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2화 (12/212)

12화 교관의 능력을 얻어라 (2)

수업이 없는 주말 아침.

나는 클로에, 비올라, 슈미츠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우연히 내 방에서 모인 이후, 이런 식으로 넷이서 아침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슈미츠를 추종하는 남부 출신 학생들도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세리느도 근처에서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긴 한데.’

세리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아침을 먹고 있다.

종종 우리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나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에르나스 님 말씀대로 첫 번째 대항전이 2주 뒤에 열리게 되었군요.”

슈미츠가 식사 도중에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기숙사 1층 게시판에 향후 일정이 게시되면서 대항전 일정이 정식으로 공개되었다.

“그렇다면 상대도 적색 1반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중간에 변경되지 않는 한, 적색 1반이 우리 상대일 거야.”

“에르나스 님, 적색 1반이면 6대 검술명가 출신인 루퍼스 이그니아스가 대표를 맡고 있을 텐데요.”

클로에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도 있는 인물이라고 들었어요. 만만치 않을 것 같네요.”

“그래, 쉬운 상대는 아니야.”

“대항전에 대비해서 특별 훈련이라도 하는 게 좋을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들이 시키는 훈련만 충실히 수행해도 충분해.”

“그럴까요?”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교육을 담당한다.

학급 전체의 종합적인 전력을 향상하려면 아카데미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최선이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말이다.

‘루퍼스는 지금쯤 학생들에게 지옥 훈련을 시키고 있겠지. 하지만… 역효과야.’

소설 속에서 적색 1반은 과도한 훈련으로 지친 상태에서 대항전에 나서게 된다.

2주라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려고 루퍼스가 지나치게 닦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인 호흡을 맞추는 건 필요하겠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슈미츠와 클로에, 너희들에게 맡기고 싶은데.”

내가 지목하자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흑색 6반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알아서 잘해 봐. 그리고…….”

근처 자리에 앉아 있는 세리느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세리느한테도 협력을 요청하는 편이 좋겠지. 이 부분은 클로에가 맡아서 해 줘.”

“어라, 어째서 저한테 시키시는 거죠?”

“내가 부탁하는 것보다 네가 부탁하는 편이 더 원활할 것 같으니까.”

“역시 옛 약혼자한테 부탁하는 건 껄끄러우신가 보네요.”

클로에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러자 열심히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비올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말이죠, 에르나스 님은 어쩌다가 세리느 님하고 약혼을 파기하신 거예요?”

대항전 얘기에는 아무런 관심을 안 보이더니, 약혼 얘기가 나오니까 바로 흥미를 드러냈다.

“아카데미 입학 직전에 약혼을 파기하다니, 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거죠?”

“그냥,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뿐이야. 그 정도만 얘기해 두지.”

“앗,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궁금하다고요!”

비올라가 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원래 비올라는 소설 속에서 타인의 연애 사정에 큰 관심을 드러내는 캐릭터였다.

‘지금 시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사건은 나와 세리느의 파국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나.’

자세한 사정을 떠벌려 봤자 나한테 득 될 건 없다.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 옆에서 슈미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에르나스 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조용한 자리에서라도 들을 수 있을까요?”

“슈미츠, 네가 왜…….”

“사실 저도 고향에 약혼녀가 있는데, 사이가 좀 서먹해서 말입니다.”

슈미츠가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긴 한데, 그쪽은 저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어라, 슈미츠 님이 그런 걸로 고민하는 성격이셨을 줄은 몰랐네요. 의외로 순정남이셨나 보죠?”

“크, 클로에, 놀리지 마라!”

옆에서 농담을 던지는 클로에를 보면서, 나는 슈미츠에게 그런 설정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기억해 냈다.

초반에 한 줄 언급하고 지나갔던 설정이었다.

“미안하지만, 내 입으로 해 줄 수 있는 얘기는 없어. 세리느한테도 실례되는 일이니 말이야.”

괜히 설명하다가 앞뒤가 안 맞는 얘기가 나와서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끊기로 했다.

“음, 알겠습니다.”

“에이, 아쉬워라.”

“후후, 그게 맞겠지요.”

슈미츠와 비올라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클로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리느 님, 세리느 님?”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목소리를 듣고, 세리느는 몸을 움찔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에르나스 쪽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같이 앉아 있는 여학생들의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무슨 얘기였죠?”

