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8화 (8/212)

8화 내 자리를 노린다면 (3)

[인물 ‘클로에 유스부르크’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인물 ‘클로에 유스부르크’에 대한 이해도가 90%입니다.]

아티팩트 ‘유스레흐트’에 의해, 클로에 유스부르크의 능력 재현이 시작되었다.

클로에는 서브 히로인으로서 소설 속에서 많은 묘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리느와 비슷한 90% 이해도가 떴다.

[판정: 성공]

[인물 ‘클로에 유스부르크’의 주요 능력을 획득합니다.]

판정은 성공이었다.

이걸로 세리느 때처럼 클로에의 능력을 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서부 출신의 검사로서… 슈미츠의 남부 검술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지닌 클로에의 능력을.

[유스부르크 유검술(A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습니다.]

[유스부르크 경신술(C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습니다.]

[로렐리안 실전검술(D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으나, 이미 로렐리안 실전검술(C랭크)를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효화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예상했던 능력들이 그대로 복사된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스부르크 가문의 비전 검술인 유스부르크 유검술(遊劍術) A랭크가 중요했다.

‘클로에는 다른 검술은 별로지만, 이거 하나는 쓸 만했거든.’

솔직히 클로에는 전투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큰 활약을 하곤 하는데, 그 비결이 바로 유스부르크 유검술이었다.

나는 이 유스부르크 유검술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게 슈미츠를 쓰러뜨리기 위한 무기가 되는 거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클로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에르나스 님?”

이제 보니 클로에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악수가 너무 긴 것 같은데요?”

“아, 미안하군.”

세리느 때처럼 클로에의 손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바로 손을 거둬들이자, 클로에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단순한 악수인 줄 알았는데… 원래 이런 식으로 스킨십을 시도하시나요?”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니라…….”

“뭐… 상관없지만요.”

클로에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약혼자가 있는 상태에서 이러셨다면 저도 화를 냈겠지만 말이죠.”

“…….”

뭔가 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딱히 불쾌해하는 느낌은 아니니,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러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그래…….”

클로에는 나한테 꾸벅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마지막에 좀 오해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인상을 준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소설 속에서 클로에는 에르나스를 사사건건 방해하니까 말이야.’

주인공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에르나스의 권모술수에 대응했던 인물이 바로 클로에다.

클로에와 사이가 나빠지면 다른 세력에 붙어서 나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적대 관계가 되는 건 반드시 피해야 했다.

‘조만간 도움을 받을 일도 있고, 되도록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좀 시간이 늦어졌는데… 음식이 다 떨어지지는 않았을지 걱정이었다.

* * *

‘검술을 수련한 남자치고는 손이 거칠지 않았어. 무슨 크림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네.’

클로에는 손의 감촉을 되새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기둥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여학생과 맞닥뜨렸다.

“크, 클로에.”

“어라, 세리느 님.”

아까 계속 훔쳐보고 있던 세리느였다.

이미 자리를 떴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여기 있었던 건가.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거죠?”

“아니, 그게…….”

세리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속이 좀 불편해서…….”

“그러셨군요. 의무실로 데려다드릴까요?”

“아, 아니요.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그렇게 둘러대는 세리느를 보면서, 클로에는 미소를 지었다.

“혹시 들으셨나요?”

“네?”

“저하고 에르나스 님이 나눴던 얘기 말이에요.”

“……!”

세리느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거리가 있어서, 전혀 안 들렸어요!”

“그렇군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큰 목소리로 얘기하지도 않았으니까.

“크, 클로에, 에르나스하고는… 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죠?”

“음… 그건 좀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비밀스러운 얘기라서.”

“……!”

의미심장하게 말하자, 세리느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대체 어떤…….”

“왜 그렇게 궁금해하시는 거죠? 이제 약혼자도 아니시면서.”

“윽…….”

세리느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약혼 파기를 요구한 건 세리느 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혹시 미련이 있으신 건가요?”

“그, 그럴 리가요!”

강경하게 부정하면서 세리느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동안 에르나스가 다른 여성에게 치근대는 모습을 여러 번 지켜봤기 때문에, 혹시 당신에게 나쁜 짓을 할까 봐 걱정되어서 지켜봤던 겁니다!”

“어머, 그랬군요.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시네요.”

훔쳐보고 있었다는 걸 인정해 버린 세리느를 보면서, 클로에는 미소를 지었다.

