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 자리를 노린다면 (2)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욜스가 던진 질문은 상당히 악질적인 질문이었다.
어떻게 대답하는 게 정답일지 예상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질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카데미 입학 이후 첫 번째 강의라는 특별한 시간이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서, 욜스는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까.
이걸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천 년 전.”
“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짧게 대답하고 끝낼 생각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철혈검제(鐵血劍帝) 폐하께서 이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를 설립하셨습니다.”
철혈검제는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다.
제국이 검술을 숭상하게 된 것도, 검술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만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것도… 전부 철혈검제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인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다시 그런 전쟁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폐하께서 설립하신 것이 이 아카데미입니다.”
“…….”
“제국에서 대대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건,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저희는 제국 사회의 지도자가 될 인물들인 만큼, 그 기대에 응해야 합니다.”
“…….”
“그냥 권력을 누리는 귀족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언젠가 있을 전쟁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몬스터나 마교도들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자들만이,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념이며… 아카데미의 존재 의의다.
첫 번째 강의에서 욜스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제국을 지키는 검이 되기 위해 이 아카데미에 온 것입니다, 교수님.”
내 대답을 듣고, 욜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학생들도 숨을 죽이며 욜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욜스가 입을 열었다.
“아쉽군.”
그 말을 듣고 몇몇 학생들이 실망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반응이었다.
“그렇게 전부 말해 버리면, 대체 나는 무슨 얘기를 하란 말이냐. 기껏 준비해 왔는데 소용없어졌군.”
“……!”
“완벽한 대답이었다.”
숨을 삼키는 학생들 앞에서, 욜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입니다.”
“기억해 두지, 에르나스,”
욜스는 내 이름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고, 강의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렸다.
“다들 들어라. 이 제국은 검의 나라다.”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며, 욜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에르나스가 말한 대로, 제국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은 너희를 쓸 만한 검으로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녹슨 식칼밖에 되지 못하는 놈이라면, 이 나라에 필요 없다.”
“……!”
“제국을. 그리고 제국의 신민을 지킬 수 있는 검이 될 수 있도록 해라. 끊임없이 수련하고 단련하여, 찬란하게 빛나는 명검이 된다면…….”
욜스가 우리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영광의 길이 열릴 것이다.”
“……!”
나라에 보탬이 되는 뛰어난 검사가 된다면, 자연히 출세도 할 것이고 가문의 위상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엉뚱한 생각 말고 사명감을 가진 채 검을 수련하라… 욜스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것이었다.
“그럼 슬슬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오전에는 너희들이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이론적 지식부터 가르쳐 줄 것이고…….”
욜스가 칠판에 글씨를 쓰기 위해 분필을 집어 들었다.
“오후에는 너희들의 현재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전원이 참가하는 대련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
전원이 참가하는 대련 시간.
그 말을 듣고 많은 학생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 * *
‘에르나스가 저렇게 훌륭한 대답을 하다니…….’
강의를 들으면서, 세리느는 앞쪽에 앉아 있는 에르나스의 뒷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사실 세리느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목당했을 때 에르나스처럼 논리정연하게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욜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주눅 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대답했어. 미리 대답을 준비해 뒀던 걸까? 아니면 평소 갖고 있던 생각?’
세리느가 알고 있는 에르나스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한 자루의 검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리 없다.
‘그래, 그냥 교수님의 구미에 맞는 대답을 했을 뿐이야. 그런데…….’
세리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왜 이렇게 에르나스의 말에 감명을 받은 걸까.’
제국 사회의 지도자가 될 인물들인 만큼, 기대에 응해야 한다.
그냥 권력을 누리는 귀족 따위는 필요 없다.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자들만이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자격이 있다.
전부 세리느가 예전부터 어렴풋이 생각해 왔던 것들이다.
그걸 에르나스가 뚜렷하게 구체적으로 정리해 준 것이다.
‘에르나스, 당신은 대체 어느 쪽이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태연하게 정론을 늘어놓았을 뿐인 걸까.
아니면 마음속에 숨겨 왔던 자신의 이상을 당당하게 밝힌 걸까.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서, 세리느는 혼란에 빠졌다.
‘당신을… 모르겠어.’
세리느는 에르나스의 실력을 오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에르나스의 인성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 * *
오전 이론 강의를 마친 뒤, 학생들은 기숙사에 딸려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제국 정부에서 충분한 지원을 해 주기 때문에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은 퀄리티가 매우 높다는 설정이다.
‘이건 정말 잘 만든 설정이란 말이지.’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다.