“아니,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는데…….”

“으음…….”

세리느를 따르는 여학생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세리느 님, 혹시…….”

“역시 에르나스 님에게 미련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요.”

세리느는 다급히 부정했다.

“제가 원해서 약혼을 파기한 거라 말씀드렸을 텐데요?”

“아니, 그래도…….”

“틈만 나면 에르나스 님을 눈으로 좇고 있고…….”

“그, 그건…….”

여학생들의 지적에 세리느는 다급히 변명을 생각했다.

“이제 약혼자도 없는 몸이라고 에르나스가 다른 여자들한테 집적대고 다니지 않을까 신경 쓰여서…….”

“약혼자도 없는 몸이면, 다른 여자들하고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흐, 흑색 6반의 여학생들이 에르나스에게 피해를 입을까 봐 걱정하고 있을 뿐이에요.”

“저희가 보기에는 항상 신사적인 태도이신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음흉한 사람이었다고요.”

약혼한 이후에도 에르나스는 다른 여자들에게 치근대곤 했다.

이것도 세리느가 에르나스와의 약혼을 파기하려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요새 너무 변해 버려서… 적응이 안 되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세리느의 모습을, 여학생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쳐다봤다.

* * *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서도 주말은 자유 시간이다.

개인 훈련을 하든, 휴식을 취하든,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든… 자유롭게 하면 된다.

‘그래도 섬 밖으로는 나갈 수 없지.’

흑색 6반뿐만 아니라 다른 학급들도 자신들에게 배정된 섬에서 나갈 수 없다.

기숙사에서 머물며 학관이나 야외 훈련장 등을 왔다 갔다 할 뿐이다.

하지만…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하면 이 규칙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듀에이트 수준의 마력이면 다른 섬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거든.’

어쨌든 지금은 이 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헤엄을 쳐서 빠져나가려고 하면 호수 밑에 숨어 있는 괴물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아카데미 측에서 섬 바깥으로 내보내 줄 때까지, 계속 이 섬에서 준비를 진행해야 한다.

“…….”

잔잔한 호수를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자, 야외 훈련장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리느와 슈미츠, 클로에가 학생들을 모아 놓고 대항전 얘기를 꺼내는 중이었다.

‘학생들 관리는 저 녀석들이 알아서 해 주겠지.’

이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대항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항전에서는 각 학급의 명찰을 누가 먼저 뺏느냐로 승패가 정해지지.’

학급마다 명찰 하나가 주어지는데, 보통은 학급 대표가 명찰을 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편의 학급 대표를 쓰러뜨려 명찰을 빼앗으면 승리할 수 있다.

‘그 역할을… 내가 직접 해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홀로 바닷가를 따라 움직였다.

목적지는 바위산처럼 울퉁불퉁한 지형인 섬 북쪽이었다.

‘꽤 험난하군.’

등산을 즐기는 사람도 장비 없이는 오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

‘경신술을 시험해 봐야 하니까 말이야.’

경신술이란 체술의 일종으로,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경공(輕功)과 비슷한 거라 할 수 있다.

이 경신술을 익히면 장애물을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으며, 더 높은 경지에 오르면 휙휙 날아다닐 수도 있다.

그래듀에이트가 섬과 섬 사이를 가볍게 오갈 수 있는 것도 이 경신술 덕분이다.

‘클로에에게서 얻은 유스부르크 경신술… 어느 정도일까.’

유스부르크 경신술 자체는 꽤 괜찮은 경신술이지만, 클로에는 아직 C랭크 수준이었다.

C랭크의 유스부르크 경신술로 저 바위산을 올라갈 수 있을까.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다리에서 한번 힘을 뺐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

탁!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로 단숨에 올라간 뒤, 다시 한번 빠르게 도약했다.

그렇게 바위산을 신속하게 뛰어 올라갔지만, 어느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윽……!”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자칫하면 크게 다칠 상황이었지만, 유스부르크 경신술을 발휘해 가까스로 착지할 수 있었다.

“죽을 뻔했네…….”

공중에서 강제로 몸을 비틀었기 때문에 여러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또 비올라의 지압술 신세를 져야 하는 걸까.

“후우…….”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꼭대기는커녕 절반도 못 올라갔다.

그렇다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지는 않았다.

