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4화 (14/212)

14화 신입생 대항전 (1)

신입생들이 들어온 지 2주가 지났다.

내일 있을 신입생 대항전을 앞두고, 아카데미 본관에서는 교수들에 의한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내일 날씨도 맑을 것 같으니, 예년처럼 제1실습장에서 대항전을 실시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시합 순서가 어떻게 되지요?”

“오전에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시합을 가장 먼저 실시하고, 오후가 되면 청색 2반과 백색 5반의 시합을 실시할 겁니다. 마지막이 적색 1반과 흑색 6반의 시합입니다.”

“첫 번째 시합은 그냥 평범할 것 같고… 두 번째 시합이 가장 기대되는군요.”

“그렇지요. 어렸을 때부터 이름 높았던 ‘신동(神童)’과 ‘영재(英才)’ 두 사람이 격돌하니까 말입니다.”

“청색의 신동과 백색의 영재… 신입생답지 않은 수준 높은 시합을 볼 수 있겠군요!”

교수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 청색 2반과 백색 5반이 격돌하는 두 번째 시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날렸던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를 거둘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었다.

“세 번째 시합은 어떻습니까?”

“음, 흑색 6반은… 입학시험 수석과 차석이 있는 반이지요.”

“입학시험이야 필기시험 점수도 포함되니, 거기서 수석이나 차석을 차지했다고 해서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지요.”

“특히 수석을 차지한 바스티안 가문의 딸은 6대 검술명가 출신도 아니고, 격이 좀 떨어지죠.”

“차석에게 대표 자리도 넘겨줬다고 하니, 별거 아닐 것 같습니다.”

“차석인 란즈슈타인 가문의 자식은… 6대 검술명가 출신이기는 해도 이런저런 안 좋은 얘기가 많더군요. 솔직히 좀 의문스럽습니다.”

흑색 6반 얘기가 나오자, 과도하게 깎아내리는 발언이 많아졌다.

이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칼레온 이그니아스 교수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었다.

“한편 적색 1반은… 루퍼스 이그니아스가 대표를 맡고 있었죠.”

“루퍼스 군은 아주 재능이 뛰어난 학생입니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 따위에게 지지 않겠죠.”

“카리스마가 대단해서 이미 적색 1반 학생들을 다 휘어잡았다더군요. 모든 학생들이 휴일도 반납하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거 세 번째 시합은 루퍼스 군의 적색 1반이 승리할 것으로 봐도 되겠군요!”

아들인 루퍼스를 칭찬하는 얘기가 연달아 나오자, 칼레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을 제치고 정점에 오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였다.

“글쎄요. 그렇게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 다른 교수들의 의견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른쪽 뺨에 흉터가 있는 중년의 교수… 도룡검(屠龍劍) 욜스 칼레시우스였다.

“2주 동안 지켜보니, 세리느 바스티안은 수석으로 입학할 만한 자격이 있는 학생이더군요.”

“요, 욜스 교수님은 그렇게 보십니까?”

“네, 그동안 저는 백색 5반 학생들도 가르쳤지만… 세리느 바스티안은 백색 5반의 ‘영재’에 못지않은 재능을 지녔다고 느꼈습니다.”

“……!”

“제 생각이지만, 세리느 바스티안은 6대 검술명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소평가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욜스는 별로 좋은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전장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황제에게 ‘도룡검’의 칭호까지 받은 위대한 검사다.

그 욜스가 직접 보면서 내린 평가니,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석인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쪽은… 재미있는 아이더군요.”

“재미있는 아이? 그게 무슨 뜻이죠?”

“종합적인 실력은 세리느 바스티안보다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대결에서는 세리느 바스티안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매우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가, 감각?”

“승리의 냄새를 맡는 후각이라고 할까요. 다른 학생과 대련하는 모습도 지켜봤습니다만, 상대의 허를 찌르는 묘수로 승리를 거두더군요.”

욜스가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적색 1반의 루퍼스 이그니아스를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어느 쪽이 우위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적색 1반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오오……!”

욜스의 평가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아까 전까지 흑색 6반을 폄하하던 교수들도 흥미로워하는 표정이었다.

오직 칼레온 이그니아스만이 인상을 찡그린 채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적색 1반의 훈련장.

그곳에서 루퍼스 이그니아스는 교관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칼레온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욜스 교수님이 흑색 6반을 꽤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네, 세리느 바스티안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경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 중립을 유지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 교관은 칼레온의 수하다.

그래서 그동안 계속 루퍼스에게 정보를 전달해 왔다.

“흥, 세리느 바스티안이라면 몰라도,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따위를 왜 경계하라는 건지.”

“루퍼스 님, 그래도 욜스 교수님의 평에 의하면…….”

“나는 예전에 에르나스와 대련을 할 기회가 있었다.”

“아, 그랬습니까?”

“그래, 3년쯤 전이었나?”

루퍼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녀석, 찻잔이 깨지는 바람에 손가락을 다쳤다고 대련을 취소하더군!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어!”

“저, 정말로 다쳤던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나하고 대련하는 게 두려워서 핑계를 댄 거야!”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루퍼스가 계속 말했다.

“검술명가의 후계자 중에 그 녀석과 직접 대결해 본 적은 한 명도 없을걸? 그 녀석은 좀 실력 있어 보이는 사람하고는 결코 싸우지 않아! 가끔 무슨 시합에서 이겼다는 소문이 돌 때도 있었지만, 항상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

“설마…….”

“돈이나 권력을 써먹은 거야! 정말로 비겁한 녀석이지!”