“에르나스 님은 신사적이셨어요. 제 손을 오래 붙잡고 있긴 했지만, 곧바로 사과해 주셨고요.”

“네?”

“그리고 저는 에르나스 님이 치근대도 상관없답니다.”

“그, 그게 무슨 뜻이죠?”

“글쎄요. 무슨 뜻일까요.”

클로에는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세리느 님, 저를 견제하는 것보다 슈미츠 님 쪽을 견제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네? 슈미츠요?”

“에르나스 님을 끌어내리고 대표 자리를 빼앗으려 하는 것 같거든요.”

“……!”

“에르나스 님은 본인이 해결한다고 하셨지만… 조금 불안해서 말이죠. 혹시 모르니 세리느 님도 알아 두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숨을 삼키는 세리느를 내버려 둔 채, 클로에는 자리를 떴다.

에르나스와 슈미츠의 충돌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지켜본 뒤,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 *

“고기가 없다고요?”

“네, 죄송합니다.”

뒤늦게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받으려 하니, 배식 담당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의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 줬다.

“정말로, 하나도 남지 않은 겁니까?”

“받아 갈 사람은 다 받아 간 줄 알고…….”

배식 담당이 손가락을 치켜들어 식당 구석을 가리켰다.

“저쪽 여학생이 남은 걸 전부…….”

“…….”

식당 구석을 쳐다보니, 작은 몸집의 소녀가 여러 겹으로 쌓인 스테이크를 혼자서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 준 흑색 6반의 대표적 열등생… 비올라 오리셔스였다.

‘비올라……!’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소설에서 비올라는 개그 담당 캐릭터였지만, 이렇게 피해를 입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엣, 에르나스 님, 왜 저를 그렇게 노려보시는…….”

내 시선을 눈치챈 비올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식판을 들고 서 있는 나를 보고 상황을 이해했다.

“앗, 이게, 그러니까, 오후에 대련을 잘하려면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음식을 남기는 게 아깝기도 하고…….”

“…….”

“그, 그러니까…….”

비올라가 이미 나이프로 다 썰어 놓은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어서 나한테 내밀었다.

“조, 좀 드실래요?”

“필요 없어!”

“하윽!”

나는 빵과 으깬 감자, 구운 야채만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까지 와서 채식을 해야 하다니…….’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나는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대표 생활을 하다 보면 이렇게 남들보다 늦게 식사를 하게 되는 일이 많을 텐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미리 얘기를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오후 대련을 대비해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빵 조각을 우물거리면서, 나는 왼손에 낀 반지를 만졌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A랭크)]

[유스부르크 유검술(A랭크)]

[로렐리안 실전검술(C랭크)]

[유스부르크 경신술(C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

두 개 비어 있던 스킬 슬롯이 다 채워져서, 다섯 개의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D랭크의 로렐리안 실전검술도 획득했지만, 이미 C랭크의 로렐리안 실전검술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무효 처리 되었다.

‘이걸로 빈칸이 없어졌군.’

이제는 다른 능력을 복사하려면 능력 하나를 지워야 한다.

A랭크인 바스티안 기사검술과 유스부르크 유검술은 한동안 유지해야겠지만… C랭크인 능력들은 기회가 되면 교체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을 교체할 때는 페널티가 발생할 거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른 아티팩트들도 비슷한 시스템이다.

그러니 무분별하게 능력을 바꿔서는 안 되고, 정말로 가치 있는 능력일 때만 교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다시 비올라 쪽을 쳐다봤다.

덜떨어진 열등생의 모습을 보여 주는 녀석이지만… 저 녀석한테도 쓸 만한 능력이 있다.

‘나중에 적절한 시기에 접촉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열심히 스테이크를 먹고 있던 비올라가 시선을 느끼고 흠칫했다.

“저, 저기… 역시 한 조각 드실래요?”

“필요 없거든.”

먹다 남은 스테이크를 권하는 비올라에게 차갑게 쏘아붙인 뒤, 나는 식사를 재개했다.

* * *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실습 시간이 시작되었다.

야외 훈련장에 집결한 우리들 앞에서 욜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전에 얘기한 대로, 오늘 너희들은 일대일 대련을 하게 될 것이다. 이건 너희가 어느 정도 실력을 지녔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욜스 옆에는 안네리제와 다른 교관들도 서 있었다.

우리들이 대련을 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현재 어느 정도 실력인지 자세하게 기록할 것이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으니, 각자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 봐라.”

