클로에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에르나스 님이 안 계시는 동안, 전체 학생들을 지휘한 건 저였는데요.”
“아, 클로에도 수고 많았어.”
이번 대항전에서 내 작전을 가장 잘 이해한 건 클로에였다.
검사로서의 기량은 약간 부족하지만, 이런 부분은 역시 클로에가 가장 우수하다.
“세리느와 슈미츠, 클로에뿐만 아니라… 너희들 모두 수고했다.”
나는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걸로 우리는 첫 번째 승리를 거뒀다. 이제 우리에게 엘릭시르가 주어지겠지.”
“엘릭시르……!”
마력을 증진시키는 영약(靈藥), 엘릭시르.
이번 대항전에서 승리한 반에는 엘릭시르가 주어진다.
처음으로 엘릭시르를 복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걱정입니다.”
슈미츠가 중얼거렸다.
“저희는 아직 연공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습니다. 엘릭시르의 마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되겠지.”
슈미츠의 마음도 이해가 되긴 했다.
연공법도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에 포함되지만, 우리는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상태다.
입학하기 전에 연공법을 미리 수련해 온 사람이 아니면 엘릭시르의 마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할 것이다.
‘동부식 마력연공법을 터득하고 온 세리느는 마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나도 ‘능력 재현’으로 세리느에게서 동부식 마력연공법을 터득한 상태다.
엘릭시르의 마력을 100%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 내 안에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마력을 다루는 검사, 그래듀에이트.
그 경지에 도달하면, 검술 아카데미의 진짜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 * *
“으윽…….”
루퍼스는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카데미의 의무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젠장, 그러면…….”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시합장에서 굴러떨어졌던 걸 생각해 내고 루퍼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크윽…….”
갈비뼈 부근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에르나스의 공격이 명중한 자리였다.
“뼈에 금이 간 건가……?”
“그렇다, 못난 놈.”
“……!”
엄중한 목소리를 듣고, 루퍼스는 숨을 삼켰다.
의무실 문을 열고 아버지인 칼레온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 아버지, 저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에게 패배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윽…….”
루퍼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동안 얕보았던 에르나스에게 패배했다는 건 변명의 여지 없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네가 그놈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첫 번째 엘릭시르를 네가 차지했어야 했는데.”
칼레온의 비난에 루퍼스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녀석이 입학시험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걸 더 강하게 어필할 걸 그랬군. 아예 퇴학을 시켰어야 하는데.”
“아, 아버지, 그것 말입니다만.”
루퍼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입학시험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얘기… 아무래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제가 느끼기에… 에르나스는 분명 실력이 있는 놈이었습니다.”
직접 상대해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에르나스는 루퍼스보다 훨씬 뛰어난 경신술을 펼쳤다.
경신술에서 이어지는 돌진 공격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에르나스는 분명히 실력 있는 검사였다.
“굳이 부정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순수한 실력만으로 입학시험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만한 놈이었습니다.”
“…….”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그동안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 녀석의 입시 부정은 굳이 더 파헤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무의미한 일일 테니까.
“의외로군. 네가 그렇게 순순히 에르나스의 실력을 인정하다니.”
“이렇게 완패를 해 버렸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굴욕감을 느끼면서 루퍼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까지 에르나스가 다른 검술명가와의 대결을 피했던 건, 형편없는 실력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
“훗날 아카데미에서 벌어질 경쟁을 대비해, 진정한 실력을 숨기고 싶었을 뿐입니다.”
예전에 에르나스는 찻잔이 깨져서 손을 다쳤다는 이유로 루퍼스와의 대련을 취소했다.
그때 루퍼스는 에르나스가 겁쟁이라고 비웃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야심가입니다. 6대 검술명가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예전부터 준비를 해 왔던 겁니다.”
“…….”
“아버지, 저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다음에는 반드시 에르나스를 제 손으로 쓰러뜨리겠습니다.”
루퍼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칼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도 너한테 빨리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지만… 그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네?”
“백색 5반의 ‘영재’를 알고 있겠지?”
“영재… 레스터 랭커스터 말입니까?”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
그는 백색 5반의 대표를 맡고 있다.
오늘 있었던 대항전에서는 ‘신동’이 이끄는 청색 2반을 꺾고 승리를 거뒀다.
“그 녀석이 우리보다 먼저 움직일 거다.”
“그렇다면……!”
“그래.”
칼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에르나스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