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교관의 능력을 얻어라 (3)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판정에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이해도가 낮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60%의 이해도로 안네리제의 능력을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잠시 뒤… 메시지가 떠올랐다.
[판정: 성공]
성공.
그 단어를 확인하고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인물 ‘안네리제 그레인저’의 주요 능력을 획득합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S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시그니안 정화검술(A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기 때문에 능력을 더 이상 획득할 수 없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삭제하고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파르티잔 심판검술과 시그니안 정화검술은 전부 상당량의 마력을 요구하는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다.
현재 상태로는 펼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얻어야 되는 건 나머지 하나뿐이다.
‘C랭크의 유스부르크 경신술을 삭제하고, A랭크의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획득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바로 반응이 왔다.
[유스부르크 경신술(C랭크)의 삭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습니다.]
[앞으로 12일 동안 ‘능력 재현’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12일 동안 ‘능력 재현’을 시도할 수 없다.
이것이 능력을 교체할 때의 페널티였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다른 아티팩트의 페널티와 비슷했다.
‘이래서 마구잡이로 능력을 교체할 수 없는 거지.’
꼭 필요할 때만 교체를 해야지, 안 그러면 중요한 순간에 곤경을 겪을 수 있다.
‘이제 12일 동안 능력 재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만, 대항전까지는 2주 남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
이건 안네리제에게서 신속하게 능력을 복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해도를 더 높여 보겠다고 시간을 끌었다간, 대항전이 끝난 뒤에야 능력 재현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으음…….”
“……!”
안네리제가 침대 위에서 신음 소리를 냈다.
잠에서 깬 줄 알고 놀랐지만, 그냥 몸을 뒤척였을 뿐이었다.
“우웅… 애인 없는 게 뭐 어쨌냐고…….”
“…….”
잠꼬대를 하는 안네리제를 곁눈질하며, 나는 숙직실을 빠져나갔다.
안네리제가 깨지 않도록,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후우…….”
학관 밖으로 나온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안네리제에게서 경신술을 획득한다는 퀘스트를 성공리에 완수했다.
“뭐 하고 있는 거죠?”
“……!”
그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장 쪽에서 세리느가 걸어오고 있었다.
“학관에 무슨 볼일이라도?”
“별거 아니야.”
안네리제밖에 없는 학관에 왜 들어갔는지 따지고 들면 곤란하기 때문에, 바로 화제를 돌렸다.
“대항전 준비는 잘되고 있어?”
“네, 그럭저럭요.”
“다행이네.”
“원래는 흑색 6반의 대표인 당신이 맡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저희한테 맡기는 건지 모르겠네요.”
세리느는 살짝 불만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때려치우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쨌든, 최대한 학생들을 단합시켜 놓을게요. 그동안 당신은 개인 훈련을 하든 작전 구상을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 부탁할게.”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다.
남에게 부탁받으면 거절하는 일이 드물고, 항상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
세리느 바스티안이 그런 캐릭터라는 걸 알고 있기에, 흑색 6반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게요.”
“뭐지?”
세리느가 나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다음부터 저한테 부탁할 게 있을 때는, 클로에를 통해서 말을 전하지 말고 저한테 직접 얘기하세요.”
“…….”
“비록 우리가 서먹서먹한 사이라고 해도… 흑색 6반에 관련된 일이라면 최대한 협력할 테니까요.”
그렇게 새침한 목소리로 말한 뒤, 세리느는 바로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
할 말을 해서 속 시원하다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 * *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A랭크)]
[유스부르크 유검술(A랭크)]
[로렐리안 실전검술(C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
현재 획득한 능력들을 확인하면서 북쪽으로 향했다.
C랭크의 유스부르크 경신술이 사라지고 A랭크의 리히테나워 경신술로 대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검술 계열의 능력이 가장 위에 표시되고, 경신술 같은 체술 계열의 능력이 그다음, 연공법 등 잡다한 능력이 마지막에 표시되지.’
