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내 자리를 노린다면 (1)
흑색 6반의 대표가 선출된 뒤, 우리는 기숙사로 안내받았다.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2인 1실이지만, 대표로 선출된 나한테는 1인실이 주어졌다.
이건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반가운 일이었다.
‘피곤한 하루였어.’
사실 소설 속에서 에르나스는 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세리느와 함께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실력이 들통날까 봐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주인공 아칸델을 추천했는데, 이건 입학하자마자 자신과 충돌한 아칸델을 골탕 먹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칸델은 세리느를 꺾어 버리는 이변을 연출했고, 결국 흑색 6반의 대표가 되었다.
‘아칸델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내가 대표를 맡는 수밖에 없지.’
앞으로 소설의 스토리를 활용하면서 움직이려면, 내가 주위 상황을 최대한 컨트롤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편이 좋다.
세리느가 대표를 맡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 내가 대표를 맡는 게 최선이었다.
‘세리느를 꺾고 내가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렇다면…….’
소설의 스토리를 되새기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했다.
‘대표의 권위에 도전하는 놈이 나오겠지.’
어떤 놈이 도전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 * *
흑색 6반 기숙사 한구석.
다른 방과 똑같은 2인실 안에, 일곱 명이나 되는 학생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딱 한 사람뿐이었다.
“슈미츠 님, 이대로 가만 계실 겁니까?”
“…….”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마른 체격의 남성.
그는 여러 학생에게 둘러싸인 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6반 대표 자리를 손에 넣어, 남부 검술의 우월함을 보여 주시길 바랐는데…….”
“대표로 추천하는 것조차 금지하셔서…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하르트만 가문의 후계자이신 슈미츠 님이라면 에르나스에게도 세리느에게도 지지 않으셨을 겁니다.”
슈미츠 하르트만은 남부 계통 검술의 명문인 하르트만 가문의 장남이었다.
하르트만은 남부에서 상당한 세력을 지닌 백작 가문으로, 지금 슈미츠를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도 다 남부에서 따라온 추종자들이었다.
“너희들은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나?”
“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슈미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과 세리느 바스티안의 역량을 살펴보기 위해 일부러 나서지 않은 것이다.”
“……!”
슈미츠의 말을 듣고, 다들 숨을 삼켰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에르나스가 실력을 위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입학시험 때, 마침 에르나스가 근처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챌 수 있었다.”
슈미츠가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일대일 대결 시험에서… 시험관이 일부러 에르나스의 공격을 맞아 주고 자멸하더군. 다른 시험에서도 그런 꼼수를 썼던 것 같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입학시험에 부정이 있었다니,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흥분하는 추종자들 사이에서, 슈미츠가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6대 검술명가인 란즈슈타인의 후계자다.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발해 봤자 오히려 내가 당한다.”
“그럴 수가……!”
“하지만, 아카데미 안에서는 다르지.”
슈미츠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는 철저한 실력주의… 내가 실력으로 에르나스를 꺾으면, 그 녀석이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걸 까발릴 수 있다.”
“아……!”
“그러면 다들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겠지. 에르나스가 입학시험에서 차석을 차지한 건 뭔가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이다.”
슈미츠의 설명을 듣고, 대부분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한 학생도 있었다.
“그, 그런데, 슈미츠 님.”
“뭐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아까 세리느 바스티안을 실력으로 꺾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 상당히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았습니다만… 아, 슈미츠 님보다 뛰어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직 멀었구나.”
슈미츠가 혀를 찼다.
“세리느는 패배한 뒤에도 전혀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면 에르나스는 숨을 헐떡이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
“……!”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실제로는 세리느의 역량이 더 우수했던 거다.”
그렇다.
다른 학생들이 에르나스의 승리에 환호하고 있을 때, 슈미츠는 에르나스의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승부가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면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는 건 에르나스 쪽이었다.
“그, 그러면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뻔하지.”
슈미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추측을 밝혔다.
“세리느가 일부러 에르나스에게 져 준 것이다. 대표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서.”
“입학시험에 이어서 이번에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겁니까?!”
“에르나스가 아그타스 결전검술이 아니라 바스티안 기사검술을 사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세리느가 합을 맞춰 주기 쉽도록, 바스티안 가문의 검술을 사용한 것이다.”
“세상에……!”
그때 아까도 의문을 제기했던 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슈미츠 님, 두 사람은 이번에 약혼을 취소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데…….”
“멍청한 놈, 그런 건 다 작전이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이지.”
“앗, 그런 거군요.”
“아마 에르나스가 란즈슈타인 가문의 권위를 이용해 세리느에게 억지로 강요한 거겠지. 정말로 파렴치한 놈이다.”
슈미츠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쨌든, 오늘 대결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역량은 충분히 파악했다. 세리느는 만만치 않은 상대 같지만… 에르나스는 금방 정리할 수 있겠지.”
“그, 그러면……!”
“그렇다.”
흥분하는 추종자들 앞에서, 슈미츠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나스를 꺾고, 대표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 * *
‘지금쯤 슈미츠가 나를 끌어내리고 대표 자리를 빼앗을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소설 속에서도 비슷한 짓을 하려고 했으니, 가능성이 높아.’
슈미츠는 야심이 강한 녀석이다.
하르트만 가문을 6대 검술명가에 버금가는 명문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흑색 6반의 대표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흑색 6반을 이끌면서 다른 반을 꺾고 싶어 하는 거지.’