그렇게 소리치고, 루퍼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욜스 교수도 그 녀석한테 속았을 가능성이 높아. 아주 비열하고 교활한 놈이거든.”

“으음, 그렇다면…….”

“하지만, 이렇게 대항전에서 나하고 맞붙게 된 이상…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을 거다.”

그동안 에르나스는 돈이나 권력을 사용해 자신의 진짜 실력을 감춰 왔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다.

루퍼스는 에르나스를 확실히 짓밟아서 그 정체를 폭로해 줄 생각이었다.

“내 검으로 놈의 가면을 벗기고… 란즈슈타인 가문은 이그니아스 가문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걸 증명해 줄 테니까.”

“네…….”

“그러니, 내가 신경 쓸 건 세리느 바스티안 정도다. 아마 그 여자의 대결이 가장 중요하겠지.”

그렇게 말한 뒤, 루퍼스는 교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흑색 6반은 어떤 작전을 세우고 있는지 확인해 봤나?”

“그쪽 섬을 들락날락하는 제 동기에게 들었는데, 그냥 평범한 훈련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시합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더군요.”

“준비가 부족한 놈들이군.”

이미 루퍼스는 시합장의 상세한 지도까지 입수한 상태다.

그걸 바탕으로 적색 1반의 학생들을 철저히 훈련시켰다.

“우리는 눈 감고도 진형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마쳐 놓은 상태인데 말이다.”

“시합장은 바위가 많은 험준한 섬입니다. 사전 정보 없이 발을 들이면 당혹스럽겠죠.”

“그래, 그렇게 준비 안 된 놈들을 짓밟아 주면 되는 것이지.”

이미 적색 1반은 준비는 마쳤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태평하게 시합장에 나타날 흑색 6반을… 철저히 짓밟아 줄 것이다.

* * *

대항전 당일.

흑색 6반은 아침부터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드디어 이 섬에서 나가게 되었군.”

“시합용으로 쓰는 섬으로 이동하는 거지?”

“지금쯤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시합이 진행되고 있을 거야.”

“그다음에 청색 2반과 백색 5반의 시합을 하고, 마지막이 우리인가.”

“적색 1반… 만만치 않을 텐데.”

그동안 작은 섬에 갇혀 훈련만 해 왔다.

처음으로 섬 밖으로 나가 다른 학급과 대결하게 되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모여 있군.”

“네, 다 집합시킨 상태예요.”

나는 클로에를 대동한 채 학생들 앞에 나섰다.

웅성이고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다들, 그동안 대항전 준비를 하느라 수고 많았다. 학급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대항전 준비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한 점, 사과하고 싶다.”

갑자기 사과부터 하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내가 그동안 너희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세리느나 슈미츠 등에게 맡겼던 것은, 작전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작전……?”

“일단, 시합장의 지도를 봐 줬으면 한다.”

“……!”

클로에가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펴서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 줬다.

소설 속 묘사를 바탕으로 내가 직접 그린 지도였다.

“보다시피 시합장은 바위섬에서 진행된다. 지형이 험난해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지.”

나는 지도 위에 표시해 놓은 붉은색 점과 검은색 점을 가리켰다.

“여기 북서쪽의 붉은색 표시가 적색 1반의 시작 지점이다. 남동쪽의 검은색 표시는 흑색 6반의 시작 지점이지.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시합 개시와 동시에 움직이게 된다.”

“자, 잠시만요!”

그때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 정보, 확실한 겁니까?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그리고 왜 시합 당일에야 알려 주시는 거죠? 미리 알려 주셨으면 그걸 바탕으로 훈련을 하면 되었을 텐데…….”

“확실히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 훈련에 도움이 되었겠지.”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줬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적색 1반에 흘러 들어갈 수 있다.”

“……!”

“우리는 이 섬에 갇혀 있지만, 교관들이나 물자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계속 섬을 들락날락하지. 그 사람들을 통해 적색 1반에 정보가 흘러 들어가면, 저쪽도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작전을 세울 거다.”

루퍼스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힘으로 우리 쪽을 염탐하고 있다.

내가 이런 정보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루퍼스 쪽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합 당일까지 얘기하지 않았던 거다. 양해 바란다.”

“네…….”

“그러면 설명을 계속하도록 하지.”

나는 지도에 표시해 놓은 기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적색 1반은 비교적 완만한 지형으로 전진하면서 공세를 펼칠 거다. 하지만 루퍼스 이그니아스는 처음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측근 몇 명과 함께 대기하고 있겠지.”

“어째서죠?”

“성격 때문이지.”

소설 속 루퍼스의 묘사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루퍼스는 일단 부하들… 아니, 학생들에게 공격을 맡길 거다. 그들이 흑색 6반하고 싸우다가 힘이 부친다 싶을 때, 멋있게 나타나서 영웅적인 활약을 할 생각이지.”

“무슨 그런…….”

“전술적 이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잘난 척하려고 그런다는 겁니까?”

“그게 루퍼스 이그니아스라는 인간이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지.”

본인이 없어도 낙승을 거둘 상황이라면 아예 나서지도 않는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거뒀다는 구도를 가장 선호한다.

“우리는 루퍼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할 거다.”

“심리를……?”

“그래, 심리를 이용해 함정을 파는 거지.”

그 함정을 꾸미는 것이, 지금 내 앞에 있는 흑색 6반 학생들의 역할이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나는 이제부터 설명을 해 줄 생각이었다.

“루퍼스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면 이번 대항전은 흑색 6반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

물론, 함정에 빠뜨린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함정에 빠진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역할도 필요하니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흑색 6반 대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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