괜히 리얼리티를 살리겠다고 중세 학생들이 먹던 음식처럼 묘사했으면 매번 식사 시간마다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에르나스, 앞으로 출석부는 이렇게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나는 대표이기 때문에, 점심 시간이 됐다고 해서 바로 식사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강의실에서 안네리제와 함께 뒷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교관님.”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뒷정리를 마친 뒤,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학관을 나서자마자 내 앞을 가로막은 학생이 있었다.
“잠시 괜찮으실까요, 에르나스 님?”
“…….”
하늘색에 가까운 청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학생이었다.
약간 연약해 보일 정도로 가련한 인상의 소유자였지만,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망설임 없이 나한테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클로에 유스부르크?”
“어머, 기쁘군요.”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에르나스 님이 제 이름을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학급 대표니까, 급우들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야지.”
물론,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세리느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아칸델의 동료가 되는 캐릭터로, 검술 실력은 부족하지만 지식과 지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참모’ 타입의 히로인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에르나스 님이 이름을 불러 주시니 기쁘네요. ‘넌 뭐 하는 놈인데 나한테 말을 걸지?’ 하고 차갑게 반응하시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렇게 건방진 인물처럼 보였나?”
“검술명가 란즈슈타인의 후계자시니, 저 같은 약소 자작 가문의 딸하고는 제대로 말도 안 섞으실 줄 알았죠.”
클로에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시 미소 지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애교를 부리는 듯하면서도 청순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클로에 특유의 미소였다.
그 본성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이 미소 앞에서 녹아내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에르나스 님이 대표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실 수 있도록, 귀띔해 드리고 싶은 정보가 있었거든요.”
클로에는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부 하르트만 가문의 후계자인 슈미츠 님이, 에르나스 님의 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어요.”
“…….”
얌전하고 가련해 보이는 인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클로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지니고 있다.
슈미츠가 자신의 파벌과 함께 흑색 6반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흑색 6반에 배정된 남부 출신 학생들은 이미 슈미츠 님을 중심으로 뭉친 상태예요. 조만간 에르나스 님에게 반기를 들겠죠.”
“…….”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클로에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에르나스 님은 특정 학생을 측근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신 것 같지만, 슈미츠 님의 파벌에 대항하려면 이쪽도 세력을 형성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에르나스 님을 따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몇 명 알고 있는데,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
“어떠신가요?”
클로에는 어제 내가 추종자들을 멀리하는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나에게 파벌을 만들라고 권하고 있다.
파벌이 만들어져야 자신이 2인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로에 유스부르크는 그런 인물이지.’
어떻게 보면 소설 속 에르나스와 비슷한 타입이다.
본인의 힘보다는 권모술수에 더 의존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르나스와는 달리 악독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이 그리는 그림대로 움직여 줄 필요는 없어.’
클로에는 자기 뜻대로 나를 컨트롤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클로에를 내 뜻대로 컨트롤할 생각이었다.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네?”
냉정한 목소리를 듣고, 클로에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현시점에서 딱히 파벌을 형성할 생각은 없으니까.”
“…….”
“지금은 아카데미에 적응하면서 기초적인 실력을 쌓는 것에 집중하고 싶군.”
스토리가 진행되면 세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터질 테니까.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슈미츠가 나에게 도전한다면,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정말로 괜찮으신 건가요?”
“그래.”
클로에의 눈빛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깃들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클로에가 참모로서 끼어들 구석이 없어지니까.
“그래도…….”
“……?”
“조언해 줘서 고맙다.”
감사의 말을 듣고, 클로에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슈미츠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지만… 나중에 다른 일로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르니, 그때는 꼭 도와줬으면 좋겠다.”
“아, 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을 앞으로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클로에는 내 손을 맞잡지 않고 머뭇거렸다.
“저기, 괜찮으신가요?”
“뭐가?”
“아까부터 저쪽 구석에서 세리느 님이 훔쳐보고 있는걸요.”
“…….”
클로에의 말을 듣고 살짝 시선을 돌려보니, 정말로 세리느가 기둥 뒤에 숨어서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에게 재도전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것도 아닐 테고.
“약혼자 앞에서 다른 여자와 손을 잡아도 되는 건가요?”
“너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약혼은 취소되었어.”
“정말로 취소된 건가요?”
“왜 의심하는 거지?”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클로에가 미소 지었다.
“어차피 단순한 악수라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지.”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에르나스 님.”
클로에가 내 손을 잡았다.
검을 수련한 사람답지 않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래, 잘 부탁하지.”
어째서인지 점점 따가워지는 세리느의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클로에의 손에 감각을 집중했다.
[인물 ‘클로에 유스부르크’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클로에의 능력을 흡수하여, 슈미츠 하르트만에 대항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