적색 1반도, 청색 2반도, 황색 3반도, 녹색 4반도, 백색 5반도… 6대 검술명가 출신들이 대표를 맡고 있다.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반마다 한 명씩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끄는 흑색 6반이 다른 반을 꺾는다면, 하르트만 가문이 6대 검술명가를 꺾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슈미츠는 주인공 아칸델을 노렸다.
세리느와의 대결에서 아칸델의 약점을 찾아냈다고 확신하면서.
이번에도 비슷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슈미츠의 재능은 상위권이야. 그리고 그 녀석이 사용하는 하르트만 쾌검술은… 대처하는 게 쉽지 않지.’
하르트만 쾌검술은 마력 없이 사용하는 검술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속도를 자랑한다.
에르나스의 육체 능력으로는 하르트만 쾌검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A랭크의 바스티안 기사검술을 활용해도 불가능해. 그러니 대책을 세워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왼손에 낀 반지를 만졌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A랭크)]
[로렐리안 실전검술(C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B랭크)]
[---]
[---]
세리느에게서 복사한 능력 세 개 말고 공란이 두 개 더 있다.
이건 유스레흐트로 복사해서 갖고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최대 다섯 개라는 뜻이다.
‘일종의 스킬 슬롯이라 해야 할까.’
소설 속의 에르나스는 세 개였는데, 지금 나는 다섯 개다.
유스레흐트의 효과가 ‘능력 모방’에서 ‘능력 재현’으로 진화하면서 슬롯이 늘어난 것 같았다.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능력 숫자에 한계가 있는 이상, 아무한테서나 닥치는 대로 능력을 흡수하면 안 돼.’
한번 획득한 능력을 없애 버리고 다른 능력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만, 페널티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아무 능력이나 흡수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나에게 도움이 될 능력만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슈미츠와의 충돌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건…….’
작가로서 내가 갖고 있는 지식.
그 속에서 가장 적합한 해답을 도출해 냈다.
* * *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의 수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검술 수업, 체술 수업, 학술 수업이다.
검술은 말 그대로 검술 자체를 가르치는 수업이고, 체술은 검술과는 별개로 육체적 능력을 증진하는 수업이다. 그리고 학술은 역사나 전략 등 학문적 소양을 기르는 수업이다.
흑색 6반의 첫 번째 수업은 검술 수업이었다.
“검술 수업은 누가 가르쳐 주실까?”
“안네리제 교관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 아닌가?”
기숙사 맞은편에 위치한 ‘학관’으로 이동한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다들 누가 검술 수업을 진행해 줄지 궁금해하는 중이었다.
물론, 나는 누가 나타날지 알고 있었다.
“다들 모여 있군.”
갑자기 들려온 엄숙한 목소리에 다들 숨을 삼켰다.
지도 교관인 안네리제와 함께,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학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른쪽 뺨에 새겨진 흉터가 특징적인 남자였다.
“설마 저분은……!”
“욜스 칼레시우스 님?!”
“드래곤을 쓰러뜨려 황제 폐하께 직접 치하를 받았다는……!”
도룡검(屠龍劍) 욜스 칼레시우스.
예전에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서부에서 몬스터 토벌 임무에 종사했던 검사다.
혼자서 드래곤을 쓰러뜨려서 황제에게서 ‘도룡검’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전선에서 물러나 아카데미에서 후진을 육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설마 첫날부터 욜스 님에게 검술을 배울 수 있는 건가?!”
“세상에……!”
호들갑을 떠는 학생들 앞에서, 안네리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색 6반의 검술 강의는 욜스 교수님이 맡아 주실 겁니다.”
“와……!”
학생들이 흥분을 금치 못했다.
드래곤을 쓰러뜨린 전설적 영웅에게 직접 검술을 배울 수 있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숙하라.”
하지만, 욜스가 내뱉은 한마디에 다들 조용해졌다.
그 정도로 그의 목소리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너희들은 왜 여기에 있느냐.”
갑자기 욜스가 던진 질문에, 신입생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다시 한번 묻겠다. 너희들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
다들 입을 다문 채 눈치를 봤다.
그런 학생들을 훑어보던 욜스가,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을 지목했다.
“대답해 봐라.”
“그, 그게…….”
지목당한 학생이 말을 더듬었다.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더듬거리면서 대답을 마쳤다.
어제 내가 했던 대답을 참고한 듯했다.
“틀렸다.”
“……!”
“그건 너희가 아카데미에서 1차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에 불과하다.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다.”
그렇게 쏘아붙인 뒤, 욜스는 다른 학생을 지목했다.
“거기, 머리 긴 남학생.”
“네, 교수님.”
“대답해 봐라.”
지목당한 학생은 슈미츠 하르트만이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으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하여, 가문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한 대답이군.”
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틀렸다.”
“……!”
슈미츠가 숨을 삼켰다.
이어서 욜스는 다른 학생들도 지목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지만 욜스를 만족시키는 대답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에는 보라색 머리, 대답해 봐라.”
“저, 저는 부모님이 아카데미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하셔서…….”
“…….”
“흐윽…….”
비올라의 한심한 대답에 욜스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울상을 짓는 비올라를 내버려 둔 채, 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흑색 6반의 대표가 누구냐.”
“…….”
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제가 어제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교수님.”
“그러면, 네가 대답해 봐라.”
욜스의 차가운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마치 칼끝을 목덜미에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
모든 학생의 이목이 나에게로 집중되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