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1화 (11/212)

11화 교관의 능력을 얻어라 (1)

아카데미 본관.

크고 작은 섬들의 중앙 섬에 세워진 건물에서, 신입생 검술 담당 교수인 도룡검(屠龍劍) 욜스는 홀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욜스 교수.”

“……?”

욜스가 고개를 돌리자, 붉은색 머리를 지닌 중년 남자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얼굴을 확인한 욜스는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칼레온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염옥검(炎獄劍) 칼레온 이그니아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이그니아스 가문의 수장으로서, 강력한 화염 속성의 검술로 이름을 날리는 검사다.

현재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6대 검술명가 출신은 칼레온 한 명뿐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것… 어떻게 되었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란즈슈타인 가문의 아들 말일세.”

이번에 입학한 란즈슈타인 출신은 한 명밖에 없다.

흑색 6반의 대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

“입학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지 않나.”

“흠, 그랬었지요.”

욜스의 시큰둥한 반응에 칼레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흑색 6반에서 직접 그 녀석을 살펴봤을 텐데, 어떤 것 같았지?”

“근거 없는 음해 같았습니다.”

“뭐라고?”

“부족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머리도 제대로 박혀 있는 것 같고, 부정을 저지를 녀석은 아닌 것 같더군요.”

“그, 그럴 리가…….”

칼레온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직접 살펴보고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검술 실력도 상당히 뛰어난 것 같더군요. 담당 교관의 말로는 입학시험 수석이었던 세리느 바스티안하고도 일대일로 싸워 이겼다고 합니다.”

“……!”

슈미츠와의 대결에서는 기습으로 승리했지만, 세리느와의 대결에서는 정면 승부로 이겼다고 한다.

직접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훌륭한 인재입니다.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더군요.”

“크, 크흠, 그런가.”

욜스는 칼레온이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이그니아스 가문과 란즈슈타인 가문은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약점을 잡고 싶은 거겠지.’

입학시험에서 에르나스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물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칼레온에게 동조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칼레온 교수님.”

욜스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드님은 아카데미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저는 적색 1반 담당이 아니라 얼굴을 볼 기회가 없군요.”

칼레온의 자식도 지금 적색 1반에서 대표를 맡고 있다.

하지만 욜스는 녹색 4반, 백색 5반, 흑색 6반만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가르친 적이 없었다.

“물론이지. 벌써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네.”

아들 얘기가 나오자 칼레온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당연한 일이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심혈을 기울여 가르쳤으니까.”

“그렇군요.”

“엘릭시르를 받아 마력만 확보하면 금방 그래듀에이트가 될 걸세.”

“올해는 대항전이 조금 일찍 실시된다고 하니, 첫 번째 엘릭시르는 금방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가?”

“네, 조만간 정식 공지가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 뒤, 욜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적색 1반은 흑색 6반과 맞붙는다고 합니다.”

“……!”

새로운 정보를 듣고 칼레온이 숨을 삼켰다.

“승리하는 학급은 첫 엘릭시르를 얻을 수 있겠군요.”

“크흠, 그렇지.”

아카데미 학생들은 엘릭시르를 받아 마력을 증진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다 똑같이 받는 건 아니며, 시합에서 승리하거나 시험에 통과해야 엘릭시르를 받을 수 있다.

대항전에서는 승리한 반만 엘릭시르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내 아들이 이끄는 적색 1반이 승리할 걸세. 내기해도 좋네.”

“그러면 좋겠군요.”

속마음을 숨긴 채 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어느 쪽이 이길지 돈을 걸어야 한다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이끄는 흑색 6반의 승리에 모든 판돈을 걸겠다고 생각하면서.

* * *

아카데미 생활 3일 차.

첫째 날의 검술, 둘째 날의 체술에 이어, 오늘은 학술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검사로서의 전투력을 증진하는 검술과 체술 수업과는 달리, 학술 수업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용성이 없는 학문만 배우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전장에서의 전략 전술을 공부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법을 공부하기도 하니까.

일단 오늘은… 이 세계에서 검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역사를 배우는 날이었다.

“현재 이 대륙에서 사용되고 있는 검술은 전부 4대 검성(劍聖)의 검술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검술사학(劍術史學) 교수인 마르켈스가 칠판에 판서를 하며 말했다.

