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검술 천재가 될 소양 (2)
‘세리느는 분명 동요하고 있는 상태야.’
얼굴 표정을 보고 안 게 아니다.
지금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정석대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세리느의 전신에서… 빈틈이 발생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세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분명 나하고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빈틈이 느껴졌다.
‘아!’
뒤늦게 깨달았다.
정확히는 몸이 아니라 시선에서 빈틈이 발생하고 있었다.
‘내가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자세를 취하는 걸 보고 당황해서 시야가 좁아진 상태야.’
원래 세리느는 내가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가도 정석적인 방어 동작으로 받아 낼 수 있다.
지금 취하고 있는 자세도 그걸 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리느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관찰하고 있는 중이라 시선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내가 공격해 들어가도 반응이 늦어져서 제대로 방어해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시선 처리 하나만으로 완벽한 자세에 빈틈이 발생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걸 어떻게 깨달은 거지?’
마치 숙련된 검사처럼 상대방의 빈틈을 꿰뚫어 보고 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 A랭크에 도달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이건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영향이 아니야.’
바스티안 기사검술하고는 상관없다.
세리느에게서 복사한 또 다른 검술… 로렐리안 실전검술 C랭크의 영향이다.
‘로렐리안 실전검술은 서부 계통 검술이었지.’
서부 계통 검술은 변칙적인 전법을 중시한다.
특히 상대방의 빈틈을 공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로렐리안 실전검술은 C랭크 수준에 불과해. 고작 이 정도로는 세리느의 빈틈을 꿰뚫어 볼 수 없어. 하지만…….’
내 바스티안 기사검술은 A랭크.
로렐리안 실전검술이 바스티안 기사검술과 조합되면서, 세리느의 바스티안 기사검술에 빈틈이 있다는 걸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내가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다.
‘세리느도 이 정도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거야. 왜 나는 가능한 거지?’
검술과 검술을 조합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
이건 분명 내 소설 속에 존재했던 개념이다.
하지만 이걸 하려면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올라야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중반부 이후에나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검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설마…….’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각종 검술 철학 중 상당수는 내가 소설을 창작하면서 지어낸 것이다.
물론, 나는 검술 따위는 배워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소설가였다.
그러니 전부 다 뇌내망상으로 지어낸 가짜 철학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생각한 세계야.’
이 세계는 소설가인 내가 만들어 낸 세계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는 내가 생각한 검술 철학들이 하나의 진리로서 작용하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돼.’
이 가설이 맞다면, 나는 검성(劍聖)급의 깨달음을 이미 옛날에 얻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론, 기술 면이나 마력 면에서는 아직 수준 미달인 만큼, 검성의 경지에 도달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는 검술 천재가 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상태로 이 세계에 온 거야.’
가슴이 뛰었다.
이 세계에서 내게 주어진 특전은 복사 능력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압!”
그때, 계속 기회만 엿보던 세리느가 한발 먼저 움직였다.
자세 자체는 완벽. 하지만 여전히 시선 처리에 빈틈이 있다.
“……!”
팍!
입을 굳게 다문 채 세리느의 목검을 받아쳤다.
속도도 스피드도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막아 낼 수 없는 공격은 아니었다.
“오오!”
한순간의 공방만으로도 주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스티안 기사검술 A랭크끼리의 대결이다.
검술의 조예가 있는 신입생들에게 눈 호강이 될 것이다.
“으윽……!”
세리느가 이를 악물고 다시 공격을 펼쳤다.
나는 냉정을 유지한 채 그걸 모조리 받아쳤다.
물론, 방어만 한 것은 아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리느와 동급의 공격을 펼쳤다.
‘정석적인 움직임을 펼치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기술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일일이 고르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바스티안 기사검술 A랭크가 반사적으로 가장 정확한 기술을 선택해 줬다.
‘빈틈을 파고든다!’
궁지에 몰린 세리느가 바스티안 기사검술의 대표적 기술인 버티컬 트리니티를 펼치려는 것을 감지했다.
세리느가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낌새를 나한테 드러내고 말았다.
파파팟!
세리느의 삼연격이 전부 틀어막혔다.
빈틈투성이였던 세리느의 버티컬 트리니티를, 내가 펼친 버티컬 트리니티로 모조리 상쇄했기 때문이다.
“……!”
경악하는 세리느.
빈틈에 빈틈이 더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똑같은 기술로 받아치면, 상대방의 동요를 극대화할 수 있지.’
이건 원래 주인공 아칸델이 중반부에 터득한 전법이다.
이 전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아칸델은 뼈아픈 패배를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다.
나는 이미 그 깨달음을 가진 채 이 세상에 와 있으니까.
‘여기서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어.’
주저하지 않고, 커다란 빈틈을 향해 목검을 찔러 넣었다.
둔탁한 소리가 들린 직후, 세리느가 들고 있던 목검이 하늘 높이 튕겨져 나갔다.
* * *
대결은 에르나스의 승리로 끝났다.
여러 사람의 환호에 휩싸인 에르나스를 보면서, 세리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목도에 가격당한 손목이 시큰거렸다.
‘지금까지 내 앞에서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분명 지금까지 에르나스는 저 정도 실력이 아니었다.
세리느가 대련을 신청해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회피했고, 입학시험에서도 남들 몰래 꼼수를 썼다.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인 ‘가짜 천재’가 분명했는데, 어째서…….
‘심지어 바스티안 기사검술까지 익히고 있었다니……!’
세리느는 눈물을 삼켰다.
바스티안 출신인 세리느가 바스티안 기사검술로 에르나스에게 패배했다는 건 정말 치욕적인 일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바스티안 기사검술로 에르나스에게 패배한 것보다 부끄러운 것이 있다.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부분은 그동안 얕보고 있던 에르나스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능력도 없으면서,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단정하고 깔보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세리느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말로,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어.’
원래 세리느는 에르나스가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라 싫어했었다.
하지만 세리느한테 에르나스를 그렇게 비난할 자격이 있었을까.
‘나는… 에르나스에게 사과해야 해.’
세리느가 섣불리 약혼을 취소한 상대는… 결코 깔볼 상대가 아니었다.
* * *
“역시 에르나스 님이야!”
“저렇게 검술 실력이 뛰어나셨구나!”
“바스티안 가문의 검술을 어떻게 저 정도로 능숙하게 사용하는 거지?”
“역시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엄청난 재능이야!”
주위에서 들리는 환호성을 들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세리느의 버티컬 트리니티를 받아친 시점에서 내 체력은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역시 순수한 육체 능력은 세리느 쪽이 위인 것 같았다.
‘에르나스 이 녀석, 체력 단련 좀 하지.’
나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후련해.’
작가로서 소설만 쓰고 있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기분이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줄은 몰랐다.
이 느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쪽 세계에 온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계속 강해져야 하는 거야.’
단순히 남의 검술을 복사해서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한 단계 승화시켜서,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
나한테는 그 소양이 있으니까.
‘나에게 검술 천재가 될 소양이 있는 거라면… 정말로 검술 천재가 되어 주겠어.’
소설 속에서는 가짜 천재였던 에르나스의 운명을 바꿔, 진짜 천재가 된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