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313화 (313/315)

313화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운

보통의 사람들이 가진 상상력은 생각보다 빈곤하다.

건축‧공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달리, 눈으로 보지 않고는 건물의 완공된 모습을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야 뼈대가 올라오고 마감이 덧입혀지는 것을 보면 이 건물이 완공됐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건물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보여줄 때까지, 그 완성된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2020년 전후로, SGBC와 관련된 이슈들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이 높다란 마천루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처음 공사가 시작됐을 때보다 많이 옅어진 것이다.

하지만 2021년이 지나고 2022년 새해가 밝을 즈음.

SGBC와 관련된 기사들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보통 사람들의 상상력으로도 충분히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아름다운 마천루의 모습이 서울 상공에 솟아올랐으니까.

[서우진의 작품, 삼성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SGBC). 새해 들어 공정률 95% 달성!]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그림 같은 커튼월 패턴의 변화. 디지털 건축의 정수를 보여 준, 건축가 서우진의 SGBC.]

[2022년 5월 준공 예정? 서우진이 디자인한 SGBC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천루가 될 수 있을까?]

[천웅건설과 WJ 스튜디오. “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될 수 없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SGBC가 끼고 있는 널찍한 대로인 영동대로는, 강남에서도 차량 통행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도로이다.

때문에 건물의 완공이 다가올수록 SGBC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촬영될 수밖에 없었고.

봄이 되어 거의 윤곽이 다 드러났을 땐, 지나가던 행인들도 가만히 서 건물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고 갈 정도였다.

준공일을 한 달 앞둔 4월에는, 공중파 뉴스에서 헬기까지 동원하여 항공 샷을 찍으며 앞다투어 뉴스에 보도할 정도.

그렇게 우진의 SGBC에 대한 관심도는, 준공이 다가올수록 자연스레 예열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WJ 스튜디오 직원들도 들뜨기 시작하였다.

“윤 실장님, 어제 뉴스에 SGBC 뜬거 봤어요?”

“당연히 봤지.”

“그게 진짜 이제 다 지어져 가네요.”

“왜. 이 팀장. 감회가 새로워?”

“당연하죠! SGBC 설계에, 제 지분도 쥐꼬리만큼은 있잖아요. 헤헤.”

“뭐, 인정. 그때 다 같이 몇 날 밤을 샜었으니까. 하하.”

“그나저나 SGBC 다 지어지면, 우리 사옥도 그쪽으로 이전했으면 좋겠어요.”

“응? 그건 왜?”

“멋지잖아요. 그런 건물로 출근하면 뭔가 더 기분이 날 것 같아.”

“아서라. 영동대교 타고 출근하다가 복장 터질 일 있나?”

“아……. 맞다. 거기 차 엄청 밀리지.”

하지만 이렇게 삼성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가장 SGBC의 완공을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우진일 수밖에 없었다.

이 SGBC 건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과 희생 그리고 기여를 한 사람.

‘드디어……!’

그래서 5월의 어느 날, 우진은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한 우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이어서 2천 년 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발라드가 잠시 울려 퍼진 뒤.

[여, 대표님.]

익숙한 목소리가 우진의 귓전으로 흘러들어왔다.

[땅- 따앙-]

시끄러운 공사 소리도 함께 들려왔지만, 우진은 개의치 않고 수화기에 대고 물어보았다.

“이사님. 현장 상황 어때요?”

[뭐가?]

우진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SGBC 현장에서 감리업체와 함께 최종 현장 점검 중인, WJ 스튜디오의 이사 박경완.

“마무리 잘 되어 가냐는 거죠.”

[뭐, 그럭저럭?]

우진은 그를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오늘……. 그거, 가능해요?”

처음 우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경완의 대답은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거……? 아. 점등식?]

“네. 그거 말고 뭐겠어요. 흐흐.”

우진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한 경완은,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짜식이, 아주 몸이 달아 있고만?]

“당연하죠. 제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별일 없으면 6시 전에는 시마이 할 거다.]

“그때까지 전기점검 다 끝난다는 거죠?”

[그래 짜샤.]

경완의 시원한 대답에, 우진은 헤벌쭉 걸린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그럼 저 6시까지 튀어 갈게요.”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경완의 대답에, 다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6시는 너무 일러.]

“왜요? 늦어도 6시 전에 끝난다면서.”

그리고 그런 우진을 향해, 경완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야, 생각해봐. 6시에 하는 점등식이 멋지겠냐, 8시에 하는 점등식이 멋지겠냐.]

“아……!”

[아마추어같이 왜 이러실까.]

경완의 그 대답에, 우진은 고개를 절로 끄덕였고 말이다.

“흐흐. 역시 이사님뿐입니다.”

점등(點燈)이란 말 그대로, 등에 불을 켜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건물의 점등식이라는 것은, 건물에 들어가는 조명을 켜는 행사를 말하는 것.

당연히 그냥 켜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에 존재하는 모든 등을 일제히 켜거나, 혹은 어떤 규칙성에 의해 아름다운 조명을 연출하거나.

건물에 들어가는 수많은 조명을 일제히 컨트롤하면서,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 건물의 점등식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보통 준공 직전에 전기공사를 점검할 겸 해서 하는 행사.

우진은 이 행사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 비면 6시에 밥이나 같이 먹자.]

“좋습니다. 삼성에서 먹을까요?”

[오늘 점등식도 하는데, 기념으로 한우 어때.]

“준공 날은 또 준공기념이잖아요?”

[당연하지. 흐흐흐.]

“뭐, 알겠습니다. 드시고 싶으신 거 예약해 두세요.”

[오오……! 역시 우리 대표님!]

경완과의 전화를 끊은 우진이 곧바로 전화를 건 곳은, 마케팅실의 내선 번호였다.

