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Epilogue
2022년 완공된 SGBC는, 세계 건축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한국에 방문한다면 꼭 가봐야 할 건축물 Best One.]
[크고 작은 모듈들의 융합과 조화.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 되어 만든 아름다운 조형의 결정체 SGBC.]
우진이 가진바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설계한 이 SGBC는, 전 세계인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어 탄생했으니까.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세계건축협회장으로 부임한 세계적인 건축가 존 클레드가,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직선으로 비스듬히 솟는 듯 보이는 수많은 선들이 이어져 하나의 면을 만들었고.]
[그 수많은 면들이 또 한 번 휘감기며 다시 거대한 곡선을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그 유기적인 면의 형상들은 다시 한번 정제된 패턴으로 건물의 외관에 녹아들었으며.]
[그것으로 SGBC는 오로지 그만이 가진 아름다운 조형성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절제된 틀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궁극의 조형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존 클레드의 이 이야기는, 매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글로벌 건축협회장 존 클래드, 서우진의 SGBC를 최고의 건축이라며 극찬!]
[“절제된 틀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궁극의 조형미” 건축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 존 클레드.]
[한국에도 드디어 세계적인 건축가가 탄생했다?]
[세계적인 건축물로 인정받은 서우진의 SGBC.]
그리고 여론이 이쯤 흘러가자 이제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2023년도의 ‘프리츠커 건축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단 한 명의 건축가도 수상한 적 없는, 건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프리츠커 건축상.
몇몇 국내 언론에서 올해의 프리츠커 건축상을 우진이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였고.
그런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우진의 수상을 기대하기 시작하였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권위 있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우진이 받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국위 선양이라 할 만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WJ 스튜디오 내에서도 프리츠커 건축 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종종 흘러나왔다.
“대표님, 정말 프리츠커 받으실 수 있을까?”
“제발, 됐으면 좋겠다.”
“그러게. 솔직히 대표님 정도면 받으실 만한데.”
“나 요즘도 옥상에서 바람 쐴 때, 한 번씩 멍하니 SGBC 쳐다본다니까?”
“나도 그래. 진짜 맑은 날에는 한강 너머로 SGBC 밖에 안 보여.”
프리츠커상은 매년 1월 말까지 후보자 추천을 받는다.
당연하겠지만 우진은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아 그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40여 개 국가의 500명이 넘는 후보자들 사이에서 경쟁을 시작하였다.
사실 경쟁을 한다고 해서 우진이 해야 할 일은 없다.
지명된 후보자들을 심사하여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은, 오롯이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의 재량이었으니까.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십여 명이 각각의 심사를 거쳐 비밀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 결과는 보통 3월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심사결과.
[2023년도 프리츠커 건축상의 수상자는, 대한민국의 서우진입니다.]
우진은 한국 나이로 35세에, 건축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대 수상자들 중 최연소의 나이였다.
“이런 영광스런 상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더욱 멋진 건축, 멋진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우진은 상금으로 받은 10만 달러를 그대로 한국 건축 제단에 기부하였다.
한국 돈으로 1억이 좀 넘는, 우진에게는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의 금액이었지만.
굳이 기부를 한 이유는 어떤 상징성을 포함한 우진의 개인적인 바램 때문이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더욱 훌륭한 건축가가 많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램.
우진의 그러한 의지는 많은 대중들에게 전해졌고, 덕분에 우진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또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진은, 어느새 40대가 되어 있었다.
* * *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때문에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기억들도, 어느 순간이 되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기억.
우진에게는 그것이 바로 회귀였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그 기억만큼은 평생 선명할 줄 알았건만, 어느새 우진은 새로 얻은 이 삶에 완전히 적응해 버렸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회귀’라는 충격적인 기억도 희미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2030년 2월 15일.
우진은 결코 기억할 수 없었다.
이날이 전생의 우진이 두 번째 삶을 얻었던, 바로 그날이라는 것을 말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오셨어요?”
“오늘 오전 회의 있는 것 아시죠? 다들 준비하세요.”
“네, 대표님!”
“오후에는 미팅 있으니까, 회의 늘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날도 우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고.
별생각 없이 업무를 시작하였다.
어제 올라온 결재를 전부 마친 뒤 오전에는 회의에 들어갔고.
오후에는 미팅을 위해 강남으로 이동하였다.
오늘 있는 미팅은 공교롭게도 꽤 중요한 미팅이었다.
“오늘 미팅이 어디라고 했죠, 이사님?”