방금 전처럼 추락했다가 뼈라도 부러지면 곤란하니,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

‘역시 C랭크의 유스부르크 경신술로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에르나스의 빈약한 육체 능력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정도로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아까처럼 실수를 해 버리면 위험하다.

‘이번 대항전에서는 경신술이 필요한데…….’

세리느와 슈미츠와 싸울 때와는 달리, 대항전은 별도의 훈련용 섬에서 진행된다.

그곳은 지형이 험난하기 때문에 경신술을 발휘해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적색 1반의 루퍼스를 쓰러뜨릴 때 반드시 필요하다.

‘어쩔 수 없지. 결국 그 방법밖에 없겠어.’

나는 바위산을 뒤로했다.

그리고 섬을 가로질러 학관 쪽으로 향했다.

“…….”

휴일이어서 문이 잠겨 있었지만, 나는 학급 대표라서 열쇠를 갖고 있었다.

문을 열고 복도를 걷자 ‘숙직실’이 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 위에 엎드려서 잠들어 있는 안네리제 교관의 모습이 보였다.

침대 옆에는… 술병이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역시 소설하고 똑같군.’

안네리제는 평소에는 아무런 흠잡을 곳이 없는 성실한 여성이다.

그녀의 유일한 결점이, 가끔 이렇게 과음을 한다는 점이다.

휴일 전날이 아니면 술에 입을 대지 않기 때문에, 교관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별문제 없지만…….

‘소설에서는 숙취 때문에 고생하는 안네리제를 주인공이 돌봐 주는 에피소드도 있었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안네리제는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절대로 깨지 않는다.

소설에 명시해 놓은 설정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

나는 조심스레 숙직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네리제에게 다가가, 침대 밖으로 나와 있는 손목 안쪽에 손을 댔다.

‘만에 하나 깨어나기라도 하면,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맥을 짚고 있었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잠깐 건드리기만 해도 능력을 복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능력 재현을 완료하려면 1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렇게 잠들어 있을 때 능력 재현을 시도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면…….’

정신을 집중했다.

이윽고 유스레흐트가 효과를 발휘하여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물 ‘안네리제 그레인저’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인물 ‘안네리제 그레인저’에 대한 이해도가 60%입니다.]

나는 혀를 찼다.

95%였던 세리느, 90%였던 클로에에 비해 이해도가 많이 낮은 편이다.

소설 속 히로인이었던 그녀들과는 달리 그냥 조연에 불과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므로 ‘능력 재현’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재현’에 실패할 경우, 동일인물에게 ‘능력 재현’을 두 번 다시 시도할 수 없습니다.]

[인물 ‘안네리제 그레인저’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하겠습니까?]

경고 메시지까지 떴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실패할 경우 안네리제한테 능력 재현을 더 이상 시도할 수 없다.

다른 아티팩트에도 비슷한 묘사가 있었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여기서 실패할 경우… 두 가지 문제가 생겨.’

첫째, 앞으로 안네리제에게 능력 재현을 시도할 수 없게 된다.

둘째, 대항전에서 안네리제의 능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첫 번째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지금은 흑색 6반의 섬에 갇혀 있으니 능력을 복사할 만한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가면 안네리제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검사들이 많다.

두 번 다시 안네리제에게서 능력을 복사할 수 없게 되더라도, 만회할 방법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가 진짜 문제야.’

안네리제에게서 능력을 얻는 것에 실패하면, 작전을 새로 짜야 한다.

지금 내 능력만으로는 대항전에서 승리하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안네리제와 친분을 쌓아서 이해도를 높여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작가로서 설정한 것 이상의 정보를 얻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지금 당장 안네리제와 연인이 된 뒤,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만든다면 이해도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했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 지금 시도해 보는 게 최선이야.’

대항전까지는 2주의 시간이 남아 있다.

만약 지금 실패하더라도 2주 동안 대책을 생각하면 된다.

질질 끌면 끌수록, 실패했을 때 대책을 생각할 시간이 줄어든다.

‘시도해 보자.’

나는 마음을 굳혔다.

안네리제의 손목에 손을 댄 채, 눈을 감았다.

[인물 ‘안네리제 그레인저’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안네리제가 보유하고 있는 능력인 ‘리히테나워 경신술’.

본래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서 한참 공부해야 터득할 수 있는 그 경신술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판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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