“실장님, 통화 괜찮으세요?”

[네, 대표님. 말씀하세요.]

“오늘 점등식, 일정대로 진행될 것 같다니까……. 어제 말씀드렸던 준비 차질 없이 부탁 좀 드릴게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항공청에 다시 전화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촬영 장비도 다 세팅해 두셨죠?”

[물론이죠!]

마케팅팀과의 전화까지 끊고 나자, 우진은 의자에 몸을 푹 기대었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은 꽤 많았지만, 일이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기분이 붕 떠 있기 때문이었다.

철컥-

“으쌰……!”

잠시 몸을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우진은, 가까스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딸깍- 딸깍-

점등식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렸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그리하여 5시가 조금 넘었을 때.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표님, 삼성동으로 가시는 거죠?”

“네, 팀장님. 작업 마무리하고 정리하시면, 팀장님도 바로 넘어오세요.”

“알겠습니다!”

짐을 챙긴 우진은 부리나케 삼성동으로 향했다.

우진의 걸음걸이는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 * *

슬슬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 어느 때보다 우진이 밤을 기다리고 있어서인지.

5월의 해는 꽤나 길게 느껴졌다.

시간은 저녁 7시.

식사를 마치고 경완과 함께 목적지로 향하던 우진은, 문득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이 아직도 밝네요.”

“그러게. 점등식 일정을 9시로 잡을 걸 그랬나?”

“음……. 뭐, 초저녁 하늘도 운치 있으니까요.”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SGBC현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진의 차가 향하는 곳은, 현장이 있는 곳의 반대 방향.

“야, 그런데 너 지금 어디 가는 거냐?”

“흐흐, 와 보시면 알아요.”

의아한 표정이 된 경완을 태우고 탄천을 따라 말없이 10분 정도 운전한 우진은, 곧 엉뚱한 건물에 차를 대고 주차장에 내려섰다.

그러자 차에서 내린 경완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진을 향해 물었다.

“야, 이제 시간 별로 없어.”

“알아요.”

“8시까지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해. 아직도 차 막힌다?”

“돌아갈 땐 도로로 안 가니까 괜찮아요.”

“뭐……?”

“그렇죠, 박 차장님?”

시선을 돌리는 우진을 따라, 경완의 시선도 자연스레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낯선 한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아직도 아리송한 표정인 경완을 둔 채, 우진이 그와 악수하였다.

“하하, 서우진 대표님을 이렇게 직접 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니요. 제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하하.”

“충분히 대단하시죠. SGBC는 제가 출근길에 항상 지나는데, 볼 때마다 정말 감탄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낯선 남자와 우진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경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아……!’

경완은 여기가 어딘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우진은 경완을 데리고, 헬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항공업체에 도착한 것이었다.

“여긴, 저희 회사 박경완 이사님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이사님. 박승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차장님. 박경완입니다.”

차장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WJ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촬영팀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대표님! 이사님!”

“하하, 다들 와 계셨네요.”

그리고 잠시 후.

두두두두두-!

허공을 가르는 헬기의 날개 소리와 함께, 일행은 하나씩 헬기에 탑승을 시작하였다.

미리 준비를 다 해 두었기에, 절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 그래요, 이사님. 무서워요?”

“나 헬기 처음 타본다…….”

“여기 헬기 두 번째 타는 사람은 없을 걸요?”

“…….”

이윽고 헬기가 날아올랐고, 일행의 시야에 점점 서울 밤하늘 풍경이 들어왔다.

멀찍이 SGBC 건물이 보였지만, 아직은 까만 실루엣일 뿐이었다.

우진과 경완이 헬기를 타러 온 사이 하늘은 제법 어두컴컴해졌고.

점등식 직전인 SGBC타워에는 아무런 불도 들어와 있지 않았으니까.

[탑승객 여러분, 꽉 붙잡으세요.]

항공으로 이동해서인지 헬기는 금새 SGBC타워까지 도착하였고, 그 인근으로 천천히 접근을 시작하였다.

500미터가 넘는 건물의 위를 날고 있자니, 우진도 창밖을 내려다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비행기 탈 때랑은 완전히 느낌이 다르구나.’

일행이 헬기에 적응하고 있는 동안, 조종사는 능숙하게 SGBC 건물 인근을 빙빙 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헬기의 비행궤적이 안정됐을 즈음.

촬영 팀의 무전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팀장님, 준비되셨습니까?]

“오케이. 이쪽은 준비 완료.”

[이제 5분 전입니다. 예정대로 점등식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무전을 받은 촬영팀장이 반사적으로 우진을 응시하였고.

“대표님, 진행할까요?”

우진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예정대로 가죠.”

우진의 말이 떨어지자 무전은 끊어졌고, 촬영팀은 분주하게 장비를 한 번 더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3분의 시간이 흘러간 뒤.

[레디- 큐!]

짧은 무전음을 시작으로, 거대한 SGBC 건물의 하단부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띵- 띵- 띵-!

조명은 순차적으로 점등되었다.

SGBC 건물의 커튼월 패턴의 배열을 따라, 규칙적으로 하나하나 들어오기 시작하는 새하얀 조명들.

마치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기라도 하듯 500미터가 넘는 높이를 휘감으며 타고 올라오는 조명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 우와……!”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이 빛의 향연은, 평생에 한 번 보기조차 힘든 아름다운 장관임이 분명하였다.

건물을 사선으로 휘감으며 하나씩 켜진 불빛은 이내 꼭대기 층까지 환하게 밝혔으며.

그것을 마주한 우진은 벅찬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앞으로 전 세계인들이 이렇게 평가하게 될 우진의 SGBC 타워가,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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