우진의 질문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경완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대치동. 거기 칠성 캐슬 단지 뒤쪽에 있는 빌라촌 알지?”
“엇……!”
“거기 드디어 이번에 사업 시행인가 나는가 보더라고. 진짜 언제까지 빌라촌으로 남아있으려나 했는데…….”
경완은 운전대를 잡은 채 사업장에 대해 떠들었지만, 더 이상 우진은 그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거기라면 분명…….’
경완이 이야기한 그 빌라촌은 우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뭐야,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왜 말이 없어 서 대표.”
“잠깐만요. 뭐 확인할 게 있어서요.”
우진은 스마트폰을 켜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렇게 경완이 말한 위치를 다시 확인한 뒤에는, 스마트폰의 배경화면에 시선이 머물렀다.
시간과 날짜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배경화면.
1시 45분
2월 15일 수요일
오늘은 정확히 2023년 2월 15일 수요일이었고, 덕분에 드디어 우진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전생에 우진이 회귀했던, 바로 그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일단 생각이 난 뒤에 헷갈리거나 할 일은 없었다.
우진은 정확히 20년을 회귀했었고.
2010년 2월 15일은 그의 전역 날이었으니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우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우연이라기에는 정말 너무도 공교로웠으니까.
물론 전생의 오늘은 이번 생의 오늘과 완전히 다른 하루였다.
그날의 우진에게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안 좋은 일만 생겼었지만, 지금 우진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은 완전히 반대였으니까.
특별하게 좋은 일들이 있던 날도 아니었지만, 하는 일마다 어쩐지 술술 잘 풀리는 그런 날이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다른 사실들과 별개로 하필 그 같은 날에 ‘그곳’을 가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진으로서는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갖은 걱정이 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다시 회귀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이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거나…….’
‘아냐.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해.’
우진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경완의 차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회귀 이후, 우진이 딱 한 번 와봤던 곳이었다.
처음 회귀하여 전역했던 바로 그 주 주말에, 궁금했던 나머지 ‘그 집’에 한번 가봤었으니까.
‘그때는 분명 별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집이었지.’
물론 그때 우진은 집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2030년과 달리 2010년에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밖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여 우진은 그 뒤로, ‘그 집’에 대한 것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한동안 생각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살아왔기 때문일 터였다.
“조합사무실이 어디죠?”
“저 안쪽 허름한 단독주택이라고 하더라고.”
“단독을 조합사무실로 개조했나 보네요.”
“뭐, 어차피 사는 사람도 없는데, 비워둬서 뭐 하냐는 생각이었겠지. 조합 입장에선 여길 조합사무실로 쓰면, 임대료를 아끼는 셈이니까.”
좁은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몰고 들어간 경완은, 인근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개발구역 안은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고 낙후되어 있었기에, 여기부터는 걸어 들어가야 했다.
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조합사무실이 나타났고, 우진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근처에 우진이 회귀했던, 바로 ‘그 집’이 있을 테니 말이다.
우진은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 어렵지 않게 그곳을 찾을 수 있었고.
발견한 순간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된, 20년 전 오늘의 기억과 똑같은 모습을 한 그 집.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우진은, 경완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이사님.”
“왜?”
“아직 약속 시간 좀 남았다고 했죠?”
“한 20분 정도?”
“저 그럼 잠깐, 저기 좀 다녀올게요.”
“저기……?”
이유를 모르는 경완은 고개를 갸웃하였고, 우진은 그런 그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저곳이 아주 오래전 우진이 살았던, 그 집이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었다.
“아, 그런 이유가 있었어? 그래서 아까부터 심란한 표정이었고만?”
“뭐……. 그런 셈이죠.”
“그럼 나 먼저 사무실 들어가 있을 테니까, 얼른 보고 들어와라.”
“네, 이사님.”
우진의 옛날이야기에 피식 웃어 보인 경완은 먼저 조합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깐 응시한 우진은,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우진의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이층집에 작은 마당까지 딸린 단독주택.
초등학생 시절 우진의 추억이 담긴, 그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속의 집.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우진이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회귀의 매개체.
대문 앞에 도달한 우진은,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손을 뻗어 문을 열어젖혔고.
끼이익-
20년 전에 들었던 그 듣기 거북한 쇳소리와 함께, 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할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마당에 발을 디딘 우진은 다시 한번 마른침을 집어삼킨 뒤, 긴장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낡은 문고리를 잡았을 때.
철컹-
우진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