“4대 검성은 제국 건국 이전에 활동했던 위대한 성인(聖人)으로, 그들이 남긴 검술이 각 지역에서 발달하면서 검술 문화가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

“정석적인 움직임을 중시하는 동부 계통 검술, 변칙적인 전법을 중시하는 서부 계통 검술, 강력한 일격을 중시하는 북부 계통 검술, 빠른 속도를 중시하는 남부 계통 검술… 이게 4대 검성 이후 성립된 네 가지 분류입니다.”

예를 들어 세리느가 즐겨 사용하는 바스티안 기사검술은 전형적인 동부 검술이다.

기습적인 공격을 특기로 하는 클로에의 유스부르크 유검술은 서부 검술이고, 파워를 중시하는 비올라의 오리셔스 중검술은 북부 검술, 빠르게 움직이는 슈미츠의 하르트만 쾌검술은 남부 검술이다.

‘세리느는 동부, 클로에는 서부, 비올라는 북부, 슈미츠는 남부… 이렇게 되지.’

세리느가 서부 검술인 로렐리안 실전검술을 익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그 지역의 검술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출신 지역의 검술을 주특기로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검술이 발달한 건, 4대 검성의 검술이 그 지역의 특색에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귀족적인 분위기가 강한 동부에서는 형식을 중요시하는 검술이 유행했고, 마교도와의 싸움이 빈번했던 서부에서는 변칙적인 검술이 발달했죠. 거대한 몬스터와 싸울 일이 많은 북부에서는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검술이 필요했지만, 밀림에서 날렵한 몬스터를 사냥해야 했던 남부에서는 빠른 속도의 검술을 즐겨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또한 이런 검술들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검술로 이름을 떨치는 가문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소위 ‘검술명가’의 탄생이지요.”

가문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검술들은 대부분 이런 명가들의 전용 검술이다.

로렐리안 실전검술처럼 널리 보급되어 있는 검술과는 달리, 이런 전용 검술들은 웬만해서는 가문 바깥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 검술명가라는 이름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혈검제 폐하께서 이 제국을 건국하셨을 때,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여섯 가문에 공작의 작위를 내리면서 ‘6대 검술명가’로 지정하셨기 때문이죠. 오늘날 검술명가라 말할 때는 6대 검술명가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마르켈스의 강의는 귀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르켈스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는 얘기였다.

마르켈스의 강의 내용은 전부 내가 생각한 설정이었으니까.

‘6대 검술명가… 이 녀석들이 가장 큰 문제란 말이지.’

오래전부터 6대 검술명가는 치열한 서열 다툼을 해 왔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이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기수는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전원이 입학하여 6개 학급의 대표 자리를 차지한 상태.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 내부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6대 검술명가의 대리전 같은 양상을 띠곤 한다.

이게 그냥 건전한 경쟁 정도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피 튀기는 혈투로 발전하여 에르나스의 목숨까지 위협하게 된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2주 뒤에 있을 대항전에서 이그니아스 가문과 충돌하게 되겠지.’

이그니아스 가문은 6대 검술명가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가문이다.

가주인 ‘염옥검’ 칼레온은 현재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 중인데, ‘도룡검’ 욜스처럼 전선에서 수많은 적을 도륙하여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칼레온의 아들인 루퍼스… 적색 1반의 대표를 상대해야 해.’

루퍼스는 초반의 강적이다.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기 때문에 아직 사용하지 못하지만,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그니아스 기사검술’은 매우 능숙하게 사용한다.

바스티안 기사검술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동부 계통 검술이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육체 능력도 세리느나 슈미츠 이상이야.’

내가 2주 동안 아무리 단련해 봤자 루퍼스의 육체 능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정말 쉽지 않은 상대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겨야 해.’

곧 있을 대항전에서 루퍼스의 적색 1반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거기,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바로 그때, 강의를 하던 마르켈스가 갑자기 나를 지목했다.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마력을 획득하는 게 필요한 이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고 지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목당했다고 해서 당혹스러워할 내가 아니었다.