든든하게 채워진 스킬 슬롯을 확인하면서 걷고 있자, 금방 섬 북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험난한 지형 앞에서 고개를 들어 보니 아까 미끄러졌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찔한 추락의 기억이 떠올라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까는 운이 좋아서 다치지 않았던 거야.’
유스부르크 경신술 C랭크로는 저 바위산을 올라갈 수 없다.
하지만, 리히테나워 경신술 A랭크라면 어떨까.
‘리히테나워 경신술은 원래 아카데미에서 한참 공부해야 터득할 수 있는 경신술이야.’
이 아카데미에서는 바깥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기술을 가르쳐 준다. 그중 하나가 리히테나워 경신술이다.
아카데미에 있는 전용 훈련 시설에서 반복 연습을 해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제대로 터득할 수 없다.
‘소설에서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터득했지.’
본래 시험을 통과하여 ‘진급’한 이후에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안네리제 덕분에 입학 직후부터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도 A랭크라는 제법 높은 수준의 숙련도로.
‘그러면… 시험해 볼까.’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바위산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가자.’
쿠웅!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가볍게 땅을 박찼을 뿐인데, 아까보다 훨씬 높이 도약할 수 있었다.
“……!”
순간적으로 공포심을 느꼈다.
단번에 너무 높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그대로 바위 위에 착지했다.
아까 미끄러졌던 곳이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이거야……!”
휘익, 휘익!
바람을 가르며 도약할 때마다 쾌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내 몸에 깃든 리히테나워 경신술이 알려 줬다.
무아지경으로 뛰어오르다 보니, 어느새 더 이상 뛰어오를 곳이 없어져 버렸다.
“……!”
1분도 안 되어서 도달한 꼭대기 위에서, 나는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꼭대기에서 정신을 차렸기에 망정이지, 계속 무아지경으로 뛰어다녔다면 절벽으로 몸을 날리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한달음에 올라온 건가?”
소설 속에서 주인공 아칸델도 이 바위산을 오르는 수련을 한다.
하지만 꼭대기에 도달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나는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그 높이에 올라온 것이다.
“이게…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의 스킬.”
바깥에서는 결코 터득할 수 없는, 아카데미만의 경신술.
나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상태였다.
* * *
꼭대기에서 내려올 때는 세 걸음 만에 내려올 수 있었다.
평소라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리히테나워 경신술 덕분에 아무 문제 없었다.
‘정말로 놀라운 힘이야.’
A랭크에 도달한 리히테나워 경신술은 C랭크의 유스부르크 경신술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대항전이 열리는 곳에서도 자유자재로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지.’
그렇다.
나는 아직 리히테나워 경신술의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마력을 활용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경신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지난번 학술 시간에 얘기한 대로, 마력을 활용하면 육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충분한 마력이 있는 상태에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빠르게 산을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안네리제라면 순식간에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리히테나워 경신술은 마력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지만, 역시 마력이 있는 편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엘릭시르를 복용하면 어느 정도 성능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리히테나워 경신술은 어디까지나 경신술… 이동용 기술이다.
공격할 때 쓰라고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나라면 이것을 공격에도 활용할 수 있다.
‘세리느와 대결했을 때, 이미 나는 검술과 검술을 조합한 적이 있어.’
그때 나는 바스티안 기사검술과 로렐리안 실전검술을 조합해서 세리느를 쓰러뜨렸다.
검술과 검술을 조합하는 건 소설 속에서 매우 높은 깨달음을 얻은 검사만 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이 세계의 창조자인 그걸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 검술과 경신술을 조합하는 것도 가능할 터.’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내가 터득한 검술과 조합한다.
본래 이동용 기술인 경신술을 검술과 조합하여, 새로운 공격 기술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기술이 탄생할지, 나는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적색 1반의 루퍼스 이그니아스를 꺾는다.’
2주 뒤에 있을 대항전.
나는 그날,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