욜스의 말이 끝난 뒤, 안네리제가 앞으로 나와서 손을 치켜들었다.

“자, 여러분. 이제 대련을 해야 하니 2인 1조를 만들도록 하세요. 누구와 짝이 되어도 좋습니다.”

야외 연습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친한 학생들끼리 바로 짝을 이루는 경우도 많았지만, 짝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조별 활동을 시키면 이런 게 문제란 말이지.’

나도 바로 짝을 이룰 만큼 친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말없이 혼자 서 있어도, 친구가 없어서 곤경에 처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에, 에르나스.”

그때였다.

세리느가 머뭇거리면서 나한테 다가왔다.

“따로 정해 둔 짝이 없다면, 저하고 하면 어떨까요?”

“……?”

의외였다.

에르나스를 싫어하는 세리느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어제 대표 선출전에서 나한테 패배하기까지 했는데…….

“대련을 하면서 할 얘기도 있고 말이죠.”

“무슨 얘기지?”

“그건…….”

세리느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슈미츠가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클로에한테 얘기를 들었어요.”

“클로에?”

“에르나스, 당신은 저를 이기고 대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에요.”

세리느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저런 사람들한테, 빼앗기면 안 돼요.”

“…….”

세리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슈미츠 파벌과의 싸움에서 대표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자신이 어떻게든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세리느는 이런 캐릭터였지.’

에르나스를 싫어한다는 것만 신경 쓰고 있어서, 세리느라는 캐릭터의 본질을 잊고 있었다.

세리느는 주인공인 아칸델이 ‘언젠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을 꺾고 정당하게 대표 자리에 오른 에르나스를 슈미츠 파벌이 강제로 끌어내리려 한다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세리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 네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에르나스, 고집 부릴 필요는……!”

“딱히 고집 부리는 게 아니야.”

목소리를 높이는 세리느에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해 줬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

숨을 삼키는 세리느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자리를 떴다.

오늘 누구와 대련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 *

“슈미츠 님, 대체 뭐 하는 걸까요?”

“글쎄, 모르겠군.”

에르나스와 세리느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슈미츠는 생각에 잠겼다.

‘둘이 협력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왜 다투는 거지?’

오늘 슈미츠는 에르나스가 대련을 하는 모습을 더 자세히 관찰할 생각이었다.

에르나스의 실력을 보다 면밀히 분석한 뒤 행동에 나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르나스는 누구와도 짝을 이루지 않고, 슈미츠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슈미츠 하르트만.”

“……!”

에르나스가 슈미츠에게 다가와 말을 걸자, 주위에 있던 슈미츠 파벌의 학생들이 숨을 삼켰다.

“무슨 일이십니까, 에르나스 님.”

슈미츠는 일단 예의 바른 태도로 응대했다.

란즈슈타인 가문은 공작의 작위를 지닌 6대 검술명가다.

남부 지방의 백작에 불과한 하르트만 가문보다 훨씬 격상(格上)이다.

“누구하고 대련할지 이미 정했나?”

“아직입니다만…….”

“잘됐군.”

경계하는 슈미츠를 향해, 에르나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슈미츠, 나하고 대련을 해 줬으면 한다.”

“……!”

이 발언에는 슈미츠도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에르나스 쪽이 먼저 싸움을 걸어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저입니까?”

“실력이 엇비슷한 사람하고 대련을 해야지 그나마 얻는 게 있을 테니까.”

에르나스의 표정은 태연했다.

“세리느하고는 어제 대련을 했으니, 오늘은 너하고 하고 싶군.”

“…….”

“너도 그게 더 유익하지 않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선제공격에 슈미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에르나스 님, 저는…….”

“흠, 별로 내키지 않나?”

슈미츠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에르나스가 말했다.

“그러면 조건을 달면 어떨까.”

“조건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조건.”

“…….”

슈미츠는 초조함을 느꼈다.

어느새 에르나스가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얘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건 슈미츠가 원하는 구도가 아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말씀해 보십시오.”

어떻게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무슨 조건이든 트집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슈미츠는 에르나스를 노려봤다.

“대체 조건이 뭡니까?”

“만약에 네가 이긴다면…….”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에르나스가 말했다.

“흑색 6반의 대표 자리를 넘겨주마.”

“……!”

상식을 벗어난 제안을 듣고, 슈미츠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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