“마력을 사용하면, 우리 육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마력을 외부로 방출하여 칼날에 깃들게 하려면 그래듀에이트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에 적용하는 거라면,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오르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흠…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하체를 중심으로 마력을 운용한다면 각력(脚力)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속도 같은 걸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죠.”

속도 얘기를 하니 근처에 앉아 있던 슈미츠가 움찔하며 반응했다.

“이건 마력이 하체의 근육 하나하나에 작용하면서 그 힘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상체를 중심으로 마력을 운용한다면 검을 휘두르는 힘을 강화할 수 있겠죠. 물론, 실전에서는 전신의 근력이 잘 균형을 이뤄야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하겠습니다만…….”

“흠…….”

“지구력을 향상해 쉽게 지치지 않는 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섬을 열 바퀴 돌면 지처 쓰러질 사람도, 마력을 사용한다면 스무 바퀴 이상 가볍게 뛸 수 있게 되겠죠.”

내가 루퍼스의 적색 1반을 꺾으려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번 대항전에서 승리하면 엘릭시르를 받을 수 있다. 엘릭시르를 1회 복용해서 얻는 마력으로 그래듀에이트가 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건 가능하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에르나스의 육체 능력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말이야.’

이미 욜스 등은 내 육체 능력이 형편없다는 걸 눈치챈 상태다.

다른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기 전에, 빨리 마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부상을 입었을 때 더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자연 치유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밖에도…….”

“돼, 됐습니다. 그 정도만 설명해도 됩니다.”

내 설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 같았는지, 마르켈스가 중간에 끊었다.

“역시 6대 검술명가 출신이군요. 마력 활용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고 말입니다.”

“오오…….”

주위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력을 활용해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나중에 체술 시간에 담당 교수님에게 자세히 배우게 될 겁니다. 다만 그 발달 과정에 대해서 시대별로 살펴보자면…….”

마르켈스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루퍼스를 어떻게 꺾어야 할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항전은 일대일 대결이 아니야. 학급과 학급이 싸우는 단체전이지.’

루퍼스는 전술적 수완도 뛰어나다.

적색 1반 학생들을 잘 지휘해서 흑색 6반을 제압하려 할 것이다.

세리느나 슈미츠 때하고는 다른 양상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단체전으로 이기려 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어떻게 이기면 되는지, 이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의 작가니까.

‘이미 루퍼스를 꺾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

세리느나 슈미츠가 흑색 6반의 대표였다면 결코 이길 수 없었겠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 * *

“정신 못 차리나!”

“으윽!”

적색 1반 기숙사 앞에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머리의 청년… 루퍼스 이그니아스가 동급생을 목검으로 구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훈련을 하라고 했는데, 어째서 농땡이를 피운 거냐?”

“루, 루퍼스 님, 저희도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 으윽!”

“한계를 넘어설 생각을 해야지! 그런 식으로 해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나?!”

적색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며, 루퍼스는 쓰러진 학생에게 다시 한번 목검을 휘둘렀다.

“얼마 뒤 다른 학급과의 대항전이 열린다! 그때 승리해서 반드시 엘릭시르를 받아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다시 훈련을 시작해!”

“네……!”

주위에 다른 학생도 많았지만, 루퍼스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루퍼스의 압도적인 실력에 다들 굴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적색 1반을 지배하는 절대군주, 그것이 루퍼스 이그니아스였다.

“루퍼스 님.”

“음?”

그때 적색 1반을 담당하는 지도 교관이 다가왔다.

그는 다른 학생을 구타하는 루퍼스의 모습을 보고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칼레온이 심어 둔 이그니아스 가문의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대항전이 2주 뒤로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그리고 흑색 6반이 상대가 될 것 같습니다.”

“흑색 6반…….”

루퍼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세리느 바스티안, 그리고 차석을 차지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있는 반이군.”

“현재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루퍼스가 웃었다.

“반드시 쓰러뜨려야겠군.”

“칼레온 교수님도 그걸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겠지.”

다른 학급들을 꺾고, 이그니아스 가문의 서열을 가장 윗자리로 끌어올린다.

그것이 루퍼스의 목표였다.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 주마, 흑색 6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루퍼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훈련 중인 적색 1반의 학생들을 더욱 거세게 닦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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